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린] 귀에 사는 달팽이
W. 유레카
밥을 먹고 난 뒤의 따뜻한 오후는 어김없이 졸렸다. 반 정도 열어둔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와 머리카락을 흐트려 놓았다. 나는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했다. 눈 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대충 손가락으로 훑어냈다. PPT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수업 방식 덕에 교실의 불은 다 꺼진 상태였다. 혹시나 햇빛때문에 화면이 안보일까 싶어 커텐까지 쳐두었다. 완벽한 암실이었다. 곁눈질로 반을 훑어보니, 역시 전멸이다. 교탁 앞에서 교재를 뒤적거리는 선생님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책상에 코를 박고 잘 자고 있는 짝지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조금 망설여졌다. 새 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된터라 친하지 않은 것도 있고, 낯가림이심한 성격 탓에 아직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에 생각에 빠졌다. 등에 가만히 손을 대고 뒤통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 사이 선생님은 목을 가다듬고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통해 반 전체의 퍼지는 선생님의 작고 여린 목소리와 컴퓨터가 웅웅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간신히 깨뜨렸다. 나는 휙휙 넘어가는 슬라이드에 고개를 돌리고 손바닥으로 짝의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때, 짝이 몸을 뒤척였다.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쪽으로 돌렸다. 이마에 빨갛고 둥근 자국이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피부가 새하얘서 눈에 더 잘 띠었다. 그 자국을 보고 살풋 웃었다가, 잠든 짝의 얼굴을 마음 놓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짝 찡그린 미간이 이내 다시 펴진다. 눈썹이 단정해서 깔끔한 느낌을 줬다. 꽤 두꺼운 쌍커풀이 눈두덩이에 짙게 자리 잡아 있고, 속눈썹은 길고 숱이 많았다. 눈썹에 비해 눈은 꽤 화려한 느낌이었다. 콧대도 꽤 높고 역시 단정했다. 그에 반해 틴트를 바르지 않았을 게 분명한 도톰한 입술은 꽤 붉었다. 상당히 예쁜 얼굴이긴 하다. 딱, 전형적인 미인상. 한창 몸이 달아올라 있는 사내 녀석들이 목 매다는 이유가 다 있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짝과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얼른 등에 올린 손을 거두었다.
때를 노렸다는 듯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 액정이 하얀 빛을 뿜어냈다. 화들짝 놀라 그것을 집어들어 책상 아래로 숨겼다. 교실이 워낙 어두워서 티가 났을텐데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표정 변화가 없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살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지는구만.'
'양봉해도 되겠어.'
'너 내가 아무나 그렇게 보지 말랬지'
'강슬기'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메시지에 눈이 아려왔다.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돌리자 저만치에 앉아있는 승완이 용케 잠들지 않고 앉아 있었다. 아까 봤을 땐 분명히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승완은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봤다. 저런 표정은 항상 나를 난감하게 했다. 그리고 승완이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다가 액정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언제, 다정하게, 봤는데. 메시지를 보내자 칼같이 답이 온다.
'그럼 내가 잘못 봤다는거야?'
당연하지. 마음 같아선 그렇게 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승완이 단단히 삐칠 것이라는 걸 아니까, 그러지는 못했다. 피곤하긴. 대충 어깨를 으쓱거렸다. 화살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내 뒤통수에 날아와 박혔다. 나는 애써 외면하고 핸드폰의 액정을 꺼트린 뒤, 책상 서랍 안 깊숙히 처넣었다. 꼿꼿이 세운 등이 아려왔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5월의 선선한 바람이 또다시 불어왔다. 나는 늪에 빠지 듯, 천천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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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사는 달팽이 |
안녕하세여 여러분 간단히 이 픽을 소개해드리자면, 학원물입니다 그냥 흔하디 흔한 학원물처럼 뻔하고 뻔한 전개로 흘러갈 듯 하네요 제 목표는 귀사달을 완결 내는 것입니다 제 성격 상 두달에 한번 쯤 찾아올 것 같지만...
본편의 분량은 프롤로그보단 길겠지만 꽤 짧은 내용으로 찾아 봴 것 같아요 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