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아, 윤기야.
나는 느리게 가라고 했지 멈추라고 한 적은 없다.
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남준이가 알바하던 카페에서 리모델링을 한다고 짧은 휴가를 줬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개강이 다가오던 남준이는 그 소식에 얼른 윤기와 놀러갈 곳을 생각했으면.
새로운 곳에 가면 긴장하면서 제게 의지하는 윤기를 보고싶어서,
그러면서도 연신 눈을 빛내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윤기를 보고싶어서,
윤기가
즐거웠으면 좋겠어서.
들뜬 마음으로 자신 혼자 잔뜩 가고 싶었던 곳,
윤기가 마음에 들어할 곳,
재밌게 놀만한 곳 등등.
핸드폰 메모장에 계속 써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알바를 끝내고 와서 또 기분이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역시나 윤기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다음날에 남준이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무너졌으면 좋겠다.
어... 나 태형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언제요? 오늘 내내?
그건 아니지만 언제 올 지는 모르겠어.
형, 있잖아요...
뭐. 빨리 말해. 나 지금 나가야 안 늦어.
... 아니에요. 잘 다녀오라고요.
약속이 있다는 윤기가 옷을 챙겨입고 손을 흔들다 힐끗 남준이를 보고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고 현관을 나섰으면 좋겠다.
그 태형이라는 사람이랑 정확히 무슨 관계인 거예요?
차마 묻지 못한 남준이의 물음은 빈 공간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걸 물어도 될 관계의 사람인가.
자신의 물음에 윤기가 분명 답은 해줄 것이 뻔하지만 어째서인지
윤기의 입에서 나오는 그 태형이란 사람의 존재가,
분명 또 보일 다정한 웃음이
달갑지 않을 것 같아 남준이는 그저 제 입술을 꾹 다물었으면 좋겠다.
분명 윤기가 그만의 지인들을 만날 수도 있고,
자신도 아예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간 것도 아니지만
왜 이제와서 그 사실이 이렇게 제 마음을 괴롭히는건지,
자신은 왜 짜증이 나는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 했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건지,
사실은
그 답을 애써 모른 척 하는건지.
결국 제 머리를 헝클이며 어제 내내 알바가 끝나기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쳤던
핸드폰의 메모장에 적힌 장소들을 빤히 바라봤으면.
그러다 헛웃음을 내뱉었으면 좋겠다.
이거 죄다 데이트 장소잖아.
윤기는 요 사이 눈에 띄게 기분에 기복을 보이는 남준이에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좋겠다.
사춘기 같은건가? 20대도 사춘기를 느끼나?
저보다 사회경험이 더 풍부한, 좀 더 사람을 많이 만난 태형이에게 물어봐야겠다 결정한 윤기가 발걸음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페에 도착해서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가
벌써 제가 좋아하는 핫초코를 시켜놓고 손을 흔드는 태형이를 발견했으면.
그대로 다가가 짧게 포옹을 하고
마주보고 앉았으면 좋겠다.
일은 어때?
괜찮아요. 오히려 재밌어요.
그래? 다행이네.
형은, 그 같이 사는 남준씨가 안 괴롭혀요?
야, 너네 둘은 서로 뭐 그렇게 닭살돋게 부르냐.
윤기가 남준씨라는 호칭에 팔뚝을 쓸어내리며 진저리를 치면
그 모습에 태형이는 씩 웃었으면 좋겠다.
편지는 잘 받았어요?
응. 받았어.
내가 아예 직장을 잡아버려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형은 핸드폰이 없으니까...
뭐, 있어도 내가 그거 쓸 데가 어딨어.
왜 없어요. 나랑 연락은? 이왕에 내가 하나 만들어줄게요. 나 이제 그정도 능력이 되는 늑대라니까?
됐어. 넌 그거 모아뒀다가 네 그, 쪼끄만 폰부터 바꿔라. 김남준은 네 핸드폰보다 훨씬 크던데. 막, 터치로 다 하고.
다음에 한 번 봐서요. 그래도 있으면 편할텐데. 편지로 약속잡고 그러면 아무래도 일반통보밖에 안 되고, 시간도 걸리고.
네가 더 멀리 이사해버렸으니까, 그냥 널널한 쪽이 맞춰야지. 이사는 잘 했어? 편지에는 이사할 예정이라고만 적혀있던데.
편지에 써져있던 내용을 말하는 윤기에 태형이는 고개를 끄덕였으면 좋겠다.
직장이랑 원래 살던 곳이랑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옮겼다는 말에 윤기는 잘됐다는 듯 웃었으면 좋겠다.
한참 태형이 위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방향이 윤기 쪽으로 돌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준이에 대해 자세히 묻는 태형이가 보고 싶다.
이미 제 눈으로 보고, 만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아직 어쩔 수 없어서.
세심하게 하나하나 윤기의 생활을 엿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툴툴대면서도 제가 슬쩍 안 좋은 평가를 내리면 손사래를 치면서 열심히 변호하는 윤기를 발견했으면.
태형이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턱을 괴고 윤기의 반응을 마저 빤히 바라봤으면.
윤기가 왜 그러냐며 슬쩍 눈동자를 굴리며 손을 움찔거리며 애써 귀를 만지려는 것을 참는 것을 보고
태형이는 작게 웃음을 참았으면 좋겠다.
이 형 봐라?
아직 제 감정에 대한 정의 하나 내리지 못하고 헤매는 윤기를 본 태형이는
그 모습이 누군가와 겹쳐보여 잠시 아무 말도 없었으면.
멍해보이는 모습에 왜 그러냐고 윤기가 물으면 태형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씩 웃었으면 좋겠다.
이런 건
본인들이 직접 깨달아야 재밌지.
서로의 앞에 놓여져있던 핫초코가 다 비워질즈음 윤기가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태형이의 시선을 끌었으면 좋겠다.
야, 태형아. 근데... 그...
네. 형.
20대도 사춘기가 오냐?
... 네?
태형이에게 진지한 얼굴로 묻던 윤기가 집으로 돌아갈 때 태형이가 사서 품에 안겨준 조각케이크를 든 채로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
집에 들어서서
제게 등을 돌린 채로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남준이를 보고 저도 모르게 슬쩍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저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봐도
저거
사춘기 같은데...
제 고민을 듣고 한참을 웃던 태형이를 떠올리면서 제 주위사람들이 요즘 다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윤기가 남몰래 투덜거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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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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