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진지하게 내집, 내방, 내침대 위에 같이 누운것도 모잘라 자고 있는 승철이를 보았다. 불편하게 묶여있는 손을 보니 체육, 그것도 검도하는 앤데 무리라도 갈까 싶어 묶여있는 넥타이끈을 풀어주었다. 물론 내게 연인을 묶는 가학적인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귀기로 한 후 감정주체가 안됐는지 더 펑펑 우는 승철이를 달래기 위해 가까운 내 집안에 들였고 처음 온 내집이 많이 신기했던지 이곳저곳 구경하다 피곤해 하길래 울린 것도 마음 쓰여 한숨 자라했더니 요 깜찍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얼굴이 빨개져선 수줍게 내팔을 잡고 침대에 같이 눕힌다.
-“누나. 저,순수하게 잠만 잘거니까, 그러니까 괜찮아요.”
순진한 반응에 또한번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데 어디서 본격 성이름 암살교육이라도 받고 왔는지 이 순둥이는 아까보단 덜 붉은 볼이 은은하게 물들어서 수줍게 입꼬리를 올린다. 잇사이로 욕이 나올뻔 한것을 참고 조용히 웃으며 승철이의 머리카락을 쓰담었더니 안절부절해 한다. 뭔가 토끼가 낑낑 되는것 같아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데 처음보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나, 묶어줘요.”
-“?!!!??.”
순진한 애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대사에 당황한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승철이를 봤지만 승철이는 자신의 교복 넥타이를 풀어 내게 건네주었다.
-“어..째서..?.”
당황을 넘어 멘붕까지 오려 하고 있는데 승철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남자니까요.”
-“?.”
-“그럴리는 없겠지만 내가 누나한테 닿으면 어떡해요. 안그래도 허락하지 않은 스킨쉽 질색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나도 누나 아껴주고 싶어요.”
하...진짜. 얘는 날 죽이려고 온 존재가 틀림없다. 마지막 대사와 동시에 부끄럽다는 듯 내리깐눈에 내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내가 주체 못하고 애를 확 끌어안기 전에 손목과 팔을 묶었다. 근데..뭔가 엄청 잘 묶인 것 같다. 승철이도 그걸 느꼈는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다 나를 멍하니 봤다.
-“어,음. 그냥 본능대로 묶었을 뿐이야...진짜..”
눈을 피하면서 변명을 하다 앉아있는 승철이를 눕히고 눈을 감겨줬다.
-“피곤할텐데 어서 자. 엄청 울었으면서 우리집 구경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잖아.”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재울려고 하는데 내쪽으로 돌려누우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나 애 아니에요.”
휘어진 눈꼬리와 치아가 보일정도 웃는 입, 묶여서 앞으로 팔을 구분려 웅크려 누운 모습이.
-‘하, 시발 성이름, 건들면 미친거다. 내가 널 죽일거야.’
온갖 고뇌로 그저 눈만 감은 채 있다가 살짝 바르작거리는 움직임이 사라져 눈을 떠보니 나를 죄악감과 번민으로 가득차게 했던 요물스런 깜찍이는 새근새근 잘도 잔다. 팔을 풀어주고 애기가 자는 모습을 보다 품에 끌어당겨 머리카락에 입맞췄다.
‘엄청 참았으니 이정도는 괜찮겠지.’
정말이지 아가는 나를 얼마나 믿길래 성인여자 집에서 무방비하게 있는 걸까.
“하아....힘들다.”
성이름 장하다. 끝까지 지켜라.
“에휴.”
분명 우리의 첫인상은 굉장히 좋지 않았는데 말이지.
***
나와 승철이의 첫만남은 불쾌지수가 최고조로 달한 여름날이었다. 더위는 안타지만 열이나 빛에 약한 나는 여름이란 계절이 오면 학창시절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이후엔 외출하는 것이 극히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은 극히 드문날 중 한날이었다. 그날따라 내 기분은 매우 더러웠다. 여름날 외출이라면 그날 하루는 거의 히스테릭의 날이라고 할 수있을 정도인 내게 최고조의 불쾌지수와 엄마의 당부로 입게된 선물받은 원피스가 엿같았다. 짙은 남색에 하얀 물방울이 들어간 종아리를 살짝 보이게 할정도로 긴원피스는 길어도 치마라는 이유만으로 내 성질을 거슬렸다. 짜증을 내며 원피스와 함께 붉은 허리띠를 하고 긴하얀가디건을 입고 단정한 하양과 갈색이 섞인 크로스백을 메고 올림머리와 간간이 큐빅으로 포인트를 준 얇은 머리띠를 했다. 신발은 귀찮으니 꺼내져있는 하얀샌들을 신었다. 자외선차단제만 바르고 화장따윈 안한 얼굴로 밖에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열기에 난 바로 욕을 뱉었다.
“시발.”
끔찍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몸을 감싸고 햇빛은 따가워 온몸이 달구워지는 느낌이었다. 참을수 없어서 결국 엄마의 얘기는 무시하고 차를 끌고 약속장소로 갔다.
**
“딸!. 여기야여기...너 뭐냐.”
반갑게 손흔들 땐 언제고 더러운 내 인상에 정색하신다.
“왜요. 여름엔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성질 더러운 딸이 별말 않고 나왔으면 된거지 뭘 바라십니까.”
주차하고 건물로 들어오는 동안 느낀 여름에 평소답지 않게 존댓말까지 쓰며 퉁명스럽게 얘기하자 엄마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 옷차림을 보며 혀를 차셨다.
“뭡니까. 말씀하신데로 입었잖아요.”
“화장.”
“아씨.”
“뭐,이 기지배야?!. 아씨라고 했냐?. 엄마한테? 이게 아주 죽으려고.”
내 멱살을 잡아챌 듯이 다가오시길래 난 급히 상황을 돌렸다.
“왜 나오라고 하셨어요.”
“아..너 남자소개 시켜주려고.”
“뭐야. 새아빠야?. 지금 엄마 능력엔 남자가 모자를 텐데. 마땅한 인간이 있긴 있어?.”
“나말고 너.”
“아,나...뭐요?!.”
상황을 돌리자 진정된 엄마를 자리에 앉히고 나도 마주앉자 대화를 잇다 거슬리는 소리에 기가 찬듯 날카롭게 말을 뱉어내자 엄마께서는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응.너야.”
단호한 태도에 부정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짜증을 냈다.
“아,왜. 남자없이 잘만 사는구만 그리고 있어봤자 비효율적이야 내가 진심으로 그사람을 좋아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우리딸 잘났지. 네 친부가 빚 남겨놓고 이혼했을 때 절대 당하고 못산다면서 어려서부터 ‘감’이란 걸로 주식같은 걸로 돈벌고 회사 세우고 지위가 완성되자마자 친부를 감옥 안에 쳐넣고 ‘낳아줘서 겁나 고맙습니다?.’라며 비아냥 거리며 웃고. 와, 진짜 내딸이지만 그땐 무서웠어.”
여전한 콩깍지를 자랑하면서 내 얼굴에 금칠하는 엄마가 부담스러 얼굴을 굳혔다.“엄마. 난 잘나지 않아. 엄마가 소개 시켜준다면 그 남자 수준은 뻔하지 고위학력이나 있는 집안이겠지. 근데 엄마, 내가 엄마에게 주식으로 돈 벌게 하고 그 돈으로 빚 갚고 남은 돈으로 회사를 세웠지만 운영은 다 회장인 엄마가 하는 거잖아. 난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고 고위학력자들과 태연히 대화를 나눌만큼 식견이 넓지 않아. 엄마만 우습게 될거야. 고작 15년만에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수 있을만큼의 대그룹의 외동딸이 머리 빈 머저리라고.”
명백히 거절의 의미를 담은 말에 덩달아 엄마의 표정이 굳어진다.“..아닌데. 물론 학창시절에 네가 공부를 엄청 잘한것은 아니지만 그건 엄마 도우느라..”
“엄마.”
난 엄마의 말을 끊었다.
“난 공부에 흥미없었어. 솔직히 우리 그룹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모두 엄마 능력이야. 내가 한거라곤 어떤 사람이 배신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성실할까 이런걸 가늠하고 귀띔했을 뿐이야. 이만 난 갈게.”
“자,잠깐.이름아..”
“내가 선택할게.”
“하아...알았다.”
겨우 엄마를 설득하고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엿같았다. 아니, 끔찍했다. 엄마의 과대평가도 모르는 남자와 어색하게 있으며 엄마의 부탁이란 이유로 내숭떨며 자리의 앉아 있었을지도 모를 나도.
“후...진짜 담배나 배울까. 엿같네.”
건물 밖으로 완전히 나오자마자 무섭게 강타하는 햇빛에 나도모르게 욕지기를 뱉었다. 이내 나한테만 안좋다는 걸 깨닫고 주차장에서 가까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딸랑.
“어서오세요.”
가게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함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진열대로 걸어가면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카운터로 갔다.
또박또박.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더블로 녹차맛으로요.”
“네.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카드...아..”
나는 직원에게 카드를 전해주다 부딪힌 누군가에게 휘청거렸다. 그러자 탁하고 잡힌 팔. 갑자기 빈정이 상해 날 부축한 팔을 쳐냈다. 그리고 날 잡았던 상대방을 보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한쪽 팔을 들고 있는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나는 소년을 위아래 훑어보고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만지지마요.”
씹어뱉듯 내뱉어진 말에 소년의 표정은 굳어졌다. 나는 굳어있는 소년을 뒤로 한 채 얼어붙어있는 매장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갔다. 짜증스럽게 주차장 쪽으로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는 게 느껴진다.
‘뭐야. 짜증나게 하필 내 뒤람.’
이제는 내 뒤에 사람이 있는 것도 불쾌해지는 데 큰소리가 들려온다.
“저,저기요!!.”
‘아,시끄러. 공공장소에서 뭔 지랄이야?!.’
점점더 히스테릭이 올라와 빨리 집에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아..진짜...”
상대방이 움찔할 정도로 위협스럽게 나온 소리에 만족하며 면전에 욕이라도 투하해 줄까 싶어 얼굴을 봤더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소년이다.
‘뭐지, 흔치않은 얼굴인데.’
인상을 팍 구기면서 노려보자 소년의 얼굴 또한 살벌하게 굳어졌다.
“매장에서 저 때문에 빈정 상하셔서 카드도 안갖고 나가서 가져다드리러 왔는데 헛수고를 한 것같네요.”
딱딱하게 굳어 말하든지 말던지 점점 뜨거워지는 열에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재수없는 말을 짓껄였다.
“가져요.”
“네?.”
“내일 끊어줄테니까. 오늘까진 마음대로 써요. 나 때문에 그쪽도 기분 상한 것 같은데 그걸로 보상할게요. 그럼 이만.”
그대로 지나치려고 했는데 강하게 붙잡혔다. 엄청나게 화난 얼굴과 처음 느껴보는 강도의 아픔이 심장을 철렁이게 했다.
‘뭐야. 나 겁먹은거야?. 내가?. 아,씨발.’
자존심이 상해 소년에게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눈앞이 일그러졌다.
“아...”
“?!.괘,괜찮으세요?.”
아까 전에 보였던 살벌한 모습과 달리 초식동물마냥 순하게 떠진 눈과 안절부절 뭇하는 행동이 답지않아 웃겨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가 화악하고 일그러지는 시야에 의식이 끊겼다. 끊기는 와중에도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던 소년의 모습이 귀여웠다면 징그러운 소리일까 생각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
깨어나 보니 느껴진 것은 팔에 링거와 병원냄새였다.
“시발. 병원이라니.”
손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리듯 내뱉었는데 누군가의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마자 욕이에요.”
어디선가 본 듯한 소년이다. 나를 알고있다는 듯이 하는 말에 의문이 생겨 숨기지않고 나를 아냐고 물었더니 기가 찬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와...저 기억 못해요?. 진짜?. 매장에서도 보고 길에서도 봤는데?.”
“아..당신이 그 소년이었어요?.”
“헐..진짜 기억 못했어...”
“미안해요. 사람을 잘 기억 못해요.”
“아니, 그건 못한다는 수준이 아닌것 같은데. 아까 길에서도 기억 못 했던 거 아니에요.”
“맞아요.”
어이없다는 소년의 말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했다. 할말을 잃은 표정의 소년을 앞에 두고, 건물 안인 데다가 잠깐 자서 불쾌지수가 확 낮아진 내가 소년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에?.”
“매장에선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누군가 내 몸에 닿는 걸 싫어해서 과민반응 했고 길에서는 여름엔 항상 기분이 안좋은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 재수없게 굴었어요. 그리고 그 카드는 내가 먼저 당신을 기분 나쁘게 했으니 사과대신 그걸로 퉁치려 했던 거에요. 미안해요. 많이 불쾌했죠. 고마워요. 길에 버리지 않고 병원까지 데려다줘서.”
선량한 척 미소까지 머금으며 조곤조곤 사과를 하자 온도 차이에 적응 안된 소년이 어버버거린다. 멍청한 모습에도 착한 척 기다려주니 곧바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그럼 번호 줘요.”
“..네?.”
생각도 못한 말에 이번엔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능글맞게 웃으면서 소년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누나 때문에 많이 속상했으니까 천천히 보상해줘요.”
“누,누나라니.”
멘붕이 온 나완 다르게 소년의 미소는 청아하기 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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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냥한 말과 함께 암호닉까지 남겨주신 [로운]/[호시기두마리치킨]/[긍데렐라]/[독방팬1호]/[슈오}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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