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토버 - Time to Love
부제 일곱. 축제.
2학기는 1학기보다 행사가 확 줄어들어 학생회가 조금 널널해진다. 물론 반년동안 일을 하면서 숙달이 된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2학기의 자잘한 합창대회, 무슨 대회, 무슨 지역예선 등등을 빼면 학교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는 축제밖에 없었다. 그나마 3학년은 제외네. 슬슬 축제 준비를 하라고 학교에서 작년에 학생회가 어떻게 진행을 했는지 참고하라며 준 표를 꼼꼼히 읽으며 부회장과 실장들을 불러 잠깐의 회의를 했다. 아, 또 엄청 바빠지겠구나. 축제 준비에 들어간다는 내 말에 씩 웃으며 힘내라고 내 어깨를 두드리던 전 학생회장인 석진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당분간 형보다 더 늦게 가지 않을까 싶어요."
"학원은?"
"2교시까지 그냥 포기해야죠. 아니면 학원갔다가 내일 일찍 아침에 오든지."
"아침에 일찍 가."
"형 잠 많잖아요."
"괜찮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대화는 잠시 끊겼다. 굳이 일찍 나온다는 민윤기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아침 일찍 나올 때면 연신 눈을 부비면서 통 잠에서 잘 깨지 못하는 멍한 민윤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이제는 서로 같이 등하교를 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당연시되었지만 우리 둘 다 그것을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가을이 다가와 서늘함을 풀어놓은 뒤, 겨울이 성큼 다가와 서늘함 위로 이른 추위를 불어넣었다. 여름이 그 기세에 밀려 늦더위를 껴안은 채 천천히 물러날 즈음 춘추복과 하복을 같이 입어도 된다는 학교측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그 말에 냉큼 춘추복을 꺼내어 입었다. 에어컨 바람에 겉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귀찮았다. 애매한 더위는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불쾌하고, 틀면 추운 정도의 기온을 만들어냈다.
여분의 넥타이를 꺼내어 빤히 바라봤다. 이제 이걸 챙길 이유는 없다. 수시 지원이 끝나 뒤숭숭한 3학년을 잡을 선도부는 없을 것이고, 민윤기는 오늘 하복을 입고 올 것이다.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 내려놨다가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손에 쥐어 가방에 쑤셔넣었다. 꺼내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쑤셔넣었다. 왜인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곧 축제네. 너 많이 바쁘냐."
"말도 마요. 이 나이에 회사에서 야근하는 회사원의 기분을 알 것 같다니까요."
내 말이 그렇게 웃겼는지 민윤기는 특유의 입동굴을 보이는 큰 웃음으로 반응했다. 과장된 이야기같지만 사실이었다. 매일매일 학원에 들렸다가 아예 서류까지 챙겨 집에서도 각 동아리와 반에서 하겠다는 활동을 체크하고 반마다 지원해달라고 하는 장소나, 물품 등등. 우리 학교가 동아리가 발달이 잘 된 편이라 축제 때 그만큼 다채로운 행사나 이벤트를 열어 주위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거야 알고 있었다. 근데 뒤에 이런 노고가 있을 줄은 몰랐지.
아직도 눈 앞에 다 알겠다는 듯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던 석진 선배의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부회장과 다른 학생회 임원들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뻗었을 것이다.
"너네 반 뭐한대?"
"어... 아마도... 카페였나... 분식이랬나. 돈 제일 잘버는 건 유령까페고, 그 다음이 분식이라던데."
"유령 그거 어중간하게 하면 망할걸. 나중에 놀러갈게."
"올 거예요?"
"어. 어차피 그 날 시끄러워서 공부 안 될걸."
아무리 건물이 다르다고 해서 그 떠들썩함도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오라 말했다. 혹시나 몰라 내 반을 아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답한다. 몇 번 말 안 했던 것 같은데, 민윤기는 의외의 곳에서 기억력이 좋았다. 사실, 혼자 나에 대한 것이라 잘 기억해준건가 싶어 조금 설렜다. 혼자 그랬다. 혼자.
토요일 동아리 활동 시간이 되어서 나는 학생회실로 향해 간간히 들려 무슨무슨 신청서를 내고 가는 실장들과 동아리부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축제 준비에 열을 올렸다. 작년에 석진 선배가 그렇게 온 학교를 뛰어다니면서 축제를 위해 일하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내 입장이 되고보니 그것이 다 이해가 갔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막판에 망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올해 축제도 꼭 사고 없이 지나가게 만들어야지.
한참 종이를 팔락이면서 집중할 때 쓰곤 하는 안경을 매만지다가 누군가 학생회실로 들어온 게 느껴졌다. 또 동아리 쪽이나, 학생회 사람이겠거니 싶어 고개도 들지 않고 여기에 두고 가라고 책상 한 켠을 가리켰는데 어째 그 뒤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누구지?
"어... 윤기 형? 농구부에서도 뭐 하려고요?"
"아니. 그건 아닌데. 반에 갔더니 너 없길래."
"저는 토요일에 동아리 안 하고 항상 여기 있어요."
"아... 그래서 맨날 없었나."
"네?"
마지막에 작게 중얼거린 소리를 듣지 못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놀러온거냐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길래 마주보고 끄덕여주면서 잠시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고 길게 기지개를 폈다. 아, 죽겠다. 절로 나오는 소리에 민윤기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안경 썼네. 처음 봐."
"오랫동안 뭐 읽을 때만 쓰는 거예요. 도수가 있으니까."
"잘 어울리네. 범생이 같아."
"칭찬 맞죠?"
"아마?"
민윤기의 말에 웃으며 안경을 벗어 와이셔츠 안의 티로 대충 슥슥 닦은 뒤 책상 한 켠에 내려놓았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라 그런지 진짜 회사원 같다는 민윤기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다가 결국 둘이 간 곳은 학교 안 편의점이었다. 일명 매점. 토요일 급식 치고는 오늘 나오는 메뉴가 영 신통치 않아 빵과 샌드위치 등을 사서 돌아와 학생회실에서 같이 먹으면서 축제와 다른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축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야."
"어어. 잠시만요. 잠시만."
급하게 전달해야 될 사항이 있어 종이 두어 개만 쥔 채로 복도를 뛰어가다가 민윤기를 만났다. 눈이 마주쳐서 잠깐 멈춘 채 급하게 손짓을 하고는 다시 뛰어갔다. 빌어먹을. 이건 준비보다 더 헬이다.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겨우 여유가 생겨 학생회실에 누워있는데 그제야 진동을 울리고 있는 핸드폰이 느껴졌다. 꺼내서 보니 민윤기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끊기기 전에 얼른 받고보니 어디냐는 물음이 들려 학생회실에 있다고 하자 알겠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전화가 툭 끊겼다.
잠깐 누워서 눈만 끔벅거리고 있으니 민윤기가 콜라 두 캔을 손에 쥔 채로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제 쪽으로 콜라가 날아와 얼결에 잡아채었다. 아, 시원하다. 바로 아직 열이 남은 볼에 문지르면서 주섬주섬 일어나자 민윤기가 내가 일어나 생긴 빈 자리에 앉았다.
"어지간히 바빠보인다, 너."
"형. 수업은요? 3학년은 정상수업이라던데."
"지금 체육시간. 근데 강당이고 운동장이고 다 축제로 점령됐잖아."
"아. 자습시간 빠져나왔구나. 우리 반 가봤어요?"
"어. 잘 꾸몄던데. 유령 카페. 근데 너무 비싸."
"축제가 다 그렇죠 뭐. 다른 학교 애들까지 언제 왔는지 정신없어 죽겠어요."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가볍게 주무르고 떨어지는데 그 감촉이 너무 오래 남아 내가 한 번 더 어깨를 쥐어 주물렀다. 이렇게 하면 그 감촉이 조금 무뎌질 것 같았다. 콜라를 다 비우고 쓰레기통에 넣은 뒤에 민윤기와 틈을 노려 반을 돌아다녔다. 민윤기가 준 우리 반의 전단지가 생각보다 깔끔하고 예뻐서 감탄했더니 나보고 외부인같다며 키득였다. 그럴 수도 있지. 학생회 일이 너무 바빠서 정작 반에 신경을 못 쓰네. 멋쩍음에 머리만 긁적였다. 어차피 급식도 맛 없는데 여기서 배를 채우자는 의미로 현금을 두둑히 가져왔다는 민윤기에게 빌붙어 떡볶이부터 떡꼬치, 커피, 과자 등등을 얻어먹었다. 물론 나도 몇 개는 사주기도 했다.
유령 카페가 두어군데 있긴 했는데 다행이 끝과 끝에 위치해서 손님이 크게 분산이 안 되어 그만큼 충돌도 없었다. 메이드 카페에 들어갔다가 제가 다 민망스러울 정도의 짧은 치마를 입은 애들을 보고 놀라 민윤기의 눈을 가린 채로 나왔다가 민윤기가 내가 어린애냐면서 타박까지 받았다. 그런 거 좋아하냐고 물으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금방 평소의 감흥없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젓는다. 취향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취향이 뭔지 물으려다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축제의 절정인 장기자랑 무대가 시작이 되었고, 그 사회자는 나였다. 그래. 학생회장은 사실 학생회가 아니라 그냥 노동꾼인지도 몰라. 멘트가 적힌 판판한 두꺼운 종이판을 뒤적이면서 중얼중얼 연습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민윤기가 신기한지 빼꼼 고개를 빼내어 내 큐시트를 같이 내려다본다. 상대역을 해주겠다며 부회장의 멘트를 읽어주는데 그 목소리에 흥이 넘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대에 올라가 진행을 보는 동안 나를 보며 씩 웃고 있는 민윤기를 보고 말한 게 아마 내 진행의 반은 아니였을까, 나중에 생각해봤다.
"오늘 제가 형 주머니를 터네요."
"알면 다음에 네가 쏴."
"저 가난해요."
"나는 부자냐."
축제가 끝나고 정리까지 모두 마친 뒤 날이 모두 저물고 나서야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나머지 자잘한 건 환경부쪽 애들이 알아서 하기로 했고. 응. 진짜 내 일은 끝났다. 나중에 말 나오면 그것만 잘 처리하면 되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마치 그런 날 불러세우듯 탕탕 거리는 소리가 들려 농구코트 쪽으로 갔더니 민윤기가 있었다. 공을 튕기는 것을 멈추고 날 보더니 코트에서 나와 문을 잠구고 음료수를 가리키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윤기와 내 손에 이온 음료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학원 안 가?"
"못 가요. 이미 허락 받았으니까 집에 가서 쉬려고요. 형은요?"
"나도 집 가려고. 학교 어수선해."
각자의 이유, 아니면 핑계. 다르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똑같았다. 가만히 버스를 기다리면서 노을에 물들다 못해 보라색을 띄는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민윤기가 따라서 하늘을 올려보다가 작게 예쁘다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나는 그때 민윤기의 옆얼굴을 슬쩍 바라보고 이온음료를 마저 털어마셨다. 하늘의 색에 맞춰 물들어가는 민윤기의 얼굴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손에 빈 캔을 든 채로 딱히 이렇다할 말을 나누지 않았다가 문득 수능까지 100일도 남지 않은 게 느껴져 민윤기를 돌아보았다. 하늘에 올렸던 시선을 민윤기가 천천히 내려 나에게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너무 빨라요."
"그러네."
"올해가 유독 빠른 것 같아요."
"나도."
고개를 끄덕인 민윤기에게 문득 묻고 싶었다. 혹시 형도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 이유가, 정말, 혹시, 나 때문이냐고. 입술을 벙긋거리다 손을 올려 입가를 쓸어내렸다. 쓸어내리는 척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 때 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말했을지도 모른다.
형.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어요. 형이랑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도록.
만약 말했다면 다음날 민윤기의 얼굴을 못 보지 않았을까. 다행인지, 아쉬움인지. 그때 나는 다행이라고 치부했다. 날이 추워지고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민윤기랑 있으면 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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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여덟. 수능
시간이 지나가며 겨울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수능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3학년 건물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남은 학생회 일은 졸업식정도였다. 3학년이 되면 새로운 학생회장이 뽑힐테고, 그 새 학생회장은 가끔 조언을 얻으러 내게 올 것이다. 내가 석진 선배에게 그랬듯이.
긴장감이 맴도는 건 2학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막 2학년에 올라와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혹은 무엇을 열심히 하겠다. 계획했던 것들을 돌아보면서 코 앞에 다가온 고 3이라는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하기도, 경각심을 가지기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윤기 형."
"왔어? 야, 나 이거 좀."
"봐봐요."
도서실은 어느새 민윤기와 나의 토요일에 만나 공부를 하는 곳이 되었다. 그 수많은 학생들 중에 토요일에 도서실을 찾는건 반납일이 한참 지난 책들을 가져오거나, 중간에 도서부를 찾으러 오는 친구들 정도였다. 민윤기가 내민 영어문제를 빤히 바라보다가 민윤기 옆에 앉아 문장을 뚝뚝 끊으며 최대한 천천히 설명해줬다. 고 3 영어라고 해서 지문이 유독 어려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난해하기는 여전했다. 몇 번 답안지까지 팔락거리면서 나름대로 얻은 답을 설명해주고 나서 민윤기의 고개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샤프를 돌려주었다.
"존나 억울해."
"뭐가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가면 한 마디도 못 한다는게."
"이건 입시 영어잖아요."
"영어면 그게 그거지. 토익은 또 비즈니스 영어라잖아. 원어민들도 안 나누는 영어를 왜 여기에서 마음대로 종류 나누고 난리야."
먼저 와서 꽤나 오랫동안 영어와 싸웠는지 입술을 내밀고 미간을 구긴 채 잔뜩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왜 웃냐는 말에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넘겼다. 귀엽다고 하면 화낼테니까. '원어민들도' 라는 말이 '원어민들뚜' 라고 들렸다. 가끔 흥분하면 나오는 말투인데 영어를 하는 게 꽤나 억울한 모양이었다.
민윤기는 몇 마디를 더 투덜거리고 나서야 입을 꾹 다물었다. 문제를 계속 풀어나가길래 나도 챙겨온 문제집을 꺼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가장 하기 싫은 수학을 붙잡고 한참 씨름하고 있는데 민윤기가 책상에 엎어졌다. 한계가 왔구나 싶어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보다가 책상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민윤기가 고개만 스윽 움직여 날 바라봤다.
"매점 갈래요?"
민윤기의 고개가 끄덕, 움직이자마자 드륵거리며 두 의자가 동시에 바닥을 끌었다.
3학년 건물 2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니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건이 막 들어왔는지 바닥 여기저기에는 삼각김밥이나 도시락같은 것들이 담겨져있는 박스가 있었다. 훌쩍 뛰어넘어 우유나 음료수가 있는 안 쪽으로 들어가니 민윤기가 그새 콜라 하나는 꺼내 가져오는 게 보였다.
"그거 마시게요?"
"안 돼?"
"아니요. 나는 형 또 포카리 마실 줄."
"포카리는 운동 했을 때만."
나름의 철학과 같은건가. 콜라를 보니 나도 탄산이 땡겨 결국 콜라 두 개를 계산했다. 주머니를 뒤적이던 민윤기가 왜 네가 사냐는 듯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길래 웃으며 계산된 콜라캔을 내밀었다. 편의점을 나와 느긋한 걸음으로 계단쪽으로 가면서 콜라캔을 땄다. 탄산이 빠져나가는 시원한 소리가 서늘한 복도랑 잘 어울렸다. 겨울이구나, 나름. 아직 덜 여문 겨울이 복도에 가득했다.
"사진 같은 거 다 찍었죠?"
"응."
"어때요?"
"친구들 말로는 그냥 똑같다던데."
"잘 나왔나봐요? 나도 보고 싶다, 그거."
"아냐. 걔들 눈 삐었어. 나 이상하게 나왔어."
민윤기의 말에 키득이면서 마저 콜라캔을 비웠다. 톡 쏘는 탄산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서실 근처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창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늘에서 하얀 눈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민윤기의 어깨를 톡톡 건들이고 창문 밖을 가리켰다. 함박눈이라고 하기에는 얇은 눈송이들이 바람에 휘날려 꽃잎마냥 나풀거렸다.
"형은 최저만 맞추면 되죠?"
"응. 말했잖아. 난 정시는 안 돼."
"가볍게 보고 와요. 형 열심히 했으니까 잘 할거예요."
"그 때도 콜라 사줄거냐?"
"사달라고 하면요. 기념으로 1.5L 짜리 사줄게요."
"많이 못 마셔. 캔으로 사줘."
"캔으로 1.5L?"
"미친."
서로 마주보면서 사소한 대화에 키득이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확인한 민윤기가 10분 됐다며 들어가자고 하길래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은 콜라를 들이켰다. 이미 캔 하나를 다 비운 민윤기는 근처 쓰레기 통에 캔을 버리고 돌아왔다. 먹는 속도가 빠른 대신에 목이 약해서 탄산을 느리게 마시는 편인 나에 비해 민윤기는 먹는 속도가 느리고 탄산 등을 마시는 속도가 나보다 빨랐다. 내가 콜라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줄 참인지 옆에 조용히 선 민윤기를 바라보니 민윤기는 창 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
"뭐가요?"
"나 수능 다음에 졸업이잖아."
당연한 말인데 왜 이렇게 낯설지.
"그러고보니 오늘이 끝이네. 너랑 여기서 공부하는 거."
"아... 그러네요. 다음 주가 수능이니까."
"콜라 얻어마시는 것도 끝이려나. 그거 좀 아쉬운데."
"저도 형한테 음료수 얻어먹는 거 끝이겠네요. 그런 의미로 오늘 가는 길에 호빵 어때요?"
"틈새 노리기 봐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민윤기가 웃는 게 보였다. 나는 웃지 못했다. 새삼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얼른 남은 콜라를 벌컥이며 마셨다. 콜라의 탄산이 다시 내 목을 타고 흘러갔다. 너무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셔서 그런지, 목이 너무 따가웠다.
수능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 지금 가는 중. 떨린다.]
그래도 수능이라고 긴장이 된다는 민윤기의 카톡을 몇 번이나 읽으며 얼 것 같은 손을 부볐다. 일찍부터 대기해 우리 학교 교복이 보이면 우르르 다가가 품에 초콜릿과 따듯한 캔커피 등을 쥐어주며 힘내라고 외치는 것도 내 일 중 하나였다. 이 일이 크게 힘들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추운 공기에 이미 볼과 귀, 발은 모두 얼어버렸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쩌면, 유독 하얀 피부의 검은 머리를 기다리느라 몰랐던 게 맞는 것 같다.
"윤기 형! 형!"
저 멀리에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채로 걸어오는 민윤기가 보였다. 살짝 민윤기가 보인 것 같은 즈음부터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와 따로 민윤기에게 다가갔다. 민윤기는 멀뚱히 날 바라보았다. 그 품에 웃으며 미리 챙겨온 초콜릿, 따듯한 캔 커피. 핫팩 등을 안겨주었다.
"떨려요?"
"조금."
"떨지 말고. 잘 하고 와요."
"응. 고마워."
민윤기가 평소보다 짧은 대답으로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긴장했구나.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 빤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민윤기의 고개가 더 목도리로 파고들어갔다. 민윤기가 시험장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3학년들이 다가오면 다가가 초콜릿을 건네주면서 문득 깨달았다. 민윤기한테 초콜릿을 너무 많이 줘버렸다.
분명, 처음 챙겼을 때는 적어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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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마지막. 짝사랑. 첫사랑.
오늘이 내가 학생회장이라는 이름으로 나설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더이상 학생회장이 아니게 된다. 오늘은, 졸업식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등교해 졸업식 준비를 해야하는 나와 달리 민윤기는 졸업식 시간에 맞춰서 간다고 했었다. 하기야, 굳이 일찍 갈 필요는 없지. 분명 민윤기가 없이 홀로 겨울 보충을 다니면서 요근래 혼자 많이 탔던 버스였는데, 어째 오늘따라 많이 허전했다. 사람이 없는 버스 안을 둘러보면서 살짝 무거워진 마음을 다독였다. 이제는, 이 풍경에 다시 익숙해질 때이다. 이상하게 중학교를 포함해 민윤기를 만난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혼자 버스에 올라탔는데 고작 1년, 어쩌면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더 깊숙하게 다가왔다.
민윤기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 대신 거리가 멀어 대학 근처로 가 자취를 한다고 했다. 농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건축계열의 과로 입학했지만 본인은 그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원래 그 쪽에도 흥미가 있었다고 하니, 성적에 맞춰 마구잡이로 골라잡아 가는 다른 애들보다는 대학을 훨씬 잘갔다고 생각했다. 그래, 잘 갔다. 다만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티를 내지 못했다. 축하한다는 말만 몇 번 했던 것 같다.
[10시에 졸업식이 시작되오니, 졸업생 및 학부모님들께서는 대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10시에...]
학생회 임원들과 친한 선배를 축하해주기 위해 온 몇몇의 재학생들, 방송부 학생들 정도만 학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방송을 듣고 손에 들고 있는 졸업식 진행표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나가서 읽어야 할 멘트들도 한 번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이제 나가서 이걸 읽고, 교장에게 건네주고, 악수를 받고, 수고했다는 상장과도 비스무리한 것을 받고 내려오면. 나는 학생회장 김남준이 아니라 고등학교 3학년 김남준이 된다. 그래도 1년동안 손에 쥐고 있던 것이여서 그런걸까. 큰 의미도 없고, 이제 지긋지긋한 학생회 일에서 해방이 되는건데 마냥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졸업식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평소 교복을 입은 학생들만 바글거렸던 대강당은 오늘은 다른 빛을 띈채로 외부인까지 끌어안아 은연중에 떠들썩함을 내보이기도 했다. 천천히 눈을 굴려 앉아서 대부분 딴짓을 하거나, 앞을 바라보고 있는 졸업생들을 보며 내년에 내가 저기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짧게 웃어버렸다. 수능을 끝내자마자 물들였는지 벌써 뿌리가 검게 나온 염색머리들도 보였고, 겉에 사복을 걸쳐 단정하다기보다 무언가 번잡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꽃을 받았는지 알록달록한 꽃다발도 그 번잡함을 물들였다.
아, 저기 민윤기다.
민윤기는 귀찮다는 이유로 염색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검은 머리와 하얀 피부, 평소와 다름없이 적당히 흐트러진 교복차림으로 앉아있었다. 멍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다가 간간히 옆에 있는 친구의 말에 씩 웃기도 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저 교복차림의 민윤기를 보는 것이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짙게 한숨과 함께 묻어나왔다.
"1년 동안 수고했어."
"선배도 수고하셨어요."
형식적인 행사 중 하나였다. 학생회장이라고 재학생 대표로 나와 편지와 비슷한 것을 읽고, 전 학생회장인 석진 선배가 그 편지에 맞춰 재학생들을 격려하는 내용의 무언가를 읽는. 같이 내려오는 길에 석진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정말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웃어보였다. 졸업식이, 곧 끝난다.
졸업식이 끝나고 반마다 모여 담임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부모나 지인들과 만나느라 대강당은 소란스러움과 정신없는 발걸음 소리도 가득 찼다. 방송부들은 설치했던 마이크나, 틀어놓았던 영상들을 빠르게 치워나갔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대강당 한 구석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민윤기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정신없이 친구들과 같이 졸업식을 즐기고 있는걸까 싶어 부재중 통화를 하나 남겨놓고, 졸업 축하한다는 문자를 뒤이어 보냈다. 그래도 얼굴 한 번은 보고 나도 가야겠다 싶어 얼른 교실에 들려 준비했던 꽃다발을 들고 다시 대강당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반쯤 빠졌지만 여전히 많았다.
어딨지, 민윤기는.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최대한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아 찾으려 했지만 역시 저를 이리저리 치고 지나가는 인파를 헤치며 딱 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 속에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분명 모든 것은 빠른데 나 홀로 흑백에 감싸여져 멍하니 서있는 기분은 생각보다 불유쾌했다. 인상을 찡그린 채로 강당의 옆문으로 빠져나가 다시 전화를 걸어볼 심산으로 걸음을 돌렸다. 가까워지는 옆문이 어렴풋이 닫혀있는 것이 보여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올렸다가, 그 위 강당 탈의실 문 앞에 서 있던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형?"
나를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쳐도 놀라지 않은 민윤기가 올라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옆문 옆으로 있는 계단을 올라가 민윤기가 있는 탈의실 문 앞에 다다랐다. 졸업식때만 해도 같이 참여했던 사람들이 앉아있던 좌석들이 텅텅 비어 있어서 강당 아래와 민윤기와 내가 있는 곳은 전혀 다른 곳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뭐해요?"
"외투 찾으러. 아까 가지고 있기 귀찮아서 여기 탈의실에 벗어놨었어."
"아... 졸업 축하해요. 이거."
"내 거였어?"
"그럼 누구 거겠어요."
꽃다발을 받아든 민윤기는 이제야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크지 않는 꽃다발을 품에 안아드는 폼이 좋았다. 이미 민윤기의 발치에는 몇 개의 꽃다발이 있었다. 농구부 애들과 잠깐 오셨던 부모님이 주고 가셨다며 주섬주섬 챙겨드는 게 꽤나 버거워 보여 따로 놓여져있던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챙겨주고 대신에 꽃다발을 몇개를 받아들어줬다. 인사할 친구들은 이제 없는지, 어디에 갈건지 물었더니 우선 교실에 들려서 가방을 챙겨왔으니 거기에 작은 꽃다발과 졸업장 등을 넣어서 가져갈 거라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민윤기를 따라 3학년 5반으로 향했다.
학교는 조용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적당한 온기와 서늘함만 남아있었고 2학년 교실과 그닥 다르지 않은 풍경의 모습이 보였다. 칠판에 써져있는 마지막 자습날 힘내자는 말로 가득한 낙서들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나도 모르게 민윤기의 낙서를 찾고 있었다. 책상에 꽃다발을 내려주고 나서 민윤기와 나도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았다. 민윤기가 가방을 다 챙겨두고 책상 위에 올려둔 뒤 날 돌려보았을 때, 그 정적이 깨졌다.
"이제 네가 3학년이네."
"그러네요."
"힘내라."
"네. 고마워요."
내 대답에 씩 웃는 얼굴이 정말 이제 민윤기가 졸업하는구나, 이제 같이 등교를 하고, 같이 하교를 하고, 같이 주말에 자습을 끝낸 뒤 밥을 먹는, 그런 일상을 같이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민윤기는 창을 통해 자동차들이 빼곡히 들어찬 운동장을 내려보았다. 다시 침묵이 내려온건가, 싶을 즈음에 민윤기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 못지 않게, 생각이 많은 얼굴이라 섣불리 왜 그러냐고 물을 수 없었다.
지금, 좋아한다고 고백해야 될까. 아니면 민윤기와 지금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걸까.
참으로 애매한 시점이었다. 나는 이제 수험생이고, 민윤기는 대학교 신입생이 된다. 나는 본격적인 입시준비로 바쁠테고, 민윤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넓은 사회를 만나 적응하느라 바쁠 것이다. 고작 한 살이 어린 것이 이렇게 짜증이 난 적이 있었나. 마음이 허하고, 머릿속은 점점 뒤죽박죽이 되었다. 교실은 어떠한 소음 없이 조용하기만 한데, 이상하게 나는 그 모든 것이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형."
내 부름에 민윤기의 시선이 다시 와닿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쉽사리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민윤기는 그런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민윤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라리 문제면 답이라도 풀어냈을텐데. 손바닥에 땀이 차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아내었다. 죽겠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형..."
"김남준."
"네?"
"나, 너 한 번만 안아봐도 돼?"
"..."
민윤기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오늘따라 너무 묵직하게 나를 두드렸다. 대답대신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 팔을 벌리고 민윤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 허리춤을 쥐었다가 등을 감싸는 손길이 느껴져서 더 숨을 크게 내쉴 수가 없었다.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 민윤기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행여 내 말소리까지 먹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민윤기가 나랑 동갑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니면 내가 오늘 학교에 온 이유가 학생회장이라서가 아니라, 민윤기와 똑같은 졸업생이어서 였다면 좋았을텐데.
끝도 없는 아쉬움과 먹먹함이 몰려왔다. 민윤기는 대학에 가서 친하게 지냈던, 가끔 미묘한 감정을 주고 받은, 한 살 어린 남자애를 기억이나 할까. 그건 조금 두려웠다. 내가 옆에 없을, 민윤기가 옆에 없을 다음날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윤기 형. 가서 대학 생활 잘해요."
"너는 수험생 생활 잘 해."
"응. 알았어요."
비슷한 대화만 어중간하게 뭉쳐졌다가 흩어졌다. 한참을 끌어안고 있던 민윤기를 천천히 놓아주자 느릿하게 고개를 올려 민윤기가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민윤기의 볼을 감쌌다. 민윤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직히 다시 민윤기를 부르자 민윤기는 손을 들어 내 눈가를 쓰다듬어줬다.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울지 말라고 했다. 왜, 사내 자식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냐고 했다. 대답하지 못 했다. 나는 울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몇 번이고 더 눈가를 쓰다듬어준 민윤기가 물자욱은 하나도 없는 마른 손가락을 내리고 그대로 창가에 몸을 기댔다. 닿았던 품이 떨어졌다. 그 떨어진 마른 품이 아쉬워 절로 다시 내가 다가갔다. 민윤기는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쳤다가, 천천히 눈을 내려감았다.
민윤기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그러쥐고, 입을 맞췄다. 맞닿은 입술이 모든 감각을 먹어버렸다. 살짝 누군가가 입술을 오물거려도 금방 그 감촉이 선연하게 다가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조금 숨이 차오를 즈음에 입술이 떨어졌다. 못 참겠다, 이제.
"좋아해요, 형."
민윤기가 웃으며 다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졸업식이 끝나버렸다. 내 짝사랑과 함께.
"알아."
그리고 첫사랑이 새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