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핸드폰에 관심을 두지 않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요즘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 않는다.
"이거 봐, 징어야."
예쁘지?
그가 입꼬리를 깊게 올리며 내민 그의 핸드폰 화면 가득에는
며칠전 처음으로 세상에 울음소리를 들려준 그의 여동생의 아들이자, 그의 조카였다.
몇번이나 본 사진이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곱게 접힌 눈매가 꽤나 제 외삼촌을 닮은 듯 했다.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누군가 손으로 들어올려 억지로라도 올려줬음 했다.
굳어버린 입꼬리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전부터 나를 쭉 괴롭히다 오늘 아침에서야 내려선 열이 다시금 오르는 듯 했다.
"응, 예쁘네."
오빠 동생을 참 많이 닮았어.
내 끄덕임에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린 그는 눈 앞에서 핸드폰을 거두어갔다.
그제서야 가늘게 떨리는 숨이 슬쩍 흘러 나왔다.
"더 예쁠거야."
호록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신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마추자
"우리 애기 말이야."
몇번 눈동자를 굴리던 그가 조금은 붉어진 귀를 하고는 개구지게 웃었다.
분명 더 예쁠거야.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밋밋한 내 배를 바라봤다.
나는 어리다. 어린 아이는 예쁜 것을 탐내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너를 탐내는 것도 네가 너무 예뻐서 이겠지, 아가야.
"징어야?"
톡톡하고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불린 내 이름에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얼른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멍해."
"아, 미안. 다른 생각 좀 하느냐."
"안색도 별로고. 어디 아파?"
"감기 기운 조금. 이제 괜찮아."
짙은 그의 눈썹이 눈에 띄게 움직이며 그 사이에 깊은 구김을 만들었다.
"너 진짜 몸관리 안할래. 약은, 먹었어?"
그치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일 뿐.
"아니, 못먹었어."
"너 내가 고집 부리고 약 안먹는 거 하지 말라고-."
"안 먹은게 아니라 못 먹은거야."
"뭐?"
결국 현실은 빈 손을 바라보며 허망한 욕심을 탓해야 했다.
"...나"
임신했어.
김민석
"..아니, 다시, 다시 말해볼래 징어야?"
뭘..뭘 해? 뭘 했다고?
"4주째래. 병원도 다녀왔어."
지끈 하고 몰려오는 두통에 눈을 감고 이를 바득 물었다.
자주 편두통에 시달리던 내게 생긴 버릇 같은 것이였다.
그는 이걸 이가 상한다며 싫어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매번 그때마다 잔소리를 듣곤 했다.
"..."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그저 맞은 편에 앉아 빤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귀찮기만 하던 그 잔소리가 오지 않으니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알약을 먹듯 억지로 목울대를 움직여 넘겨보지만 소용없었다.
"..부모님은."
후-. 하는 긴 한숨 끝에 달려온 물음이었다.
"아직. 말씀 안드릴꺼야."
"미쳤어? 그럼 혼자 낳겠다는 소리야?"
곧장 나오는 큰 소리에 지지 않고 반박했다.
"지울거야. 괜찮아."
"넌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어차피 그게 최선이야."
"좀 더 생각해보자, 왜 너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그럼 어쩌라고. 솔직히 자신 없잖아, 우리 준비 안됐잖아."
오빠, 일 계속 하고 싶잖아. 무대에 있고 싶잖아.
절대 내보이지 말자던 내 추잡한 욕심을 결국은 토해냈다.
너무나도 보기 흉한 이기심인지라 꼭꼭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뒤 사실은 욕심 냈었다고, 낳고싶었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려했다.
하지만 자꾸 날 타박해오듯 하는 그의 말에 스위치가 눌린 듯
입이 열리고 혀가 움직였고 눈에서는 쉴 틈 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다.
"..."
"오빠 처음 우리 만나는 거 소속사에 걸린 날 기억 안나?"
"..."
"오빠 그날 연습생 퇴출 당할 뻔 했잖아."
나 그런거 이제 싫어. 내가 흑막이 되어서 오빠에게 가는 빛을 막고 싶지 않아.
말아쥔 두 주먹이 옅게 떨리는게 느껴졌다.
울며 열을 내서인지 다시 띵해 오는 머리에 아랫입술을 잘근 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도망 치듯 화장실로 들어와 찬물을 틀어 세수를 했다.
오른 열 때문에 시원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눈물의 찝찝함은 지워지는 듯 했다.
물을 끄고 시선을 올렸다.
빨개진 눈, 갈라진 입술 어디 하나 예쁜 곳이 없었다.
심지어 마음까지도.
작게 한 숨을 내뱉은 뒤 대충 페이퍼 타올로 얼굴을 닦아내고 자리로 돌아갔다.
"..뭐냐, 진짜."
헤어지자고는.. 하고 가야지.
자리로 돌아온 곳에는 그의 커피와 나의 허브티만이 공허함을 달래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집으로 향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무서웠겠지. 응. 게다가 내가 그렇게 몰아 붙였는데.
"..나쁜 놈."
하지만 입은 전혀 다른 말은 내뱉고 있었다.
천천히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아내며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을까.
"..오징어!"
등 뒤에서 꽤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려서는 안되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자
뛰어온 것인지 제 무릎을 잡고는 허리를 숙인 체 숨을 고르는 그가 보였다.
"..어떻게-."
"너 뭐야. 간다면 간다고 말을 해야지!"
나는 또 네가 어디서 쓰러진 건 아닌가 얼마나-.!
점차 커지는 그의 언성에 놀라 몸을 움츠리고 있으면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는 그다.
"..오빠가 먼저 갔잖아."
뭐?
줄곧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자 또박또박 한 말이 아닌 울음에 다 뭉게진 말이 흘러나왔다.
나 두고 먼저 갔잖아. 도망 쳤잖아. 나 두고.
방금처럼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끅끅 거리는 날 빤히 바라보던 그가
손을 조심히 뻗어 눈가를 문질렀다.
"...아프잖아."
약 사러 갔었어.
너 홀몸도 아닌데 아무거나 먹으면 안될거 같아서
동생한테 물어보고 사느냐 늦었던 거야.
그의 손목에 걸린 하얀 약봉투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그걸 못기다리고 그냥 가냐."
"..."
"..하여간 오징어."
"..."
"눈도 다 부어서 완전 못생겨서."
아가야, 네 엄마 봐. 완전 못생겼지? 그래도 아빠 눈에는 너무 예쁘다.
아 참, 우리 아가 이름은 고모가 지어준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