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부부
4
Side M
그 한 번의 일이 벌어지고 난 뒤로는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절로 관심이 끊겼다. ‘여자’와 ‘여배우’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공간 어디에도 여자로 하여금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꼭 이름과의 틀어진 사이가 이유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컸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사이에 있던 사람의 뒤통수를 자신의 힘으로 뻔뻔하게도 후려쳤다는 것이 못 견딜 정도로 죄스러웠다.
식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평탄했다. 삼 년 간의 달콤한 연애 끝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었고, 연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감정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었다. 매일 아침 부엌으로 나가면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이름이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뒤에서 꼭 감싸안으면 아내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웃곤 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한 축복을 받았고, 두 사람의 공통된 바람은 이 결혼으로써 발목에 묶여 있던 연예인, 알려진 사람이라는 족쇄를 느슨하게 하고 조금이나마 평범한 사람들과 가까운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연애 역시 평범했기 때문에 부부가 된다면 더욱 평범하고 예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빠른 시간 안에 평범함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름이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식을 올린 지 일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이름과 이름이의 기획사 대표의 스캔들이 만들어졌다. 행복한 봄날의 신부였던 이름이는 어느새 문란한 생활 속에서 가정이 있는 기획사 대표를 건드린 후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서둘러 젊은 프로듀서와 결혼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얼토당토 않은 말이었다. 이름을 지켜본 시간만 해도 5년이었다. 열아홉 살의 이름을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소문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느낄 수 없었다. 이름이의 귀를 막아 주려 했다. 그러나 무슨 심보인지 스캔들을 부정하지 않는 기획사 대표 덕에 일은 커져만 갔다.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된 이름이는 컵을 들고 있던 손을 덜덜 떨었다. 소문은 짧다. 그러나 그 규모는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쓰나미처럼 덮쳐 오는 소문 속에서 윤기는 이름이의 손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나, 더럽대. 이름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윤기가 눈을 치켜떴다. 뭐가 더러워, 어디가. 정신 차려. 말도 안 되는 말인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윤기가 이름이의 볼을 손으로 감싸 초점 없이 흔들리는 이름이의 시선을 잡아 주었다. 스물네 살의 어린 아내는 사람들이 판 함정에 들어서 발버둥 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윤기는 손을 뻗어 이름을 낚아채 구멍 속에 들인 발을 꺼내게 했다. 아내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쌓이고 쌓여 갔고, 이름이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집 안에 틀어박혀 윤기의 보살핌을 받을 뿐이었다. 정신줄을 겨우 붙잡고 있는 이름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그녀에게 함부로 무슨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운전해 봐도 돼요?”
실로 오랜만에 그녀가 꺼낸 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회사와 집을 번갈아 들락거려야 해 흰 와이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잠구고 있던 윤기가 고개를 들어 이름을 바라봤다. 천진한 얼굴로 장화 신은 고양이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름에 웃으며 차 키를 건네 주었다. 조심해서 운전해. 면허 딴 지도 좀 됐잖아. 가까운 데만 돌아다니다가 바로 집으로 와야 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기분 좋게 웃는 이름이의 얼굴에 약간의 희망이 보여 마음이 들떴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털고 일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자에 앉아 데이터를 살피고 있었다. 작업실에 비해 지나치게 햇살이 잘 들어오는 환경에 오히려 몸이 나른해졌다. 자꾸만 감기는 눈에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잠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나 딱히 잠은 오지 않아 눈을 비비며 제 뺨을 때렸다. 허벅지도 꼬집어 보며 해이해진 정신을 잡으려 애를 썼다. 그러다가 동떨어진 세상 소식이라도 확인하려 인터넷 창을 열었다. 펼쳐진 초록색 포털 사이트는 단조롭기만 했다. 눈을 사로잡은 실시간검색어를 제외하고는.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검색어를 차지하고 있는 이름이의 이름에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클릭했다. 신문사마다 뉴스는 가득했다. ‘성이름, 교통사고… 응급실行’ ‘성이름, 교통사고로 현재 의식불명’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기사 제목에 마우스를 갖다대지 못했다. 눈을 깜빡였다.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의 이름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맨 몸으로 달려가 이름이의 차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서 차에 치이고 싶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은 더디고 또 더뎠다. 병원 프론트 데스크로 달려가니 간호사가 윤기를 이름이의 수술실 앞으로 안내해 주었다. 차는 심하게 찌그러졌다고 한다. 차라리 의식 불명 상태에서라도 멈춘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눈물이 고였다. 제 허벅지를 세게 때렸다.
* * *
보이그룹 데뷔조를 짜 놓았다. 연습생들에게는 녹음 작업 때가 아니라면 딱히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알아서 잘들 하겠거니. 데뷔가 임박한 상태에서 많은 화제를 모아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단다. 윤기는 소식을 듣고도 작업실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정말, 알아서 잘들 하겠거니. 그러던 중에 석진이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김태형이라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눈이 조금 뜨였다. 정말로 관계자들이 떠드는 말대로 토크쇼 이후에도 이름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정국에게 물어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몇 년 간 꾸준히 이름이의 곁을 지켜온 정국으로서는 다른 여자와 놀아난 이름이의 남편을 극도로 혐오해 마지않을 것이라는 것을 대충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직접 지켜보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촬영 준비에 한창인 연습실로 내려갔다. 카메라가 설치되는 동안 태형이 그룹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친화력 좋기로 소문난 인물답게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반겼다. 윤기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구석에 서 있는 윤기를 발견한 태형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맑은 웃음을 찾고 그에게로 다가와 악수를 정했다. 윤기가 헛웃음을 터뜨리려다 말았다. 토크쇼 녹화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언가 기세등등해진 그 개구진 미소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꼭 무얼 알고 있다는 듯이, 제가 무얼 더 가졌다는 듯이,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손을 뻗어 태형의 악수를 받았다. 시선이 태형의 얼굴에서 그 아래로 내려갔다. 연분홍색 목도리와 아이보리색 떡볶이 코트가 잘 어울렸다. 혹시나 했던 게 눈 앞에 기정사실로 다가오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윤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목도리 예쁘네요.
“친한 지인한테 생일 선물로 받았어요.”
“많이 친한 사인가 봐요. 그럼 생일이?”
“12월 30일이요.”
윤기는 입을 닫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태형이 그럼, 하고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괜한 놈이 끼어들어 속을 긁는다. 나풀거리며 날아갈 듯 돌아다니는 태형을 눈으로 쫓았다. 나이도, 같다고. 27살. 곱씹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괜히 입안이 씁쓸했다. 잘 어울리네, 목도리. 오히려 나보다도 훨씬. 입안이 썼지만 더 쓴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이름이의 서랍장을 열었다. 옷장을 뒤져도 연분홍색 목도리는 없었다. 그제야 실감했다. 눈에 익지도 않은 그 놈에게 둘만의 추억을 뺏긴 기분이었다. 이름이 윤기가 버린 물건을 주워다 건네 주었건, 태형이 목도리를 강탈해 갔건, 허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윤기가 제 서랍장 쪽으로 걸어가 맨 윗 서랍을 열었다. 서랍 맨 안쪽에는 다 해진 육 년 전의 연분홍색 목도리가 놓여 있었다. 이름이 건네 주었던, 이제는 때가 탄 그 목도리가 고이 접혀 있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목도리를 손으로 꽉 쥐었다가 다시 힘을 풀었다. 처참했다. 크리스마스날 백화점에 들러 이름과의 기억이 떠올라 사 온 연분홍색 목도리를 이름이 이제는 그 추억을 다른 누군가에게 냉큼 던져 줘 버렸다는 게 비참했다. 배낭을 꺼내 옷가지를 챙겼다. 당분간은 작업실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이름과 마주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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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시점 ㄴㄴ 오늘은 윤기에 초점을 맞췄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일본어 노래는 넣고 싶지 않았는데 좋아요 팥투는 넘나 좋은 것... 젭알 앨범에 실어주라 일본어로만 듣기엔 넘 아까운 노래ㅠㅠ 윗부분 일부는 과거 회상 아래는 현재 얘깁니당 과거를 다 풀어 버릴까 하다가 밀당 하려구 반만 풀어써요 는 분량 조절 실패할까 봐... 만약에 오늘 과거 다 풀었었으면 쇼윈도 부부는 두 편 안에 끝납니다 ^ㅁ^...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6년 좋은 일만 가득하세용 답글은 달지 않고 있지만 모두 두세 번씩 확인하고 있습니다 댓글 볼 때마다 벅차요 쿄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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