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내용은 술술 써질까...
Robert De Boron-Chiru (Saisei No Uta)
정국이는 축구부 매니저의 집에 도착해서는 혀를 끌끌 차면서 저보다 낮은 눈높이에 제 눈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네 남친이랑 싸우지 말고, 좀. 니네 둘이 싸우고 왜 나한테 달려오냐?
네가 제일 걔랑 친하니까 그러지. 나중에 화해하면 한 턱 쏜다.
그냥 오지 마. 솔로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너 좋다는 애들 많잖아. 뭣하면 커플 하시던지.
여자애의 말에 정국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떠오르는 얼굴에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으면 좋겠다.
그 모습에 설마 전정국이 이제야 솔로탈출을 하는거냐며 부산을 떠는 여자애의 어깨를 잡아 그 여자애의 집으로 밀어냈으면.
시끄럽다. 가서 걔한테 사과나 해.
안 그래도 할 거거든. 잘 가.
고개를 끄덕인 정국이가 몸을 돌려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했으면 좋겠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고개를 들어올리자 막 집에 들어가려는 태형이가 보고 목소리를 내어 태형이를 불렀으면.
그런데 기대와 달리
태형이 집의 현관문이 가차없이 닫혔으면.
못 들었나?
형이라고 불렀던 정국이가 그런 제 목소리까 막아버리듯 닫힌 문에 정국이가 멋쩍게 제 목덜미를 매만졌으면.
그리고 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집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다음 날에 정국이가 태형이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다.
한참 안 받던 것이 겨우 연결이 되어 여보세요, 하는 태형이의 목소리가 들리면
정국아, 너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태형이를 불렀으면 좋겠다.
형! 오늘 일 없죠?
[어? 어. 뭐... 왜?]
그럼 오늘 오후 2시에 우리 학교 올래요? 나 시합 나가는데 구경해요.
[내가 그 시합을 왜.]
축구 좋아한다면서요. 고등학교끼리 시합하는 거지만 나름 볼만 할걸요?
[...]
올 때 음료수 사오는 센스. 잊지 마요. 아, 바쁘면 굳이 올 필요는 없고요.
대답이 없는 태형이에 이 형이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싶었던 정국이는 제 턱을 긁적이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핸드폰을 내려놨으면.
그리고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한 뒤에 운동장 한 켠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다.
경기가 시작이 되고 거친 몸싸움에,
힘을 가득 실어 박차는만큼 흩어져 올라오는 운동장 흙에,
어느새 저만치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
그 공간이 정신없이 활기를 띄웠으면.
중간에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 정국이가 사람들이 앉아있는 쪽을 빤히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다가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으면.
매니저가 건네준 수건을 목에 두른 채로 달려가 멍하니 서 있는 태형이를 놀래키듯이 앞에 쳐진 철조망을 퉁 내려쳤으면.
아씨, 놀랬잖아.
나 보러 왔어요?
너 말고 내가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나 이거 끝나면 딱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같이 먹어요.
... 넌 뭐가 그렇게 다 네 마음대로냐.
어, 후반전 시작하겠다. 내가 몇 골 넣는지 봐요! 두 골은 더 넣고 올게!
손을 붕붕 흔들며 다시 뛰어가는 정국이를 보고 작게 웃은 태형이가 이내 금방 어두워진 표정으로 정국이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태형이가 살짝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으면 좋겠다.
죄책감이라도 안 들게 네가 좀 어두컴컴한 녀석이었으면,
진짜 못된 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너는 어쩌자고 그렇게 빛나냐. 다가갈 엄두도 안 나게.
시합을 모두 끝내고 태형이가 요 사이 우울한 것 같아 정국이도 나름대로 신경을 썼으면.
축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제 시합을 보러오라고도 해보고,
태형이가 좋아하던 군것질을 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으면.
그러다 요 사이는 서로가 바빠져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얼굴 보자고 할까. 뭘로 불러내지. 심부름 시키면 또 화내려나?
어느 날 정국이가 뜸해진 태형이와의 연락에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가
몸을 일으켜 앉아 핸드폰을 빤히 내려보며 고민하던 사이,
누군가가 쿵쿵쿵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정국이는 의아함에 목소리를 높여 누구냐고 물어보면서 현관에 다가갔으면.
대답이 없는 상대에 가는 길에 인터폰으로 누군지 확인을 한 뒤에야 문을 열어줬으면.
그리고 제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찾아온 태형이는 거의 처음이라 기분좋게 웃으면서 태형이를 반겼으면.
무슨 일이에요?
어딘가 굳어보이는 얼굴, 꾹 다물린 입술. 쥐고 있는 봉투 틈으로 살짝 보이는,
하얗게 질린 손 끝.
정국이가 걱정스럽게 한 발자국 다가서려다가 태형이가 봉투를 들어 정국이의 품에 안겨주면서 그 걸음을 막았으면.
나 뭐 시킨 거 없는데?
정국이가 그 봉투를 받아들고 꽤나 묵직하고 크기가 있는 것에 놀라 이리저리 뒤적였으면 좋겠다.
뭔 놈의 빵이랑 우유를 이렇게 많이...
뭐냐는 듯 고개를 든 정국이를 보고 작게 숨을 고른 태형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으면 좋겠다.
이제 나한테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시키지 마.
... 네?
쓸데없이 심부름 시키지 말라고.
아, 뭐야. 그거 때문에 갑자기 뭐 화나기라도 했어요? 요즘 안 그래도 안 하잖아요.
못 알아듣는 척 하는거야?
뭐를요.
나는 지금,
너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고 있는거라고.
할 말이 끝났다는 듯 태형이가 뒤로 한 발자국.
태형이의 말이 뒤늦게 이해가 된 정국이가 인상을 찡그린 채 앞으로 한 발자국.
그 행동에 흠칫 놀란 태형이가,
자신의 집 쪽으로 두 발자국.
몸을 돌리려 한 발자국 더.
그 때 정국이의 입술이 억눌린 감정을 담은 목소리를 뱉어냈으면.
형이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냥 말해도 상관 없다 이거예요?
...
태형이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짓씹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는 뭐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알아?
아까보다 더 힘이 들어가 꽉 그러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본 정국이가 아차 싶어 제 입가를 손으로 가렸으면.
그리고 시선을 피했다가 천천히 돌려 태형이를 바라봤을 때 보인 것은
무섭도록 날이 선 사나운 얼굴이었으면.
여기 사람들이 좋고 내 직장도 근처라 가만히 네 장단에 맞춰준거지, 내가 진짜 그 협박이 무서워서 그딴 잔 심부름 다 해준 줄 알아?
... 잠깐. 방금 말은 미안해요. 내가 실수...
말하려면 해. 신경 안 써. 어차피 믿어줄 사람도 없을테니까.
태형이 형.
이제 연락하지마, 나한테.
한적한 복도를 울리는, 철문이 끼익거리며 닫히는 소리. 유독 그 소리가 크게 정국이에게 닿았으면.
던지든 내줬던 편의점 봉투를 내려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내보였으면.
정국이가 바스락거리는 봉투를 안은 채로 문을 닫을 생각도 못 한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봉투를 내던지고 몇걸음 옮겨 태형이의 집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내가 뭘 잘못한거면 차라리 그걸 말하고 화를 내라고.
왜, 갑자기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한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태형이에 결국 화가 난 정국이가 형 마음대로 하라면서 제 집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멍한 얼굴로 안에서 현관문을 바라보던 태형이가 느릿하게 늑대의 귀를 내보이고, 꼬리를 내보였으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확인했으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일은 하면 안 돼.
무슨 실험을 당했는지, 앞으로 얼마나 살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실험체였던 반인반수가
어떻게 앞길 창창한, 그렇게 빛이 나는 애한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거야.
그리고 사람이랑 엮여서 좋은 일이 뭐 있었다고. 이정도가 딱 좋아. 이게 당연한거야.
그러니까 얼른 이 묵직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자조적인 웃음을 뱉어냈으면 좋겠다.
아... 윤기 형 보고 싶다.
공허한 목소리가, 어두운 거실을 채우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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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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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