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 (傾國之色)
: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 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
춘향전, 경국지색 (傾國之色)
춘향이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것, 누구에게 마음을 온전히 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기생인 그녀의 어미의 욕심 탓에 그녀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며 그저 집 안에서 글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들이 전부인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런 춘향을 활달하고 당당한 성격으로 만들어 준 것은 태형이었다.
늘 모든 것에 자신감 없이,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이 없던 춘향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태형은 항상 그녀의 곁에서 있어주며 그녀에게 많은 것을 심어주었다.
처음엔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간 태형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춘향의 순수하고 맑은 모습에 깊숙이 빠져든 그였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것이 그녀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그였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항상 다정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주는 태형에게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새내기 부부인가 봐? 풋풋하고 예쁘네."
함께 저잣거리를 걸으면 이런 이야기 듣기가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춘향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웃는 태형이었다.
매일 춘향의 어미의 눈을 피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러 장소를 찾아가 서로의 팔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춘향아, 좋아해'
이렇게 하루하루 태형의 손길을 받으며 춘향은 지금의 성격처럼 활발하고 당당하며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갖춘 모습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기생의 자식이라 칭하며 자신을 하대할 적엔, 적절한 대답을 하고 하대한 그 자가 먼저 민망해하며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들 정도였다.
몇 년 사이에 확 달라진 춘향의 성격이 적응이 되지 않을 새도 없이, 태형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다시 한 번 넋을 잃고 말았다.
다른 기생들과는 달리 말투에서 유식함이 묻어나 태형을 또 한 번 반하게 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요 근래 들어 그는 이상한 점을 느낀다.
활달하긴 했으나 그 정도가 심할 뿐 더러, 음식을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아 항상 반쯤 남기는 그녀가 천민 처럼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거나,
뭔가에 홀린 듯 항상 멍 때리는 듯한 표정, 자신을 어려워하는 듯 말을 걸면 바로 나오지 않는 대답 등 태형은 그녀가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심히 걱정을 한다.
그가 춘향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낀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어미 월매와 태형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월매의 신분과는 맞지 않는 도련님인 태형과 한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춘향과 태형이 친해 그녀를 많이 대면한 것과
신분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태형의 시선덕이였다. 항상 자신보다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허리를 굽히면 태형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상대방을 다독여주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마음의 품고 있는 여인의 어미에게는 오히려 자신이 깍듯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사대부의 아들 전정국 도련님께서 춘향이의 그네 타는 모습에 넋을 잃고 직접 오셔서 백년가약을 맺자 하셨습니다."
"...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월매는 그 당시에 있었던 일, 춘향이 한 말까지 모두 그에게 말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큰 화로 다가왔다.
식사를 하며 모든 이야기를 다 듣게 된 태형은 배신감과, 분노가 겹쳐져 그 자리를 벅차고 나와 혼자 화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춘향에게 달려가 화를 내며 네가 진심으로 그자의 청혼을 수락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그 또한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고 월매에게 한 번 더 식사를 하자고 했고, 그날 저녁에 그는 그녀의 국에 독을 탔다.
충동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국에 독을 타려 그녀와의 약속이 잡힌 곳까지 그것을 들고 갔고 그것 또한 실행했으니 월매는 그저 그 독이 담긴 국을 떠먹고는
시름시름 앓아 갈 때쯤 태형이 아무 말없이 떠나버리고 홀로 그 자리에 남겨져 서서히 죽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생각한다.
이 또한 너에 대한 연모이니라.
춘향전, 경국지색 (傾國之色) 04
"도련님?"
기분이 좋지 않은지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며 며칠 전 내게 백년가약을 약속한 전정국이 들어온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마당을 지나 버선발로 널 반기러 나간 내게 힘 없이 안기고, '춘향아' 하고는 계속 내 이름을 불러온다.
평소엔 그렇게 격식 갖춰서 존댓말하고 그러더니, 계속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하는 거 보니까 좀 귀엽다. 윽 나도 주책..
내게 안기고 어깨에 얼굴을 묻는 네 행동에 당황할 새도 없이 코 끝에 알코올의 알싸한 냄새가 풍겨온다.
이 시대엔 어린 양반이 술을 마셔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엄청 어려 보이는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이..."
"....."
"... 힘들 때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힘들 때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전정국이 뭐라고 하는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술에 취해 잘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어눌하게 말하는 네 말을 귀 기울여 들으니 일 때문에 이 소식을 늦게 듣고 같이있어주고 싶었지만,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맨정신으로 날 보러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왔는데 정말 미안하다. 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다.
뭐 웃을 상황은 아니다만 진짜 충분히 귀엽다.. 하..
계속 미안하다고 거의 울 것처럼 말하는데 첫 번째 만날 때도 그렇고, 집에 찾아와서 백년가약을 맺자고 할 때도 그렇고 온갖 어른인 척은 다 해놓고 얼굴처럼 진짜 애기다.
"... 누나, 괜찮은 거야아..?"
??????????
누나......... 누... 나...?
말꼬리 늘리고 반말하는 것까지 모자라서 누나???????????? (현기증)...
대충 나보다 어려 보인다고는 짐작했지만 신분도 신분이고 그럴 성격 전혀 아니라 누나라는 소리 듣는다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역시 술은 좋은 거구나..........
"... 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요. 내가 따뜻한 지아비가 된다 했지 않았습니까아..."
"괜찮으신 겁니까, 무슨 일로 술을 그리 드셨는지요."
"반말해도 돼. 나 하대해도 돼요, 누나."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이대로 전정국에게 반말이라도 할 것 같아서 일단 내 방에 눕혔다.
아니. 사실, 이대로 심장마비로 몸져 누울까 봐 그랬다. 내 취향이 연하라는 걸 누가 정확히 알아맞혔는지 애기 같이 생긴 게 누나누나 거리니...
내 심장 빠운스 빠운스 ㅎ..
전정국을 눕히다가 같이 바닥에 엎어질 뻔했다. 아카 페이스에 몸은 다부져서 얼마나 무거운지 들어서 눕힌 것도 아닌데 엄청 힘들다.
머리에 틀은 상투 어떻게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고 양반 얼굴 함부로 만졌다가 영창 갈 것 같아서 대충 이불만 덮어줬다.
그리고 아까 안겨있느라 잘 못 봤던 얼굴을 자세히 보는데, 진짜 자는 것도 영락없는 아가고.. 입술 존나 빨개.. 아카짱 틴트 뭐 쓰니.. 하..
고등학교 처음 입학하고 남녀공학 드디어 다닌다고 남자 하루에 한 명 씩 갈아치워야지! 이랬던 1학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남자를 하루에 한 명씩 갈아치우긴 무슨 짝사랑만 실컷 하다가 끝났다. 오늘 전정국 얼굴 유심히 보고 혼자 좋아했던 것도 그런 이유인진 몰라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일 년 내내 짝사랑했던 남자애랑 놀랄 정도로 많이 닮아있다. 쌍커풀 짙은 예쁜 눈, 크고 잘생긴 코, 빨간 입술 전부.
그 남자애는 짝사랑이기도 했고, 워낙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떨려 하는 내 성격탓도 있지만.
닮은 애가 나한테 혼인을 약속하자 하고, 술에 취해 안기고, 누나 거리며 심장에 화살 쏘고. 하느님이 내 불쌍한 사랑 꿈에서라도 이런 경험 시켜주는 게 분명하다.
**
밤이 깊다. 남자랑 한 방에 같이 누워서 잔다는 게 가족 말고는 처음인지라 도통 잠이 안 온다.
바람이라도 쐴 겸 방 밖의 마룻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보름달도 뜨고, 조선시대라 그런지 별이 참 많다.
나 왜 이리 감성타니.. 엄마 보고 싶다..
"잠이 안 오시는 겁니까."
밤 하늘이 너무 예뻐 고개를 들어 넋을 놓고 별을 보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랐다.
술에 꽤나 취한 것으로 보여 내일 아침쯤에야 일어나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격식을 갖춘 말투,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제가 속상한 마음에 음주를 하고, 괜히 부인 마음에 짐만 더 되게 아이처럼 군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됩니다. 면목 없습니다."
"아닙니다. 도련님이 미안해하실 것 없으세요."
"... 부인, 아플 때 혼자 두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용서해달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에서 백허그를 해온다. 술에 취하나 깨나 사람 설레게 하는 데에는 뭐 있는 것 같다.
미안해할 것 없다고, 엄청 귀여웠다고 해주고 싶은데 뭐 그런 말까지 이어나가진 못하겠다. 이제 정말 밤도 깊어오고 졸리기도 한데, 또 설레서 어떻게 잠을 청할지.
***
내 주위 사람들, 남편 주위 사람들 또한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 정말 많이 궁금해한다.
나도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단, 결혼식은 정말 대박이었다. 결혼식 이야기는 정말 마지막에 하려고 했는데, 오늘 생각나는 김에 확! 말해버릴 거야!
결혼식 날짜를 최대한 빨리 잡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네 친구들이 서운하게 여자친구 얼굴 한 번을 안 보여주냐고
부추기는 바람에 결혼식 일주일 남겨놓고 네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 누가 누구 친구 아니랄까 봐.
"제수씨!!!!!!!!!"
"어디 왔어? 헐, 제수씨!!!!!!!"
"뭐야, 쟤한텐 과분하다. 예쁘시네 웬열.."
이렇게 3명 친구 반응이 정말 격했다. 앉은 순서대로 정호석, 박지민, 김석진이라고 했고, 정말 다들 훈내나게 생겨서...
나를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정말 밥 먹다가 체할뻔했다. 둘이 어떻게 만난 거냐, 얼마큼 사귄 거냐, 어떻게 말을 안 할 수가 있어, 너무해...
이런 말들만 반복하고 우리 둘은 반은 지어내고, 반은 얼버무리며 대충 식사가 끝났다. 아! 그리고 나올 때 청첩장도 주고!
"얘가 남편으로썬 많이 부족할 텐데, 제수씨 화이팅 하시고."
"얘가 힘들게 하면, 저희한테 바로 말하세요."
"네 맞아요. 신혼집 바로 달려갑니다!"
뭘 말하던지 꼭 저렇게 셋이 이어서 말하는데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저 친구들 중에 정호석이라는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본다고 했는데, 진짜 뭔데 벌써 기대되니..
이렇게 남편 친구들도 만나고, 살 집도 알아보고, 신혼여행도 알아보고 벌써 결혼을 위한 여러 가지를 한 것 같아서 엄청 뿌듯했다.
생각 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게 나도 정말 웃기고, 너도 정말 웃길 테지만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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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오고 싶었는데, 정말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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