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5년 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준비... 되셨나요?
그렇다면, 시작하겠습니다.
그날은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졸린 눈을 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무심코 창밖을 봤을 땐 하품한 후 흘린 제 눈물과도 비슷한 빗방울이 똑 똑 떨어지더라구요.
그냥 그러고 말겠지 하고 저는 다시 칠판으로 고갤 돌렸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교할 시간이 됐을 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당황스러웠죠, 아침만 해도 쨍쨍 했거든요.
더군다나 전 우산까지 없었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뭘 어떡해요, 무작정 달렸죠.
저희 학교 앞엔 편의점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래서 비를 다 맞아가며 헐레벌떡 뛰었어요.
근데 제가 달리기가 느리거든요,
이건 뭐 거의 비로 샤워 할 수준으로 쏟아지는데 그걸 피할 방법이 없는 거에요.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터덜터덜 슬리퍼 질질 끌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제 어깨를 계속해서 때리는 빗방울에 신경질이 나려던 참에
어느 순간 어깨에 빗방울이 닿지 않더라구요.
이상하다 싶어서 위를 봤을 땐 하늘색 우산이 보였어요.
그리고... 편의점 알바생이 보였죠.
비 안 맞게 해준 건 참 고마운 일인데 의아했죠.
아직 편의점까진 2분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리고 더 이상한 점은 이 사람이 날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전 그저 편의점을 사랑하는 여고생 중 한 명 이었으니까요.
어색해 죽겠는데 아직 편의점은 멀었고 미치고 팔짝 뛸 정도였다니까요?
사실 제가 어색하고 그런 걸 되게 싫어하는데 그게 티났나봐요.
알바생이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걸더라구요.
" 어... 오늘 일기 예보 안 보셨어요? 오늘 소나기 있다고 우산 꼭 챙기라고 그랬는데... "
" 아... 제가 원래 그런 거 보는데에 취미가 없어서요. "
" 아, 그러시구나... "
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것처럼 열심히 눈동자만 굴리시더라구요.
참 귀여웠어요,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데 이렇게 순진한 모습을 보여서.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어 버린 것 있죠?
알바생은 대뜸 웃는 내가 궁금했는지 왜 그러냐고 물어 왔어요.
" 푸흡... "
" 어... 왜 웃어요? 내가 뭐 실수라도 했어요? "
" 아뇨, 그냥요. 귀여우셔서. "
제 말을 듣곤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는데 참 맑은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최승철 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었어요.
" 근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
" 알바 가는 길이었는데... 학생이 보이길래 그냥... "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알바생은 저렇게 대충 둘러댔어요.
뭐 아무렴 어때요, 저는 비 안 맞아서 좋고 저 오빠는 착한 일 해서 좋고.
저 원래 비 오는 날 엄청 싫어하는데.
오늘부터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고 3달이나 시간이 흘렀어요.
오늘도 그날처럼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네요.
그날처럼 여전히 제겐 우산이 없어요.
전 우산이 필요 없거든요.
최승철이 있으니까요.
" 오늘 비 온다고 우산 챙기라고 했는데 또 안 챙겨왔죠? "
" 오빠가 오는데 굳이 우산을 챙겨야 하나? "
" 허... 그래 누가 널 말리겠어요. 안 추워요? 얼른 가자. "
좁디 좁은 우산 안에 나란히 발을 맞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보니
자꾸만 어깨 한 쪽이 젖어갔어요.
오빠가 그걸 알고 자기 후드티에 있는 모자를 쓰더니 우산을 벗어나더라구요.
뭐하냐며 감기 걸리고 싶냐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오빠는
마냥 해맑게 웃으며 뒷걸음질을 하며 절 보더라구요.
" 이 정도야 괜찮아요, 그리고 원래 너만 쓰라고 가져온 거야.
난 이렇게 모자 쓰면 되는 걸요? "
그렇게 나름 예쁘게 연애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친구 부탁으로 소개팅을 대신 나갔는데 그걸 숨긴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그러냐며 울고 소리치고...
오빠가 그렇게 절 달랬는데도 전 만남의 끝을 외쳤죠.
오빠가 그렇게... 그렇게 절 잡았는데 말이죠.
"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에요? 이제 나랑 너 끝이라는 거죠...?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보고 싶을 거야. "
전 남은 고교 생활을 하면서 그 편의점을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한 순간도 마주치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제가 졸업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벌써 22살이 됐네요.
아직도 오빠가 그리운 건 사실이에요, 아 울적하다.
울적하니까 달달한 것 좀 사와야겠어요.
지갑을 챙겨 집을 나왔을 땐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러고 말겠지 하며 난 늘 그랬듯이 비를 맞으며 어디를 갈지 고민 하고 있었죠.
그러다 문득오빠가 일하던 그 편의점이 가고 싶었어요.
혹시나마주칠까?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손도 흔들어 줘야지 다짐하면서말이죠.
그렇게 도착한 편의점엔 처음 보는 알바생이 있었어요.
실망한 걸 감출 수는 없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캔커피 하나를 사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흘렀는데도 오빠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울적한 기분 달래러 나왔는데 더 울적해 진 것 같아서 캔 맥주를 사서 편의점을 나섰어요.
딸랑 하는 종소리와 알바생의 인사가 겹쳐 들리고 내가 나왔을 땐 이미 깜깜한 저녁이었죠.
한숨을 쉬고 완벽히 편의점에서 벗어났는데 콧잔등에 한 방울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곧이어 후두둑 떨어졌어요.
꿍얼거리며 하늘에 대고 따지자 하늘은 그게 왜 자기 탓이냐며 비를 더 뿌려댔죠.
급한대로 후드집업의 모자를 쓰고는 달릴 준비를 하려는데 별안간 내리던 비가 그쳤어요.
정말 그친 줄 알고 썼던 모자를 벗자 보이는건 어딘가 익숙한 하늘색 우산이었어요.
그리고 고개를 올려보면... 그리웠던 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 ... 왜 아직도 일기 예보 안 챙겨 봐요. "
"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새 까먹은 거에요? "
" 이제 비 오면 데리러 올 사람 없는데 왜 자꾸 우산을 안 챙겨요. "
고개를 숙인채 오빠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어요.
못 본 사이 오빠는 더 잘생겨진 것 있죠?
제 손에 우산을 쥐여주고 곧바로 돌아서는 오빠를 붙잡았어요.
" ... 오빠! "
" .... "
" ... 같이, 써요. "
그러면 오빠는 멍청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다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우산을 벗어나요.
" 네가 그 말 하면 나는 그때처럼 또 이렇게 해야겠네요. "
오빠는 그날처럼 뒷걸음질을 하며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어요.
그날 그랬듯 후드티의 모자를 푹 쓰곤 리본까지 묶었죠
오빠는 멋지게 웃으며 제게 우산 만을 남긴채 멀어져갔어요.
" 그 우산은 네 거에요, 이제 비 올 때마다 내가 못 가니까... 나 대신해서 너 지켜줄 거에요.
사실 틈 날 때마다 여길 왔어요, 이거 전해주려고.
나와 함께한 2년이 부디 아픈 소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보고 싶었어, 많이.
앞으로 일기 예보 잘 보고... 우산 잘 챙겨 나가요.
잘 지내요, 잘 있어요... 나도, 노력할게요."
----------------------------------------------------
놀라셨죠? 네, 저도 놀랐습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사랑을 주셔서 제가 네... 하라는 LMM 연재는 안하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