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지… 그냥 쇼핑이나 갈까? 아, 세훈아 오랜만에 버블티 마시러 갈래? 루한 형의 말에 잔뜩 인상을 쓰며 고민하던 세훈이는 끼고 있던 팔짱을 푸르고선 특유의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헐, 저랑 통했어여 형. 저도 버블티 마시러 가자고 할려그랬는데! 버블티 마시고 쇼핑갔다와여. 둘은 잔뜩 신이 난 듯 해사하게 웃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방금 연습실에서 춤연습을 하고 온 탓에 옷차림과 땀 냄새가 신경 쓰일 법 했지만, 둘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곧장 신발을 구겨 신고는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줄줄이 외출 행렬이었다. 백현이 형과 찬열이 형은 중국 멤버들 한국 구경좀 더 시켜주고 오겠다며 레이형, 타오형, 크리스 형을 데리고 나갔고 민석이 형과 종대 형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터라 부모님을 못 뵌 지 오래됐다며 각자 집으로 간다며 나갔다. 그래서 남게 된 게 나와 준면이 형, 경수 형이였는데 형들 역시도 친구를 만난다며 뒤도 안돌아보고 갔다. 결국은 숙소에 남게 된 건 나 혼자였다. 나 역시도 부모님도 뵙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컴백 직전에 돌아다녀봤자 활동시기에 데뷔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롯이 활동에만 집중을 못 할 것 같아서 가지 않았다.
11명이 나간 숙소는 평소와 같은 시끌벅적하고 좁아보이던 것과는 반대로 너무도 넓어보였고, 조용했다. 오죽하면 시계침의 째깍째깍 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여기가 내가 살고 있던 숙소가 맞나 싶기도 했다. 새삼 11명의 존재감을 느끼고선 배를 긁적거리며 어슬렁거리다가 컴퓨터를 켰다. 로딩 화면이 뜨고, 윈도우가 시작될 때의 특유의 효과음마저 들려오자 익숙한 해변의 배경이 아닌 12명의 티저사진이 보였다. 뭔가 싶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백현이 형이 떠올랐다. 아, 백현이 형이 자기 잘 나왔다고 어제 바꿔놨었지 참. 멍한 표정으로 화면 속의 백현이형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인터넷을 켰다. 예전에는 에스엠에서 쓰던 엄청 느린 컴퓨터를 받아서 썼는데, 그 때는 인터넷을 키는데 만 5분이 걸렸었다. 게다가 형들이 컴퓨터로 뭘 하는 건지 바이러스도 잔뜩 감염되있였는데, 최근에는 팬 분들이 선물해 주신 최신형 컴퓨터로 바꿔서 인터넷 창이 켜지는 속도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바로바로 열리는 인터넷 창에 팬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며 검색창에 제일 먼저 검색해보는 것은 당연하게도 EXO 였다. 영어로 이, 엑스, 오, 한 자 한 자 발음해가며 독수리 타자로 자판을 꾹꾹 누르고선 엔터를 쳤다. 창이 잠시 바뀌는가 싶더니 연관검색어가 이것저것 많이 떠있었다. 엑소 티져, EXO J, 엑소 공식홈페이지 등등등. 꾸준하게 핸드폰으로도 엑소를 많이 쳐봤던지라 연관검색어의 목록들은 익숙했다.
그 외에도 블로그나 카페, 커뮤니티 사이트도 다 들어가 봤지만 특별한건 없었다. 그저 오열이 가득한 글이나 멤버들 앓는 글 정도. 그래도 팬 분들이 포스팅한 걸 보면 즐거웠다. 특히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글과 춤출 때 선이 곱다는 글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여러 팬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새삼 아이돌이 됐다는 것도 실감한 수 있었다. 저번에 팬 보드에 답글 달아드렸을 때, 답글을 못 받으셨다고 우셨다고 포스팅하신 팬 분들과, 반대로 답글을 받았다고 기뻐하시며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포스팅하신 팬 분들을 보며 나의 존재가 팬 분들께는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뿌듯한 기분이 드는 글들과는 달리 안 좋은 기억이 있던 글들도 많았다. 저번에 공항에서 넘어졌을 때에 대한 글 이였는데, 내가 넘어질 때의 사진, 형들의 표정이 굳은 사진과 함께 팬이 맞기는 한 거냐고 그렇게 상처 입히면서까지 꼭 봐야 했던 거냐며 저 사진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글 이였다. 그 때 발에 걸려서 넘어졌나, 밀려서 넘어졌나 너무 정신없어서 넘어진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넘어지고 나서 표정관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끙끙거리고 있을 무렵, 그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고, 몸을 더듬어대고, 심지어는 형들에게 부축 받으며 지나가는 길에도 안 보인다고 비키라며 형들에게 쏟아지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하던 분들을 보며 나 역시도 팬이 맞냐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 형들의 표정은 비행기를 타는 내내 굳어져서 다시 밝아질 줄을 몰랐고,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물음 외에는 한 마디도 없이 출국을 해야 했다.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그 날의 기억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한 번 생각나버린 사생 팬에 대한 일들은 끊임없이 계속 생각이 났다. 카메라에 맞아서 멍들었던 경수형의 눈과 숙소까지 쫒아와 밖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던 팬 분들, 더 한 사생팬분들은 숙소 안까지 들어와서 제발 나가달라고 해도 나가지 않던 일들. 또 사생팬분들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를 좋아해주시는 팬 분들도 다 아실만한 타오형 호텔 녹음기사건. 사실 이런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 일화들은 그저 목격한 걸 올린 글들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더 심했다. 휴대전화 해킹과 컴퓨터 해킹은 기본인 걸 입증이라도 하듯이 실시간으로 친구랑 카톡하던 걸 캡쳐해서 사진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나버리자 검색하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를꺼라는 생각에 황급하게 컴퓨터를 껐다.
괜스레 소름끼치는 느낌에 팔뚝을 문지르며 후회했다. 아, 그냥 나도 나갈껄. 괜히 숙소에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서 이제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제법 가까운 곳에 간다던 것 같았던 세훈이에게 전화를 걸으려 핸드폰의 홀드를 풀었다. 홀드를 풀자마자 짧게 울리는 진동에 문자가 왔나 싶어 상단 바를 내리니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를 확인하고선 식겁하며 뒤로가기를 계속 눌렀다. 문자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나의 사진과, 컴퓨터 캡쳐본과 함께 '종인아 왜 껐어, 더 하지.' 하는 문구가 같이 와 있었다. 한 순간 조여지는 숨통에 황급히 세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갔을까, 거의 안 받겠다 싶어 종료하려던 순간에 세훈이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어, 어. 금방 와? 알았어 빨리 와봐. 진짜 소름돋으니까 빨리와. 어, 끊어, 조심해서 와. 전화를 받은 세훈이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있었고, 주변에서는 꺅꺅거리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팬 분들을 만난 듯 싶었다. 숙소로 곧장 온다면서 전화를 끊은 목소리는 매우 지친 듯 들렸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데뷔하고 나서 항상 이런 일상의 반복 이였다. 조금이라도 돌아다니려 나가면 사람들에게 치이고 둘러 쌓여 얼마 못 가 돌아오는 게 끝이였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퍽퍽 치고선 다시 그 문자를 봤다. 유심히 사진을 보는데 사진이 찍힌 각도가 어딘가가 익숙했다. 분명히 거실이고, 티비쪽에서 찍은 것 같은 각도. 티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수많은 인형들이 있었다. 형광등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인형들의 눈동자를 보니 소름이 끼쳐왔다. 분명히 저 수십 개의 눈들 중에 카메라가 있는 게 확실 한 듯싶어 티비 앞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형들을 손으로 다 쓸어버렸다. 턱, 턱, 소리가 나며 조금은 무겁던 인형들은 모두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고, 처참하게 버려진 듯 쓰러진 인형들을 몇 번이나 발로 밟았다. 한참을 씩씩대며 인형들을 차대고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즈음에, 또 다시 문자가 왔다. 흠칫, 몸이 떨려왔지만 애써 내리누르며 문자를 확인했을 땐, 덜덜 떨리는 손에 핸드폰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 아무리 그렇게 카메라를 부숴도 너는 나한테서 못 벗어나. 너를 지켜보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아, 종인아. '
그 날 처음으로 데뷔한게 후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