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이의 뺨이 후끈 달아올랐다.
땀냄새만 나는 자신 옆에 은은한 향수냄새를 물씬 풍기는 대선배님이 계셨다. 그것도 자신의 어깨에 팔을 올린 채.
잠시 눈앞이 아득해졌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휙 팔을 빼냈다. 내가 뭐하는 짓이지 싶었지만 이 팔을 두른 채로 있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동기들뿐만 아니라 후배들 앞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녀 눈 앞으로 스쳐 지나가고 그녀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해졌다. 어떡하지. 나 이제 큰일났다. 회사에서 짤릴 일만 남았겠구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인공아 왜 그래?"
갑자기 제 팔을 치우는 것도 모자라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 있는 인공이를 보고 지민은 당황했다. 두 손은 갈 곳을 잃고 인공이의 얼굴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어디 아프나, 왜 그러지... ##인공아 괜찮아? 지민의 동공도 배회했다. 곧 있으면 뚝하고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녀 앞에서 항상 자신감 넘치던 그는 작아졌다. 앞만을 바라보던 그의 목과,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무릎은 그녀 앞에서 제 형태를 잃었다. 그녀를 올려다 보기 위해 그는 무릎을 굽혔고, 고개를 들었다.
"인공아 우리 이러지 말고 밖에 나ㄱ..."
"저한테 왜이러시는 거에요?"
인공이는 말을 내뱉고 아차 싶었다. 내가 감히 선배님께!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감정에 복받친 그녀는 이내 마음속의 말을 술술 뱉기 시작했다.
"선배님같은 분이 저같은 애한테 왜 이러시냐구요. 저 곧 데뷔도 해야하구요. 제가 잘못해서 이러시는거면 말해주세요, 이러시지 말고 제발..."
"인공아.."
인공이의 말을 들은 지민도 아차 싶었다.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인공이를 본 건 오래됐지만 인공이는 나를 이렇게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텐데.. 울먹거리며 목소리가 잠겨 말하는 인공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지민도 이런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러지. 그저 우리 회사 연습생일 뿐인데...
지민도 알았다. 분명 이건 내가 인공이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이 곳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인공이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어린애인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정신차리고 보니, 이미 그는 사장님께 선포도 해놓은 상황이었고, 인공이를 울린 나쁜 놈이 되어있었다.
사실상 인공이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저지른 행동에 그는 숙연해졌다.
"미안해, 이삐야. 미안해 정말..."
지민을 두고 인공이는 연습실로 들어갔다. 연습.. 연습을 해야 해. 그녀가 들어오자 연습실은 다시 싸해졌다. 들어오자마자 음악을 틀고 춤을 추려는 듯한 그녀에 연습생들은 입을 떡하고 벌렸다. 저 선배도 독해 정말...
*
인공이가 연습실로 들어가고, 지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확실히 제가 잘못한 게 맞았다. 제 스타일대로 인공이를 끌고 가려고 막무가내로 찾아간 것이 큰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새끼..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몰랐나보네."
혼잣말을 하며 터덜터덜 지민은 사장실로 향했다, 아니 그려러다 멈췄다.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두려워지는 지민이었다.
화보 촬영 등 빡빡한 스케줄을 마치고 지민은 벤에서 쪽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매니저형은 여전히 운전중이셨다. 형 고생하네. 매니저 형과 얘기를 나누다 지민은 문득 인공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인공이와 헤어지고 마음이 영 찝찝한 게 아닐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인공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의 머리에 전구가 반짝였다!
"그래!!"
크게 소리치는 지민 탓에 차가 잠시 휘청하였다. 소리지르지 말랬지 박지민! 매니저형의 성화에도 지민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했다.
*
지민 선배는 예전과 같이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동기나 후배들도 그 때 그 상황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다들 무뎌진 것 같았다. 이번엔 그들에게 지민 선배가 한여름밤의 꿈으로 남았다.
월말평가 하루 전 날이었다.
남다른 연습량을 자랑한 그녀는 막바지 연습을 달려가고 있었다.
"주목, 주목!!"
연습실 문을 박차고 이사님이 들어오셨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사님은 크게 말하셨다.
"이번 심사위원에 '박지민' 가수가 참여한다! '박지민'이 누군진 다 알지? 전달사항은 여기까지! 다들 연습 열심히 해라-"
흐억- 입을 떡 벌렸다.
입을 떡 벌린건 그녀뿐이 아니라 다른 연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공이만 했을까.
자신있던 동작 하나하나, 발성 하나하나가 그 소식을 들은 후로부터 자꾸만 실수가 연발했다.
이를 악물고 다시 춰봐도 자꾸만... 그녀는 절망했다. 왜 이러지 진짜, 짜증나.
내일은 제발... 내일은 이러지 않기를.
*
"자자 월말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보컬 트레이너분들과 안무가 분들이 홀 앞에 앉아계셨고, 뒤로 연습생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안무가들 앞으로 한 명 한 명 한결같이 떨리는 표정으로 홀에 섰고, 홀을 벗어나서는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채 나왔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도 있었고, 활짝 웃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심사위원은 역시나... 그였다.
유하게 생겨서는 툭툭 무심히 독설을 내뱉는 탓에 많은 연습생들이 가슴에 상처를 안고 홀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에 의해 연습생들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배가 되었다.
지민의 독설을 귀로 똑똑히 들으며 인공이는 더욱 긴장되었다. 하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이깟 평가따위 내가 몇 번을 치뤘는데.
어느새 순서는 7명 안팎으로 좁혀져 있었다. 그제서야 인공이는 떨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홀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어떡하지 정말.
제 앞의 아이가 호명되었고, 그 앞의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 돌아와 앉고 있었다. 인공이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발성을 한 번 더 연습해 보고, 가장 실수가 많았던 안무를 한 번 더 연습해 보았다. 괜찮아 인공아 속으로 되뇌었다.
"주인공!"
드디어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으아!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성큼성큼 홀 앞으로 나갔다.
심사위원들 중앙에 큰 카메라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인공이는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래 인공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알지? 시작해보자."
한 달간 연습해왔던 노래 'Skinny love'를 제 스타일로 편곡해 준비한 그녀는 차근차근 불러나갔다.
그리고 곧 안무도 소화했다.
그녀의 연습량에 걸맞는 무대였다. 실수를 줄이고자 지난 밤에 엄청난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중간에 발이 삘 뻔 하였지만 몇 년간의 연습생 기간 동안의 연륜 때문인지 부드럽게 넘어갔다.
*
이번엔 '선배' 박지민이 아닌 '가수' 박지민으로 회사에 가는 자리였기 때문에, 지민은 고급 양복을 빼입었다.
이상하게 웃음이 자꾸 배실배실 세어나왔다.
인공이를 만난 후부터 회사에 가는 것이 묘하게 즐거웠다.
인공이를 놀려줄까? 아니야 나는 심사위원이니까 공평해야지. 인공이 열심히 준비했을까? 내가 추천해준 그 곡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 스쳤고, 그 끝은 그가 머리 손질을 마무리함으로써 끝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엔 베실베실 웃음이 가득했다.
회사에 다다랐고, 넓은 홀에는 연습생들이 가득했다. 역시 우리 회사!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그 수도 많았고, 비주얼도 실력도 상당했다. 폴더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특유의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 하곤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하지만 기분이 영 별로였다.
대체 인공이는 어디 있는 거야.
한 명 두 명...
수많은 연습생들이 심사위원 앞을 지나갔고, 그에 따라 지민은 웃기도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저 애는 데뷔할 만 하다 싶은 아이도 있었고, 저런 애는 어떻게 우리 회사에 들어온걸까 싶은 아이도 있었다. 그럴수록 인공이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갔다.
다음 호명할 리스트에 인공이의 이름이 떴다. 그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아주 기대가 되었다. 인공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홀에 등장한 인공이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여느 연습생들과는 다르게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민은 엄마미소를 지었다. 아구 우리 인공이 이뻐죽겠어.
다른 심사위원진들이 말을 걸어 오셨다.
"저 아이가 우리 회사 7년 동안 연습생한 아이야. 한 번 유심히 봐봐"
이미 그러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려다 말았다.
조금 실망이었다.
아, 실력적으로 실망이 아니고, 인공이가 내가 추천해준 곡으로 시험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부른 그 곡이 너무도 인공이와 잘 어울려 더 심통이 났다. 혹평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하겠다. 인공이가 안무를 하는 동안 심사위원진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잘 하지?"
"저런 아이를 왜 데뷔 안 시키는지 원."
내 양쪽으로 두 분이 말씀하셨다. 정신은 없었지만 왜인지 기분은 좋았다.
우리 인공이 칭찬 많이 듣고 사는 구나? 뭔가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역시 우리 인공이다 싶기도 하고.
끝내고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인공이가 그렇게 이뻐보일 수가 없었다.
하나둘 심사위원진들께서 말씀을 해주시고, 내 차례가 왔다.
연달은 칭찬으로 인공이의 표정이 많이 풀려 있다가, 내 차례가 오자 흡 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못 참고 웃어버렸다.
"푸흡... 긴장되나요?"
"아, 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공이의 행동에 또다시 웃음이 터질 뻔 한 걸 참았다.
"본인은 잘 한 것 같아요?"
"네, 연습한 만큼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나까 말투를 쓰는 인공이를 보곤 지민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 그렇습니까?"
인공이의 말투를 똑같이 흉내내는 지민이었다.
"이 말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제가 사장님과 상의해보도록 할게요."
"네..? 뭘..."
서인이의 대답과 함께 홀도 소란해졌다.
"뭐겠어요. 데뷔죠. 보아하니 연습생 기간도 길었던 것 같고, 실력도 데뷔하기에 손색없는 것 같은데."
"지민군, 이제 그만하는ㄱ..."
"연습실"
그는 손가락으로 1을 펴보였다. 그리곤 그답게 바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사실상 그는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의 폭탄급 발언에 다음 심사위원진들은 진땀을 뺐다. 그녀 역시 어벙벙한 표정으로 홀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앞뒤옆아이들은 그녀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혼이 나간 상태라...
*
무작정 손가락 하나를 펴보이던 지민에 그녀는 여러 가지 추리를 해보았다.
한 시간 뒤? 지금 오후 한 시는 지났으니까 새벽 한 시?
시간은 애매모호 했지만 장소만은 정확했던터라 그녀는 밤이고 낮이고 계속 연습실에 머물렀다.
언제 쯤 오시려나.
작가가 와씀니당 |
작가를 때려주세요!! 프리맞기!!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려나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ㅠㅠ 저번도 암호닉 많이 신청해주시고 댓글두ㅠㅠㅠㅠㅠㅠㅠㅠ 많은 힘이 된답니다! 특히 저번 화에 많이 힘 얻구 갔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왜이렇게 할 말이 생각이 안 날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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