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나쁜 나의 인내심 기록기 03
한참을 아이를 품에 안고 가만히 입을 올렸다가 일어났다.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똑바로 뉘인 뒤 이마에 키스했다.
"안 씻으면 아무리 엄마라도 못 눕게 한것도 모자라 방안으론 들이지도 않았는데. 뭔가 너는 다 허용되네."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부엌으로 갔다.
"그렇게 많이 울었으면서 빨빨빨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배고프겠지... 마침 장 봐둔게 있어서 다행이네. 따뜻한거 먹이고 싶은데...아, 고기 좋아하니까 비프스튜로 해야겠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요리를 하다보니 다시 옛일이 떠올랐다.
탁탁탁,탕.
내가 준 힘과 비례하게 큰소리로 잘린 당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끝은 나름 훈훈했지만 그 다음날이 문제였지."
***
저녁까지 먹고 아이를 데려다 준뒤 집으로 왔다. 차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습한 열기에 눈쌀을 찌푸리며 내일은 엄마라 하더라도 나오라하면 히스테릭을 부리겠어 라는 다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이라고 하면 좋겠다.."
나는 어제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스친 예감에 얼른 컴퓨터를 켜 주식을 관리했고 그것은 오전 11시 반이 되서야 끝냈다. 옷도 제대로 못 벗은채 옆에서 챙겨주는 이 하나도 없이일부터 하다니 나도 참 처량하다. 급 엄마가 보고싶은 느낌이었다. 찌질하게 땅굴만 파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온몸이 저린다.
지릿지릿.
"으어어...시이발."
오늘도 욕을 뱉으며 나는 욕실로 들어서서 씻었다.
**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니 배가 고프다. 근데 힘이 없다. 근데 고프다. 움직이기 싫다. 굶자. 멍하니 소파 위에 널부러져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무시했다. 울린다. 무시했다. 또, 울린다. 무시한다. 또, 울린다.
"....엄만가.."
쉬지도 않고 울리는 폰에 멍하니 질질 발걸음을 끌며 폰이 놓여져 있는 곳으로 갔다. 빤히 보다 엎어져 있는 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하니 어제 그 아이였다.
"보기보다 끈질기네."
그대로 전화를 받으니 활기찬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누나!."]
"뭐야. 뭔일이야. 왜이렇게 활기차."
-["왜 이제 받아요오. 엄청 걸었잖아요."]
"귀찮아서."
-["귀찮..았어요."]
"어. 그래서 용건이 뭐야."
-["그냥.. 오늘 만날려고요."]
"누구..나랑?."
-["..네."]
"싫어."
-["..왜요."]
"나 여름라고 겨울엔 안 나가 그나마 겨울은 좀 나은데 여름엔 절대 안나가. 어제는 별수없었지만. 여름 날 나가면 히스테릭만 나고 절대 안 나가."
-["히스테릭 부려도 괜찮으니까 나오면 안돼요?."]
"어. 용건 끝났지?. 전화 끝는다."
-["....."]
뚝.
굉장히 무뚝뚝한 전화를 끝내고 움직인 김에 머리카락도 말리자 란 생각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그후 승철이에게는 연락 한번 오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집안에 틀어박혀 간간이 취미 생활이나 하며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
*
내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은 9월의 막바지였다. 승철이에게 연락이 온 것도 그때 쯤이었다. 언제나처럼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배우다 이번엔 일식에 흥미가 생겨 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중 전화가 왔다. 화면을 보니 저장은 되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일단 저장되어 있어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계속해서 들리지 않는 답에 이상해 나도 아무말 않자 소리로도 알수있게 초췌한 목소리가 들린다.
-["또,잊은거에요?."]
"??. 또라니 무슨..."
그제서야 난 떠올랐다.
"어,승철아. 무슨 일이야."
그때 이후로 연락이 없어 잊고있었지만 다시 연락할 줄 몰랐다. 조금은 당황스러웠고 신기했다.
-["..일이 있어야만 연락할수 있는 거에요?."]
아이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울것 같은 느낌에 일단 나는 애를 달래기로 했다.
"만날래?."
멍청하게도 처음 직면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두서없는 말을 날렸다. 그런데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네. 만나고 싶어요."]
소년이 허락했다. 그것도 모잘라 밝아진 목소리엔 웃음기마저도 담겨있다. 나는 어쩔줄 모르면서도 태연한 척 담담히 말을 이었다.
"식사는 물론 영화까지 에스코트 할테니까 괜찮은 시간을 말해봐."
-["지금요!.저 오늘 금요일이라 일찍 끝나요."]
"그래?. 그럼 데리러 갈테니 주소 불러봐."
-["네!."]
마지막까지 활기찬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끝내고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갔다.
*
소년의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꽤 많은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한쪽에 차를 대고 밖에 서서 기다렸다. 소년의 얼굴을 잊어버렸으니 알아서 찾겠지 싶어 차에 기대 핸드폰을 하는데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고개를 올리자 멀끔한 소년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눈과 귀가 맞닿을 정도로 환히 웃는 모습이 모잘라 보이기 까지해서 무시하고 핸드폰을 했다.
"어어. 누님. 무시하면 섭섭해요."
언제 봤다고 누님인지 능글맞게도 말하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기다리는 상대가 아닌알고 더 무시했다.
"와.. 너무 도도하시다."
계속 옆에서 깐족거리는게 거슬려서 살풋이 웃고 목소리를 굳힌 채 말했다.
"거기서 한 마디라도 더 짓걸이면 네가 자랑스레 보여주고 있는 뼈가 입안에서 튀어나와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테니까 닥치려무나."
그제서야 소년은 조용해졌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 폰을 하는데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푸하핫. 이석민.킥킥킥."
"꼴 좋다. 그렇게 달려나가더니."
"저 병신 킥킥."
이석민이란 애를 놀리던지 말던지 관심없어 그저 폰만 하고 있는데 다시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번에야말로 때릴까 싶어 핸드폰을 꽉쥐고 고개를 드는데 다른 소년이 보였다. 곱상하지만 단단하고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모르는 얼굴이라 다시 폰을 하니 앞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누나,저에요."
고개를 들고 다시 확인했다.
"아,너야."
다시 확인하는 내말에 체념한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주위는 조용해진 채 처음보는 소년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심해서 나는 소년의 손을 잡고 조수석으로 향했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수군수군 거렸고 소년의 체온은 점점 올라갔다.
탁.
문을 열어주고 소년을 안에 들어서게 했다.
"감사합니다."
"뭘. 에스코트하기로 했잖아. 히터 데워놨는데 따뜻하지?."
"네.."
소년의 얼굴이 빨개진 것 같다. 나는 문을 닫아주고 차석으로 갔다. 차에 타자 소년은 눈을 떨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에 안전벨트도 안했길래 이왕 에스코트 하는 김에 제대로 해주자 싶어 소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 눈에 알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고 눈을 질끈 감는다.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린다. 난 안전벨트를 매줬다.
달칵.
"에?."
소리와 함께 소년의 눈이 번쩍 뜨였고 밖은 잠잠해졌다. 난 조용히 운전하며 스시집으로 갔다.
*
스시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먹는둥 마는둥 해서 영화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영화 보고싶은거 있어?."
"어..누나는요?."
"난 요즘 뭐 나오는지 몰라. 집에 텔레비전도 없는데, 뭐."
"아,진짜요?."
"응. 그러니까 마음대로 골라. 아, 귀신 나오는 건 안 좋아해."
내말에 소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큼큼. 그럼 이거 볼래요?."
"뭔데?."
"로맨스 판타진데 요즘 그게 그렇게 재밌데요."
"그래.보자."
흔쾌히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는 본인이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난 V.I.P석 아님 안보는데?.' 라고 하자 동공이 흔들리면서 얌전히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영화관은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승철아."
"네,네?!."
내가 이름을 부르자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승철이를 보다 말을 이었다.
"침대식 소파여서 부담스러우면 내가 옆으로 갈게."
"아니,아니에요. 절대로 안부담스러우니까 가시지마요."
박력적 이라고 생각할 만큼 격한 반응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영화는 괜찮았다. 색감이 굉장히 예뻤기 때문에 더 좋았다. 줄거리는 마법사와 평민의 사랑이었다. 무감정한 마법사와 천진하고 모험심 넘치는 소녀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악역 같은게 없었다. 거의 마법사와 평민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주변배경으로 생동감을 덧대어주는 영화였다. 그래서 재밌게 본것 같다. 아이는 어땠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니 아이의 표정이 부러움과 희망에 차있다. 눈을 뗄수 없는 모습이어서 빤히 보자 내 시선을 느낀건지 베시시 웃는다.
"저도 그런 사랑을 할거에요."
"어떤?."
"운명이어서 무슨 짓을 해도 맘속에 떠나지 않는 사람과 영원히 사랑할 거에요."
어리네 라며 비웃고도 남았을텐데 그 당시의 난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년의 미소가 짙어졌다.
영화관을 나오고 다시 소년의 집에 데려다줬다. 소년은 내리기 전에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응."
"여름에는 나와달라고 안할테니까 적어도 겨울엔 만나주면 안돼요?."
나는 입속에서 맴도는 부정의 말들을 삼키고 말을 돌렸다.
"너 이제 고3이라며."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단호하게 굳어져선 호소하는 듯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났다. 내 움직임과 동시에 피어나듯 지어진 소년의 미소에 컴컴한 배경과 차안이 빛으로 반짝였다. 미친건가 싶어 눈을 깜빡이니 사라졌다.
'와,안과 좀 가봐야겠네.'
자꾸만 눈을 깜빡이니 소년이 걱정어린 표정을 짓는다.
"왜요?. 눈아파요?."
"아냐, 그냥... 음,그냥. 어서 가봐. 시간도 늦었는데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움찔 소년의 움직임이 멈춘다.
"왜?."
"부모님 해외출장 중이세요."
"그래?."
"네..그러니까.."
소년이 망설인다. 입술을 깨물었다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친다.
"차!!, 차라도 드,드실래요오..."
중간에 음이탈까지 나자 소년이 망했다 란 표정을 말을 끝맺는다. 나는 살짝 웃으며 소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승철아."
아마 소년과 있었던 중 가장 상냥하게 나온 목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소년의 얼굴이 풀리며 더듬댄다.
"네,네."
나는 그대로 소년에게 몸을 기우려 귓가에 속삭였다.
-'성인한테 그런 말 하는거 아니야.'
멍하니 굳은 소년의 등을 밀면서 밖으로 내본낸뒤 창만 내려 소년에게 말한다.
"나중에 또 보자."
**
"그러고보니 그때 시선을 뗄수 없던 건 사랑에 빠진 표정이어서 그랬던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영화관에서의 마지막 표정과 나에게 막 고백했을 때의 표정은 같았다. 기대와 희망, 불안과 두려움을 답고 사랑에 달아올라 스스로도 물든 색. 언제나 예쁜 아이였다.
나의 상념은 벌컥하고 열린 방문에 의해서 깨졌다. 흐트러진 차림으로 허겁지겁 나온 승철이의 표정이 엄마 찾는 아기 사슴처럼 가련하고 청초해서 심장이 아팠다.
'하.. 깜찍이는 하루에 몇번이나 날 위험하게 해야 저 행동들을 멈춰줄까. 이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데 말야.'
나는 습관처럼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 상냥하게 웃었다.
"배고프지?. 스튜 해놨어.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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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기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괜찮다면 상냥한 말 한줄정도 부탁해요.
그리고 이글을 읽어준 것도 모잘라 글을 남겨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언제나 좋은 날 보내세요. 그리고 전편에 실수로 10p로 설정해서 이번편은 무료에요.
암호닉-[로운]/[호시기두마리치킨]/[긍데렐라]/[독방팬1호]/[슈오]/[유다안]/[귤쟁이]/[돌하르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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