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순영
망자
내리누르는듯 답답한 분위기와 ,언제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향 냄새, 그리고 새하얀 꽃잎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너.
정말 이 자리에서만은 안울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필 왜 또 저렇게 밝게 웃고있는 건데?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런거지
"나쁜놈아... 그래 거기는 좋냐? 편해?....응?... 평생 같이 있자고 말했던게 누군데..."
"칠봉아 ... 칠봉아 이제 그만? 응? 니가 이러는거 보면 순영이도 마음 불편할 거야"
"몰라... 난 몰라. 그러게 내가 괜찮으니까 데리러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사람말을 안들어서... 아..."
목이 메여서 말이 더 이상 나오지가 않았다. 시선이 여러곳에서 꽂히는 것도 잊은채 무너져 내려 버렸다.
비 오는 날. 괜찮다고 가까우니까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청개구리마냥 굳이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던 너.
건널목을 지나갈 때 신호도 무시한 채 난폭운전을 하던 트럭이 지나간 건 한 순간이었고
20살, 그렇게 빛나고 찬란할 나이에 그는 나를 두고 먼 곳으로 떠나가 버렸다.
그가 떠난 날 이후로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다.
그가 나오는 꿈을 꾸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그런 꿈을 꾼 날은 깨어나서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채 베개맡에 고개를 뭍고는 펑펑 울고는 했다.
자다가도 으슬으슬한 찬 기운에 잠을 설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 됐을 때
그가 찾아왔다.
"칠봉아 문 열어줘...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우리 아가씨~ "
보일러가 고장이라도 나버린건지 방 안에 있는데도 숨 쉴 때마다 입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잠이 깻다.
밖에 나가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더 이상 들을 수 있을리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잠이 덜 깬건가? 이렇게 추운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건 아닌거 같은데
"야! 칠봉아 나 얼어죽겠다 빨리 열어줘~"
머리맡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랐는데,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활짝 문을 열어버렸다.
그일리가 없는데. 이게 꿈인건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문을 열자 지금까지 느껴본 적도 없던 냉기가 훅하고 끼쳐왔다.
뼛속까지 에일 것 같은 차가움에 몸서리를 쳤다.
"아으... 추워"
"이제 일어나?"
"... 순영아?... 응... 너... 너"
"왜 못 본 사이에 애가 벙어리가 됐어~ "
"아... 니가 어떻게 여기 있어"
떨어지지 않던 입을 움직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두 눈에서 미친듯이 흘러내렸다.
"울지 말고... 야 오랜만에 보는데 애가 왜 이렇게 울어.. 니가 자꾸 이러면 내 마음이 아프다. 그만 뚝! 응? "
"그 동안은 왜... 나 보러 안왔어 내가 얼마나..."
"니가 그 동안은 문을 안 열어주는데 어떡해. 이 잠탱아... 맨날 어? 깨우려고해도 잠만 퍼질러자고.
와~ 너 깨우느라 나 진짜 힘들었다. 근데 내가 누구냐? 불굴의 사나이 아니냐! 너같은 곰탱이도 깨운걸 보면 역시 사나이는 근성이야 근성"
"야 이 나쁜놈아... 이렇게 올 수 있으면서 왜... 이제야 왔어"
"나라고 이렇게 쉽게 쉽게 오갈 수 있는게 아냐~ 당연히 중요한 약속 지키러 온거지"
갑자기 별안듯이 웃음기를 거둔 그가 손을 내밀어 왔다.
"지키러 왔어 약속, 평생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하자는..."
그가 내민 손을 잡으려다가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끼쳐버리는 바람에 멈춰서고 말았다.
"데리러 왔어, 같이 가자"
순간 그와의 재회로 잊고 있었던 것들이 스쳐가듯 떠올랐다. 나는 그가 창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집은 아파트 14층이다
2. 최한솔
과외학생
"한솔아? 무슨 생각해"
"아.... "
요즘따라 거의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녀석.
또 내 쪽을 보며 멍을 잔뜩 때리고 있던 한솔이는, 내가 크게 두어 번이나 얘기할 때까지 들리지도 않는듯 시선에 미동이 없었다.
아마 내가 한 얘기는 저 녀석의 한 쪽 귀에 들어가서는 곧장 반대쪽 귀로 나가버렸겠지. 괘씸해라
"너 안답게 왜 그래... 선생님 걱정된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일은요 무슨"
"정말 별 일 없는거지?"
"네"
"그럼 됐고... 근데 요즘 네 얘기 들어보니까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거 같은데"
"...."
성적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얼굴을 굳히는 한솔이때문에 결국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나머지 수업시간에는 그냥 저냥 고민 상담식으로 떠봤는데도 영... 실적이 없다.
아주 철벽이 끝내주는데? 최한솔. 겨우 고딩이면서 뭘 그리 숨기는지. 어짜피 나 같은 사람한테는 그냥 털어놓아도 좋을련만
나이대로 보면 역시 연애 그런거 관련이겠지. 근데 저렇게 심각한걸 보면....
"짝사랑인가..."
"뭐? 니가 과외하는 고딩?"
"엉... 짜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말이야"
"오 그래도 그 고딩 , 자기 스승보다 나은 제자네 그 나이에 연애도 하고"
"...먹던 밥이나 마저 먹어라?"
내가 오죽 걱정이 됐으면 학식먹다가도 생각이 나서 동기한테 말하겠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정말 참스승이 따로없는 것 같다.
아마 최한솔의 담임선생도 부모님도 모르는 건을 내가 걱정해주는 거겠지. 사춘기 소년의 고민이라- 괜히 웃음이 나왔다
'풋풋하네 짜식'
그래도 걱정되니까 연애 상담도 해줄 겸 내일은 좀 일찍 가봐야지
"어머 선생님 오늘은 일찍오셨네요?"
"네~ 한솔이한테 미리 말해주는 건 잊었는데. 어짜피 이쯤이면 들어왔겠다 싶어서... 한솔이 지금 방에 있나요?"
"어머 근데 한솔이가 원래 이 쯤에는 와있을 시간이긴 한데... 오늘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때문에 조금 늦는다네요
들어가서 기다리고 계시면 다과라도 내드릴게요"
상냥한 어머님 덕분에 녀석도 없는 방에 조심히 들어갔다. 나 혼자 여기 있어보게 된 건 처음인데
꽤 몇 번 왔다 갔다 했던 곳인데도,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남자애 방치고는 모든 물건이 정갈하고 제자리에 놓여서 정돈되어 있었다.
그 흔한 걸그룹 포스터도 안 붙어있는 남고생의 방이라니...
조심스럽게 방을 살펴보다가 책상 위에 홀로 놓여져 있는 회색 공책에 시선이 닿았다.
넓은 책상에서 그 부근만 유일하게 지우개 조각들로 어지럽혀 있는 것으로 봐선 어제까지 쓰기라도 했던 것 같다.
'뭐야 얘는 남고생이.. 일기라도 쓰는건가?'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궁금증을 참기가 힘들었다.
한참 집으로 귀가하는 중일 한솔이에게 작게 양해를 구하고 공책의 첫장을 펼쳤다.
"뭐야 아무 것도 없네?"
시시한 마음에 글자가 나올 때까지 뒤로 넘겼더니 몇 장 뒤에 흘려 쓴듯한 글씨가 보여 멈췄다.
'네 이름을 지우려고 노력할 수록 네가 머릿속에 가득 찬다는 걸 알까?'
"짜식... 역시 고딩이 건방지게 말야 벌써부터 짝사랑이나 하고"
예상했던 것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녀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살짝 쳐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너무 속이 보이니까 귀엽잖아
상대는 역시 같은 반 여학우나 선배일라나?... 아니면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김칠봉 '
그러나 다음장을 넘기자마자 공책 양 면을 가득 채운 내 이름에 깜짝 놀라서 공책을 떨어뜨릴 뻔 했다.
갈겨 써내려 간 듯한 글씨를 홀린 듯 쳐다보다가 믿기지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건 내 이름 맞는데
김칠봉이 나 말고도 또 있나?...
이런 충격적인 광경덕분에 집에 들어온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조차 못들어 버리고 말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죄 지은 사람마냥 공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려고 했지만.. 늦어버린것 같다.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방으로 들아온 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나와 공책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을 꺼낸다.
"봤어?"
"...."
"뭘 그렇게 놀래. 죄 지은 사람마냥"
"한솔아"
"왜? 몇 살이나 어린 애가 좋아한다니까 우스워?"
"그런게 아니라"
"나한테 물어봤었지. 왜 그렇게 집중을 못하고 딴 생각 하는거 같냐고"
"그래 너 때문이야"
"..."
"너 때문에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못자. 눈을 감아도 꿈에 네가 나오고
여자애들이 팔짱을 껴도 너로 보여
이런 것도 그냥 어린애의 치기라고 생각한다면... 네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해"
매몰차게 말하지만 입으로는 그런 말을 뱉으면서도 계속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보였다.
작가의 말 |
제가 원래 여기 제목에 完까지 붙여놨었거든요?... 진짜 끝낼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끝을 내지 못하니ㅠㅠ 아니 왜 하...ㅎㅎㅋㅎㅋㅎㅋㅎㅋ.... 왜 이걸 시작을 해놔서 끝을 못보는지 핳.....하ㅏㅎ.... 이제 이걸로 네 명 남았군요... 최대한 빨리 쓰도록 하갰읍니다... 이거 끝나면 시대물 써보고 싶다고 생각도 하긴 했었는데 일단 마무리를 지어야 할 거 같아서 ㅋㅋㅋㅋ 이 시리즈 마무리 지으면 신라 시대로 떼거지 화랑물을 쓰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답니다 근데 이거 빨리 끝낼 수 있을라나^^... 이러다 종강이 먼저 올 것 같네요 ㅎㅎㅎㅎ 근데 이상한게 저는 현실도피인지 시험기간만 되면 글을 써요... 좋은 현실도피다... 아무튼 시험기간이신 독자님들도 모두모두 시험 잘치세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