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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은 비틀거리면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현재 대학생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았고 금수저, 은수저 들먹일 정도로 부모님이 부유하신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런 대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연예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닝이 익숙하게 자신의 엄지를 찍었다. 이곳에 닝의 발걸음이 끊긴 지 한 달이 되었으나 잠금장치에는 그녀의 지문 기록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에 들어간 그녀는 망설임 없이 B동으로 향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문 앞에서 멈추는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도어락에 한 번 더 지문을 찍었고 문은 한 치의 오류도 용납 못한다는 듯이 재빠르게 잠금장치를 풀었다. 불이 꺼진 고요한 집 안으로 그녀가 들어갔다. 그녀가 내쉬는 한숨에는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녀는 신발을 벗으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신고 있던 게 메리제인이었다. 복숭아뼈에 걸려있는 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힘을 주어 당겨보기도 했으나 쉽게 풀리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으면 갑작스럽게 거실 불이 켜졌다. 하지만 신발 벗는 것에 집중한 그녀는 불이 켜진 사실조차 몰랐다.



현관에 앉아 신발 하나 벗지 못하는 닝을 사쿠사가 방금 잠에서 깬 얼굴로 바라보았다.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뭐 하는 짓이냐고 말을 하려는 찰나에 미미한 술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짧은 시간 내에 상황파악을 끝낸 사쿠사가 헛웃음을 뱉으며 꼬불거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사쿠사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술을 별로 안 좋아하면서 얼마나 마셔댔으면 자기 신발을 벗지도 못하는 건지. 사쿠사가 혀를 차며 그녀의 뒤로 다리를 굽혔다. 그의 긴 팔이 그녀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고 어렵지 않게 얇은 발목을 감싸고 있던 끈을 풀어냈다.



사쿠사는 끈을 풀어준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제 집에서 뭘 하든 말든 내버려두고 다시 자러 가려는데 무언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지럽히는 건 좀 짜증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았다. 닝은 원피스와 속바지를 벗고 속옷만 걸친 채로 소파로 향하고 있었다.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소파에 드러 누워 잠들어 버린 그녀를 본 사쿠사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헐벗은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질릴 정도로 보고 만지고 입술로 꽃을 피워냈던 몸이다. 그리고 한 때는 그가 제일 사랑했던 몸이기도 했다.







[하이큐/사쿠사] 타성의 궤도 上 | 인스티즈

타성의 궤도
공백








단순한 변덕이었다. 딱 한 잔. 하지만 그 작은 날개짓은 커다란 파란을 몰고왔다.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제정신이 아니게 취하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적당히 기분이 좋을 정도만 마시려고 했으나 오랜만에 들어간 술은 달았다. 사쿠사와 헤어진 게 안주가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다행히 헤어진 것에 대한 아픔을 구구절절 친구에게 한탄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 자격이 없는 걸 잘 알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단지 헤실헤실 웃으며 친구와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 중간 중간 아쉽지 않게 술을 들이킨 게 다였다. 그렇게 내 기억은 끊겼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술에 취한 거치고는 아주 양호한 술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눈을 뜬 곳을 보니 마냥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고 텅 빈 곳. 주인을 닮아 딱딱하고 만지면 차가울 게 분명했고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즐비했다. 그 중에서도 거실 한 중간에 있는, 침대로 써도 무방할 정도로 큰 소파에서 나는 깨어났다. 나는 내 위로 덮여있는 이불을 보고 절망했고 이불을 걷어내자 속옷만 입고 있는 내 몸을 보고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 했다. 이 넓은 곳엔 나 혼자였지만 나는 급히 이불로 몸을 감쌌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 집 주인이 이런 나의 모습을 봤다는 건 지금 내가 덮은 이불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의 위치는 여전해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 10시였다. 이 시간대면 그 사람은 훈련하러 갔을 게 분명했다. 나는 급히 주위를 살펴 내 옷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없었다. 분명 있어야 할 내 원피스가 없었다. 집에 오면 옷을 벗는 건 내 습관이었기에 현관 쪽이나 소파 옆이나 옷이 널브러져 있을 줄 알았는데 원피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나는 이불로 몸을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게 확실했지만 혹시 몰라 발걸음을 죽이고 침실로 향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노크했다. 다행히 안에 사쿠사는 없었다. 나는 혹시나 옷이 침실에 있을까 싶어 곳곳을 살폈지만 없었다.



설마, 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집에 쳐들어왔다고 옷을 갖다버리고 할 사람은 아니었다. 진짜 쓰레기인 거 아는데 마음 같아선 빨리 옷을 찾고 도망치고 싶었다. 불안하게 손톱을 뜯고 있을 때였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쿠사가 훈련 때문에 오후에나 올 줄 알았던 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백지가 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오랜만에 보는 그 잘난 얼굴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심장이 아주 빠른 속도로 뛰는 것 같았으나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마치 심장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불을 더 끌어당기는 것밖에 없었다.



사쿠사는 훈련갔던 게 아니라 운동을 하고 온 건지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빌어먹게도 제 옛 연인은 헤어졌어도 잘난 모습 그대로였다. 연애가 끝이 나면 콩깍지가 벗겨지는 건 당연한데 사쿠사에게는 애초에 콩깍지가 필요없었다. 그냥 잘생겼으니까.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으니까. 그건 구여친도 해당사항이었다.



사쿠사는 굳어버린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주방으로 가 드링크를 찾았다. 벌컥벌컥 마시고난 뒤 나에게 아무런 언질이나 관심조차 주지 않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화를 내는 게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보통의 옛 연인인 거 같긴 할테니. 하지만 현재 사쿠사의 태도는 전여친 타이틀도 못 가진 듯 하다. 저건 그냥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네가 그딴 식으로 나와도 나는 전혀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런 식으로 구니까 지난 한 달 동안 나 혼자만 힘들었던 것 같잖아. 나는 주먹을 꽉 지었다. 금방이라도 울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당장에라도 사쿠사에게 무슨 말이라도 뱉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사실 헤어지고 내가 힘들어 해서도 안 되었다. 헤어지자고 한 건 나니까. 지난 연애의 문제는 다 내 몫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이미 이 집을 찾아온 것부터가 틀려 먹은 것 같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나와야 했다. 사쿠사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을 굳게 먹고 있으면 그가 드레스 룸에서 나왔다. 옷 어디 있냐는 내 물음보다 사쿠사가 여러 옷가지를 소파에 던지듯이 내려놓는 게 먼저였다.


"씻어."

"저,"

"대화는 씻고나서 해."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사쿠사다운 행동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을 잃는데 사쿠사는 전에도, 지금도 아니었다. 사쿠사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비로소 이불을 소파에 둔 채 사쿠사 방 반대쪽에 있는 거실 화장실로 향했다. 조금 서운할 정도로 화장실은 그대로였다. 사쿠사가 준 옷도 마찬가지였다. 동거할 때 입었던 내 옷들이었다. 마치 내 흔적이 집안 곳곳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의 흔적을 지우려 들었는데. 연애할 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사쿠사에게 그렇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다시금 확인하는 제 위치가 그렇게 씁쓸할 수가 없었다. 잡생각이 씻겨져 흘러 내려갈 리가 없었지만 나는 애써 샤워기를 틀었다.






*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옷을 입다 쇄골 부분에 파랗게 든 멍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약속 시간에 늦어 급하게 가방을 메다 가방 끈에 있는 쇠 부분과 부딪혔었는데 기어코 멍이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멍을 한 번 쓸어보고는 다시 옷을 입었다. 화장실을 나가자 사쿠사가 식탁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한 번 침을 삼키고는 그에게로 갔다. 눈치를 보며 그의 앞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고민하다 존댓말을 했다. 연애할 때는 반말을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사쿠사는 나보다 3살이나 더 많았기에 존댓말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술 핑계… 대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취해서 습관적으로 이곳에 와버렸어요."


내가 이 집에서 그와 동거를 했던 게 2년이었다.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오래 살았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정말 습관적으로 이곳에 왔다는 핑계는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겨우 세 문장을 만들었는데 손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나는 사쿠사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이것으로 내 할 말은 끝이 났다. 더 말을 붙이는 건 사족이었고 핑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쿠사가 답할 차례임에도 불구하고 사쿠사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사쿠사와 연애하기 전, 그러니까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닐 때 봤던 사쿠사의 무표정이었다. 연애할 때는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속은."

"……네?"

"속 괜찮냐고."

"아."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엉망이었고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듯 속은 울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비단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사쿠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싱크대 위에 있는 편의점 봉투에서 숙취해소제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직접 뚜껑을 따주는 거 역시 사쿠사의 습관이라면 습관이었다. 거절해도 기어코 먹일 걸 알기에 나는 그냥 마시기로 했다.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쓸 데 없는 부분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 마신 병을 내려놓자 사쿠사가 입을 열었다.


"옷은 빨래하고 있어."

"……."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옷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겠다? 아니면 옷 좀 빌려달라? 둘 다 신세를 지는 거라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대답은 두 개 중 그 무엇도 아니었다.


"……왜 빨래했어요?"


그의 입에서 나올 답이야 뻔했다. 더러우니까. 사쿠사는 더러운 거 못 참는 성격이니까.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그것 때문에 나는 융통성이 부재한 자리에 괜한 기대를 넣고 싶어졌다. 최대한 빨리 나를 보내는 게 당신한테도 좋을 텐데, 왜 굳이 빨래를 했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정해져 있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더러워서. 옷 빌려줄 생각 없으니까 기다려."


참, 매정하다고 해야 할지 다정하다고 해야 할지.






요즘... 사쿠사 드림글만 보고 '하이, 큐' 제외하고는 사쿠사 글만 쓰고 있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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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뭐야 뭐야... 사쿠사... 옷 안 버린 이유 뭐야...
3년 전
독자2
센세 이렇게 연속으로 올리기 있기없기..? 나 이제 사쿠사 드림 읽을 것도 없어.... 센세가 2028383개만 써줘 제발,,,
3년 전
독자3
Omgomg..센세 사랑해요💜 2쿨보고 왔눈데 494글이라뉘..흑흑 너무 행복해요
3년 전
비회원61.149
으아 센세 저 하편에 자비를 구하던 비루한 비닝임돠 ㅠㅠ 회전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ㅠㅠㅠ 복받으셔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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