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미 내가 무엇을 말할지 알고 있는것 같았다. 평소라면 내가 던진 시시한 농담에 장난스러운 정색을 하며 받아줘야하는데 그냥 실실 웃고는 넘긴다.
어쩌면 그는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 역시 두렵다. 내가 '그 말'을 하는것도, 그가 '그 말'을 하는것도.
우린 또 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앞에 놓인 아이스초코를 한모금 마시고는 헛기침을 하는 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할 말.... 해"
난 애써 그의 눈을 마주치며 웃으려 노력했다. 더 이상은 웃고 있기 힘든 그라걸 알지만 그가 미웠다.
조금이라도.. 단 1분 1초라도 그의 연인으로서 오늘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모른채 날 재촉하는 그가 너무 너무 미웠다.
"우리 헤어지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래도 떨릴것 같아서 애써 떨리지 않는척을 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눈물이 날것 같아서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힌
그의 앞에 놓인 아이스초코 잔을 보고, 떨려오는 두 손을 들키지 않으려 맞잡은채 무릎 위에 내려놓고, 혹시 내 가슴이 그를 밀어내지 못해 이상한 말을 할까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마음 아픈 네 자를 질질 끌며 망설일까봐 한번에 말하려고 숨을 크게 들어쉈다.
그리고 마침내 뱉은 말. 헤어지자. 그의 눈을 보진 않았지만 어쩐지 코 끝이 시큰거리는게 눈물이 나오려는것 같아서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난 밝은 표정으로, 밝은 목소리로, 떨지않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는데 그는 아픈 표정을 한다.
다 알았으면서도 그는 자꾸만 아픈 표정을 한다. 오늘이 끝이라는걸 알면서도... 아픈 표정...
그의 표정을 보자니 내 마음까지 아픈것 같아 눈물이 새나오지 않게 카페 천장을 봤다. 점점 뿌옇게 변하는 천장.. 그리고 눈을 한번 감으면 묵직한 눈물이 떨어진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보고 그는 휴지를 뽑아 건냈다. 평소라면 직접 닦아줬을 텐데..
"안헤어지면 안되겠지?"
내가 눈물을 닦는걸 멍하니 보던 그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 그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떨군다.
나가자며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하는 그. 든든했던 뒷모습이 어깨가 축 처져서는 나 슬퍼요- 라고 써붙인것 같다.
평소와는 다른게 느릿한 걸음, 보기만해도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그런 그를 보며 나도 천천히 일어나 계산을 마친 그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팔짱을 끼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카페를 나갔던 불과 몇 일 전의 생각이 문득 나서 가슴이 찡해졌다.
그는 그런 날 보고 뭐라 하려는듯 입을 벙끗했지만 내 휴대폰 벨소리가 더 빨랐고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여느 때 처럼 웃으면서 받으란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조금 길어진 통화에 그가 걱정되서 뒤를 돌아봤는데 그가 내 시야에 보이질 않는다.
급히 전화를 끊고 다시 뒤를 돌았을 때 그는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말없이 오른손을 내민다.
평소 처럼 손 잡고 걷자는 뜻이겠지. 애써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끼자 아귀가 들어 맞듯 빈틈 없이 껴진 깍지.
항상 그와 함께 다니던 우리 집 가는 길이 왜이리 낯설은지,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왜 오늘 따라 시린지, 그는 왜 아무말 없이 나에게 웃어주는 건지..
어느새 우리 집이 보이는 골목 어귀. 점점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에 심장이 멎을듯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지금 만큼은 시간이 밉다.
빨리 그와의 약속 시간이 되길 바라며 시간을 재촉하던 여느 날과는 달리 잘만 굴러가는 시간이.. 지금 만큼은 미워 죽겠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점점 늦춰지는 발걸음..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 아까와는 달리 굳은 표정.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신 오빠 같은 좋은 남자 만나지 못할 거야. 다시는 딱 들어맞는 이 깍지 낄 남자.. 만나지 못하겠지.
시간은 느릿하게 또는 빨리 지나가서 우리가 대문 앞까지 이르게 됐다. 조금씩 풀리는 깍지.. 힘주어 그의 손을 꼭 잡고 싶지만 힘이 풀리는 서로의 손을 어찌 할 수 없다.
"오빠.."
"헤어질 때 이런거 주면 조금 청승 맞아 보일 수도 있는데.. 키워"
서로 아무 말 없이 미적거리고 있을 때 대뜸 그는 내 앞에 화분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꽃이 필듯 말듯 꽃봉우리가 져 있었다.
마지막 까지도 그는 남들은 잘 참고 한다는 오글거리는 말 한마디 못한다. 키워라니.. 그 한마디 해놓고 부끄러워하는 그가 귀여워 살짝 웃었다.
"꽃 이름은 그냥 안물어봤어. 무슨 꽃이 피는지, 언제 피는지 나도 몰라"
마침내 완전히 놓여진 서로의 손. 나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의 눈만 응시했다.
"우리 안좋게 헤어지는거 아니니까.. 싸워서 헤어지는거 절대 아니니까 이별 키스 정도는 해도 되겠지?"
그리고 눈을 살짝 감으면..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닿는다.. 내 입술에. 아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눈물 한 방울이 떨궈지면 그는 이내 입술을 뗀다.
"울지말고.. 마지막으로 할 말 없어?"
"사랑해"
망설이지 않고 불쑥 나온 말. 사랑한다는 그 말. 우린 왜 사랑하는데 헤어지는걸까.. 사랑한다면 계속 사랑하면 될텐데.
이제 우리 다시는 못 보겠구나..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꼼꼼히 뜯어본다. 눈이 이렇게- 코는 이렇게- 입은 이렇게- 여기도 잘생기고 저기도 잘생기고-
"나도 사랑해"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는 대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우리.. 이제 정말 끝인가봐..
제가 진짜 맘 잡고 공부만 하려고 했거든요?ㅠㅠㅠㅠㅠ
근데 진짜 글 쓰고 싶어서 미치겠는거예요ㅠㅠㅠㅠㅠ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시험기간이지만 글을 올립니다..
오랜만에 와서 이런 아련아련한 글 올리고 갑니다..ㅎㅎ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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