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이란 것은 언제나 참으로 애매한 것...
너무나 애매해서 조절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윤기형. 하루종일 토끼로 있을 수 있어요?
왜?
아니, 그게...
잠시 망설이던 남준이가 결국 천천히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친한 친구가 있는데 잠시 이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제 집에서 하루 자고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고.
아침 일찍 오는 것도 아니고 저녁 늦게 와서 잠만 좀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나갈거라고.
남준이의 말에 윤기는 썩 내키지 않지만 고개는 끄덕였으면 좋겠다.
그러자 남준이의 표정이 밝아져서는 고맙다고 윤기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았다가 놓아줬으면.
윤기는 조용히 제 귀를 내려 볼에 대고 꾹 눌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을 지나 이른 밤과 함께 호석이가 남준이의 집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어, 왔냐?
야, 새끼. 얼굴 오랜만에 본다?
남준이가 문을 열면서 보이는 호석이의 모습에 둘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대로 마주친 손을 잡아 인사를 나누었으면.
안으로 들어온 호석이가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으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방 구석에 있는 하얀 토끼를 보고 눈을 빛냈으면 좋겠다.
너 평생 애완동물 하나 안 기를 것 같더니. 나 토끼 실물은 처음 봐. 이야, 토끼 예쁘다.
그치?
감탄을 하면서 윤기에게 시선을 뗄 줄 모르는 호석이의 행동에 뿌듯함을 느낀 남준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손을 뻗어 윤기를 끌어오려고 하면
그대로 남준이의 손을 피한 윤기가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뛰어올라갔으면 좋겠다.
그 모습에 호석이는 그 점프력에 감탄을,
남준이는 제 손을 그러쥐며 잠깐 의아함을 가졌으면.
야, 남준아. 토끼가 예민한 동물이지?
예민하기도 하고... 낯가리기도 하고. 지금 경계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좀, 선물 가져왔다. 있어봐.
남준이의 말에 호석이가 제 가방을 끌어와 무언가 부스럭거리면서 찾았으면 좋겠다.
얼마 안 가서 비닐팩에 포장이 된 건초와 말린 당근을 꺼냈으면 좋겠다.
뽀시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제 손에 건초부터 덜어낸 뒤에 손을 뻗어 윤기의 근처에 간식을 가져다 대줬으면 좋겠다.
이리 와. 이리 와. 나 나쁜 사람 아니야.
... 애 다루듯이 다루면 화낼텐데.
귀여워죽겠다는 듯 어느새 남준이를 뒷전에 밀어놓은 채 윤기만 바라보는 호석이가 보고 싶다.
윤기는 처음보는 간식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
슬쩍 저를 보며 호의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호석이를 바라봤으면.
안 먹을거라고 혀를 차는 남준이가 무색하게
천천히 입을 오물거리며 호석이의 손바닥에 놓인 건초를 우물거렸으면 좋겠다.
야, 야, 야, 야.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어?
크으, 돈 쓴 보람이 있네. 어, 다 먹었어? 더 줄까?
윤기는 반말을 하는 호석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직 입에 남아있는 건초의 맛에 슬금슬금 침대에서 삐죽 튀어나와 고개만 내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호석이가 다시 건초를 손바닥에 덜어 윤기의 입가에 대어주면
부지런히 건초를 먹었으면 좋겠다.
슬쩍 제 머리를 만지는 호석이의 손길은 귀찮아서 가볍게 무시했으면 좋겠다.
뿌듯해하는 호석이 옆에 남준이가 묘한 꽁기함에 제 볼을 긁적였으면 좋겠다.
저렇게 많이 먹는 윤기는 처음 봐서 더 얼떨떨했으면.
가지고 온 건초를 마저 다시 밀봉한 호석이가 말린 당근과 함께 선물이라고 남준이의 품에 안겨주고는
조심히 윤기를 품에 안았으면 좋겠다.
야, 토끼 이름 뭐야?
어? 어... 윤기.
얘 되게 순하다. 물거나 그러지는 않지?
물어. 발로도 차. 둘 다 아프다.
남준이의 말에 윤기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던 호석이의 손이 뚝 멎었으면 좋겠다.
한 성격 하시는 분이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윤기를 조용히 내려놓으면 윤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로 달려가 그 위로 뛰어 올라갔으면 좋겠다.
제 쿠션에 자리를 잡고 그대로 늘어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다가와서 윤기야, 윤기야. 계속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쿠션에 얼굴을 쿡 박았으면 좋겠다.
자꾸 귀찮게 구니까 그러잖아.
얼굴을 안 보여준다며 아쉬워하는 호석이 옆으로 다가온 남준이가 윤기의 옆에 걸터앉았으면.
가만히 윤기의 눈치를 보듯,
상태를 살피듯
빤히 바라보다가
그 시선을 못 이긴 윤기가 눈을 떠 남준이를 올려보면 그 작은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어줬으면 좋겠다.
건초 맛있었어요? 저런 거 좋아하면 그렇다고 말이나 해주지.
토끼가 어떻게 말을 해. 네가 알아서 챙겨줘야지.
아, 뭐. 말이 그렇다는거지. 넌 들어가서 씻고 나오기나 해.
호석이의 말에 남준이가 손을 내저으며 호석이를 욕실안으로 들여보냈으면.
그 와중에도 윤기를 쓰다듬은 손은 한없이 조심스럽고 다정했으면.
남준이의 쓰다듬을 받은 윤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면서 나른함에 귀를 축 늘어뜨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평소와 조금 다른 하룻밤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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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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