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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양은 혼란스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말았다. 원래는 아니라고. 거짓말일거라고. 나는 정말 태환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틀어져버렸다. 울고 있는 태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끝까지 모진 말을 하고야 말았다. 죄송하다는 말. 끝까지 태환이 바라는 ' 아니예요. ' 라는 말이 아니라 사과의 말과 인정의 말이 뒤엉켜버린 어차피 태환에겐 독이 될 말을 해버렸다. 쑨양은 빠르게 그 식당을 빠져나와 뛰다싶이 차로 가서 운전석에 뛰어들듯 올라탔다. 태환은 아직도 식당 안에 있는 듯 했다. 쑨양은 괜히 화가났다. 주먹을 쥐고 핸들을 쾅쾅 내리쳤다. 하지만 분노는 사그라들지 못했다. 쑨양은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털었다.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 다 따놓은 바이크가.. '...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금 바이크 때문에 이러는걸까 아니면 박태환때문에 이러는걸까 하고. 쑨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깟 한국 남자 때문에 내가 이런다고? 그럴리가!..
그럴리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다 진심이었다. 그때 그 키스도 원래 의도한게 아니었다. 쑨양은 태환에게 자석에 끌리듯이 키스한것이었다.
" 하아. "
구자철에게 전화했다. 통화 연결음이 얼마 안가 끊어지고 구자철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어, 쑨양! 왠일? 클럽도 안오고. "
" You win. I failed. " ( 니가 이겼어. 나 실패했어. )
- " What? What's wrong? " ( 뭐? 뭔일이야? )
" ... He already got it. " ( 그가 이미 알고있었어. )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 " .. Are you crying? "
" No, I'm not. I.. I just disappointed with me. " ( 아니, 안 울어. 그낭.. 그냥 좀 실망해서. )
- " What for? " ( 왜? )
그러게. 왜일까. 쑨양은 더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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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하기를 바랐는데.. 1%의 작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엄청 많이 생각했겠지..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을테니까. 내가 갑자기 이렇게 눈물을 보일줄도, 이런 말을 할줄도 몰랐을테니. 지금쯤 쑨양은 어떨까. 나처럼 울고있을까? 구자철이라는 사람한테 화를 냈을까? 니가 말했냐면서.. 아니면 바이크를 잃었다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을까?..
내가 20년을 살면서 흘린 눈물보다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들의 양이 더 많을 거다. 고작 3일이었다, 쑨양을 안건. 근데 뭐 그리 추억이 많고 좋아했다고 이렇게 울 수가 있을까. 사람들도 날 쳐다보고 수근댄다. 다 큰 남자가 앉아서 청승맞게 뭐하는거냐는 눈빛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별로 신경쓰이진 않았다.
진동이 울렸다. 가슴이 두근댔다. 쑨양일까? 하는 마음에 액정을 보지만 눈물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소매로 눈을 벅벅 닦고 보지만 다시 눈물이 차 보기 힘들었다.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두 볼로 눈물이 흘렀다. 액정을 보니 기성용의 문자다. ' 잘 했어? '. 뭘 잘 했냐는 걸까? 잘 차였냐는 걸까, 잘 찼냐는 걸까?
문자 할 요금도 없고 자판도 못 치는 상태라 그냥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었다. 집에 가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를 빠져나오는데 괜히 또 주위를 살피며 혹시 그가 있을지 두리번 거렸으나 없었다. 괜히 또 가슴만 아팠다. 삐걱대는듯 한 두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내키진 않지만 집으로 항했다.
기성용 앞에서 울게 뻔해. 또 여자같다고 놀리겠지. 왜 우냐고 화내겠지. 바보라고, 병신이라고 욕하겠지. 난 그냥 질질 짜고있겠지.
정처없이 걷는 것도 처음이다. 역이라서 사람이 많다. 내 어깨에 누가 부딪히든 신경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울며 미친듯이 걷는 날 보고 진짜 미친사람 아니냐며 수근댄다. 맞아요, 미친 사람. 맞아요. 미쳤어요.
[ 박태환, 오고있어? ]
또 기성용 문자다. 또 그냥 씹고 가려는데 이젠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받아버렸다.
- " 왜 답장 안해. "
" ...요금 없잖아, 나. "
아 맞다, 하며 웃는 기성용. 좋겠다, 넌 웃을 수도 있어서.
- " 오고있는거지? "
" 응. "
- " 잘 말했어? "
또 목소리가 떨릴거같다. 한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 응. 이제 끝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