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apped prince 21
w. Cascade
*완결이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습니다. (분량 조절의 실패..)
이번 스크랩드 프린스 21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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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왕자(5)
"올라오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니?"
"네.."
"오래 기다렸다, 김수민. 항상 말하려고 했었는데, 미안하고."
김수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지금 상황이 불편한듯 옆에 있는 백현이만을 바라볼 뿐이다. 백현은 루한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말을 이었다.
"루한님. 아니 루한. 지금은 호위무사가 아닌 친구로서 말을 하는데, 꼭 이래야만 하는거야?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있잖아. 이런다고 민석이 행복해질 것 같아? 주변 사람.. 나도 그렇고, 경수, 종인이는 생각 안해? "
"이게 최선이야."
루한은 자신 어깨 위에 올려진 백현의 손을 잡고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김수민을 앞에 세웠다.
"잘 들어. 이제 시작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듣고, 그대로 하면 될거야. 이건 옥새랑 문서야. 이 문서에는 7년 전 반란에 가담했던 놈들의 이름이 적혀있어. 이것을 갖고 영의정을 찾아가. 그 사람은 지금 왕에 대한 불만이 많고, 그 반란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 너의 아버지가 왕이었을 당시, 굉장한 충신이었고. 네가 김수민이라는 것을 밝히면 그 이후에는 그 사람이 알아서 할거야.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
김수민은 루한이 건네준 문서를 받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문서를 열어보았다. 이는 공조좌랑의 아들 루한이라는 이름이 적힌 편지였다. 7년동안 월풍으로서 자신이 처단했던 자들, 보고 들었던 세상의 불편한 사실들이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7년 전, 왕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현장에 자신이 있었음을 밝힌 부분도 있었다. 왕자를 납치한 것은 자신이며, 자신의 눈으로 루한 아버지가 왕족들을 말살시킨 것을 보았다..고 적혀있었다. 이것을 보자 김수민은 놀란 눈으로 루한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루한의 속마음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처음 루한의 집에 백현의 손에 이끌려 왔을 때의 루한의 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고 차가웠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 같이 노려보는게 부지기수였다. 그런 자가 갑자기 지금 와서 이런 행동을 하려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백현의 말에 따르면 민석을 굉장히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이 물음들을 루한에게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쳐다보는 루한의 표정이 너무나도 차갑고, 무서워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꼭, 7년 전 대문에서 맞이하였던 루한의 모습과 똑같았다. 일순간에 이는 동정일 것이라 믿기로 했다. 지금은 부모님에 대한 복수가 먼저다. 김수민은 루한이 건네준 물건들을 품 안에 꼬옥 안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유유히 방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루한은 그제서야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 동안 굉장한 불안감, 긴장감에 싸여 살아왔다. 그런 긴장들이 일순간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더 이상, 느껴보지 못할 감정들이겠지.
"혼자 있고 싶어."
백현은 나가기를 머뭇거렸다. 그러나 루한의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제 방 안에는 루한,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눈을 감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이런 회상들도 앞으로는 그에게 사치일 것이다.
10년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도착한 궐에서 김민석을 처음 만났다. 기둥 뒤에서 수줍은 듯 인사하는 모양새가 이 나라의 왕자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항상, 조선의 왕자는 못생기고 바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루한이었다. 하얀 피부에 곧게 뻗은 눈매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소년이었다. 루한은 그 소년을 보자 난생 처음 가슴 속의 일렁임을 느꼈다. 이것이 민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집에 와서도 그 소년이 자꾸만 생각났다. 함께 부엌에서 절편을 훔쳐 먹고, 이것이 재미있는 듯 꺄르륵 웃어대는 민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아버지를 따라 궁을 찾았다.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민석의 방을 찾았다. 그러나, 궁 안의 상황은 무척이나 달라져있었다.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군사들로 궐 안은 어지러웠다. 덜컥 겁이 나, 자신도 모르게 그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때였을까, 루한은 보고말았다. 자신의 아버지의 칼이 민석 아버지의 등 위로 꽂히는 장면을...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려왔다. 휘파람을 불어 백현을 불렀다. 어딘가에 민석과 그 여동생이 있을 것이다. 백현에게 그 여동생을 찾아 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민석을 찾아 헤메였다. 결국, 방 안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는 민석을 발견했다. 그 날, 민석이의 표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민석을 500년 후로 보내고 하루하루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리도 큰 상처를 주게 된 자신의 아버지가 미치도록 미웠고, 이는 일탈로 이어졌다.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는 오래고, 굉장히 방탕하게 보란듯이 살았다. 그리고 밤마다 월풍으로 조선의 달을 맞이했다. 조선을 바꿔야 했기에...
민석을 다시 만났을 때, 루한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 모든 사실을 묻고 행복해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행복일 뿐... 민석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행복은 곧 민석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니까...
**
덜크덕-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누군가가 우당탕 달려왔다. 민석이었다. 민석은 늦은 밤에도 자지 않고 루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한이 민석의 곁을 그냥 지나가려 하자 민석은 루한의 팔목을 붙들었다.
"할 말이 있어."
루한은 알겠다며, 민석을 데리고 자신의 침소로 갔다.
"말해봐."
"무녀를 만났어."
"무녀가 너한테 뭐라 했어?"
"아니. 그냥 나한테 행복이 뭘까 생각해보랬어. 그래서 오늘 하루종일 생각해봤는데..."
"그래서, 너한테 행복은 뭔데?"
"그만하자. 그냥 다시 내려가서 이런 일은 다 잊고 살자."
루한은 자신이 수없이도 고민하고 외쳤던 생각이 민석의 입에서 나오자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싫어."
"도대체 왜 싫다는거야? 왕자는 나야. 내가 괜찮다는데 왜 루한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데..!"
"너는 지금 네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단편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너는 괜찮을 거라고 말할 수 있어?"
루한의 그 말에 민석은 덜컥 불안해졌다. 또, 바람처럼 자신을 스쳐 훌쩍 떠날 것만 같았다. 루한의 말, 그리고 모습은 마치 이 일이 마무리되면 신기루가 되어 사라져버릴 듯한 느낌을 주었다. 민석은 잡고 있던 루한의 옷깃을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보던 루한은 민석을 번쩍 안더니 이불 위로 던졌다.
"아파! "
딱딱한 바닥 위로 등이 떨어진 민석이 소리쳤다. 그 옆으로 루한이 누웠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왕자님. 무슨 고민,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알아. 너무 걱정하지마. 지금은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될거야. 그냥, 아..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었지... 하고 넘어가게 될거야."
루한은 손으로 민석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민석의 허리를 안았다. 그러자 민석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내일... 마지막으로 왕을 만나."
루한은 조용히 민석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피곤한듯 눈을 감았다. 루한의 잠자는 얼굴을 민석은 한 동안 바라보다가, 자신 또한 잠을 청했다. 내일의 태양이 뜨길 바라며...
**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무슨 생각이냐 루한."
"아무 생각 없어. 가서 잠이나 더 자 도경수."
"내가 모를것 같아?"
"백현이가 말했냐..."
"맨날 감싸고 도는 여자애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김민석 여동생이라더라. 죽은 줄 알았는데... 대충 앞으로 너가 어떻게 나올 지 감은 오는데, 내 감이 틀렸으면 좋겠다. 제발."
루한은 배시시 웃으며 경수를 쳐다보았다.
"왠일로 이제 내 걱정도 해 주고.. 천하의 도경수가..?"
경수는 불쑥 루한이 얼굴을 내밀자 손으로 그 얼굴을 밀어냈다.
"장난치지마. 진지하니까. 어제 밤새 종인이랑 얘기했어. 너에 대해. 그리고 우리...다섯에 대해. 그렇게 너 혼자 다 짊어지고 가면 남은 우리들은 퍽이나 행복하게 잘 살겠다 그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나 없어도."
**
조선의 궁궐에도 환한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민석은 월화로 분장한 채 궁궐 안 정원을 거닐고 있다. 곧, 회의가 열릴테지... 회의가 끝나고 왕을 찾아가야 했다. 그 때였을까, 눈에 익은 소녀가 비단 옷을 입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저번에 루한 집에서 문을 열어주었던 소녀다. 민석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녀의 뒤를 밟고 있었다. 그 소녀는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리더니, 방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민석은 문에 자신의 귀를 갖다대었다.
"공주마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7년 전 부모님과 함께 자신의 여동생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어찌.... 그 순간, 민석은 이전에 루한의 집에서 만났던 여자아이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렸다. 김수민... 어느덧 성숙한 여자로 자란 자신의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공주마마. 이것들은 다 어찌 구하셨습니까?"
"루한이라는 자가 내게 주었다."
"루한이라면..."
"현 공조좌랑의 아들이다."
"그 자가 어찌 지 애비 목에 칼을 들이대는 짓을 한단 말입니까?"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오라버니도 살아 계신다."
"좋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주마마, 이따 뵙도록 하지요."
민석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러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행여나 들릴까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들을 한 번에 알아버렸다. 루한의 아버지가 그 반역에 가담한 주동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 칼을 꽂은 자가 루한의 아버지. 여동생이 살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루한의 계획...
언젠가부터, 민석의 마음 속에는 부모님에 대한 복수보다도 루한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도... 루한의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다도, 루한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났다. 한시라도 빨리 루한을 찾아야한다. 민석은 자신이 이 사실을 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왜 자신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일까... 루한의 슬픈 눈망울을 왜 그저 보고만 넘어갔을까. 그동안 루한 너는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
민석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했다. 그 때 였을까..
"오라버니?"
예상치 못하게 김수민이 자신 앞에 서 있었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 이젠, 기억이 돌아오셨습니까?"
민석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생각들이 자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여동생에 대한 반가움에 앞서, 민석은
"그만하자." 라는 말을 먼저 뱉고 말았다.
"무엇을..말입니까?"
"복수 말이다. 다 잊고 그냥 조용히 살자. 수민아.."
"오라버니. 저는 지난 7년간을 이 날만을 위해 숨죽여 살아왔습니다. 악몽같은 나날들이었지요. 오라버니께서는 차마 상상도 못할 아픔을 저는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라버니가 뜯어 말리셔도,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의 등에 칼을 꽂을 것입니다."
수민은 이 말만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민석과 조금이라도 더 얘기를 했다가는 자신의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민석은 뒤돌아서 급히 뛰어가는 수민을 보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만해..."
**
민석은 자신의 화장이 번진지도 모르고 미친듯이 궁 안을 돌아다녔다.
"루한...루한..."
궁 밖을 급히 나가 숙소에 들렀으나, 루한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백현, 종인, 종대만이 있었다.
"루한은?"
"경수님이랑 방금 궁에 들어가셨다."
백현은 민석의 몰골에 놀란 듯 했다. 그리고 눈치를 챘다. 민석은 여동생을 만났을 것이라고...
"공주님을..만났어?"
"응..."
민석은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너희들은 다 알고 있었던거야? 루한이 이럴 거라는거."
"......"
"결국 이렇게 자신을 팔아넘기고 나를 저 자리에 되돌려놓는 것이 너네들이 생각하는 행복이었어?"
"루한님이 생각한 행복이지."
"자기가 내 부모님을 죽인 것도 아니잖아. 왜 그걸 뒤집어 쓰려는거야? 도대체 왜... 이럴 줄 알면서 계속 내 옆에 남아있던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곧 반역죄로 찢어 죽임을 당할 그 결말을 알면서 항상 내 옆에서 무슨 생각으로 웃고 있던 거야?"
민석은 생각할수록 루한에 대한 걱정, 분노가 치솟는지 서러워 우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던 백현이 가만히 민석을 안아주었다.
"루한은.. 네가 다시 왕좌를 되찾고, 모두가 궁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누구보다도 원했어. 그리고 자신 하나로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항상 말했어. 물론, 나도 그 말이 바보같다고 생각하지만..."
루한, 너는 왜 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가려는 것인가...
그 날 따라 조선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
루한은 경수와 궁을 찾았다. 옆에는 영의정과 김수민도 함께였다. 곧, 전체 회의가 열리고, 왕.. 그 자가 등장하겠지. 다행히 오늘 루한의 아버지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비변사 일로 지방을 순회하고 있을 터였다. 루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민석의 얼굴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옆에 두고 있을 수 없다..앞으로는.. 이 생각에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민석이다. 자신도 모르게, 화중주에서 기생으로 변장한 민석을 처음 만난 때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허둥지둥대며 자신을 간호하던 그 모습... 자신에게 업혀 엉엉 월풍이 보고싶다며 울던 그 모습... 이런 때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행복하게 민석을 떠올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자가 등장했다. 불쑥 영의정이 그 앞에 섰고, 루한이 뒤를 따랐다.
"전하, 공조좌랑의 아들 루한이라고 합니다."
"오, 자네가 바로 그 아드님이구먼. 그래, 오늘 이 회의에는 어쩐 일로 찾아왔느냐?"
"7년전... 그 날의 공포를 돌려드리려 이리 찾아왔습니다."
문 뒤로 영의정이 소환한 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궁궐 안은 혼돈에 휩싸였다. 그 자는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때였을까 짧고 날카로운 무엇이 자신의 배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만입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으나, 7년 전 당신이 죽인 제 부모님의 딸, 김수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단번에 그 칼을 빼내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오는 듯, 그 자는 연신 비명을 질러대었고, 수민은 칼을 그 옆에 던진채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면서 그녀가 본 장면은, 루한이 체포되는 .. 장면이었다. 애써 외면하며 서둘러 도성 밖으로 향했다. 지금은 자신의 복수가 먼저였다.
**
"결국.. "
경수의 말에 백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루한이 잡혀갔다. 사실, 도망가고자 노력도 하지 않았겠지.. 그 성격에...
민석은 가만히 있다 벌떡 일어났다.
"가야겠어."
"어디로?"
"루한이 있는 곳..."
민석은 월화로 다시 변장했다. 이제는 제법 화장이고 옷을 입는 폼새가 자연스러워졌다. 민석을 따라 종인,경수,백현 그리고 종대가 따라나섰다. 루한이 있는 곳으로....
루한은 감옥 구석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루한을 보자마자 경수는 연신 원망의 말을 해대었다. 백현과 종인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볼 뿐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백현의 물음에 루한은 눈을 떴다.
"난 괜찮다."
루한의 눈은 민석을 찾았다. 역시, 왔구나 김민석. 월화.... 루한은 민석을 찾자 환하게 웃어보였다. 민석을 안심시킬 수 있는 미소...였는데, 더 이상 아닌가보다. 민석은 루한을 보며 울고 있었다.
"미친놈."
"그게 무슨 뜻이야?"
"미친놈아. 개새끼. 병신새끼."
"뜻은 모르겠지만 좋은 말 같진 않네 왕자님..."
루한은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민석의 눈 밑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었다.
"보는 눈도 많은데 이렇게 울면 안되지 왕자님."
"이제 어쩔 셈이야?"
"재판을 기다려야지."
"반역죄인은 어떻게 되는 줄 알어?"
"...."
"그걸 알고 지금 ... 너.."
"미안해 김민석. 숨기고 있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하지마. 그걸 왜 네가 미안해하는 건데? 오히려 미안한 건 나야. 그 누구보다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옆에 있어줬던거야 넌....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어떻게 참았어? 응? 대답해봐."
"잘 할 수 있지?"
루한은 민석의 볼을 쓰다듬었다.
"울지말고.... 이제 빨리 가봐. 더 이상 날 찾지마. 사랑해...."
민석은 아무 말 없이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감옥문을 나섰다.
"마지막 인사라도 해주지... 속상하게..."
루한은 민석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
평생 흘릴 눈물을 오늘 다 흘려버린 것 같았다. 차마 더 이상 자신의 우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먼저 그들을 보내고 뒤에서 민석은 천천히 걸었다. 바람에 꽃들이 휘날렸다. 10년 전, 루한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이렇게 따뜻한 봄날씨였다. 소년들과 어울려 앉아있던 루한은 무척이나 빛이 났다. 궁 안에서 혼자 지내던 자신에게 루한이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빛났다. 함께 있으면 뭐든지 즐거웠다. 매일매일 루한이 자신의 방을 찾아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던 담소들, 약속들... 하나하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자신을 대한민국으로 보내기 전 루한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루한의 눈물이었다. 7년이라는 세월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잘 왔다며 자신에게 키스해 주었던 루한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 월풍이라는 사람에게 느꼈던 연민, 동정, 그리고 사랑... 이것이 모두 운명적으로 루한을 향해 있음을 지금은 민석은 알고 있다.
문득 무녀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점점 그것에 대한 답이 명확해지고있다. 나의 행복과 너의 행복의 정의는 다르다.
**
"공주님, 괜찮아?"
백현이 수민을 찾아왔다. 분명, 오늘 일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이 소녀는 너무나 갸녀리다.
"오라버니는 내가 안 미워?"
"왜?"
"루한님이 잡혀갔어."
"네 잘못이 아니야."
백현은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모든 일이 제 자리로 돌아간 것 뿐이야. 너는 네 할 일을 한거야."
수민은 백현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을 위로해주고는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백현이 인듯 싶었다. 수민은 백현의 머리 위에 자신의 조그마한 손을 올려놓았다.
"오라버니...너무 슬퍼하지마... 방법이 있지 않을까?"
"너는 루한님이 밉니?"
수민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다행이다."
백현은 환하게 웃음지었다.
"나중에 또 봐, 공주님."
백현은 친구들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
"왔니?"
백현이 문을 들어서자 모두가 빙 둘러 앉아있었다. 그 사이에 민석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결심했어. 이건 명령이야."
"명령?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던거야?"
백현이 묻자 종인이 가만히 백현을 손짓하여 불렀다.
"여기 앉아. 나중에 말해줄게."
"이 사실을 알면 루한이 가만두지 않을거야." 경수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루한이 무조건 이기적으로 생각하라고 그랬어. 이건 내 이기심이야."
**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민석은 정신이 없었다. 루한을 그렇게 마지막으로 보고, 매일 밤을 그리움에 사무쳐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밤만은 다르다. 루한에게 자신의 행복을 보여줄 때가 다가왔다.
똑똑-
"누구냐?"
"루한님, 접니다. 백현.."
"궐 안은 아직 무척이나 어수선할텐데, 네가 여기는 어떻게 온것이냐.. 종인이 너도..."
"루한. 지금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말고, 우리만 믿어."
감옥 안을 지키고 있던 자들을 모두 기절시킨 모양이다. 옥 안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나가지 않을 거야. 내가 나가면 너희들이 위험해져."
"허튼 소리 하지마. 루한 정말 죽을 작정이야? 그 꼴은 못보지. 니가 니멋대로 이 사단을 만들었으니, 이젠 우리 멋대로 이 일을 매듭지을 거야."
루한이 온몸으로 거부를 했으나,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건장한 백현과 종인이를 이겨낼 힘이 없었다. 결국, 루한은 감옥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오랫만에 맡아보는 밤공기에 루한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민석이는...?"
루한의 물음과 동시에 눈 앞에서 민석이 나타났다. 민석의 위로 꽃잎들이 흩날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김민석.."
"루한, 나 알아냈어. 우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민석은 루한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 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루한과 민석의 머리가 흩날렸다. 민석의 말이 끝나자 루한이 민석을 밀쳐낸다.
"미친놈."
"그런 말은 빨리도 배우네. 이기적으로 생각하라며. 그래서 생각해봤어. 그리고 이것은 조선의 왕자 김민석의 명령이야 루한. 이젠 내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야. 지난 7년간 네가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 떨어지는 꽃잎들이 이 둘을 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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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로 이번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Cascade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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