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 내 눈에서도
소금물이 나온다
아마도 내 눈 속에는
바다가 한 채씩 살고 있나 보오
나태주, 그리움

내 편지는
밤 새워 썼어도 늘 백지였다
백지 편지를 고이 접어
하늘 특별시
번지는 없음 이라고 써서
석등처럼 서 있는 우체통에 넣고 나면
밤별들이 파랗게 웃곤 했었다
소나기가 후드득 스쳐도
젖지 않았을 내 편지는
달포 해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찬이슬 맞아도 별인 너는
나의 나아종 지닌 이기에
답장이 없어도 고깝지 않아
달빛이 통밤을 지켜주는 밤이면
나는 잠들지 못하고
조곤조곤
또 너에게 편지를 쓴다
박해옥, 하늘로 띄우는 편지

햇빛을 담고
물을 담고
하늘을 담고
네 생각을 담는다
보고 싶어서
자꾸 보고 싶어서
최인숙, 병 속의 꽃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 사랑

그대의 눈빛은
나를 포박해요
그렇게 바라보면
불이 붙어
날아갈수가 없잖아요
백가희, 민들레홑씨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은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 간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 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종환,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 가슴의 오솔길에 익숙턴
충실한 네 산지기였으면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에
둥우릴 만들어
내 눈물을 키웠으면 했다
그리고 네 깊은 숲에
보이지 않는 상록의 나무였으면 했다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조병화, 남남27 中

사람들은 말하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아아,
사람들은 서로를 찾아헤매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온다
사람들은 말하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부세, 행복

무엇이 빠져 나갔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시멘트 바닥 위에 파인
자디작은 구멍들,
슬레이트 처마의 골을 따라
줄 서 있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빗물을,
다 비워내고 기다리고 있네
텅 빔을,
텅 빈 속만큼
들여다보고 있네
이윤학, 이별

나는 오늘도 걸어서 당신 있는 곳까지 다녀왔다
내가 당신에게 오늘 남길 말들 듣고 있었는가
혼미한 잠 속에 간간이 찾아와선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물다 돌아가는 사람아
도종환, 인차리7 中

나에게 주세요
저 주황색 꽃을
나의 기억속에
그대의 수줍은 미소가
포근한 저
향기에 겹칠 수 있게
그대가 저 꽃을 주면
난 꽃잎 하나를 떼어,
그대의 손에 올릴게요
김경미, 나에게 주세요 中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어,
바람이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가요
나, 꽃바람 들었답니다
당신이 꽃바람 넣었어요
김용택, 꽃바람 中

이대로 잠시 앓기로 한다
단지 오늘만 끝으로
보고 싶다 한마디가 몰고 온 이 하루의 고약한 병증
박소란, 심장에 가까운 말 中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건네준 말
천천히 와
오는 사람의 시간까지
그가 견디고 와야 할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마저도
자신이 감당하리라는 아픈 말
천천히 와
아무에게는 하지 않았을,
너를 향해서만
나즈막이 들려준 말
천천히 와
정윤천, 천천히 와 中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 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고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사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기형도, 비가2-붉은 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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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은 가슴이 평생을 발목 잡을 거란 사실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