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잖아."
"그럼 내가 본 그 모습은 뭔데? 내가 잘못 본거야?"
"종대야, 내가 아까부터 설명했잖아. 상담할게 있어서 만난 것 뿐이라고. 너 나 못 믿어?"
"원래 다 그렇지-, 고민 상담 해준다고 만나서 정들고 그러는 거지."
"뭐? 야, 김종대! 네 친구 찬열이야. 너랑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찬열이라구."
".........."
"나는 못 믿어도 , 적어도 네 친구는 믿어야 하는거 아니냐?"
됐다, 그만하자. 이제 싸우는 것도 지겹다, 한숨을 푹 내쉰 종대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자꾸 대화를 끊어 버리는 종대에 민석은 이제 정말 화가 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대화로 오해를 풀던지 아니면 정말 싸움의 끝을 보던지, 이것도 저것도 못한 채 벌써 한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종대가 그만하자고 하면 민석은 그의 말대로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흐르면 종대는 다시 저를 향해 웃어주며 사랑해 줬으니까. 그런데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새삼 느끼고 만다. 민석을 뒤로 한채 돌아서 버리는 종대에 결국 참고 있던 감정들이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너는 뭘 그렇게 잘했냐-.
"..뭐?"
"몰라서 묻니?"
"김민석"
"반말하지마, 기분나쁘니까."
"..김민석!"
"너야말로 나한테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 만난거 알아. 그게 너한테 아무 이유 없듯이, 나도 찬열이랑 아무 것도 없는거야."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화난 민석의 모습은 종대도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라 조금 당황했다. 두 눈이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시선을 먼저 피하지 않았다. 그 시선 속에 민석은 자신의 진심을 담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종대가 먼저 그 시선을 피하고 말았고, 민석은 실망감을 뒤로 한채 무언가 결정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내 남자친구를 부탁해 下
종대×민석
written by.테픈
"저기 맘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저 애인.....어, 찬열아?"
뭐하고 있어요?, 찡그린 표정으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민석의 이마를 문지르며 찬열이 물었다.
"논문. 근데 넌?"
"친구들이랑 조별과제하고 가다가 형 보여서."
"아, 맞다-"
여기 학교 근처지?. 민석은 새삼스레 자신이 학교 근처 카페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민석은 대학 졸업 후 대학원 석사과정을 듣고 있었고, 찬열은 제대 후 휴학을 1년 정도 해서 이제 4학년이 되었다. 그러다가 제 앞에 계속 앉아 있는 찬열이 조금 신경쓰여 민석은 열어 놓았던 노트북을 닫고는 물었다. 뭐 마실래?, 아! 형 신경쓰지마세요! 방금 과제하면서 마셨어요!, 자신을 신경쓰고 물었다는 것을 안 찬열은 손까지 저어가며 대답했다.
"형 논문 계속 쓰세요, 저 이제 가볼게요."
"갈라구? 나 이제 심심한데-"
"논문 써야 하는거 아니예요?"
찬열의 물음에 시계를 한번 쳐다본 민석. 아니야, 이제 종대 올 때도 됬고-. 그렇게 말하면서 어지럽게 올려져 있던 책이며 종이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종대 만나기로 했어요? 여기로 온대요?"
"응응, 항상 데리러 오는데."
나 공부한다고 외조하고 계세요, 우리 종대씨가. 그러면서 눈을 깜빡깜빡거리는 그에 아, 완전 대박-이라며 혀를 차는 시늉을 했지만, 사실은 꽤나 귀엽다고 생각한 찬열이였다. 종대로부터 민석을 소개받고 이제 세달이 지났다. 건물도 다르고 수업시간도 다른데도 같은 학교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마주쳤던 찬열과 민석은 세달 사이에 많이 친해졌다. 정확히는 첫 만남 이후로 종대가 여러번 찬열을 불러내어 셋이서 놀곤 했기 때문이다. 이미 번호는 첫날 만났을 때 찬열이 자연스럽게 물어오면서 교환했고, 찬열과 같이 술마시고 있다가 종대가 취해 연락이 안되면 찬열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정도. 카톡 메세지도 가끔 보내는 사이였다.
"종대씨!"
민석의 부름에 깜짝 놀라 뒤돌아 보자 종대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종대도 갑작스런 민석의 부름에 놀란 듯 , 그렇지만 그게 싫지는 않은 듯 웃으면서, 다가왔다가 민석 앞에 앉아 있는 찬열에 또 놀란다.
"안녕, 종대씨."
"넌 왜 여기 있냐?"
"왜. 같이 있으면 안되냐?"
"어, 안돼. 특히 오늘은."
"데이트 방해 안할거야. 하도 네가 바쁜 척을 해서 얼굴이라도 보려고 기다렸다"
"바쁜 척이 아니라 정말 바뻐. 형도 2주만에 보는거다 , 임마"
"너 나 안본지는 한달이 다 되간다"
"야, 거짓말 하지마"
종대씨 난 안보여?, 그제서야 장난스러우면서도 도도한 눈빛으로 묻는 민석을 쳐다본 종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옆에 앉았다. 근데 갑자기 왜 종대씨라 그래?, 종대의 물음에 그냥 불러봤는데-, 하고 대답해주는 민석은 아까의 눈빛이 아닌 평소처럼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야. 기운빠져"
"나도. 얼른 밥먹으러 가자. 배고파"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아니. 너 먹고 싶은거 먹자."
그러면서 이미 가방을 다 싸고 어깨에 맨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마신 빈컵을 버리러 먼저 앞서 걸어갔고, 덩달아 방금 온 종대와 찬열도 일어나 그를 따라 갔다.
"너도 저녁 안먹었으면 같이 먹으러 가자-"
"됐거든요, 난 우리집에 가서 엄마 밥 먹을거야."
"그래, 역시 넌 내친구다. 낄데 안낄데를 잘 알고 있군!"
"너랑 달라서. 크크-. 하튼 담주 주말에나 한번 보자."
"그래. 나도 바쁜 일은 어느 정도 끝냈으니-"
"어. .. 형, 저 그만 가볼게요!"
"어? 갈려구? 같이 저녁 먹지."
"다음에 종대 없이 둘이서만 만나서 먹어요~"
"그럴까?"
얼른 가라, 임마. 자신을 장난스레 떠미는 종대에 찬열은 인사를 하고 먼저 카페를 나섰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던 그가 다시 돌아봤을 때는 다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 있는 두사람이 보였고, 한달전인가 종대가 구입했다는 차에 탄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던 찬열은 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과방.」
"나 이제 들어간다."
「그분 갔냐?」
"응. 애인님이 오셔서 가셨다"
「크크크-. 그래 얼른 와라. 아, 올때 맥주도.」
"맥주 마시게? 과제 덜 했잖아."
「다하고 마실라고. 얼른 오기나 해 자식아」
"알았다. 기다려라."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카톡을 열어 익숙한 이름의 누군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학교 앞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 형, 다음에 꼭 맛있는거 사줘요~! 종대한테는 비밀로♡ ]
민석은 방금 온 찬열의 문자에 피식-하고 웃었고, 운전을 하고 있던 종대가 그런 민석을 힐끔 쳐다보며 왜 웃냐고 물었다.
"찬열이한테서 다음에 맛있는거 사달라고 연락 왔네"
"찬열이? "
"응응~"
"둘이 친해보여서 보기 좋다-"
종대는 찬열에게 답을 해주는 듯 폰을 만지고 있는 민석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자신의 애인과 가장 친한 베스트 프렌드가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라고,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민석에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곧 자신에게 의심, 질투, 오해라는 상처가 다가올 거라는 것은 차마 예상하지 못한 채로.
-
우리는 절대 싸우지 않을거라고 굳게 믿었다.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그런데 믿음은 의외로 쉽게 깰 수 있는 존재였다.
아마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더 쉽게 깨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오해와 질투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로 인해.....
민석은 지금 제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가 될 것 같긴 한데 이해하고 싶지 않아 민석은 그냥 뒤돌아 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주저 앉아 버렸다. '가게 내부 사정상 오늘은 휴무입니다', 제가 본 종이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민석은 겨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rrrrrrr- , 긴 연결음이 끝나도록 받지 않는 종대. 술 고프네-. 지금은 저녁 7시, 오늘은 7월의 어느 더운 날이였다.
"치맥이 맛있는거예요??"
"그럼 맛있는거지, 맛 없는거야?"
"칼질이나 망치질 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예요?"
"대체 일반 대학원생인 나한테 뭘 더 바라는거야?"
"조교선생님, 앞으로 무거운 거 있어도 나 부르지 마요!"
"찬열학생, 다음 학기에 수강 안 도와줄거니 알아서 하세요."
"너무하네 진짜."
민석은 한달전 찬열이 전공하고 있는 수학과 조교로 들어왔다. 학교 다니면서 제 용돈은 제손으로 벌자는 심산으로 조교를 선택한 것이다. 그날부터 찬열은 거의 학과 사무실에 살다시피 했는데, 도움을 받은 일도 꽤 많아서 오지말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더 친해지기도 했고. 아마 종대와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찬열과 있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른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치맥이 최고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맛있는 걸 사준다며 불러낸 민석은 술집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다. 찬열은 제 앞의 맥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가 한모금 마시고는 다시 내려 놓는다.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 민석, 그 이유가 무엇이든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며 찬열은 계속 그의 기분을 맞춰 주고 있었다.
그렇게 맥주 한잔 두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슬 취기가 오른 민석은 몇번이나 한숨을 쉰 후에야 겨우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종대랑 나, 1년 되는 날이다?, 찬열은 눈이 동그래지며 놀랐고 , 그 한마디가 오늘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다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근데 왜 종대 안 만나요?"
"종대가... 종대가 너무 바쁘대. "
오늘 종대와 민석은 사귄지 1년이 되는 날이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도 민석은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형, 나 오늘 같이 일하는 애가 아파서 내가 대신 가야할 것 같아, 점심시간에 종대는 민석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1년인데.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종대에 민석은 괜찮다고 답했다. 이번 학기에 갑자기 휴학을 한 종대는 알바를 시작했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일하는 종대를 잘 알기에 바쁜 그를 이해 못 할 것도 없었고, 자신이 여자도 아닌데 못본다고 토라질 일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굴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종대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카페에 찾아가 그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논문이라도 쓰면서 그가 마칠 때까지 기다릴 심산으로 찾아간 것이였다. 그런데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고 사정상 휴무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종대는 자신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어디를 간 것일까. 민석은 그 무엇보다 종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민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찬열의 표정은 굳어졌다. 제가 아는 종대는 그런 거짓말을 할 친구가 아니였고,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민석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 그것은 친구지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화는요?"
"해봤는데 안받아."
"내가 한번 해볼까요?"
"아니. 네가 했는데 받으면?"
"........"
그럼 나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민석은 이미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다. 역시 소주를 마셔야 했나, 남은 맥주를 다 털어마신 그가 중얼거리며 맥주를 더 시킨다. 그 사이 찬열이 종대에게 메세지를 보내본다. 어디냐, 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민석이 제 앞에 없는 듯이. 1분도 안 지나서 종대에게서 답이 왔다.
「술. 너 올래?」
소주가 마시고 싶다는 민석의 말에 포장마차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안주와 소주를 시켜 마셨다. 한잔, 두잔 .. 쉴 새없이 술을 들이키던 민석은 결국 취해 버렸다. 처음 보는 술취한 민석의 모습. 몇번 같이 술도 마셔보고 종대에게도 들었지만 술이 쎄 잘 취하지 않던 민석이 취한 이유는 역시나 스스로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일테다. 딱히 술버릇은 없고 탁자에 쓰러지듯 엎어져 잠든 민석을 찬열이 엎고 그의 집까지 걸어갔다. 조그만해서 그런지 원래 마른건지 보기보다 많이 가볍다고 생각한 찬열이다. 하지만 역시 남자몸이라 그런지 여름이라서 그런지 그를 계속 엎고 있으니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겨우 그의 집에 다 왔을 때 익숙한 인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온다. 바로 민석을 취하게 만든 장본인인 종대였다. 친하긴 했지만 집까지는 몰랐던 찬열이 종대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던 것이다.
'형이랑 있었니?'
'그것보다 얼른 주소 좀 알려줄래?'
'문자로 넣어줄테니까 그리로 와. 나도 지금 형 집 앞으로 갈게.'
'그래, 알겠다.'
'어. ......... 형 잘 챙기고.'
그럼 네가 이리로 오던가.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종대가 보내 준 주소를 확인한 뒤 민석을 업고 집까지 데리고 왔다. 종대의 모습이 보이자 찬열은 조금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어쨌든 민석이 이렇게 취한 건 종대 때문이였으니까. 문부터 열어, 임마. 이유는 잠시 뒤에 묻기로 하고 그렇게 말하자 종대가 익숙하게 민석의 집 문을 열어준다.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민석의 집에는 처음 와 봤는데,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그런지 집도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종대의 도움을 받아 민석을 침대에 눕힌 후 종대가 내미는 물 한잔을 받아 마신 찬열. 그 사이 종대는 민석의 양말을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고 에어컨까지 켜주었다. 늦었으니까 여기서 자고가, 가방을 책상위에 내려 놓으며 말하는 종대에 찬열이 그를 불렀다.
"야, 김종대."
" 어?"
"우리끼리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그래."
그렇게 민석의 집을 나온 두사람은 가까운 편의점에서 맥주 한잔 하기로 결정했다. 초여름이라 그런지 밤에는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였다. 맥주를 사서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은 둘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지만, 찬열이 그 침묵을 깨고 직접적으로 종대에게 물었다.
"너 오늘 1년이였다며?"
"아, 응."
"일한다고 못 봤다며?"
"응. 근데 설마 그것 때문에 저렇게 취한거야?"
"아니. 너 일하는 곳, 오늘 휴무라며. 형이 너보러 갔었나봐."
올줄은 예상 못했나 보네. 찬열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종대. 찬열은 대체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왜 그런거냐고, 형이 힘들어했다고. 한숨을 푹 쉰 종대는 찬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이해해줘야 돼. 그렇게 말한 제 친구는 변명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과의 한 선배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 자신은 민석이형이 있으니 거절을 했는데도 계속 따라 붙어 카페에도 찾아오고 술취해서 전화하고 그랬다고. 어쩔 수 없이 연락이 와도 찾아와도 무시해 버렸는데, 어제 또 찾아온 그 선배가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서 쓰러졌으며 놀래서 병원에 데려갔고 밤늦게 겨우 정신을 차렸단다. 제 잘못이 아닌데 마음이 또 그래서 오늘 또 병원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찬열은 제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 제 앞에서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던 민석이형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저려왔다. 민석이형한테는 제대로 설명하는게 맞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오해만 생길 거라고 말해주자 종대는 말해야지하고 대답해주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근데 민석이형 많이 힘들어 했어?"
"저렇게 취해 있는거 보면 모르냐. "
"니가 고생했다. 미안. 그리고 .... 나대신 챙겨줘서 고맙다"
종대는 찬열의 어깨를 툭-하고 쳤다.
민석의 방으로 돌아온 종대는 침대에 걸터 앉아 잠들어 있는 민석을 내려다 보았다. 새근새근 귀엽게도 잠들어 있는 민석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다가 자신도 조용히 민석의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혹시나 민석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그의 하얀볼도 쓰다듬으며 눈을 감으니 그가 종대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허리로 두팔이 감겨온다.
"종대다..."
"언제 깼어..?"
"방금.."
"내가 꺠웠구나?"
아니, 자신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도리질 치는 민석을 종대는 팔을 둘러 꼬옥 안아주었다. 나 기다렸어?, 응응.. , 이번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를 더 꼭 안아주는 종대였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늦어서 미안해."
"보고 싶었어."
"나도. 근데 .. 나 없을 때는 술 많이 마시지 말라니까."
"그치만"
늦어서 미안해, 얼른 다시 자. 달콤한 종대의 목소리에 민석은 오늘 하루 힘들었던게 다 날라가는 것만 같았다. 종대의 품에서 평소 익숙했던 그의 향기가 아니라 병원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종대가 자신을 안아준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
그렇게 둘은 괜찮아 진줄로만 알았다. 그날의 일은 다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서로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종대가 연락이 잘 안되거나 몇번 정도 더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민석은 그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반대로 종대는 최근들어 민석과 찬열이 자주 만나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버렸다. 자신이 소개시켜준 것도 사실이고 자신에게 말을 하고 만나는 건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둘이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민석에게 거짓말하는 수도 많아졌다.
헤어지던 날도 민석은 찬열과 만나 술한잔 나누고 있었다. 최근 종대의 행동에 친구인 찬열에게 고민상담을 요청했던 것. 이번에도 찬열이랑 만나는 것을 종대에게 말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안된다고 딱 잘라내는 종대였다. 왜 안되냐고 물어도 그냥이라며 고집을 피우는 종대에 민석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냥 말하지 말걸, 됐다-,며 종대의 전화를 끊은 민석. 종대가 반대한다고 못만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냥 민석은 찬열을 만났고 술을 마시러 갔다. 그런데 그게 잘못된 선택이였다. 하고 많은 술집 중에서 , 그리고 그 많은 날들 중에서 하필이면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던 종대와 민석이 마주쳤다. 민석의 옆에는 찬열이 있었고, 종대의 옆에는 민석이 몇번이나 봤던 여자가 서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만나던 그 여자. 물론 민석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건 종대는 모른다.
그렇게 쌓이고 쌓였던 불만은 결국 터져 버렸고 둘은 헤어져 버렸다. 민석은 종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종대는 민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민석의 말에 종대는 그러자고 했다.
"정말.... 한순간이다. 사귀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민석은 그 말과 함께 종대에게 등을 보였다. 사귀게 되었던 날도 민석은 뒷모습을 보였었는데. 그때와 지금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번엔 민석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던 종대가 없다는 것이였다.
-
"박찬열, 나 괜찮으니까 그렇게 보지마"
"괜찮을리가 없잖아요."
"안 괜찮으면? 엉엉 울기라도 할까?"
"나때문이라고 욕이라도 해요."
"그래, 너때문이야, 박찬열."
민석은 제 앞에 앉아 있는 찬열을 바라봤다. 뿔떼 안경을 끼고 파란 남방을 입고 있는 찬열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날 걱정하고 있구나.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제게 미안해하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민석이 더 미안했다. 이럴려고 오늘 부른 것도 아니고, 그동안 상담을 요청했던 것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찬열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민석은 생각했다. 하지만 찬열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석이 자신에게 처음 상담을 요청했을 때 그는 종대의 옆에 붙어있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최근 그 여자만 붙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그리고 그때마다 종대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혹시 그여자 누군지 아냐고 민석은 물었다. 찬열은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종대를 따라다닌다는 그 선배, 종대의 앞에서 쓰러져 종대를 옭아매는 그 여자. 정확히는 종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그 여자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걸 느낀 그 여자가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였다. 물론 민석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자신 또한 어째서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종대가 설명하겠지 하고 말하지 않았는데, 아직 말하지 않은 걸 알고 나서는 왠지 욕심이 생겨서 말하지 않았다. 무엇에 욕심이 났는지, 그게 무엇인지 잘 알지만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종대가 잘못한 것이다. 민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오해를 자꾸만 만들었던 종대의 잘못이다.
"박찬열"
"네??"
"종대 좀...... 잘 챙겨줘."
이렇게 여리고 착한 사람을 상처 준 그가 나쁜 것이다.
-
그렇게 빠르게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민석은 대학원을 다녔고, 신경쓸 틈도 없이 조교 일에 바빴다. 찬열은 틈틈히 민석을 찾아와 자잘한 일 등을 도와주기도 했고, 커피나 음료를 대령하기도 했다. 둘은 마치 종대때문에 엮어진 인연이 아닌 것처럼 사이가 좋았다.
종대는 2학기가 되면서 조금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역시 그 여자선배가 종대를 놓아줬기 때문일 것이다. 나 휴학하고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어, 그리고 네가 잘못한 거 없어 단지 내 몸이 약할 뿐이야, 그렇게 종대에게서 떨어졌다. 너무나 쉬운 말로 그렇게. 여유로움을 찾으면서 가장 먼저 만난 건 찬열이였다. 한 여름 민석과의 이별로 많이 힘들어 한 종대에게 몇번이고 찾아왔던 찬열. 그가 잘못한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민석의 곁에 그가 미웠기 때문에 냉정하게 대했었다.
"이제 좀 괜찮냐?"
"응응, 이제 조금....... 숨 쉴만해."
"보기 좋네,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운 없었나 내가?"
"조금?..... 종대야, 형은..."
"됐어, 찬열아."
별로 듣고 싶지 않아. 웃고 있던 얼굴이 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금방 찡그려졌다. 그 정도로 둘 사이가 멀어진건가. 나한테는 좋은 일이겠지.
"아니, 들어주면 좋겠어."
종대에게 민석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게 아니다. 정확히는 민석의 이야기는 맞지만, 그의 근황이라던지 화해하라는 등의 이야기는 아니였다. 단호하게 말을 이어가는 찬열에 종대는 당황해서 그를 쳐다볼 뿐이였다.
"나 민석이형이 좋아졌어. 더 솔직히 말하면 형이 너와 사귀고 있을 때도 좋았던걸지도 몰라."
"야, 박찬열."
"변명같을지는 몰라도 형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너랑 형이 헤어지고 나서 그의 옆을 지켜주면서 깨달았어."
"......."
"이래서 네가 형을 그렇게나 좋아했구나 싶더라. 아직 ......고백은 안했지만 너만 허락한다면 조금씩 다가갈거야. 그리고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싶어."
".........찬열아."
"말해."
잠깐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애써 침착하려는 건지 아니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건지, 종대는 앞에 놓인 커피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찬열도 마른 침을 삼켰다.
"형을 잘 부탁한다."
"!!"
의외의 대답에 이번엔 찬열이 놀라서 종대를 쳐다봤다. 그건 안된다고, 자신과 친구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반대할 줄 알았던 제 친구는 지금 자신의 고백에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던 형의 이야기를, 자신이 알고 있던 형에 대해서 말해 주기 시작했다.
"겨울에도 형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 그러다가 감기를 걸린 적이 있는데, 고집스럽게 절대 약은 안먹는다? 대신 몸을 더 움직여서 땀을 뺴더라고. 이건 너도 알겠지만 형이 워낙 바른 사람이라 담배피고 욕하고 이러는거 싫어해. 이새끼 저새끼 이런건 참긴 하는데, 왠만하면 형 앞에서는 안하는 게 좋아. 아참, 넌 담배 안하지, 욕이나 줄여. 또..."
민석이 형 은근 애교가 많거든, 그 때 귀엽다고 머리는 쓰다듬지마. 난 귀여워서 쓰다듬는 건데 나랑 키차이가 얼마나 안나는데도 자기가 정말로 쪼꼬만 느낌이 든다며 하지말래. 특히 넌 키가 커서 더 안 좋아하겠다. 그리고 형은 쇼핑하는 걸 좋아해, 아이쇼핑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 쇼핑할 때 따라가기도 하고. 그런데 따라와서 자기 옷을 더 산다? 그 때 표정을 너도 봐야되는데-. 너무 진지해서 또 귀엽단 말이지. 아 또 형 술취해서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거는 별로 안 싫어하는데, 거짓말 하는건 싫어해. 이건 형뿐만이 아닌가... 어쨌든 술 많이 마셔놓고 적게 마셨다고 하거나 여자 있는 거 말 안하거나 하지말고 사실대로 다 말해. ......너도 봤으니까 알지? 뭐가 찔려서 난 그런 거짓말을 했나 몰라. 웃기지 ? 그렇게 잘 알면서 거짓말이나 하고.
종대의 입에서 민석의 이야기가 끝없이 나왔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아 없어질 때서야 이야기를 마친 종대는 찬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라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
집으로 돌아온 종대는 가방을 던져놓고 그대로 침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초가을인데도 추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어 이불 속을 파고 들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가 이렇게 엇갈리고 오해하기 시작한 그날이자 형과 1년 되던 그날. 술때문인지 살짝 열이 오른 민석과 어느 때처럼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꼭 안고 잠들었던 그밤. 그 때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면 지금처럼 혼자 누워 있지 않았을까? 오늘처럼 비참하지 않았을까?
보고싶다. 종대는 민석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아직 사랑하고 있다. 그렇게 몇번의 오해가 쌓여서 헤어질 만큼 쉬운 감정이 아니였다. 오해들로도 깰 수 없을 만큼 사랑이 더 컸다. 종대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민석도 나와 같기를 , 찬열이 고백을 해도 넌 안된다고, 아직 네 맘에도 나 김종대가 있다고 . 그렇게 말해주기를 . 헤어지던 날도 민석을 붙잡고 싶었다. 돌아서는 그를 안으며 가지말라고 잡으려고 했는데, 종대는 욕심을 부린거다. 처음 사귀던 그날처럼 형이 먼저 돌아서 다시 내게 걸어와주기를 , 자신의 품에 안겨주기를 바라며 욕심을 낸거다. 내 잘못이다. 오해를 풀지 않고 계속 쌓았던것, 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그의 믿음을 깨버린것. 다 내 잘못인데, 또 욕심이 난다.
"사랑한다, 김민석"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잠드는 날보다 많아, 겨우 잠들어도 네가 나타나서 내탓을 해. 왜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울먹여. 내 품에 안겨서 그렇게 울어. 꿈인데도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도 눈물이 나. 그러다가 잠이 깨면 아침이고 내 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젖어 있다.
나 김종대는 아직 김민석을 보낼 수 없다. 그러니까 그에게 가지마, 김민석.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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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첸민찬 단편 다 썼네요!!! ㅠㅠㅠㅠㅠㅠㅠ 하편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별 내용도 없으면서 길어지고 오래걸렸어요 ㅠㅠㅠ 2주 걸렸나요?? ㅠㅠ
생각나는 전개가 있을 때 빨리 써야지 싶어서 막 되는대로 썼습니다!!
혹시 기다려주신 분들 ,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상편에 댓글달아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
개인적으로 이 단편은 비스트분들의 '내 여자친구를 부탁해'라는 곡을 듣다가 쓴거라
이 노래도 한번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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