취해서 그랬다. 술에 취한거라기 보다는, 그냥 그 분위기에 취했다고 한게 맞다. 따뜻한 차 속에 윤두준 씨와 나만 있고, 잔잔한 노래까지 흘러나오는 그 분위기라면 무엇이든 다 말 할 수 있는. 어쨌든 굉장히 힘든 말을 끝마쳤는데도 한참 대답이 없던 윤두준 씨. 나는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그리고 윤두준 씨를 바라봤는데, 그는 무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못 들은 걸까. 정말 어색한 정적이었다. 물론 라디오는 켜져있었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따 편의점에 가야한다. 편의점에 가야 한다고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그 말은 접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타임머신(3년 전, 두준이가 알바했을때. )--
군 제대 후 집안의 경제적 지원 없이 독립하기로 했는데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서 이곳, 저곳에서 퇴짜를 맞고 힘없이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발견한 알바 급구의 종이 한 장. 그 종이가 붙은 곳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한다. 꽤 나이가 들어보이는 점장님이 반기며 인사 해 주셨다.
"어서와요."
"저기! ...알바 아직.. 구하세요?"
문을 딱 열자마자 말했다. 점장님은 따뜻하게 웃으시며 아직 구하신다고 하셨다. 당장에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니 점장님께선 나에게 이제(저녁)부터 밤샘을 맡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요섭이가 맡은 시간. 내 첫인상이 시원하니 딱 밤에 잘 하겠다 믿음이 가신다고 하셨다. 계산 하는 법, 청소, 정리 그리고 가장 머리를 쓴다는 담배위치가 적힌 종이까지 모두 주시고는 허허 웃으시며 편의점을 나가셨다. 굉장히 갑자기 이 조끼를 입고 일을 하게 된 것 같지만, 당장에 돈이 필요해서 그리고 재밌을 것 같아서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아저씨 손님이 문을 열면서 담배이름을 외치는데 내가 빨리 못 찾아드려서 매우 화가 나셨다. 그래서 진땀을 빼며 점장님이 주신 종이를 보고 달달달 외우는 중이었는데, 종소리가 울리며 학생 손님이 하나 들어왔다. 왜소한 체격이었는데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복. 전화를 하며 들어왔는데 힘없이 걸으며 음료 냉장고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맨 위 칸에 있는것을 보고 손을 들어 꺼내고 자기가 찾던게 맞는건지 확인하는 듯 이리저리 살피더니 카운터로 왔다. 가까이 올수록 생김새가 더 잘 보였다.
바코드를 찍고 돈을 받는 동안 자연스럽게 뻗은 시선은 그 아이의 명찰에 향했다. 양요섭. 요섭. 뭔가 생김새 같이 귀여운 이름이었다. 아담하니 뭔가 지켜주고 싶은? 하여간. 그랬다. 마주 선 요섭이란 아이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며 으응- 엄마 나 지금 집 밑에 편의점이야. 갈게- 하며 전화를 끊었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난 그 시선을 받고 바코드를 찍었다.
"1500 원요."
살짝 구부려 핀 내 손바닥에 살짝 요섭의 손가락이 닿고 차가운 동전과 지폐가 내려왔다. 난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로 그를 보내주었고, 요섭은 작게 안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안녕히 계세요. 라며 편의점을 나섰다.
이게 아마 처음 만났을 때 였던것 같다. 그 후로 요섭은 늘 그때 산 그 커피를 샀다. 아침에 등교할 때나, 밤에 집에 들어올 때나. 참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요섭이 하도 그 커피를 많이 먹어서 딱 들어오기만 해도 그 커피는 떠올랐고, 편의점에 들일 물건이나 뺄 물건을 점장님과 논의(?) 비슷한 거를 할 때, 꼭 그 커피는 남겨두자고 했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지 일년도 안 되었을 때, 난 시급이 더 센 인턴자리가 생겨 그 쪽으로 가게 되어, 편의점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차피 길게 하지도 못할 알바였지만, 뭔가 가슴에 남는게 있었다. 양요섭. 굉장히 하루를 피곤하게 사는 것 같은데,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은데, 한번 형으로 재밌게 다가가서 놀아주고 싶은데, 한낱 알바 따위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끝일줄 알았던 요섭과의 만남이 역할이 바뀐채로 만날 줄이야.
--다시 돌아옴요--- 툭툭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윤두준 씨 였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윤두준 씨. 이번에도 아닌걸까. "지금..몇 시에요?"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봤다. "이제 곧 열시." "얼마나.. 남았어요?" "삼십분?" 애매했다. 열시면 알바가 시작되는데 삼십분이 남았으니 말이다. 집에 갔다오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고 (윤두준 씨를 더 보고 싶으니까) 안가기엔 윤두준 씨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말이다. 조심스레 고갤 들어서 윤두준 씨한테 말했다. "삼십분만... 나랑 있어줘요." 고백도 했는데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못할말이 있으랴. 윤두준씨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가슴에 닿은 안전벨트를 조물딱거리며 있었는데 윤두준 씨가 말을 건다. "나도 저 편의점에서 알바했었어요." "..와.." "한 삼년전인가. 여튼. 그때 자주 왔죠." "누가요? 내가?" "응. 맨날 ○○커피 사갔잖아요. 난 기억하는데." 윤두준 씨 인생에서 내가 기억되고 있었다니, 잠에 쌓인 내 눈꺼풀도 뜨였다. "헐. 왜 난 모르지?" "아마.. 알바한지 1년 안되서 그만 둬서 모르죠. 그리고 누가 알바생을 다 기억하겠어요." "아..." "그 왜 어젠가 그저께 내가 커피 줬잖아요. 왜 내가 하필 많은 커피 중 그걸 줬는데." "..."
"신경 쓴거에요. 내가 양요섭씨한테." ----- 암호닉--홈런볼 곰 양념치킨 손님 방구 듀니 ----_ .ㅠㅠㅠㅠㅠㅠㅠ두ㅜㅠㅠ두주뉴아ㅜㅜㅠㅠㅠ 드디어 고배규ㅠㅠㅠㅠㅠㅠㅠ 아 저눈빛으로 고백해주면 당장가서 뽀뽀할텐데ㅜㅜㅜㅜㅜㅜㅜ아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