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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알아왔다. 그 12년 동안 그는 언제나 내 친구였고, 이 정도의 사이가 되는 데 12년이 걸렸다. 어쩌면 괜히 내가 소유욕에 찌든 걸 수도 있다. 박태환이 좋다면 나도 좋았고, 박태환이 싫다면 나도 싫었다. 어렸을 때 부터 성격이 더러웠던 나의 곁에 있어 준 그였기에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다. 심지어 걸음 보폭까지도..
내가 박태환과 쑨양의 사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게이라거나, 박태환이 불알친구 그 이상으로 보인다는 것도 아니다..
처음엔 이게 친구로서의 도리인줄 알았다.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남자 하나때문에 나와 태환이는 너무 많이도 변해버렸다. 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12년 동안 내 곁에 있던 태환은 가져가려는 것 처럼 느꼈던걸까, 쑨양에게.
박태환 우는 모습을 12년동안 본 적이 없었다. 진짜 거짓말 안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리도 쉽게 그를 울려버리는 쑨양이 미웠다.
박태환이 좋아겠다는 데 굳이 내가 말릴 필요는 없었지만, 괜히 저 중국 놈은 되고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심지어 난 12년 동안 그의 곁에서 지냈는데, 쑨양은 단 몇시간, 몇 일로 박태환을 무너뜨렸다. 무너진 박태환은 처참했다. 생전 잘 안마시는 술까지 마셨고,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괜히 그런 모습에 내가 더 악마같이 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태환은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르겠지.
그는 아마 그냥 내가 쑨양이 싫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다. 쑨양이 그냥 싫어허 이러는 게 아니라고 해명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요새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 나도 힘들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그를 보며 나도 힘들었다. 요 근래 제대로 먹은 게 아마 없을거다.
날아가려는 나비를 손으로 쥐고 있으면 공허한 날갯짓을 하며 죽어가듯, 박태환도 내 손 안에서 발버둥치며 죽어간다.
그를 이제 그만 놔주고 싶지만
이미 너무 오래 잡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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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오자마자 녀석이 한 일은 내 옷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방에 들어가보니 녀석이 쑨양의 옷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 뭐 하는거야, 기성용!! "
녀석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창문을 닫고 잠가버린다. 그리고 날 쳐다보면서 말한다.
" 내가 이걸 못본 줄 알았어? "
" ..... "
" 진작에 버렸어야 했는데.. "
" 너.. 진짜 나한테 왜그래? "
" 너야말로. 너야말로 나한테 왜이러는데? "
그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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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한테 전화나 좀 해볼까? 허리는 괜찮을라나 모르겠네-
통화 연결음이 들린지 얼마 안되어서 녀석이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 " 어, 왜? "
" 바빠? "
- " 아니, 운전 중. "
" 아.. 그래? 끊을까? "
- " 아니, 괜찮아. 왜 전화했어? "
" 나 이제 중국가! "
- " 엥? 다음 주 월요일 아니었냐? "
" 그랬었는데, 그냥 중국으로 빨리 가고싶어졌어. "
- " 아, 왠지 알겠다. "
녀석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웃는다. 녀석에게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니가 뭘 아는데- 하면서 모르는 척 했다. 구자철이 보기와 다르게 눈치가 있어서 이럴때마다 괜히 나체로 벌거벗긴듯한 느낌을 받는다. 음, 부끄럽다고 해야하나.
- " 너 그때 그 박 모씨 때문이잖아. "
" 박태환. "
- " 그래, 그 사람. "
" 휴.. 그래, 맞아.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거지? "
- " 물론이지- "
녀석이 낄낄 거리며 웃는데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지금 누구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아주 웃음이 나오지 너는? 너때문에 내가 죽어난다! 하고 말하자, 나더러 인생 참 힘들게 산단다. 그냥 미안하다고 지금은 진짜 사랑한다고 말하란다. 난 뭐 그러기 싫은 줄 아냐?
- " 왜 그 말을 못하는건데? 꼴에 자존심이냐? "
" 아니, 그런건 아니고.. "
- " 아니면 뭔데- 상대가 남자라 그런거야? "
그런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상관 없었어! 하고 빽 소리를 지르자 녀석이 왜 또 화를 내냐며 허허 웃는다.
- " 그럼 왜 말을 안하는데? "
" ... 어차피 난 중국에 다시 가야되고... "
- " 그걸 말이라고 하냐, 오랑캐같은 새끼야? "
오랑캐? 그건 또 무슨 말? 하고 묻자 녀석은 무시 한 채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 " 야, 니가 진짜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그러면 안되는 거다. "
뭔가 맞는 말이긴 한데 뭐랄까, 고개를 들기 힘들어지는.. 얼굴 붉어질 것만 같은 말을 한다..
- " 너 그 사람 좋아해? "
" 아.. 당연하지. "
- " 끝났네. "
그의 말을 들으니 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중국에 있어도 과연 태환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 " 아, 쑨양. 지금 경찰들 단속한다. 일단 끊을게. "
"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
뚝 끊긴 전화. 핸드폰 액정만을 유심히 들여다 보다가 그냥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아직도 어떤게 답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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