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w.기분이나쁠땐 "여자친구한테 선물 하시려나봐요? 어쩜 어쩜.. 이렇게 자상한 남자친구가 어디있을까.. 여자친구분이 정말로 좋아하시겠어요! 에휴 부럽다.." "아..네.. 저기 죄송한데 빨리 담아주시겠어요..?" "에구!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자 여기요! 잘가요!" 문구점 아주머니께서 주신 까만 비닐봉투 안에 가득히 들어있는 분홍색 털뭉치들. 무려 5개로 가격은 2만원이 훌쩍 넘었다. 2만원이란 돈이 결코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이걸 고르고 이걸로 목도리를 만들어서 너에게 둘러주는 상상을 하니 마치 200만원도 넘는 물건을 사서 선물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9월 말. 예쁘게 꽈배기뜨기로 해서 완성을 한다면 아마 11월 달 쯤 되겠지. 어려서부터 손재주라고는 영 꽝이였다. 중학생때 학교에서 했던 바느질 수행평가는 반에서 언제나 꼴등이였고 납땜 역시도 꼴등은 아니였지만 그다지 좋은 점수를 남기지 못하고 마무리 지어야했다. 그런 내가 나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아닌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문구점은 번화가에서도 제일 넓고 좋다고 소문난 그런 문구점으로 다녀오는 길이여서 그런지 우리집과의 거리가 꽤 되었다. 다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의 번화가란 커플 천국이였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여길 둘러봐도 저길 둘러봐도 보이는 커플들의 애정행각이란.. 차마 봐주기 힘들었다. 특히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는 저 여자... 사실은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루한과 나는 이런 곳에서 당당히 팔짱끼며 다정하게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이 깊어질 즈음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에 겨우 생각을 떨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잡생각 떨쳐버리고 오로지 거리의 풍경만 보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도 역시 창밖의 풍경에 매달리며 서둘러 실뭉치를 뜯어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리속에 담아두었다. 집으로 가기 두 정거장 전. 신호에 걸린 버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남녀의 진한 입맞춤. 그리고 익숙한 남자. 왜일까... 난 더이상 보면 안될 것만 같아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창밖을 볼 수 없는 자리로. 그대로 주욱 아무 생각없이 두정거장을 거쳐 집으로왔다. 머릿속엔 여전히 아까보았던 그 장면을 담아놓은 채.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닐 봉지를 뒤집어 분홍 실뭉치들을 꺼냈다. 5개의 보들보들한 실뭉치들이 왜이리 많아보이는 지. 분명 아까 살때까지만 해도 이정도야..하면서 10월 말쯤되면 거의 다 완성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왜 깨버리는 지. 서둘러 대바늘에 코를 꿰었다. 머릿속엔 아까의 그 장면이 떠올랐지만 손이 약간씩 떨리지만 시야가 뿌옇지만 혼란스럽지만 그렇지만 완성할 것이다. 완성하고선 줄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그 여자 누구야. 루한. 너 주려고 만들었어. 이거 목에 걸고 그 여자 만나서 정리해. 어렵게 시작했잖아..? 설마 끝내려하는 건 아니지..? 어렵게 시작한 만큼 끝내는 것 또한 어려워. 니가 쉽게 끝낸다한들 내가 어렵게 끝낼꺼야. 루한. 빨리 목에 걸어. 걸고서 나랑 같이 그 여자한테 가자. 내가 막장드라마에서 바람피다걸린 남편의 아내처럼 그 여자 뺨을 때릴게.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정리할게. 알았지? 빨리 이거 목에 걸어. 도망갈 생각 하지마. 끝낼 생각도 하지마. 알았어?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대사. 머릿속에 짜여진다. 두달만 기다려 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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