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바라기
‘ 여, 여기 강아지가 …. ’
그 날, 그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대체 무엇을 본 것이기에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이 큰 집 안에 자신을 가둔 것일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별빛은 제 손목에 걸려있는 수갑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 비해 자유롭기만 한 다른 손으로 그 손목을 문질렀다. 아팠다.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무척이나. 처음에는 이 곳에서 벗어나려 애쓴 적도 있었다. 그게 얼마 전이더라. 곰곰히 생각해보던 별빛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의자에 힘 없이 얼굴을 기대었다. 그래,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결과로 지금 그녀는 엄청난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그걸 깨닫게 되자, 주변의 풍경이랄 것도 없는 것들이 그제서야 별빛의 시야에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풍경이라고 할만한 것도 못 되었다. 그냥, 삭막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감옥을 연상케 하는 쇠창살로 이루어진 창을 통해 달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고, 방 안에는 마찬가지로 쇠로 이루어진 의자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의 등받이에는 별빛의 손목을 속박하고 있는 수갑이 덩그라니 연결되어 있었고, 당연히 별빛은 그 옆에 앉아 그저 하염없이 방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춥긴 또 엄청 추웠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온 몸을 고문이라도 하듯이 통과하고 있었고, 훤히 뚫려 있는 쇠창살을 통해 들어온 차디찬 바람이 이에 동조하고 있었다. 심지어 의자도 쇠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게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분명히 그녀의 말 한 마디를 기다리며, 이 방 안에 그녀를 가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말 한 마디가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질 않아 별빛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틀씩이나 이 좁고, 추운 방에 갇혀 있는 것이다.
“ 하 …. ”
한계였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엔 너무 추웠고, 또한 배고팠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년이었냐고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려 해봤지만 모든 것이 힘들었다. 팔을 내리고 싶어도 손목에 걸려 있는 수갑 때문에 반쯤 걸려있는 자세가 되어 멍이라도 든 것인지, 욱신거리다 못해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고통마저도 힘겹게 느껴졌다.
“ 듣고 있죠? ”
까슬까슬해진듯한 목소리를 내뱉고 난 뒤에야 별빛은 목소리를 가다듬어보려 작게 기침을 해보았다. 그럼에도 나아진게 없는 듯하자 억지로 침을 삼켜보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절로 짜증이 나, 제 스스로를 애써 묶어두려 손목에 걸려 있는 수갑을 한 번 세게 당겨 다시 한 번 고통을 상기시키려 애썼다.
증오해 마지않는 그에게 잘 보이려 목소리를 가다듬다니, 이틀이나 독방에 갇혀있더니 미친게 틀림없어. 안 그래, O별빛? 그리고 곧 있을 고통이 상상되어 미리 이를 악 물어가면서까지 다시 한 번, 수갑에 묶여있는 손을 제 품 가까이로 당겼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의자는 흔들림조차 없었고, 그것을 알기에 더욱 더 세게 당길 뿐이었다.
“ 내가 잘못했어요. ”
가슴 언저리에 얹혀 제대로 나오지 않을거라 자신했던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자 별빛은 씁쓸하게 웃었다. 두 달이란 길면서도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에게 길들여졌단 생각이 문득 듬과 동시에 길들이는 맛도 있겠지, 라던 그의 말이 머릿속을 미친듯이 맴돌았다. 불같이 싸우다시피 하다가 결국엔 그를 받아들이고, 그 뒤에 피곤함과 노곤함이 뒤섞여 눈을 감으려 하는 그녀를 뒤에서 제 품에 한가득 그러안은 그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 내뱉곤 하던 말이였다. 길들여지다. 그게 처음엔 이만큼 무서울지 몰랐다. 어디 한 번 길들여보라지,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그녀였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길들여버리고 만 것이다. 별빛, 그녀 자신이 지금 당장 절실히 느끼고 있을 정도로 참혹하게.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잘못했다는 그녀의 말을 어디선가 분명히 듣고 있을텐데도, 마치 듣고 있지 않다는 것처럼.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만큼 그의 반응을 이끌어 낼만한 답을 별빛을 알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쉬이 내뱉었을 말이었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었기에 제 마음대로 꺼내어지질 않았다.
“ … 그리고 사랑해요. ”
한참을 뜸들이다 말한 그 한 마디가 방 안을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전에 수갑을 세게 당긴 탓에 생채기라도 난 모양인지 손목을 시작으로 해서 흘러내리는 붉디붉은 선혈이 팔을 따라 선을 그리다가 팔꿈치에서 멈춰 하나, 둘씩 시멘트 바닥으로 방울지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긴 별빛은 시멘트 바닥에 고이는 제 피를 보고서는 막연하게 짧은 탄식을 했다. 아, 곱다. 온통 어둡고 차갑기만 한 방 안에 자신의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고 표현될 법한 피가 고이자, 다른 때였으면 질겁했을 상황이었음에도 지금은 그저 곱게만 보여 내뱉은 말이었다.
한참을 시멘트 바닥에 제 피가 고이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아무런 예고 없이 자물쇠를 푸는 듯이 달그락거리는 쇳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순식간에 방문이 열리고 바깥의 전등 빛이 어둡기만 한 방 안을 비춰왔다. 그리고 온기. 따스한 온기가 방 안을 감싸안았고, 이에 별빛은 소름이 돋아 몸을 한 번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 이틀. ”
“ … ”
“ 꽤 오래 버텼네. ”
그래, 그는 그녀를 길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툭 던지듯이 건넨 그의 말에 심장이 이렇게 미친듯이 제 존재를 알려주는 걸 보면.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별빛의 앞으로 다가와 한 쪽 무릎만을 꿇은 채로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열쇠를 골라내고는 의자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그녀의 수갑 열쇠구멍에 넣은 뒤에 미묘하게 오른쪽으로 틀었고, 그러자 달칵, 하는 맞아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어렵지 않게 수갑이 풀렸다. 이리도 쉬운 것을,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 넌 너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
“ 그럼 날 놔줘요. ”
“ 그래서 더 좋다는거야. ”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라며 그는 한 쪽 입꼬리만을 틀어올린 채 웃어보였다. 명백한 비웃음. 무슨 일이 있어도 별빛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을 표하는 그의 방법이었다. 무슨 말을 하던간에 비웃어버리는 것, 이것으로 인해 별빛은 제 스스로 화를 못 참고 폭발이라도 시키듯이 표현해내다가 이 방에 갇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수갑이 풀리자마자 자신이 다치게 만든 제 손목을 보호하듯이 다른 한 손으로 감싸다시피 한 별빛은 안쓰럽단 표정으로 그저 그를 가만히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런 별빛의 손목을 예의주시하느라 그는 미처 그 표정을 발견 못한 듯 보이지만.
“ 그 쪽이, ”
“ 이재환. ”
그 쪽이라 칭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처음으로 이름을 알려준 그는 별빛의 입술에서 제 이름이 나올까 기대하며 어린 강아지마냥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참 귀여운데. 사람 자체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도 자신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열을 내고 보는 그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미워하고 있기에 어떻게든 상처 주려 애썼을 그녀였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럴 수가 없었다.
“ 이름 좋네요. ”
“ 별빛이란 이름에 비하면 한참 못난 이름이지. ”
온전한 칭찬마저도 별빛에게 비교해보며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해 보이는 재환이었다. 왜, 라는 물음에 휩싸여 별빛은 그의 이름을 가만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은 채 입 안에서 혀로만 굴려보았다. 참 좋은 이름이었다. 자신이 부르기에도, 또 그가 듣기에도. 허나, 자신을 납치해 사랑을 갈구하는 그에게는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 입 안에서 재환이란 이름을 굴려보던 별빛이 저도 모르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자, 이에 재환은 아직도 피가 멈출 생각을 않는 그녀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제 손으로 낚아채다시피 하고서는 손등에 힘줄이 설 정도로 힘을 잔뜩 줬다. 영문을 모르는 별빛은 그의 손에 쥐어진 제 손목이 쓰려옴과 동시에 아픔을 토해내자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올려다 본 그의 얼굴은 조금 전의 아이같은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데 없고 성난 사자와도 같은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내 생각만 해. ”
“ 하, 이거 놔요. ”
“ 다른 놈 생각하면서 그렇게 웃지말고, 온전히 내 생각만 해. ”
“ 생각 한 적 없어요. ”
“ 내가 모를 줄 알아? ”
“ 뭘 알아, 그 쪽이 대체 뭘 아는데. 나에 대해 아는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
“ 다 알아,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히 아는 건 …. ”
그에게 붙잡힌 제 손목의 고통에 앞뒤 볼 것 없이 무작정 별빛이 힘껏 외치자, 재환은 조금 전과 달리 눈에 띄게 차분해진 모습으로 별빛의 눈을 응시했다. 분명 아픈 건 별빛 자신이 틀림없는데 되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 짓게 만들 정도로 그가 더 아파보이는듯한 표정으로.
“ 네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매일 벗어나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억지로 말하는 것. ”
“ … ”
“ 그리고 그걸 잘 알면서도 널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없는 나란 놈이 있다는 것. ”
“ 하 …. ”
“ 그니까 거짓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더 말해줘. ”
“ … 뭘요. ”
“ 날 사랑한다고. ”
재환의 말에 별빛은 여지껏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잡힌 제 손목이 아파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제 마음도 모르고 사랑을 갈구하기만 하는 그가 안쓰러워 눈물이 나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저 멈출 새도 없이 눈물이 흐르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하염없이 내보낼 뿐이었다. 진심을 다해 내뱉는 사랑해요, 라는 그 한 마디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마음 속으로만 수십번을 되뇌이며 어느 새 저를 안은 채 큰 손으로 등을 토닥여주는 재환의 품에 안겨 별빛은 그렇게 울었다. 사랑해요, 라는 그 한 마디가 갑자기 어렵게만 느껴지는게 분해서, 그래서 울었다.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그렇게 한참을.
항상 잠이 안 올 때 생각나는대로 아무 생각없이 조각처럼 글 쓰는 편인데
해피 엔딩도 싫고, 그렇다고 새드 엔딩도 싫어해서 끝내고 보면 매번 이렇게 애매모호하네요.
그리고 사실 제목도 .. 항상 제목을 뭘로 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글 안에 있는 대사나 단어를 이용하는게 많네요 ㅠㅠ
그래도 읽어줘서 항상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