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변백현/오세훈] 괜찮아. 착각이야 04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0150607/e/f/0/ef0aa0e45ee10375d3daeb6f61f09e50.jpg)
멀어지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변백현과 내가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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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변백현은 이미 한 번 떨어져 지냈던 적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지났을 침묵을 깨고 다시 가까워 졌을 때엔 나는 그동안 품고 있던 마음을 모두 고이 접어 한 구석에 내팽겨 치듯 밀어 넣어버린 상태였고, 이제 나는 그것을 어디에 놔뒀는지 조차 모른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상황을 다시 맞이했을 때에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아무런 것도 한 적이 없는데 변백현은 자기 혼자 판단하고 생각하더니 언제부턴가 저렇게 혼자서 멀어지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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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전화 안 받았어? 엄마가 갈비 좀 재워 놓은 거 가져가라 길래 너 한데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아? 내가 가져다 줘야 하냐? 끝나고 같이 가 꺼내줄게.”
“아 나 오늘 같이 못 가. 지수 만나기로 했어.”
“그럼 갈비는? 너가 와서 가지고가라 알겠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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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먹어라 돈 남아서 특별히 네 것도 하나 뽑았어.”
“어 고맙다. 지수 아까 목마르다고 카톡 왔는데, 지수 줘야겠네.”
“그래 그럼. 지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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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근데 너 지수한데 고백은 어떻게 했냐?”
“넌 몰라도 돼.”
“야 넌 왜 말을 그렇게 해? 좀 이상하네. 변백현 환자. 약 먹을 시간이 지났어요.”
“좀 조용히 해봐.”
“야 뭐 그래도 내가 한 20프로는 도움 준거지 그치?”
나는 두 번은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달라졌는데 상황은 그대로면 억울하니까. 아마도 썸녀가 여자 친구가 되었나보다. 여자가 많은 남자는 좋지 못하다. 그게 설령 친구라고 한다 해도 그건 그 남자만의 생각일 수 있으니까. 당연히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딱 고작 친구정도인 내가 거슬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변백현이 생각에 나사 하나 빠진 남자는 아니구나. 나는 술 취한 날, 그 날의 일을 통째로 머릿속에서 날려 버리고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잤다. 변백현의 연락이 예전처럼 잦아지지 못하는 이유는 썸녀가 여자 친구가 되어서라는 생각을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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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변백현과 조금 멀어졌고,
“세훈아. 우리 나중에 남도 놀러가자. 풍류여행 이런 거 재밌을 거 같아. 매일 서울에만 있으니까 지루하다.”
“그래 남도는 나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순천만이 예쁘대.”
“순천만에 있는 거 갈대밭 맞지?”
연애사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세훈이가 말했던 ‘썸녀’는 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연수의 말이 퍼즐 맞듯 딱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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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썸을 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좋은 친구 하나 얻어가는구나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남들이 보기엔 ‘썸’으로 보였다니. 남들이란 우리 과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세훈이와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과내에서는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해져 있었다. 야. 세훈이랑 언제부터 사귄 거야? 조별과제를 함께하는 조 원 중에 한 여자애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은 뒤에야 과내에 퍼져있는 소문을 알았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봐도 이미 다 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애를 그냥 모른 척 했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저런 게 왜 궁금한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바로 오세훈에게 달려가서 야. 사람들이 나 보고 너랑 사귀냐고 묻는데 너 썸녀 한데 실례 아니냐? 내말은 안 들으니까 네가 해명 좀 해봐. 너도 몰랐어? 소문? 이라고 물었다. 그러자 오세훈은 알았지. 해명을 왜 해 헛소문도 아닌데. 라고 태연하게 말했더랬다.
“아니 헛소문이잖아. 너 나랑 사귀어?”
“그건 아닌데 썸녀는 맞잖아.”
“나 너랑 썸 타?”
“응. 나랑 너랑. 소문 해명 하고 다니지 마. 나중에 연애하면 더 이상하게 소문나.”
뭐 이런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 놈이 다 있지. 원래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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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치킨 집 썸녀가 나였다.
“나와 집 앞이야. 영화 보자.”
“기다려 지금 내려갈게. 근데 뭐 보려고?”
나는 변백현 에게서 뒤를 돈 후로 줄곧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이 처음엔 자갈밭으로, 황무지로, 풀이 가득한 초원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꽃길이 보인다. 세훈이가 있는 곳은 꽃향기가 가득한 곳이었구나. 너무 아름다워 나도 그 밭에 꽃 하나 심고 싶었지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씨앗이 없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쉬고 싶었다. 이 꽃밭의 뒤에 있는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세훈아 우리 그냥 카페나 들어가자. 영화 말고.”
“왜? 영화 좋아하잖아.”
“그냥 영화 보러 가면 영화만 보잖아. 그냥 카페 가서 얘기나 더 하자.”
“그럼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지 뭘 해?”
“응?”
“말해봐. 무슨 생각 했냐?”
“아니 영화 보는 시간이 아깝다고.”
세훈이는 그 후로 줄곧 나를 놀려댔다. 나는 그냥 영화관에 가서 영화는 보는 것 보단 얘랑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인데, 얘야말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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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지냈다. 변백현이 나에게 연락을 안 한다 해서 굳이 내가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애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썸녀가 여자 친구로 등업 되어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세훈과 변백현과의 치맥자리가 끝나고 내가 만취상태로 변백현에게 고백을 한 것. 그게 변백현이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였다.
언젠가 오세훈이 나에게 와서 다짜고짜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야 내려와봐. 라고 하는 목소리가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쇠와 같다고 느껴졌다. 너 변백현 좋아해? 그래서 고백 했어? 우리는 연애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견고한 큰 버드나무와 같지 못하고 오히려 아주 약한 바람에도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자신을 모두 내어 버리는 민들레씨앗 같은 것 이었다.민들레가 되고, 다시 민들레 씨앗을 낳고, 다시 다른 민들레가 되고, 오세훈의 꽃밭을 채워 가면 여느 버드나무 부럽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오세훈이 내게 쥐어 준 민들레 씨앗을 마음대로 불어버렸을까. 나는 꽃밭에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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