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변백현/오세훈] 괜찮아, 착각이야 09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0150613/e/f/0/ef0aa0e45ee10375d3daeb6f61f09e50.jpg)
우리에겐 공백기가 있었다.
대게 사람들은 밭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나만 해도 잔디밭 위에 함부로 올라설 수 없고, 하이힐을 신은 날이라면 더더욱 잔디와 풀 쪽으로는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산을 없애고, 초원을 불태워 자신이 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공간 안에서 얼마만큼 행복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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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득, 두 어깨 가득, 짐이 온 몸을 가릴 듯 했다. 어떻게 이 많은 걸 여자 혼자 들으라며 건내 주는 선배들도 이상했고, 선배의 말이니 동기들도 그저 그렇게 서 있었다. 난 무엇을 하려한 적이 없었고, 교수님들까지 ‘너는 내가 이제 좀 오래본 것 같은데. 아직도 목소리를 못 들어봤어.’ 라고 듣는 학생인데 무엇인지 선배들 한데 미운털이 콕콕 박힌 듯 보였다. 연수는 나에게 그것이 오세훈이랑 만나서 그런 게 아니냐며 물었다. 뭐? 왜 그게 세훈이 때문이야?
‘사랑의 심리학’ 온 몸 가득 채워진 책의 이름에 나까지 동기화되는 것 같았다. 사람 심리가 참 묘하다. 강의를 들으면서 뒤늦게야 떠올린 것이 몇 가지 있다.
“사람마음은 영원히 모르는 거야.” 내가 신이 아니고서야.
“세훈아.”
나는 더 못 참았다. 책을 길 중간에 내팽개치고는 세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왠지 기다리고 있었던 듯 울리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가 노을과 같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붉어질 것 같다. 책을 배부 받은 곳부터 우리 과 건물은 한 백 킬로미터 되는 듯 보였다. 게다가 여름!! 햇볕은 쨍쨍하고 모래알은 반짝인다는 그 여름! 이었다.
“응. 어디야? 밥은 뭐 먹었어?” 아 아까 주머니에서 울리던 카톡이 이 내용이었었구나 싶었다.
“아니 밥도 못 먹었어. 나 지금 책 나르고 있는데 다들 너무해 진짜. 나 지금 몰골이 어떤 줄 알아?”
“왜 무슨 책을 날라?”
“몰라 사랑의 심리학이라는데 아 세훈아 너무 무겁다 나 어깨가 없어질 것 같아 어떻게 해?”
오세훈을 이곳으로 불러야지.
“그래서 어떻게 해. 내가 어떻게 해 줄까?”
“아니 나 그냥 어깨 좀 많이 아픈데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오면 더 좋고, 니 얼굴도 보고 일석이조야 나는. 근데 너 바쁘면 뭐.. 안 와도 되...고..”
최대한 불쌍한 척을 했다.
“뭐 그래서 나 가지말까?” 너도 심리학과잖아! 내 마음 좀 읽어봐 세훈아.
“나 가지 마?”
“안 올 거야? 너도 내 얼굴 볼 수 있는데? 나는 책 때문에 부른 것도 좀 있는데. 그건 그냥 일부분인데? 너 볼 라고 오라는 거지.. 뭐... 힘들면 안 와도 되고... 나 어깨 빠질 것 같은뎅... 너 내 어깨에 한 번도 안 기대 봤는데 나 오늘 어깨 사라지면 어떻게 해? 그럼 안 되지 않나...?”
전화 반대편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뭐지. 나 아프다는데 즐겁나 얘가. 심리학과 다닌다는 애가 내가 하는 말 속뜻도 못 알아듣고,
뭐지 얘... 진짜 안 올 건가?
“와라 세훈아.”
연애 초에 이렇게 을이 되어선 안 되는데, 난 을인가. 오세훈한데 을인가. 쟤가 나 좋다고 고백한 건데 난 을인가...
“뭐?”
“이리로 와라...”
난 을이었나. 이제까지 나는 갑인 줄 알고 이제 슬슬 갑의 횡포라는 걸 부려볼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변백현을 부를까...
“아니 너 안 돼면 안 와도 돼. 백현이 부르면 되지 뭐..”
“변백현을 왜 불러?”
엄마?!?!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세훈은 뒤에 있었으면 말을 하던가. 왜 저럴까 변태같이.
“변백현을 왜 불러?”
세훈이 말했다. 변백현을 왜 불러? 왜 걜 불러?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걔 불러도 돼 안 돼. 그럼 안 되는 거야.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을 방불케 하는 끊임없는 말소리와.
세후니 맘 아파. 그러디 마. 변백현 부르지 마.
내가 싫어 미쳐서 땅바닥을 마구 굴러도 모자랄 삼인칭과 함께.
난 을인가....
“야 우리도 이거 듣자.”
“이거? 사랑심리학? 왜 들어 이걸?”
“딱 우리이름이 표지에 써 있잖아.”
“무슨 소리야 세훈이 안과 가야해요?”
“너는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나봐.”
“무슨 소리래.”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 글씨가 안 보이는 거야. 실망이야. 나한데 좀 더 사랑을 주면 안 되나?”
웃음이 나왔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몰랐던 면 까지 내가 속속들이 파고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냥 듣자고, 듣자고 하면 될 것을 세훈이는 항상 이렇게 표현했다. ‘너는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나봐.’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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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은 여자친구와 롱런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왠지 이걸 위로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을 때에 얘는 줄곧 해맑게 잘 웃으면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미소가 왠지 슬퍼 보인다 해야 하나. 그냥 좀 그랬다. 그래 여자친구랑 헤어지는 게 슬프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변백현은 집에 밥이 없다며 엄마가 반찬을 안 해놓는다며, 니네 집에서 밥을 먹고 오랬다며, 여러 이유로 우리 집에 들락날락 거렸다.
그래 불편한 건 나뿐이지.
“야 빙수나 먹을래? 밖에서. 더워죽겠네.”
“네가 포장해와. 나 귀찮은데 꼭 가야 하냐. 니가 고생 한 번 해.”
“나쁜 년”
“왜 넌 우리 집에서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다 하잖아. 빙수로 퉁 치자, 가서 사와.”
“나쁜 년. 못된 년. 이런 쪼잔 한 애를 내가... 아유.”
“뭐 인마. 불만이면 니네 집 가.”
왜 우리 집에서 지랄이지 이건.
“오세훈은 안 만나냐?”
“이따 저녁 먹을 거야.”
“너넨 어떻게 매일 만나는 것 같아?”
“뭐 당연하지 그게 .”
“왜 당연해 그게?”
“보고 싶으면 봐야 해. 너도 윤지수랑 그랬잖아.”
“...”
아 윤지수 얘기는 하지 말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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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이와 연애를 지속하면 할수록 그 애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버드나무와 같은 믿음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어떠한 사람이 사랑을 소나기를 쏟아내 듯 하고 있다. 소나기를 한 몸에 받아내는 상황이라면 나는 아마 그 사랑을 견디지 못하고 흠뻑 젖어 나의 집 안으로 쏙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꼭 비를 맞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기꺼이 맞아줄 수 있는 비였다. 왜, 햇빛 쨍한 여름날 사이에 장마철이 껴 있으면 그 철엔 날씨가 흐려지고 햇빛이 약해지며, 비를 마구 쏟아낸다. 나는 그 날씨가 좋았다. 비오는 날.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좋았다.
“야 넌 뭐 구두를 신어? 발 깨질 라고 얘가.”
“뭐 세훈이 키 커서 좀 신어야 돼. 올려다보면 목 아프단 말이야.”
“그거 얼마나 아프다고?”
“넌 몰라 인마.”
“야 너 그거 무슨 뜻이냐. 야. 서봐. 구두는 벗고 가라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반대편으로 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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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온종일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냥 길거리를 내내 이야기하며 돌아다니다가 발이 조금 아파 와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화 신을 껄 그랬나. 왠지 목이랑 발이랑 맞바꾼 것 같기도 하고...
에어컨도 와이파이도 빵빵한 카페 안에서 둘은 사소한 이야기보따리를 마구 풀어놓았다. 간혹 서로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순간도 있었다.
‘야 올 때 옥동자 딸기 맛 한번 사 와봐.’ -변사또
‘니가 사다먹어 나 늦음.’
‘아 좀 사와 열시까지 사와’ - 변사또
‘먹고 싶으면 니가 사다먹어 왜 나한데 그래?’
‘아 나가기 귀찮단 말이야. 넌 밖이니까 니가 사 와봐,’ - 변사또
‘니네 집이나 가.’
‘야 좀 사다줘라.’ - 변사또
‘야 나 발목아파 삐끗했나봐’ - 변사또
(이모티콘) - 변사또
‘아야! 백현이 발목 삐끗해썽 ㅠ^ㅠ’- 변사또
‘아이고 나죽네’ - 변사또
‘옥동자 먹으면 살 거 같기도 하고.’ - 변사또
‘니가 좀 사와라.’ - 변사또
‘지금 아홉시니까 열시까지. 넉넉하지?’ - 변사또
‘야 사올 거지?’ - 변사또
‘야 카톡 안 봐?’ - 변사또
‘사오라고’ - 변사또
핸드폰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얘는 왜 나한데 지랄이지? 옥동자를 외쳐대는 변백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끄러워.
“너 뭐봐?” 그제야 세훈이가 핸드폰으로 뭘 그렇게 보는 건지 궁금했다. 아까부터 눈을 못 떼던데.
“응?”
궁금해 참지 못하는 나는 핸드폰 액정을 보려 몸을 마구 기울였다. 내가 짜리몽땅한지 쉬이 액정이 보이지 않자 나는 그 핸드폰을 뺏어들었다. 뭘 그렇게 봐?
“반지 사게?”
“응?”
“야 이거 너무 비싸. 너 반지는 잘 안하고 다니던데 웬 반지야?”
맞아. 반지는 잘 안했잖아.
“넌 눈치가 국밥 같아.”
국밥 맛있어. 나중에 콩나물국밥 이런 거 먹으러 가자.”
“어휴.”
세훈이가 한 숨을 푹푹 쉬어댔다. 야. 땅 꺼져 무섭잖아. 불지 마.
“커플링인데, 그거.”
? 커플링이랬다. 이게. 나랑?
“이거?”
“응. 그거.”
“왜?”
“뭐?”
“나 손에 뭐 끼는 거 싫어하는데, 꼭 반지여야 해?”
불편해 반지.
내가 말을 마치자 세훈이가 나를 굼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반지는 불편했다. 손 씻으면 빼야하고, 잘 때도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영 기분 나빴다.
“나랑 같은 건데도 싫어?”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굳이 반지가 아니어도 커플로 맞출 수 있는 건 많잖아.”
“이게 눈에 제일 잘 보여.”
“그럼 얇은 걸로 하자. 내내 끼고 있을게.”
세훈이는 또 생각할까. ‘너는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가방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들었다. 임시방편을 만들 생각이었다.
“세훈아 손 줘봐.”
“뭐 하려고.”
받은 손 위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하나 그려 넣기 시작했다. 링 하나를 그리고 보석을 그려 넣었다. 손에 간지럼을 타는지 움찔움찔 거리는 세훈이가 귀여웠다.
“이거 뭐냐?” 목소리가 조금 풀려있었다.
“반지잖아. 내가 만든 건데. 아까 니가 보고 있던 반지보다 비싼 거야. 잘 끼고 다녀야 해.”
“줘봐 나만 그리면 안 되지 그럼.”
이번엔 세훈이가 내 손을 채갔다. 내 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번갈아 보면서 같은 반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구두 굽이 땅에 쓸렸다. 드르륵 드르륵.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구두는 나랑 안 맞아. 이걸 내가 다시 신나봐라. 세훈이랑 함께 있을 때엔 심하지 않더니 집에 오는 길에 발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다. 발바닥 어디도 성치 않은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이것 봐. 너 그거 신지 말라니까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더니.”
“넌 여기서 뭐 해?”
“그냥 마실 나왔는데 니가 있네.”
“야 그럼 어디 약국에서 데일밴드 좀 사오면 안 되냐?”
“저기 앉아서 기다려라. 그러니까 내가 신고가지 말라고, 말라고 그래도 굳이 신고 가더니 꼴 좋네.”
“잔소리 말고 얼른 가서 사 와봐 좀.”
변백현이 총총총 소리를 내며 약국으로 갔다. 아 뽀로로 이런 것만 안 사왔으면 좋겠다.
“야 벗어봐.”
“너 이만 가 늦었는데, 내가 할게 이거.”
“아니 그냥 벗어보라니까?”
내 앞에 변백현이 쪼그려 앉더니 내 발목을 채갔다. 아 이걸 왜 지가 하려고 나서는 거야?
“나 발 냄새 심해.”
“괜찮아.”
변백현이 구두를 벗겼다. 발이 숨을 쉬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가 많이 고생 시켰구나. 내발.
변백현이 뒤꿈치를 확인하더니 연고를 바르고 데일밴드 한 장을 붙였다. 내 아래에 앉아있는 변백현과 내 발에 손수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변백현에 왠지 마음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모두 아물어 가는 상처에 다시 연고를 덧바르는 것 같은 변백현의 행동이 딱 그러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야.”
나는 구두에 발을 집어넣으려 했다. 맘 같아선 맨발로 가고 싶었지만. 땅에 뭐가 있을지 알고 맨발로 간다고. 난 겁이 많았다.
“야 이거 신어.”
변백현이 내 앞으로 큰 신발을 건넸다.
“이거 니 신발이잖아 너껄 내가 왜 신어?”
“그럼 너 그거 다시 신고 가게? 미쳤냐.”
“아니 뭐 데일밴드 붙였으니까 괜찮아.”
“신으라면 그냥 좀 신어라. 내 말 좀 들어.”
변백현이 내 손에 들려진 구두를 갖고 내게서 등을 보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내 앞에 놓여 진 신발에 내 발을 맞춰 껴 넣으니 뒤꿈치가 텅텅 비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신발은 내가 발을 내딛는 방향을 어설프게 따라왔고, 나는 변백현 뒤를 어설프게 따라갔다.
맨발은 참 아프다.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어간다면, 보이지 않는 맨 발바닥은 아마 새까맣게 물들고 적잖은 상처가 생길 수 있다. 뒤에서 보이는 변백현의 발이 참 우울했다. 쉽사리 옆으로 갈 수 없었다. 길은 조용했다.
“너 다리 삐었다며? 뻥 쳤네 나한데.”
“몰라 나았어.”
“거짓말 친 거잖아. 옥동자 먹고 싶으면 사먹으면 되지 그거 나오기 싫어서 날 시켜?”
“다음에 사와. 니가 사다주는 거 먹을 거야.”
“여간 못된 놈.”
길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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