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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운, 전체글ll조회 163





 아저씨는 단 이틀 만에 아줌마를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찾으러 나설 때의 축 늘어져 있던 모습과 달리 의기양양했다. 반면 아줌마는 이마에 무거운 추라도 매단 사람처럼 고개를 앞으로 수그리고 쭈뻣거리며 대문을 들어섰는데 여전히 고무신에 낡은 블라우스며 헐렁한 치마, 그리고 꼬마 좀도둑한테 줘도 안 가질 성싶은 보퉁이 하나를 든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줌마가 우리 집 마루에 눕혀져 있는 재성이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재성아!" 하면서 와락 껴안고 울음을 터뜨리자 할머니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고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이모의 안대를 하지 않은 나머지 한쪽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저씨도 그 장면에서는 쓰게 입맛을 쩍 다셨고 장군이 엄마는 쯧쯧 혀를 차서 박자를 맞추었다. 나만이 그 장면을 심상하게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줌마는 섧게 울었다. 그것은 소중한 재성이를 다시 만나게 된 기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기 신세에 대한 설움 탓이기도 했다.


(중략)


 "첫날에는 그렇게 홀가분하고 살 것 같더라구요. 근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가게도 걱정되고 또 집안 꼴이 어떨지… 재성이 때문에…"

  아줌마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잠든 재성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무튼 별일이데요. 내가 자란 친정집에 아무 일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느넫도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고, 또 마음은 왜 그리 불안한지."

 "여자가 어릴 때 자란 집은 제 집이 아니라는 말도 있으니까." 

 "혹시 재성이 아빠한테서 전화가 오면 딱 잡아떼라고 신신당부를 해놨거든요. 근데 정말 밤까지 저 찾는 전화가 안 오는 거예요. 그 때부터는 나 없이도 잘 사는 건가 싶어서 서운한 마음도 들고 아무튼 잠이 안 온데요."

 사흘이 지나자 아저씨가 영영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자기 자신이 아저씨가 데리러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것을 의식한 순간부터 실제로도 아저씨를 기다리게 되었따는 것이다. 그날 저녁 아저씨가 친정집 삽짝으로 들어서자 아줌마의 마음속에 생겨났던 반가움은 바로 그런 풍화과정을 거쳐 생겨났던 모양이다. 새 삶에 대한 아줌마의 용기는 풍화작용으로 이미 모서리가 다 깎여서 자갈돌처럼 하찮게 발밑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중략)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다리 뻗고 자겠다 싶었어요. 이럴까 저럴까, 방 안에서 온갖 궁리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재성이 소식 딱 한 번만 물어보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재성이 아빠가 저를 보고 사정을 하데요."

 "뭐라고 하던가?"

 "재성이를 진희 혼자 보고 있다면서, 애를 생각해서 같이 돌아가자고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뜩이나 안 듣는 척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 쪽을 힐끗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막 입을 떼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줌마가 무슨 비밀을 털어놓을 듯이 할머니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저, 진희 할머니니까 말씀인데…"

 "…"

 "그날 밤 둘째를 가졌어요."

 말을 꺼낼 때부터 주저하더니 막상 하려던 얘기를 하고 나서 아줌마는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미쳤지요. 재성이 아빠가 이제 마음잡고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꼭…"

 드디어 아줌마의 뺨 위로 눈물 한 줄이 흘러내렸다.

 "꼭 처음 청혼받는 기분이었어요."

 아줌마는 다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눈을 몇 번 깜빡여서 도로 집어넣고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이미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다음 나오는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전 그런 소리 난생처음 들었거든요. 결혼할 때도 못 들어봤어요. 그땐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몸은 이미 버려놨는데, 재성이 아빠 마음은 자꾸 달아나고… 죽어라고 매달릴 생각만 했지 그런 말은 꿈도 못 꿔봤어요."


(중략)


나는 방 안에 혼자 누워 아줌마의 인생에 대해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강제로 처녀를 잃었을 때 아줌마는 자기에게 닥친 우연한 불행을 이겨냈어야 했다. 옷매무새를 수습할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뺨을 올려붙이거나 아니면 침을 뱉고 돌아서서 깡그리 잊어버려야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 자기 인생이 결정돼버렸다고 체념했으므로 죽자 사자 아저씨한테 매달렸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쳤을 때까지도 아줌마는 아저씨가 자기 둘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 즉 자신이 아줌마 육체의 주인이란 것을 깨닫게하자 아저씨의 테두리 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많은 여자들의 결혼은 첫경험에 의해 결정된다. 첫 키스를 하거나 처음으로 몸을 섞은 사람에게 여자들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어릴 때부터 강여된 금기라는 장치에 의해서 그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있다. 간지 첫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와 함께할 삶을 받아들이며 평생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첫경험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서 듣고 본 것만 해도 그렇다. 꼭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만 첫 키스를 하고 처음 옷고름을 풀게 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은 자기 자신의 것이다. 남편의 것도 아니며 처음 문을 연 남자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처녀성을 가져간 사람이 내 주인이라는 생각, 우연에 지나지 않는 그 사건에 운명적 의미를 두는 것, 그 모두가 내게는 어리석게만 생각된다. 이모가 경자이모에게서 빌려왔던 소설책들의 작가 토마스 하디와 모파상도 그것을 말하려고 『테스』나 『여자의 일생』을 썼을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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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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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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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운,
「새의 선물」은희경.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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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잘 읽고 가요.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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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운,
종대가 찾아온 건 처음이야. 이모티콘 귀엽다. 고마워.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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