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투빅-Lady Lady
(부제: 당신, 참 매력적이야.)
01
"전 알 권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겁니까, 그 쪽은 항상…."
"그래요, 제가 그 날 이사님 면전에 대고 아주 상스러운 욕을 했었죠, 주옥같은 옥안에 대고 물을 뿌리기도 하구요, 얼굴 못지 않게 잘생긴 정강이도 찼습니다. 근데 그게 왜요?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그쪽 그쪽 하시는 그쪽께서 먼저 성희롱 하셨잖아요."
김이사가 복도로 향하는 사이 커피를 잽싸게 들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더이상은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 것 같아서, 그런 간 큰 행동을 했다. '커피요.' 하며 건네는 내 행동에 달갑지 않은 웃음으로 '나는 그런 심부름 시킨 적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하고 대답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알 권리가 있음을 외쳤다. 내가 대체 무엇때문에 떳떳하지 못 해야만 하는가. 그의 권력남용 앞에서 내 귀에 수치스럽게 필터링 된 그 말은 알 필요가 없는 찌끄레기가 되는가. 그런 내 말에 김이사는 마른세수를 했다.
"피곤해, 당신이란 여잔 너무 피곤해. 처음 제가 주인이 아닌 선 자리 나왔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한 내가 미친놈이지…."
누가 해야 할 소리를, 나는 기가 차서 의미 없는 웃음을 한 번 뱉어내고 말았다.
"꼭 퇴짜 맞아야 하는 자리여서 그랬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
"정작 선 나왔어야 될 사람 성함도 몰랐고, 못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무례함은 내 과실이 맞습니다. 물론 더 무례했던 말들과 건방졌던 태도들도 포함해서."
"…."
"그런데 그 상황들 속에서 내 것만 빼면 나머지 몫은 당신 건데."
김종인은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상태로 말했다. 내가 납득하지 못 했던 상황들을 단번에 아, 그렇구나. 하고 정당화 시킬 정도로 그 사람의 말재주는 뛰어나단 사실을 나는 잊고 있던 걸까.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를 올려다 보기만 했다. 나머지 몫. 정작 선 나와야 될 사람 성함도 몰랐고, 못 알아 봤던 그와 동등한 과실, 그리고 꽤 컸던 무례한 행동들. 나는 내 어깨에 얹혀진 그의 손을 쓸쩍 잡아 떼었다.
"제가 많이 무례하고 건방졌죠."
"…."
"막 싸가지 없고 이런 미친 여자는 또 뭔가 싶고 귀찮고."
"…."
"근데 앞으론 그렇게 느끼실 일 없으실 겁니다. 우리 연결고리는 더이상 없으니까. 이런 분을 몰라 뵀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피곤해? 내가? 당신도 건방져,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너무너무. 그렇게 툭, 하고 그와 나 사이를 잇고 있던 팽팽한 실이 끊긴 것처럼 탁 트였다. 어딜 가나 나를 질질 끌어대는 그의 생각들.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넘음. 이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황당한 기색으로 웃는 그에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숨을 고르는 게 다였다.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화 났습니까."
"말 걸지 마세요."
탁탁. 서류들을 책상에 쳐내어 가지런히 정리하는 중 들이닥친 그였다. 퇴근은 먼저 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친히 여기까지 와주시니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 쪽 파티션 칸에 와이셔츠를 반 쯤 접어올린 팔로 팔짱을 끼고는 비스듬히 기대 있는 모습이 왠지 약을 올리는 것만 같아 외면하려고 애썼다. 아까 저랑 싸우다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와서 화 났냐니. 너무도 기가 찬 질문이 아닌가. 눈동자를 가득 채운 차트에 대해 생각하는 데에 열중하려고 애썼다.
"내가 그쪽 한참 상사인데 말을 어떻게 안 걸어."
"…."
"아무리 화 났어도 이 쪽은은 좀 봐 주지?"
이죽거리는 듯한 그 말투에 열이 바짝 올라 눈썹을 꿈틀거렸다. 결국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그의 사원증을 주시했다. 아직 얼굴 올려다 볼 정도로 관대한 인간은 아니라서, 난 그 정도로 그릇 작은 인간 밖에 되질 않는다는 듯 눈을 내리 깔며 계속해서 그의 사원증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나 이내 내 볼을 양 손으로 잡아 치켜 올리는 그의 행동에 그런 나의 반항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딱 거기까지만.
"지금 나 퇴근하고 없을 시간인 거 알긴 압니까."
나 때문에 기다렸다? 김종인 당신이?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마음을 애써 다 잡았다. 풀어지려고 하는 인상까지 전부.
"알죠, 잘 알고 있습죠."
"오피스톡도 무시하고, 문자도 안 받고."
"…"
"그쪽이 여간 신경 쓰게 해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지."
"최대한 최부장님 통해서 말씀 전해 듣고 싶은데요, 이런 얘기조차도 이사님 얼굴 보기 그래서."
"나 반항적인 여자에 환장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싫으면,"
"…."
"그냥 내 얼굴 마주치고, 보면서, 그렇게 순종적인 게 좋을 텐데."
엉덩이와 쇄골에 이어서 반항적인 여자라니. 그냥 이상형을 다 까발려 주시죠, 이사님.
나는 기가 찬다는 듯 탄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인정하기 싫은 건, 그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 부근이 뜨뜨무리해짐을 느끼며, 가슴 부근이 자그마한 요동을 시작했다는 것. 재수없던 그의 말투와 나를 열 받아 미치게 만들던 그 몇 마디들이 뇌속에서 구겨지기 시작했다. 식지 않던 열이 점점 식어가는 것 또한.
"전 이사님을 위해 반항적일만큼 그렇게 친절한 인간이 아니라서요."
"글쎄, 내가 보기엔 꽤 반항적인데."
"다음날 안 찜찜하게 출근하시려고 지극정성이시네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 목요일이었군. 다음날 회사에서 얼굴을 마주쳤을때의 머쓱함을 최소화 하기 위한 거라면 나는 사양인데.
"난 출근 안 하면 그만입니다."
또 그런 말 따위에 휘말려들어 마음 속이 아리송함으로 뒤덮이는 기분이다.
"이사님도 저 뺨칠 정도로 반항적이신데."
"좀, 섹시한 건 압니다."
나는 키득키득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 망할. 화만 잔뜩 내려고 했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장난에 넘어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날 뭘로 생각할까. 보나마나 또 헤픈 또라이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ㅇ사원 방금 웃은 건 내 착각만은 아닌 것 같은데."
"하시는 말씀마다 섹시하시네요, 이사님."
"반응이 상당히 매력적이네요, ㅇ사원."
그러면 또 그런 말에 실실 웃으며 이죽대듯 대답하는 김이사다. 저렇게 애같은 웃음은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기분이 묘해져 한 번 머쓱했다. 그러는 동시에 내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곤 내 볼을 검지로 툭 건들이는 행동에 놀라 흠칫거렸다.
"깜짝 놀랐습니다."
"반응 귀여운 건 압니까."
"이상한 장난 그만 치시고 어서 퇴근하시죠...!"
알겠다며 실실 웃는 그의 등을 두어번 떠밀었다. 투덜투덜대며 사무실 문을 주시하는데에도 내가 놓지 않고 있었던 조그만 설레임과 희망이란 건,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 된 것이었다. 참 매력적인 사람.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ㅇㅇ씨, 조금 이따가 퇴근 같이 할래요? 도대리에게 온 오피스톡 메세지에 나는 알겠다고 답장을 날렸었다. 우리는 예사로운 어색한 남녀처럼 집에 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 대신에 분위기 좋은 카페 따위를 선택했고, 빨대를 빙빙 돌려가며 잔 안에 들어있는 얼음이 녹아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일하지만 적당히 긴장감 있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 대해 떠들어댔다. 마치 미뤄뒀던 만남을 다시 하는 것같은 반가움 속에서.
"그럼 도대리님은 언제 입사하신 거에요?"
"나? 나는 스물다섯살 때 입사 했어요. 생각해보면 나도 운이 좋았던 건데. 삼촌 소개로 들어갔거든요."
"우와, 삼촌도 도대리님처럼 능력이 좋으신가봐요, 멋있다."
도대리는 내 말에 어색하게 아하하 소리내 웃어보였다. 내 말이 머쓱한지 제 앞머리를 쓸던 도대리는 내게 빈말이죠? 하고 물었다. 그러면 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지. 아뇨, 정말이에요, 정말. 도대리는 그런 내 말에 애같이 테이블에 한 팔을 펼쳐놓고 고개를 얹으며 엎드렸다.
"이 나이에 부끄러워서 원…."
그런 도대리의 행동에 나는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말, 행동. 모두 하나하나 귀엽지 않은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런 매력에 퐁당 빠질 것 같아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허벅지 위에서 핸드폰이 울려댐을 느끼고 급히 잠금화면을 풀고 카카오톡 대화창을 주시했다.
'잡니까.'
핸드폰 상단바 위에 표시 되어 있는 시간은 이미 아홉시였다. 평소같으면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릴 게 분명했던 시간이었지만 도대리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기적 어기적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었다. 시간은 둘 째 치고, 그가 개별적으로 나에게 웬 문자? 나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키패드를 터치하기 시작했다.
'아뇨, 안 자는데요.'
'내일 일찍 좀 나와줬음 좋겠는데.'
'원래 일찍 나가는데요.'
'런칭 기획 자료 최부장님 서랍에 있다는데, 당신이 보고서 수정하고 넣느라 갖고 있던 열쇠를 아직도 안 돌려 줬다면서요.'
이 남잔, 무슨 온오프라인 에브리데이 다나까야, 예의가 아주 몸에 배어있다 못 해 극진하신 분임이 분명하다.
'예, 알겠는데요, 이사님 원래 온라인에서까지 말투까지 그러십니까?'
나의 물음에 김이사는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채팅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음은 내가 보낸지 1초만에 사라진 시간 옆 1이 사라진 것이 증명 해주었고, 그렇게 도대리와 일상 대화를 하며 맞장구를 치는 동안 다리를 덜덜 떨며 그의 답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길고 먼 시간같았던 10분만에 답이 왔다. 잠든 줄 알았던 사람이 보내 온 한 마디는 겨우....
'안 그럽니다. 굿밤, 행쇼. 이런 것도 쓸 줄 알거든요.'
예, 젊어요 젊으세요, 이 젊늙은이님. 이 사람이 정녕 네이버 검색을 거친 것인지 방불하게 했다. 실실 웃는 내 모습이 다 드러 난 건지 도대리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 왔다.
"무슨 재밌는 일 있나 보네요."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며 저도 히죽 따라 웃는 도대리를 보며 나는 일말의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나도 왜 이런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미안함이란 감정은 김이사의 답장을 보며 실없이 웃었던 그 속에는 심상치 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는 것에 대한 속죄같은 것 같았다.
'잘 자요, ㅇ사원. 굿밤.'
그리고, 그에게 마지막 온 문자로 인해 머리를 얻어 맞은 것같은 기분도 뒤따랐다.
하 정말 땀난다 여러분.... 전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변태새끼 변으로 찾아서 김으로 고친다는게 김태새끼가 되질않나...찾기 버튼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굳이 찾기로 이름을 고치질않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양해 부탁드려요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