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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나는 축하하는 법을 까먹었다. |
글쎄. 나는 축하하는 법을 까먹었다.
어렸을 때에 내가 있는 곳엔 항상 그 아이가 있었다. 발을 맞춰 걷고, 서로 같은 눈을 굴리고 그렇게 서로 함께 컸다. 친구가 그 애 밖에 없는 게 아닌데 나는 그 애만 찾았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을 너무 어렸던 마음은 몰랐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다 조금은 더 넓고 깊은 생각을 펼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 대상이 그 아이라는 게 좀 남달랐을 뿐이다.
“백현아.”
여자에 관심이 무한하게 생길 시기에 내 옆에 있는 여자라고는 그 아이 뿐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했던 시기를 그 아이만 줄곧 바라보며 지내왔다.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발 동동 구르고 있는 똥강아지처럼.
그 아이와 내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연 내 마음이라고 나는 확답할 수 있다. 교실에서 그 아이가 잠을 잔다면 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왕자가 되고 싶었고, 실내화를 이리저리 찾아다닐 때엔 신데렐라의 왕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내 스스로 마음에 그 애의 이름을 크게 새겼을 때에 나는 그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백현아.” 그 목소리가 사슬이 되어서 내 심장을 잡고 마구 흔드는 것 같았다. 말투 하나하나 신경을 쓰고 단어 하나하나를 뇌에서 이리저리 조합해 가장 멋진 말을 하려다보니 말이 짧아졌다. 쑥스러운 걸 그 아이는 무심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나는 내 붉어졌을까 재빨리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아이 가장 어여쁜 모습을 내내 볼 수 있었던 학창시절을 가장 바보같이 보내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게 끝이었다. 나는 어리석게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 아이가 바라보는 반대편을 바라보며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다였다. 나는 어렸고 바보 같았다.
“그냥 여자애들 꺼 빌려.”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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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끝자락에서 20살의 첫걸음을 내 딛을 때에 그 사이에서 나는 엄청난 전환기를 맞기로 결심했다. 새해를 보면서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캠퍼스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2015년을 모두 그 애에게 받친 샘이다.
그리고 새해는 내가 청개구리인 줄 알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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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이모 변백현이 저 중학교 때 갑자기 모른 척 했어요. 저 다 기억나요 너무 상처받아서.”
내 행동이 너 한데는 상처였다고 한다. 나는 쑥스러운 거였는데 그게 너 한데 상처면 상처인거지.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을 넘어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돌리지 못하려면 지금이라도 잘하면 되려나.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던 마음은 다시 새로 쓰여 지기 시작했다.
흰 백지장에 하루하루 지나갈 때마다 꽃 한 송이 씩 그려 넣어 네가 나에게 올 때 그 그림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내 마음은 지칠 줄 몰랐고, 온 힘을 다해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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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같은 대학을 다니진 못했다. 네가 다니는 학교는 저번에 오세훈이 말했던 자기 학교라고 생색내면서 말 했던 곳인데 오세훈 한데 좀 부탁해야하나. 낯을 많이 가리니까. 그럼 도움이 되겠지.
“야 니네 학교에 나 아는 여자애 다니는데 너 무슨 과랬지? 걔는 심리학과라는데.” 나는 그 아이를 그나마 내가 아는 오세훈에게 부탁할 심산이었다. 사실 겉 뜻은 부탁이고 속뜻은 감시였다. 그 아이가 혹여 라도 학교 내에서 캠퍼스 커플 같은 걸 할까봐 . 내가 알지 못하는 친구를 만날까봐 미리 그나마 아는 오세훈을 너의 옆에 둔 것이다. ‘야 걔 좀 잘 봐줘 낯을 많이 가려서. 무슨 일 생기면 나한데 말해줘.’
여기서 ‘무슨 일’ 이란 그 애가 여자애들이 아닌 다른 남자 동기들이나 남자 선배나 더 후의 남자 후배와 가까워지는 일을 말하는 거다. 오세훈이 잘 알아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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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애를 좋아하기 시작한 10대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날로 유치해졌고, 너의 마음 안에서 나를 찾으려 애썼다. 우리가 다시 마주보며 이야기를 시작 했을 때에 나는 내가 그 마음의 문턱에 다 달았다고 생각했다. 발 등에 추를 무수히 많이 달아 놓은 것처럼 발이 무거워졌다.
나는 날로 유치해졌다. 학교에 들어와서 OT와 MT를 거치면서 전 보다 많이 생긴 것은 ‘여자’인 친구들이었다. 동기라고 가볍게 연락처를 넘겨주고 문자 한 통 보내놓고 전화번호부에 ‘여자’인 애들의 이름이 많아지면서 네 이름을 찾으려면 전보다 오래 스크롤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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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백현이는 좋아하는 여자 애 있냐?” 대학에 가면 가장 많아지는 건 단연 ‘술’을 콕 꼽을 수 있다. 간이 잘려 나갈 것처럼 마셔대는 선배들과 동기들에 나는 자리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주는 대로 마시기만 했다.
“네.” 네. 좋아하는 사람 있죠.
숨길 필요 없는 이야기에 나는 다문 입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구 열리기 시작했다 . 제 제일 친한 여자친구요. 저 친구 좋아해요.
여자친구. 와 여자. 친구 너는 어느 쪽 이었나. 나는 전자를 말한 것이지만 남들은 후자로 알아듣겠지.
사람들은 내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열 마디를 해댔다.
“걔 한데 나는 친구야. 정말 그냥 어렸을 때부터 본 그냥 동네 남자애일걸? 어렸을 때 친해지지 말아야 했는데.”
네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너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로 처음 만난 여자친구 얘기도. 그 일에 너는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 까지. 나는 참 쌓인 게 많았다. 학교에 들어갔다고 연락을 좀처럼 자주 못하는 너도 미웠고, 정작 너를 부탁했지만, 나는 못 보는 너를 오세훈은 본다는 생각에 그 새끼도 조금 미워졌다. 오세훈이 되고 싶다. 그럼 널 매일 볼 텐데, 나는 유치하고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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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그 여자애는 너 한데 아무 감정 없대? 아닐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에게 하는 말인 듯 목소리 주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윤지수. 그 여자애는 나에게 대답을 다시 듣길 원했다. 대답을 내뱉지 못할 것 같다. “어. 없어.” 내가 불쌍해서.
“아냐, 너도 여자는 걔 밖에 없었다며. 그럼 걔도 남자는 너 밖에 없던 거 아냐? 아닐 걸 걔도 너처럼 군거 일 수 있잖아?” 윤지수가 재차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런 거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있어.” “뭔데.” “네가 다른 여자를 만나봐.” “안 돼. 그거 옛날에 해 봤어. 아무 반응 없었다니까?” “지금은 다를지 모르잖아?”
윤지수는 내 앞에서 재잘재잘 하는 말이 많았다. 이래라. 저래라. 이래봐. 저래봐. 그럼 그 애의 눈길이 나한데 좀 오려나. 나는 유치했고, 바보 같았고, 멍청했고,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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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와 정말로 연애를 한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너와의 퍽퍽한 관계에 기름칠을 좀 해두려던 의미였다. 대게 친한 친구들이 새로운 연인을 만들어서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서운한 감정이 든다는데... 너도 그럴까 네가 그래줬으면 좋겠다. 처음에 내게 네가 아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에 아무 반응 없었다 . 내 앞에서 오세훈과 전화를 하고 오히려 나한데 여자가 생겼 나며 웃는 얼굴로 대했다.
오세훈은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고, 너는 무슨 말을 하던 끝에 ‘세훈이’가 붙었다.
나는 너에게 윤지수의 이야기를 틈 만나면 해댔다. “야 지금 빵 사러 왔는데 몬 빵 살까? 지수 줄 건데.” 너에게 줄 생각으로 사는 거니까 네가 좋은 빵을 골라봐. 몇 번을 이렇게 반복했다. 빵을 사고선 항상 학교 동기들과 나눠먹었다.
“야 아이스크림 뭐 살까?” “왜 윤지수 주게?” “응? 응. 지수가 먹고 싶대.” “넌 연애하는 것도 아니면서 벌써부터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 한다?”
너의 말투와 표정의 변화가 굳게 멈추게 되면 내 마음이 쿵쾅거렸다. 나는 어렸고, 유치했다.
나는 멈출 줄을 몰랐다. 너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긴 도로를 마구 질주해댔다. 너를 지나친 줄도 모르고 이 길이 너에게 가는 길이라며 좋다고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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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치맥 한 잔 하자.”
오랜만에 셋이 모이는 자리였다. 오세훈과 너와 나. 셋이 모이는 자리였다. 네가 아직 없는 자리에 오세훈과 나 사이엔 싸한 정적만 맴돌 뿐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아마 얘도 알고 있겠지.
“야 너네 둘이 미리 먹고 있으면 돼? 나도 안 왔는데?” “여기 앉아.”
그 아이가 오자마자 오세훈은 옆 자리의 의자를 뺐다. 내 앞에 앉은 두 사람에 기분이 저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았다. 그래. 옆에서 보면 얼굴이 안보이잖아. 나는 쟤 얼굴 볼 수 있어.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잘 되냐?” 오세훈이 나에게 물었다. 윤지수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응 어제 하루 종일 있었어. 고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 야. 네가 말해봐.” 네가 말해봐. 무슨 고백을 받고 싶어? 내가 이뤄줄게.
내가 할게. 고백.
“야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면 뭘 하든 다 좋을 거 같은데 걔도 그렇겠지.” “그래?”
내 질문에 대한 그 아이의 대답에 오세훈이 말했다. 그래? 별 말 아닌데. 이거 별 말 아닌데 왜 이리 신경이 곤두서는지 온 몸의 털 끝 하나까지도 오세훈에게 공격적이었다.
“그래 넌 잘 되가는 중이냐?” 그냥 오세훈한테 물었다. 넌 잘 되가는 중이냐? 나는 오세훈의 근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이야기 할때면 나와 오세훈은 속마음 같은 것이 아닌 겉으로 표현되는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 했다. 그래서 캐물었다. 그게 너라면 어떻게 하지. 혹여나 싶은 마음에 확답을 듣고 싶었다.
너도 쟤냐?
“응” 아. “뭐 예쁘냐?” 내 말에 오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눈에 예쁜데 남의 눈에 안 예뻐 보일 리 있을까.
이 정도 되니 불안해서 못 견뎠다. 나는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서 속에선 정리불가인 먼지들이 마구 뒤섞여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물었다. 먼지 좀 치워줘 “너는 뭐 없냐?” 있나? 없겠지? 있을까? 그럴 리가. 한 번도 못 봤는데. 있을 리가. “없어” 그렇지. 오세훈은 아니지? “그럼 그렇지. 넌 그 안경만 벗어봐.” 아니야 그 안경 매일 쓰고 다녀라. 절대 벗지 말고. 나는 청개구리였다. “얘 취했다. 야 너 먼저 집에 가라. 내가 얘 데려다 주고 갈게.” 맥주를 그렇게 부어라 마시더니 결국 취했다. 그 애는 발을 제대로 못 가눴고 나는 앞에 앉았다. ‘야 그냥 업힐래?’ 꼭 그 모습이 춤추는 것 같아서 너무 예뻤다. 그렇지만 내 눈에 예쁘면 다른 사람 눈에도 예쁠 거 아니야? - 조용히 길을 걸었다. 아마도 골목에 우리 두 사람 밖에 없을 것이다. 뒷목 쪽에서 느껴지는 숨과 소리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하늘에 오늘따라 밝아 보이는 달에게 소원을 몇 개씩 빌었다. 얘는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혹여나 달도 청개구리면 어떻게 하지. 달은 해와 달랐다. 서로 반대편에서 영영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일까. 차고 뜨거운 것처럼 달과 해는 그렇게 달랐다. “난 너 좋아했어.” 내가 지금 들은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나. 걸음이 멈췄다.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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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윤아.. 제대로 연말 꾸꾸꾸 말아왔어 미1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