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창한 썬데이야.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에 기분이 좋아서 점심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으려 했던 내 계획은
구준회 덕분에 무너졌어. 날씨가 맑아서 구준회씨 기분도 좋나봐. 아침부터 전화오는 거 보면 말이야.
"여보쇼."
[여보쇼가 뭐냐 여보쇼.]
"웬일이쇼."
[ㅋㅋㅋㅋㅋㅋㅋ 으이그 귀여운 내 새끼. 오늘 오빠랑 놀자.]
"싫쇼."
[뭐? 싫다고? 지금 싫다 그랬냐?]
"그렇쇼. 내가 이렇게 좋은 주말 아침까지 널 봐야겠니?"
[이렇게 좋은 주말 아침에 날 안보면 누굴보겠어.
암튼 준비하고 나와. 가고있을게.]
아침부터 날 이렇게 귀찮게 하는 준회가 무지막지하게 귀찮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난 구준회 여자친구인걸.
옆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자고 있는 삐삐(개)털을 살살 쓰다듬어 줬더니
눈에 눈물을 머금고 날 쳐다보는 거야.
삐삐야.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난 떠나야 해.
삐삐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들어갔어.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띠리리리리링 울리는 벨소리. 몇일 전에 산 어른폰인데 집어 던질 뻔 했지 뭐야.
"씻고있다고씼고있다고씻고있다고"
[씻고있다고?]
왁!!!!!!!!!!!!!
"헉.. 죄, 죄송해요. 오빠. 몰랐어요."
[하하. 아냐, 괜찮아.]
"아.. 근데 웬일로 전화를 하셨어요? 저 지금 조금 바쁜데."
[아 그래? 아! 오늘 시간 괜찮아?]
"오늘이요? 오늘 저 조금 바쁜데."
[음.. 그래? 내일은?]
"내일은 좀 많이 바쁜데."
[하하. 지금 오빠한테까지 철벽치는 거야?]
독촉 하면 구준회 구준회하면 독촉. 몇초의 여유를 주지 않는 우리 구준회 때문에 오늘도 사고쳐버렸어.
아니 별로 사고는 아닌가? 아무튼 구준회인줄 알고 받았던 전화는 인호오빠였어.
우리 오빠 친구. 우오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탓에 조금 많이 놀러다녔지.
하지만 이젠 절대 그러지 않아. 왜냐면! 난 구준회 여자친구니깐.
"철벽이라뇨. 암튼 안돼요!"
멋대로 전화를 끊고 머리를 감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왠걸? 문 밖이 약간 소란스러운거 있지.
아니 이런 미친 벌써 우리집 앞에 도착해서 내가 씻고 나오기를 독촉할 미친 집착남 구준회가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살짝 문을 열었더니 두 남정네 소리가 들리는 거야.
우리 구준회씨가 복식호흡을 하며 성량을 뽐내고 있는거야. 대체 무슨일이지?
"여기서 뭐하시는 거냐고요."
"뭐하기는. OO이 기다렸어."
"아니, 그러니까 시발 내 말은 당신이 여기서
왜 내 새끼를 기다리고 있는거냐고."
헉.. 인호오빠랑 구준회가 만나버렸어. 뭐 굳이 만나도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문을 열어놓고 내가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도 둘은 서로에게 빠져서
내가 보이지도 않나봐. 남자친구를 뺏기게 생겼어. 그럴 순 없지!
"오빠. 구준회 둘이서 뭐하는 거야!"
서로 멱살을 틀어잡고 이를 갈던 두 사람이 내 한마디에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데 멍때리고 쳐다보는 게
아까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남정네들이 맞나 싶기도 하고.
준회는 그 순간 인호오빠의 멱살을 풀고 나에게 뛰어왔어.
항상 나를 개취급 하는 준회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준회가 더 개같아.
얼마나 개 같은지 우리집 삐삐랑 친구먹이고 싶을 정도야.
"준비 다 했어?"
"아니, 아직 덜 했어."
"괜찮아, 빨리 들어가자."
"응? 너도?"
"어. 지금 빨리 저 늑대로부터 대피해야 해."
늑대취급 당한 인호오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어.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준회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입술 모양으로
남자친구?
라고 해서 고개를 끄덕여 줬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살 젓는거야.
?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아냐 라고 하며
연락할게 라는 시늉을 한 뒤 인호오빠는 마당을 빠져나갔어.
그제서야 나한테 안겨있는 준회가 느껴졌지.
"주네야."
라고 작게 속삭여주니 입술이 뾰루퉁 하게 나와서 인호오빠가 나간 대문을 향해 레이저를 쏘고 있었어.
"준회야 그러면 눈 나빠져."
"내 눈알이 빠져도 저 새끼한테는 너 못보내."
아니..... 너가 보내줘도 안갈건데..
오랫만에 시내에 놀러왔어. 1학년 때는 준회랑 둘이서 많이 다녔는데 2학년 올라와서는 많이 못왔어.
항상 우리가 시내에 오면 들리는 곳이 있는데
스퐈게뤼~~~ 집이야. 내가 스파게티를 진짜진짜 좋아하거든. 준회도 내가 스파게티 좋아하니까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점점 스파게티에 맛을 들였어. 요새는 먼저 먹으러가자고 까지 한다니깐.
흐뭇해. 흐뭇흐뭇.
자주가던 곳에 자주가던 자리에 앉아서 자주보던 알바생에게 자주먹던 스파게티를 자주같이갔던
구준회와 함께 시켰어. 알바생은 오랫만에 오시네요. 라고 웃으며 메뉴판을 들고 주방으로 사라졌어.
"저 새끼는 너 볼때마다 웃더라."
"내가 이쁜가 보지."
"참~~나. 니가 웃기게 생겨서 그래."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뭐라고? 이 강아지가."
"뭐라고? 이 고릴라가."
서로 마구마구 쏘아보고 있는데 드디어 음식이 나왔어. 스파게티는 사랑이야. 난 스파게티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
내가 좋아하는 구준회가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평생 만들어준다면야 음.. 결혼하고싶당 흐흐히히히
지금 구준회는 말고ㅡㅡ 저런 고릴라 누가 데려갈까 걱정이야.
"자. 이리와봐."
준회는 자리에서 반쯤 어정쩡하게 일어나서 냅킨을 내 티 앞섬에 끼워줬어. 맨날 스파게티먹다가 흘려서 찡찡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다나 뭐다나~ 그러더니 휴지를 픽 던지고 다리 위에 올려. 라고 하면서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어.
준회가 시키는 대로 다리에 휴지를 올리고 스파게티를 한 껏 입에 넣는데
"요 맨 전화왔어 맨 얼른 받아 예스 베이비"
"켁..켁.."
준회만의 특별한 벨소리가 붕붕 울리는거야. 아 나 정말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돼.
씹던 스파게티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도 빼지지도 않는거야. 너무 힘들었어 ㅠㅠ
"괜찮아?"
자기 앞에 놓인 물을 건네면서 물어보는 데 대답해주고 싶어도 목에 걸린 스파게티가
너무 날 괴롭혔어. 눈에 눈물을 거렁거렁 달고 기침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건지
어느새 옆에 다가 온 준회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물을 마구마구 입에 집어넣었어.
"하아.."
덕분에 나는 살아났지. 준회가 없었더라면 난 오늘 아마 죽었을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파게티가
나에게 모욕감을 주다니.. 다 먹어버리겠어.
"천천히 먹어. 그러다 아까처럼 된다?"
그러더니 준회는 폰을 확인했어. 아까 전화온 사람은 누굴까?
준회는 폰을 쓰는걸 되게 귀찮아 해. 그래서 나랑 있을 때도 그렇고 폰을 잘 안봐.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락도 나만 하게 되고 전화도 내 전화만 받는데 대체!! 누가!! 준회한테!!
전화를 한거지? 음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눈치를 보면서 스파게티를 먹는데
"어?"
준회 눈이 똥그래졌어. 아니.. 대체.. 누구야.
"얘가 왜 전화왔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미칠 거같았어.
티 안나게 준회 옆에 다가가서 쪼그려 앉아 폰을 확인 하려 하는데 준회가 폰을 탁 닫고 옆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거야.
"우리 강아지. 여기서 뭐해? 우쭈쭈."
손톱으로 턱 밑을 마구마구 간질어 대는데 너무 간지러웠어.
준회 폰을 함부러 보는 건 좀 그렇고 그래서 내 애교에 무진장 약한 준회에게
애교를 피우기로 했지.
"쭈네야."
"ㅋㅋㅋㅋㅋㅋ 웅 왜그래 응?"
"아까 전화 누구야?"
"뭔 전화? 아까 온거?"
응
"아냐. 별거 아냐."
준회가 나한테 숨기는 게 생겨버렸어. 대체 누구지? 하 너무 궁금해서 스파게티가 싫어져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