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종인."
머리를 쓸어넘겼다. 손을 타고 머리카락은 다시 차분히 내려앉았다.
다시 쓸어넘겼다. 나는 김종인을 부르고도 몇 번이고 머리만 만졌다. 김종인은 도무지 보채질 않았다.
김종인은 나를 따라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김종인이 먼저 룸에 들어갔고 나는 뒤이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남보다 못한 사이
"알아. 너 나 만만하게 보는 거."
"알아?"
"다가오지 마. 거기서 들어. 다시 뒤로 가."
김종인은 웃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난 너만 보면 속이 너무 답답해.
어쩌면 사람을 이렇게 증오할 수 있을까 새삼 놀랍기도 한데,
그냥 역겨워. 미칠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서."
"그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
"여전히―,"
"그래."
"아니, 역겨워."
애기 달래는 말투로 다시 "그래에." 하고 말끄트머리를 길게 늘이던 김종인이 갑자기 손을 뻗었다.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빼자 내 뒤통수를 받쳤다. 그리고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위험해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조금 틀었다.
"뭐해?"
입에 들어간 머리칼이 꽤나 길었다. 순간 차오른 수치심에 김종인의 오른쪽 어깨를 세게 밀치고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었다. 얼음도 없이 잔에 양주를 따랐다.
"다 보여."
순간 허리 밑으로 온기가 돌았다. 잔에 따른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허리에 둘러진 재킷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쇼파에 던졌다. 김종인은 웃긴 꼴로 퍼진 제 재킷을 고개 돌려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언더락 잔을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았고 김종인을 노려보았다.
"다친다. 그러다."
내 손을 가져간 김종인은 손바닥이 보이게 돌렸다. 잔이 깨지며 박힌 유리조각을 아주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피가 흘렀다.
김종인의 손가락에 내 피가 묻었다. 무서워진 나는 그가 다시 나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주먹을 그러쥐었다. 아직 손에 박혔던 유리조각이 살 속을 더욱 더 파고들었다.
"여배우 손 다 망가지겠네."
"넌 내가 망가졌음 좋겠지."
김종인은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위로 들어올렸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려면은."
"그러면 제발 좀."
"......"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안 돼?
왜 그래? 왜 자꾸 내 시야에 자꾸 알짱거리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직도 괴롭힐 게 남았어? 뭐 도로 가져가야 할 거나, 갖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야?
나 좀, 나 그냥 좀 내버려 둬, 제발!!!"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다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머리 맡에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고개를 들었다. 그는 서서히 무릎을 굽히더니 나처럼 쭈그려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눈동자에 맺힌 상이 다 보일 정도로 그는 나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종인아."
김종인은 대답도 않고 그냥 가만 앉아 담배만 연이어 피어대었다.
"나 담배 냄새 싫다고..."
고개를 돌려 흘끗 나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앞을 응시하며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그럼 가."
얄미워 팔을 툭 치자 맞은 곳을 털어내던 김종인이 내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제 교복 재킷을 앞으로 끌어 당겼다. 재킷은 온전히 나의 어깨를 다 감쌌다.
"고마워."
"다음부턴 알아서 따뜻하게 입고 다녀."
"응.."
"너는. 언제까지 춘추복만 입고 다니냐."
"마이 살쪄서 안 맞아."
"하나 더 사던가."
"싫어어. 살 빼고 입을 거야. 내 자존심."
턱을 고고하게 치켜세웠다. 김종인은 고개를 사선으로 틀었다.
김종인은 열 여덟 주제에 꼴초였다. 초등학생 때 홀로 배운 담배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지겹게도 달고 살았다.
"아쉽다."
공상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뱉은 말에 헙 놀라 입을 가렸다. 아쉽기는 뭐가 아쉬워. 전혀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가 나가 깜짝 놀랐다. 김종인은 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내 헛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다행히도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안심했다. 손등으로 턱을 괴었다. 서서히 다리에 쥐가 들었다.
"뭐가 아쉬운데."
"내가 뭐가 아쉽다고 니 눈앞에 알짱거려, 내가."
"지금 당장 나가, 그럼."
"나가?"
하, 하고 숨을 뱉던 김종인이 그대로 등을 돌렸다. 문 바로 앞에 선 김종인에게 나는 소리쳤다.
"너 그 문 열고 나간 후로, 진짜 우리, 스치지도 말자."
김종인은 문고리를 잡던 손을 내리더니 느리게 등을 돌렸다. 먼 거리서 마주한 김종인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 5년 전 내게 후회하지 않을 거냐며 묻던 김종인이 아니라, 내게 교복 재킷을 둘러주던 열 여덟의 김종인도 아니라, 서른 하나의 김종인의 눈에 나를 담고 있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김종인은 내게 긴다리로 빠르게 걸어와 내 입술을 제 입술로 포개고 혀를 넣어 유연하게 잇새와 입천장을 두드렸다. 강압적인 키스에 침이 흘렀다. 그의 방자한 혀를 깨물려고 이를 다무려하자 손으로 내 턱을 붙잡아 억지로 벌렸다. 질척거리는 침소리가 룸을 메웠다. 이윽고 그는 한 손으로 내 두 손을 등 뒤로 포박하더니 벽으로 밀쳤다. 등을 전율시키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아직 못 해본 게 너무나 많아서."
"......"
"아쉽잖아?"
"야! 윤이야..."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던 김민석이 놀라 잠시 굳어있더니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도로 문을 닫으려 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고 나서야 김민석은 다시 룸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한껏 짓고 있던 성난 얼굴을 조금 풀었다.
"종인이도, 있었네."
"오랜만."
"어, 그래. 음... 하,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윤이랑.. 그것도 같이."
"기자는 달라? 이걸로 기사 쓰게? 실명 언급은 좀 그러니 뭐, 이니셜 기사? 그것 정돈 쓸만 하겠다.
어차피 사람들 윤이가 파혼한 것도, 어디 그룹 딸인 것도 모를 거 아니야."
"에이, 그..렇게 정 없는 사람 또 아니다, 나."
"기사거리 하나 줄까? 재밌는 거 있는데."
김민석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김종인을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보더니 김종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며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럼 지금 좀 나가줘."
"어? 나 나가? 나?"
검지로 저를 가리키던 김민석이 연신 "나? 나?" 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김종인은 웃으면서
"그래, 형 너. 잠깐만 나가줘. 다시 부를게."
"어, 그래, 뭐... 연락해라?"
끄덕이던 김종인이 손을 저으며 인사했다. 김민석은 나를 흘끗보더니 살살 웃음지으며 룸을 빠져나갔다. 정적이 돌았다. 어쩐지 룸 밖의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살짝 쓰린 손바닥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김종인은 그 손을 가져가 휴지로 피를 살살 닦아내었다.
"병원 가."
"됐어. 얘기 돌아."
"가."
"됐어."
"가, 좀."
"....됐어."
"좀."
"가라고."
*
"어디 다녀와."
현관 앞엔 세훈이가 있었다. 나는 구두를 벗으며 머릴 좀 식히고 왔다고 했다. 세훈이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를 지나치는 나를 붙잡으며 끌어안았다. 내 어깨엔 오세훈의 턱이 닿았다. 오세훈은 유리가 박혔었던 내 손을 꽉 쥐어잡았다. 나는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었고, 당연히 오세훈은 눈치 채지 못했다.
"술 냄새 나, 윤이야."
"마셨어. 많이."
"왜?"
"미안해."
"괜찮아.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
모를 줄 알았는데. 오세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 손목을 잡고 거실로 끌었다.
"스트레스는 풀렸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세훈이는 가볍게 재생 테이프를 두른 내 손바닥을 쓸어내렸다.
"먼저 씻을 걸 그랬다."
씻어야 할 정도로 술 냄새가 심했던 모양이다. 오세훈은 나를 일으키며 욕실까지 인도했다.
"술보다 지독하다. 향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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