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나쁜 나의 인내심 기록기 04
나는 국자를 내려놓고 승철이에게 가 흐트러진 그의 차림을 정리했다. 내 손길을 가만히 받으며 기분 좋은듯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혔다.
"비프스튜 끓였으니까 같이 먹자. 배 많이 고프지?."
"네.."
그릇에 스튜를 담고 있는데 뒤에서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해요."
멈칫.
행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깜찍이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와.. 진짜 저런 복덩이가 어떻게 이렇게 순순히 굴러온거지?.'
너무도 사랑스런 모습에 싱긋 웃으며 아이를 달랬다.
"괜찮아. 네 자는 모습 볼수 있어서 좋았어. 매우 귀여웠거든."
다시 몸을 돌려 음식을 마저 담고 그릇을 들고 식탁에 갔다. 발그레진 볼로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듯 방긋 웃는 모습이 꽃같다. 자리에 앉으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방긋방긋 웃는 승철이에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그만큼 예쁘면 그만 예쁠만도 한데 웃을때마다 꽃망울들이 하나씩 터져나와 향기를 뽐내는 것 같다. 너무 예뻐서 심장을 간질이다 못해 쾅쾅 후려치는 기분이다.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녹을 것 같은데 문득 알아챈 사실에 얼굴이 붉혀졌다. 나를 힐끔힐끔 보며 먹는 속도를 맞추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 이후로 수저만 꾸욱 쥐고 밥만 먹었다.
무슨 정신으로 먹은건지도 모른 채 다 먹은 접시를 걷으려 하니 벌떡 일어나서 내 접시까지 들고 싱크대로 간다. 고무장갑을 잡는 폼을 보니 설거지를 하려는 것 같아 만류하니 단호한 얼굴로 고집을 피워 웃음이 터져나와 포기했다. 승철이에게 과일이라도 줄까싶어 냉장고를 열려는데 우연히 본 시계가 벌써 9시를 가르키고 있어 깜짝 놀라 승철이를 데려다 주려고 했다. 그러자 뭐가 그리 섭섭한 건지 울상을 짓는다.
"안가면.."
말꼬리를 늘리며 올망졸망 나를 쳐다봤지만 여기서 약해지다간 이성도 약해질 것 같아 단호하게 고개짓 했다.
"안돼. 나 너 지켜주려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협조해야지. 난 네가 첫연인인 만큼 더 소중하게 하고싶어."
"누,누나.."
"겉옷 챙겨. 집에 데려다 줄게."
"아니에요. 저 혼자 갈수 있어요. 그리고 저 데려다주면 누난 어떡해요."
"그럼, 나는. 어린 연인이 혼자 가게하는 내 맘은 편할까. 누가 탐내면 어떡해. 나도 소중해서 함부로 못대하는데."
화악.
또다시 빨개진 얼굴로 얼굴을 가리길래 손을 잡아채 눈을 맞췄다.
"데려다줄게."
네에... 기어들어가듯 말하며 눈을 못마주친다.
**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나왔는데 느낌이 묘하다. 사람의 온기가 떠나설까 아님, 네가 떠나설까 언제나의 풍경이 휑해보인다. 갑자기 울적해져 지하로 내려가 술 저장고에서 와인을 꺼냈다. 오늘 밤은 취하고 싶었다.
안주도 없이 와인을 마시자 예전 생각이 났다. 그때는 나와 승철이가 사귀기 전으로 처음으로 승철이의 데이트 신청을 거부한 날이었다.
***
그날 이후 나는 주말만 되면 거의 승철이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하려 했다. 걔는 학생이고 나는 돈많은 성인이니까. 그런데
-'데이튼데 일방적으로 부담주고 싶지 않아요.'
전혀 부담스럽지도 않고 상관도 없어 괜찮다고 하려 했지만 단호하게 굳어 뜻을 나타내는 얼굴이 여기서 더하면 자존심을 건들것 같아 하나만 타협하기로 했다.
-'어디가는 것은 엄청 움직이는 것만 아니면 괜찮은데 먹을때 쓰는 비용은 내가 내게 해줘. 입맛 까다로워서 왠만한 건 안먹는데 너한테는 부담스러울 테니까.'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같이 다니며 내가 먹는 음식의 가격대와 취향을 알게 된 승철이가 마지못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가 하는게 데이트였어?.'
-'남녀가 서로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게 데이트가 아니면 뭐예요.'
-'아아. 그렇구나.'
그리고... 중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승철이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
"..네?."
처음 맞은 퇴짜에 아이의 표정은 멍청하게 풀려있었다. 나는 다시한번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 약속 생겨서 안돼."
"..누구랑요."
"몰라. 근데 남자일것 같아."
"하?. 남자라뇨. 지금 그게!."
잔뜩 일그러져 언성을 높이는 아이를 냉정하게 봤다.
"엄마 말씀이야. 그리고 지금쯤이면 내 취향 알잖아. 나 시끄러운거 싫어해. 목소리 낮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아이가 초조한 듯 탁자를 두들긴다.
'아, 정신 사나워.'
아무말 없이 조용히 홍차만 마셨다.
"어디요."
"?."
"어디서 만나는데요."
"..청담동에'S'라는 바에서."
"바?."
마음에 안든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린 아이가 나를 노려본다.
'이 새끼가 봐주니까. 점점 점입가경이다?.'
짜증을 가득 담아 보니 그제서야 눈이 조금 유순해진다.
"그래. 나도 첫 만남부터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엄마가 일단 만나보라며 손 벌리셨어."
그 후에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도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의 금요일 날. 나는 정장을 입었다. 버건디색의 블라우스와 검은 정장바지와 하얀색 허리띄, 하얀 넥탁이를 하고 검은 정장의를 입었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이 올려 묶은 뒤 굽이 있는 워커를 룸에서 신고 나갔다.
'소개팅은 개뿔. 이정도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하얀색의 클러치백에 지갑과 열쇠, 폰을 챙기고 집 밖을 나선뒤 택시를 타고 장소를 향했다.
**
상대는 역시 마음에 안들었다. 날 보자마자 움츠렸고 내 눈치를 보느라 먹는 것도 질질 흘렸다. 더이상은 못보겠어 고개를 돌리니 바텐더 겸 소믈리에가 와인 1병을 들고 온다.
"안 시켰는데요."
내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식은땀을 삐질 흘리면서 말한다.
"전회장님께서 이분과 같이 드시라고 하셨습니다."
"시발."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와, 진짜 너무하다. 어떻게 엄마가 되서 나 와인 약하다는 걸 알고... 상대방은 좋아하는 눈친데 거절할 수도 없고. 진짜 중요기업 회사 아들만 아니었음... 시발.'
결국엔 나는 와인을 마셨고 술에 취했다. 술에 취한 여자는 편한 건지 한모금에 내 얼굴이 빨개지자마자 싱글싱글 웃으며 대화를 하려한다. 난 대충 대답하면서 2잔 정도 마셨을까.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하고 일방적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겨울바람에 오히려 정신이 몽롱해져 걸을 생각도 하지않은채 멍하니 있는데 누군가 팔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남자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부축해 주겠다는 말이 재수없어 손을 쳐내고 비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폰이 뺏겼다.
"시발. 뭐합니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고 지랄이세요."
내 물건을 함부로 건들였다는 것에 핀트가 나가 경영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짜증을 냈더니 겁 먹는다.
'하, 찌질한 새끼가 감히 누굴껄 건드린거야.'
대놓고 코웃음 치며 비웃으니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져서 내 팔을 강하게 잡는다. 점점 열이 받아서 정신이 몽롱해 지는데 누군가 날 뒤에서 안았다. 풋풋하고 달달한 향이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것 같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해 가만히 안겨 있으니 더 강하게 품에 가둔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한번도 담긴적 없는 분노를 담고 거칠게 말하고 있었다. 왠지 그걸 말려야 할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니 승철이다. 오랫동안 밖에 있었던 건지 코도 귀도 잔뜩 빨개져 화내는 꼴이 웃기다. 헤 웃으며 승철이를 끌어당겼다. 내 움직임에 행동을 멈춘 아이가 무어라 하려고 하는걸 듣지 않고 그대로 귓가에 속삭였다.
'쉬이. 착하지. 응, 착하다. 승철이.'
내가 말을 끝내자 주변이 조용하다. 계속 아이의 품에 기대 있는데 익숙한 차가 보인다. 손을 흔드니 비서가 나왔고 난 오랜만에 본가에서 자게 되었다.
그 후에 승철이에게 잔소리 엄청 먹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까 그 주위엔 친구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급 쪽팔려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술이 약하면 먹질 말던가. 아니 장소도 바였잖아요. 도대체가 왜..'
-'술은 잘해. 와인에 약할 뿐.'
-'그게 뭐예요.'
-'몰라. 위스키 3병도 거뜬한데 이상하게 와인은 안돼.'
-'와..진짜...'
***
- I woke up 꿈마저도 Baby ~ 널 따라다니는 꿈 꿔 어떡해
내 기나긴 상념은 승철이가 설정해준 벨소리에 의해 깨졌다. 아, 벌써 보고싶다. 천천히 손을 움직여 누군지도 확인 안하고 받았다.
"여보세요.."
술에 취한 내 목소리가 느른하게 울린다.
-["술 드셨어요?."]
"응. 그것도 와인으로 어떻게 알았데.."
-["그때 들었던 목소리랑 같아서요."]
"그래?."
-["네."]
"....."
-["왜 드셨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굳어진 것 같다.
"네가 없어서 외로워서 먹었어. 익숙했던 곳이 너 하나 없다고 텅 빈것 처럼 휑한게 외로워서 먹었어."
내 말에 한참을 입 열지 않았던 아이가 겨우 떨리지 않는 척 소리를 냈다.
-["..그럼 보내지 말지 그랬어요."]
"소중한데 어떻게 그래."
-["......"]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만큼 소중해서, 사랑해서 지키고 싶어."
-["......"]
"목소리 듣고 싶어, 응?, 승철아."
-["......."]
"사랑스럽고 어여쁜 내 복덩이, 승철아. 말 좀해줘."
내 목소리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낯간지런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서 나긋나긋 울렸다. 사랑스런 어린 연인의 목소리가 물기를 가득 담고 물어온다.
-["내가 정말 좋아요?."]
"응. 좋아해."
-["그치만,그치만 원래부턴 아니었잖아요."]
"맞아. 내게 너는 그저 아는 애일 뿐이었어."
-["....."]
"근데 네가 고백하는 순간. 내게 네감정을 토로하는 그 순간 바꼈어."
숨죽여 떨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라는 사람이 뭐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향한 네 마음을 고백하는 너를, 감히 그 누가 사랑하지 않고 베길수가 있을까."
-["......"]
"내게 사랑한다 말하는 너를 사랑스럽다고 느낀 순간 난 네게 반한거야."
-["......."]
스피커 너머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해. 사랑하는 게 처음이라 어른스럽지 못할 수도 있어. 이끌어 주지도 못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네가 하고싶은대로 다 해주고 싶고 곁에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너만이야."
-["........"]
"오로지 너밖에 없어. 사랑해,승철아."
-["..흐윽..엉엉..."]
터진 아이의 울음에 나는 조용히 겉옷과 키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시동을 걸고 승철이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대답 없는 내가 이상했던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그래요?."]
"승철아."
-["..네."]
"조금만 기다려줘. 바로 갈게."
놀란 듯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작게 웃으며 빠르게 운전했다.
"사랑스런 연인이 우는데 달래야 하는건 당연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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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기
음주운전은 범죄예요. 글이어서 가능한 거에요. 현실에선 안돼요. 그러다 훅가요.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언제나 좋은 날 보내세요. 특히 상냥한 말을 남겨주신 당신들.
암호닉-[로운]/[호시기두마리치킨]/[긍데렐라]/[독방팬1호]/[슈오]/[유다안]/[귤쟁이]/[돌하르방]/[♡0820♡]-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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