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이라는 단호한 말을 하고 기성용은 그걸로 됐다는 듯 알겠다며 빨리 집으로 오란다. 대충 알겠다고 끊어버렸다.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운데 어떻게 빨리 가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어쨌든 시간을 흘렀고, 난 집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싫었다. 그냥 다 밉다는 생각을 했다. 기성용이 구자철이라는 사람에게 그렇게 확인 전화를 해서 내가 쑨양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그와 웃으면서 지낼지도 모르고...
" 무슨 생각하는거야, 나 지금.. "
그냥 원룸 건물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아 이러고 있다가 또 전화 올텐데, 기성용한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진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이번엔 받지 않았다.
엄청 닥달하겠지, 전화 받으라고.
근데 기성용 얼굴을 너무 보기 싫었다. 그가 그렇게도 미웠다. 날 위해서 한 짓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 여기서 뭐해, 등신아. "
기성용 목소리였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날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있다.
아..하하.. 왔어?..
" 뭐하냐고. "
앉아있는거 보면 모르냐? 하면서 괜히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고.
사실 여기 짜져있는걸 들킨 이상 실패한거긴 하지만.
" 에휴.. "
괜히 녀석이 내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부끄러워졌다.
" ...ㅇ..왜... "
" 됐고, 빨리 일어나. 다 커서 덩치도 큰 새끼가 여기 쪼끄맣게 쪼그려 앉아서 뭐하냐? "
' 일어나라고. ' 하면서 내 옷 뒷자락을 쭉 잡아 이끈다. ' 아, 하지마. 내가 내 발로 간다고!! ' 넘어질거 같아서 바둥바둥 거렸는데 이 놈이 내 발버둥에 그만 중심을 잃었는지 내 쪽으로 기우뚱한다.
" 으아악!! "
" 악!!! "
결국 우리 둘이 뒤엉켜서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아, 진짜 아파.
" 아, 하지말랬잖아, 이 거지같은 놈아.. "
" 아.. 너 또 청승맞게 축축 쳐져있을거 다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빙신아! "
누가 청승 맞았다고..
" 뭐라고 했어. "
" 뭐, 누가 청승 맞았냐고. "
" 아니 그거 말고 병신아.. 아 진짜 너 병신이냐; "
왜 자꾸 병신 병신 거려, 개새꺄! 버럭 화 내자 녀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아 알겠다고- 한다.
" 근데 뭐가. "
" 쑨양한테 뭐라고 했냐고. "
아. 잠시나마 잊고 있었는데 생각나 버렸다.
순간 멍해졌다. 쑨양의 그 얼굴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 죄송해요. ', ' 미안해요, ', ' 가지고 놀았어요. ', ' 저는 들을 말도, 할 말도 없네요, '. 그의 모진 말 들이 다시 내 귀에 칼이 되어 박힌다. 오만 생각을 다 하는 듯한 그 표정과, 내가 처음 눈물을 보였을때 그의 당황한 듯한 표정과 말투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기성용과 겹쳐보였다.
다시 눈물이 고였다. 기성용은 이럴줄 알았다는 듯 에휴-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아이고, 하느님.. 이 등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
쑨양은 거하게 취했다. 한국 술은 도수가 약하다며 왠만한 주당 저리가라 할 정도로 술을 잘 마시는 쑨양이었다. 보다 못한 구자철이 뜯어 말리었으나, 쑨양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 그냥... 아 그냥.. 그때 네 말을 듣지 않는건데.. "
쑨양은 테이블에 머리를 쿵 박았다.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과 어지러움 때문이었다. 구자철은 ' 야, 쑨양. 알겠어. 그만 해. 바이크는 없던 걸로 하자. 왜 그러냐, 진짜. ' 하며 쑨양을 일으켰다. ' 뭐야, 뭐하는 거야 ' 하면서 자신을 잡고 있는 구자철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 너 이러다가 여기다 토할거 같아서 그래. 화장실 가자. ' 쑨양은 윗 속에서의 불협화음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비틀거리며 구자철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다. 쑨양의 큰 키에 비해 한국에선 좀 크다 하는 구자철도 쑨양을 옮기기에는 휘청휘청 할 정도였다.
구자철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겨우 술집 내에 있는 화장실에 도착했다. 쑨양은 화장실에 도착 하자마자 거칠게 화장실 칸막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에 엎드려 모든 것을 게워냈다. 자신의 위에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이 이질감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러면서 쑨양은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 태환과의 기억도 같이 게워내고 싶다고.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그와의 기억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술을 마셔도 이 망할 기억이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구자철이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등을 두들겨준다. ' 에휴, 요즘 네 별별 꼴을 다 본다. '.
쑨양의 위가 더 이상 게워낼게 없는 듯 구토를 멈추었다.
" ..... 니가 말했지. "
" 음? 뭐를? "
태환이 그랬어. 자기 친구의 친구가 내가 접근 한 이유를 알려줬다고. 근데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이 너랑 나밖에 없잖아. 그 클럽 잔챙이들은 어디가서 말 할 애들도 아니고.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쑨양의 말에 구자철은 머리를 휙휙 굴렸다.
" ..그 친구가 누군데? "
" 미스터 드ㄹ.. 아니, 기성용이었던가. "
구자철은 머리에 돌을 맞은 듯 멍했다. 아. 사고쳤구나.
" ...쑨양아. "
" 됐어, 이미 끝난 일이야. "
구자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거면 무섭게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괜히 쫄았네. 하고 생각하고있던 참이었다.
" 나도 참 이상하지. "
" 으응? 뭐가, 뭐가. "
"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렇게 끌릴 수 있을까. "
" 뭔 소리야, 또. "
" ... 내가 어제 걔랑 키스를 했거든? "
근데, 진짜 가슴이 떨렸어.. 진짜 기분이 쩔었다니까. 난 그게 내가 술이 취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닌거 같다.
이런 낯 간지러운 말을 마구 뱉어내는 쑨양을 처음 보는 구자철로써는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말을 뱉어내는 로맨틱가이가 아니었다, 쑨양은. 항상 얼마전에 같이 잤었던 여자는 뭐가 어땠네, 요즘 클럽에 물이 안 좋네, 하면서 양아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제안으로 사람이 이렇게 변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자철은 그런 쑨양을 지켜보는게 뭔가 더 재미있어졌다.
" 그러면 더 들이대면 되잖아. 그러지 않겠다고 그러면 되잖아. "
" ..아니, 실망했을거야. "
내가 미안하다고, 사실이라고 하니까 진짜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거든.
정말 죽고 싶다는 표정이었거든.
그 눈물이 나한테 모든 걸 보여주고 말해줘서 도저히 거짓말조차도 할 수 없었거든.
.... 그 덕분에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잖아.
쑨양은 피식하고 바람 빠진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구자철은 이제와서 ' 이 새끼가 술김에 이런 얘기를 하는건가, 아니면 진심인건가? ' 하면서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쑨양은 그런 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화장실 바닥에서 쓰러지듯 누워 작게 발버둥쳤다.
" 잊을 순 없을까, 차라리. "
" 또 무슨 헛소리야? "
" 그냥, 차라리 잊고싶다. "
하다가 다시 실소를 터뜨린다.
" 아아. 그건 불가능 하겠네. 벌써 이만큼이나 발을 들여버렸으니까. "
진짜 미치겠네, 하면서 그는 눈을 감고 팔목을 눈에 올렸다. 술에 취에서 감수성이 더 풍부해지나?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하며 웃었다.
애초에 그냥 단순히 엿먹이려고 시작한 이 내기에서 점점 진지해지는 쑨양을 보며 구자철은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때 내 속을 긁었냐고요, 하면서 은근슬쩍 쑨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 에휴, 좀 괜찮아질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쑨양. "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쑨양을 보고 구자철도 화장실 바닥에 앉았다.
" 미안하다. "
진심을 담은 구자철의 사과에
" 미안하면 나 좀 살려줘. "
라고 엄살피우는 쑨양이었다.
+
음, 밤이 늦었네요.
이제 내일이면 다들 개학 하겠죠?ㅎㅎ
이제 지옥이 시작됩니다 ㅠㅠㅠ
공부하랴 소설쓰랴 힘드네요~
ㅎㅎ
다음편도 역시 밤에나 올라올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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