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하지마, 하지마! 내가 할 거야!
소년에게 먹이려 죽을 떠 호 불어 입 앞에 갖다대자 상혁이가 소리쳤다. 기어코 내 손에 들린 수저를 빼앗더니 소년의 입에 넣고는 괜히 눈을 흘긴다.
상혁아, 사람 쳐다볼 땐 예쁘게 봐야지.
내 말에 상혁이는 더 눈을 치켜뜨며 소년을 보았다. 그런 상혁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애초에 소년을 데리고 오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하게 되었다.
사실 데려온 건 상혁이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좀 체기가 올라오는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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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발견했던 그 방 안은 온통 피 비린내로 진동을 했다. 아무래도 그 소년의 피인 듯 했다. 나를 보고 경계하는 눈빛을 했지만 소년은 그럴 힘이 없는지 일어서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못하고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누나! 뭘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요!
뒤따라 들어온 상혁이는 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 시선을 확인했다. 내 시선의 끝에는 소년이 있었고 상혁이는 곧 놀랐다. 그리곤 제 교복 자켓을 벗어 소년을 가렸다.
누나, 큰 옷 같은 거 없어요? 구경만 하지 말고 옷 좀 입히지?
나는 상혁이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장롱은 이미 쓰러진지 오래였다. 다행히 문을 옆으로 해서 쓰러져 있었다. 그 속에서 내게 가장 큰 옷이었던 후드티와 고무줄 반바지를 상혁이에게 건냈다. 이미 옷이고 소년이고 다 젖은 상태였지만 상혁이는 옷의 물기를 짜고 소년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소년은 상혁이를 쳐낼 힘도 없었는지 그저 가만히 상혁이가 하는 대로 있었다.
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소년도 나를 그저 보고만 있었다.
소년은 참 이상했다.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 이상한 대화를, 머릿속에서 했다.
어디서 왔니?
...
많이 다쳤니?
...
어딜 다쳤니?
소년은 나와 마주친 눈을 피했다. 그리고 알았다.
소년이 날 피해 눈을 돌린 곳은 곧 자신의 다리, 다친 곳이었다는 걸.
이 이상한 대화는 사실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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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아저씨는 다 부서진 내 집을 보고 한숨을 쉬셨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젊은 여성인 나를 대피소에만 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셨다. 상혁이도 그에 동의했다. 또한 신원불명의 소년,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저 소년의 거취를 두고 한씨 아저씨네에서 작게 가족회의가 열렸다. 결국 결론은 한씨 아저씨네 남자들은 대피소에서 자는 걸로 했다.
하지만 소년은 아니었다. 한씨 아저씨는 소년을 불쌍히 여겼다. 소년은 언뜻 보아도 어렸다. 소년은 나와 같이 한씨 아저씨네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그러자 상혁이의 불만이 터졌다.
아, 진짜! 여기서 나 빼고 다 못 믿을 사람들이라고! 남자 다 똑같아!
상혁아, 하고 부르는 아저씨의 낮은 목소리도 무시한 채 상혁이는 소년에게 돌진했다.
야, 너 진짜 말도 못해? 못 걸어? 빨리 말해봐, 말해보라고!
빨리 걸어봐, 소년을 일으키는 상혁이의 손길이 거칠었다. 소년은 상혁이의 손에 의해 일어났지만 이내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는 행색도 아니었다. 그냥 무너지듯 넘어져버렸다.
아, 진짜... 상혁이는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있는 대로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넘어진 소년을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혔다. 소년의 팔과 다리는 여전히 아무렇게나 된 채였다.
상혁이는 있는 떼 없는 떼 다 쓰기로 한 건지 나와 소년과 함께 이 집에서 있겠다 말했다. 어차피 소년은 커서 내가 옮기기도 힘들 거라며 자신은 집에 남겠다고 말했다. 육지로 올라가는 배도 없어 학교도 못 간다며 제 집에 있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막내 아들은 막내 아들인 건지 상혁이의 떼가 통했다. 한씨 아저씨와 상혁이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가운데서도 한씨 아저씨는 내 걱정을 하셨다. 열쇠 뭉텅이를 손에 쥐어 주며 문을 꼭 잠그고 자라 일러주셨다.
순간이지만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씨네 일가족들은 이내 나가셨다. 아빠 같은 한씨 아저씨도, 삼촌 같은 오빠들도, 잡일이라도 돕겠다며 저녁에 들어오겠다고 한 상혁이도 모두 나갔다.
그리고 난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나는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소년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년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소년도 가족을 잃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소년은 눈에 바닷물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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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 있던 글에서 조금 수정했어요. 오늘도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