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W.리무버
찬열이가 죽었다.
내 성화에 못 이겨 아이스크림을 사러갔던 박찬열은 녹은 아이스크림이 끈적하게 녹아내리던 그 길바닥에 진득한 피를 흘려보내며 죽었다.
박찬열을 죽인 살인자는 박찬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사이였고 살해동기는 자신과 닮은 박찬열이 기분나빠서였다.
그 개새끼는 잔인하게도 박찬열을 닮았었다.
내가 아는 박찬열이 나만 알던 박찬열이 티비속에서 신문속에서 라디오속에서 모든 언론매체에서 가련한 희생양이 되어나왔다.
그래서 난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내가 알던 박찬열은 가련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씩씩한 새끼였으니까.
벌써 세상 모든 것과 소통을 끊은지 두달이다.문앞에서 엄마가 울다 실신을 하든 성질급한 김종대가 나 하나 보기위해 망치로 문을 부수다 끌려가든 내 알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박찬열이 죽었다는거니까.
"아..내 테이프..."
거슬리는 잡음을 내며 수명이 다했다고 시위를 하던 비디오를 무시한게 화근이였다.
늘어진 비디오를 보다 또다시 피로 물든 길바닥에서 내장을 다 보이며 죽어있던 박찬열이 생각나 토기가 올라왔다.
한참을 변기에 머리를 박은채 신물을 토해냈을까.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어서 비디오 앞으로 왔다.
필립 모리스라고 앙증맞게 적혀있는 테이프는 박찬열과 내가 가장 즐겨보던 영화였다.
동성애 연인을 위해 13일의 금요일마다 몇번이고 탈옥하고 또 탈옥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다 입버릇처럼 박찬열은 내 귀에 대고 속삭여왔다.
"나도 저렇게 할게."
"..범죄자가 되겠다고?"
"분위기 깨지마.병신아."
"뭔말인데."
"나도 내가 어디있든 니가 어디있든 몇번이고 찾아가겠다고."
그때는 지랄한다며 웃어넘겼는데 각서라도 쓰자고 달려들걸.그러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을수있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뭐해.자조적으로 웃으며 눈을 감았다.
가물가물 정신이 흐려지던 순간 초인종이 날카롭게 울렸다.엄마인가봐.
가만히 엄마가 가길 기다리고있는데 문 건너편에서 들린 목소리는 엄마가 아니였다.
"백현아.나 왔어."
틀림없는 박찬열이였다.
"문 열어줘."
뇌가 없어진듯 어떻게 할지모르는 내 눈에 달력이 들어온다.
오늘은 9월 13일.금요일이였다.정말로 찬열이가 왔다.
미친 사람처럼 달려나가 굳게 닫혀있던 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렸는데 손이 자꾸 미끄러진다.
"차근차근 하자.백현아."
문 건너편에서 태연하게 말을 걸어오는 저음은 박찬열이 분명해 더욱 맘이 급해진다.
마침내 문은 열려졌고 내 앞에는 역시 박찬열이 서있다.
나를 가만히 보던 박찬열이 전처럼 환하게 웃는다.
"섹스하자.백현아."
진짜 찬열이구나.너.
"찬열아.밥 먹었어?"
"아니,안 먹었어."
"뭐 먹을까?스파게티?"
"된장찌개 먹고싶은데."
"그래.그거 해줄게.기다려."
한바탕 침대에서 눈물을 머금은 섹스를 끝낸 뒤 우리는 전처럼 돌아갔다.
박찬열한테 어떻게 된거냐고 따지고싶지않았다.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도 알고싶지않았다.
중요한거는 나의 박찬열이 약속을 지키려 돌아왔다는것이다.
"아,변백현."
"왜?"
"나 갑자기 김치찌개 먹고싶어."
"김치찌개?"
"응.그거 해줘."
"된장 풀었는데.."
"김!치!찌!개!"
"알았어.기다려봐."
김치를 송송 썰고있는데 박찬열이 목소리 높여 말한다.
"자장면 먹고싶으니까 그냥 시켜먹자."
"개새끼야!!!!!!"
"왜 소리는 지르는데!!!!!!"
씨발.박찬열.
투닥거리며 자장면을 먹고 뒷정리를 하는데 늘어지게 하품을 한 박찬열이 꽁꽁 싸매고있던 커튼을 열어제꼈다.
이게 몇달만의 햇빛이냐.
"아,눈부시다.그지?"
뒷정리를 하던 손을 멈추고 박찬열의 품속으로 들어가 햇빛을 쬐고있으니 이제야 살고있다는 기분이 든다.
"자기야."
"응."
"정수리 냄새나.씻고와."
"개새끼야."
"알았어."
"....."
"씻겨줄게.기다리고있었구나.우리 앙큼쟁이."
역시 박찬열이 있다는건 지치는 일이다.
씻고와 박찬열하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박찬열이 늘어진 테이프를 가르킨다.
"니놈짓이냐?"
"어."
"미친놈!"
뒷통수를 갈기는 매운 손에 눈물이 찔끔 나온다.
"짐캐리 오빠!!"
씨발놈이 나를 내팽겨치고 테이프를 볼에 부비적대며 울먹인다.
그래,니네 짐캐리오빠 내가 죽였다.
"얼마나 쳐봤길래 우리 캐리오빠가 이래!"
"존나 눈만 뜨면 봤다!꼽냐!!!"
"이 씨발놈!!!!!!"
"뭐!!!!"
"키스하자고!!!!!!!!!!!!"
그래.바라던 바였어!!
"양치는 했지?"
"아니."
"하고와."
"좆까."
춘장묻힌 양파냄새가 솔솔 나는 내 입술을 박찬열입술에 갖다대었다.
축축한 혀와 타액이 내 입술에 공격적으로 들어온다.씨발.어떡해.너무 좋아.
"박찬열."
"..왜."
억지로 입술을 떼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대답한다.
그런 박찬열을 보다 울컥 화가 올라와 주먹을 복부에 꽃았다.
비명도 못지르고 고통을 호소하는 박찬열의 위에 올라타 입술을 마주댔다.
"또 떠나면 그땐 불알을 부셔버릴거야."
웃지마.진심이니까.
박찬열이 온지도 벌써 두달이 되어간다.
시간은 참 빠르다.단풍은 다 떨어져나갔고 그 나무위에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잘 적응해가고있다.가끔씩 수갑을 차고 티비에 나와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어내는 박찬열을 죽인 개새끼를 보며 낄낄 웃어주는 자비심도 생겼다.
니가 죽인 우리 찬열이는 여기 잘있다고.손 한번 잘못 놀린 죄로 어디 한번 감옥에서 썩어보라고.
머리좋은 박찬열이 그때 칼에 찔린 상처를 내보이며 꾀병을 부려도 아무렇지 않게 발로 짓이겨주는 용기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박찬열이 옆에 보이지않으면 나락으로 빠지는 느낌은 줄어들지않는다.
엄마가 없으면 숨을 못 쉴 정도로 울어대는 애처럼 나는 박찬열에게 깊이 뿌리를 내려가고있다.
가끔씩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때마다 박찬열은 눈썹을 찌뿌리고 웃는다.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우리 모두가 느끼니까.
오늘은 12월 13일.
금요일이다.
"백현아.영화 보자."
들려있는 비디오는 필립 모리스.
내 앞에 있는건 웃는 박찬열.괜찮을거다.
비디오를 재생하고 팝콘도 가지고와 시청한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있을때 박찬열이 조용히 손을 잡아온다.
"나도 저렇게 할게."
"....."
"백현아.나도 저렇게 할거야."
"벌써 했잖아."
"응.근데 언제라도 저렇게 다시 니 옆에 올거야."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되잖아."
"그럼 니가 힘들잖아.임마."
조용히 박찬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변백현이 다시 씩씩하게 나없이 해를 볼수있을때 또 와야지."
"......"
"다음번엔 종대도 같이 볼까?김종대 깜짝 놀라서 지리는거 아닌가몰라.아,그리고 너랑 가기로 약속한 알프스도 가서 사진도 겁나 많이 찍어오자.하고싶은게 너무 많으니까 짜증나네."
영화는 이미 끝이 났고 박찬열은 쉬지도 않고 입을 놀린다.
시간이 부족한걸 아는지 모르는지 중얼거리는 박찬열의 고개를 잡아채 눈을 마주했다.
"찬열아.떨지마."
이미 잡고있는 손은 축축하게 젖어 덜덜 떨리는걸 꽉 잡아쥐고 품에 안았다.
"나도 저렇게 할게.나도 저렇게 너 기다리고있을테니까 얼른 와."
"키스해줘.백현아."
"마지막인거처럼 굴지마.씨발놈아.니가 오면 그때 해줄거야."
벌써 2014년이다.
새해가 된게 엊그제같지만 벌써 반년이 되간다.
그동안 나는 취직을 했다.
무직인 박찬열과 알프스를 갈려면 나라도 돈을 벌어야하지않겠는가.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멋진 남자다.
게이만 아니였다면 아마 여자들이 알프스까지 줄을 서겠지.
이런 면에서 박찬열은 참 복받은 새끼다.
잡생각에 잡생각이 물고늘어져 결국 조려지고있던 갈비찜이 탔다.
황급히 불을 끄는데 밖에선 초인종이 울린다.
"변백현.문 안 열어?!"
오늘은 6월 13일의 금요일이다.
+사실 이건 장편으로 쓰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음.
근데 지금 장편까지 쓸 손이 아냐ㅠㅠㅠㅠㅠㅠ
내 손 찐따새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만약 장편으로 쓰게된다면 이 글에다가 살 붙히고 살 붙혀서 나올거같아여.
그럼 아마 중편일듯..?
그럴듯..?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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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스캔들 작가님 뭐하고 사시나 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