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이 매 편마다 즉흥적인 글은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이 글의 태형이를 쓰다가, 태형이를 닮아가나봐요.
Robert De Boron-Chiru (Saisei No Uta)
그 뒤로 태형이는 정국이를 아예 피해다녔으면 좋겠다.
항상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서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유치원에 제일 먼저 도착에 하릴없이 멍하니 있기도 하고,
먼저 나서서 가장 늦게까지 남겠다면서 굳은 일을 나서서 하기도 하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회식에 가 동료 선생들과 같이 오랫동안 자리에 어울리기도 하는.
정국이는 매일 그런 태형이에게 문자를 남겼으면 좋겠다.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태형이를 기다리기도 했으면 좋겠다.
분명 며칠 전만해도 같이 웃으면서 걸음을 맞췄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됐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걸까.
한없이 고민하면서,
짙은 한숨을 뱉어내었으면 좋겠다.
태형이와 같이 보냈던 날들이 어째서인지 지금 멍하니 흩어지는 이 하얀 입김과도 같아서
괜히 손을 뻗어 이미 사라지고 없는 하얀 연기를 움켜쥐었으면.
한참을 기다리다가 기침이 속상한 마음과 같이 입 밖으로 뱉어내어질 즈음,
정국이가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진작에 비밀번호나 알아놓을 걸.
이럴 때 쳐들어가서 나 피하지도 못 하게.
다시 한 번 정국이의 입에서 기침이 터졌으면 좋겠다.
기침과 같이 이 무거운 죄책감도 뱉어내어 졌으면 좋겠다고, 정국이가 생각했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한참 뒤에야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으면 좋겠다.
매일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 잠깐의 잠을 청하는 것이 아무리 체력이 좋은 저라도 무리인 건 무리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으면.
바로 옆집이어서 그런지 정국이가 왜 그러냐며 소리치던 것이 어렴풋이 들리던 것도,
나란히 있는 베란다를 이용해 넘어오던 것도,
종이뭉치나 작은 물건으로 베란다 창을 두드려 저를 부르던 것도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은 밤에
태형이는 안도감과 아쉬움 등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가슴 가득히 안았으면 좋겠다.
윤기를 보기만 해도 제가 지레 겁을 먹고 이러는 건가, 싶지만 금방 또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했으면.
영원히 사랑한다는 보장따위 없잖아.
또 누군가한테서 버려지면
그거
못 견뎌, 절대로.
그럴 바엔 아예 시작 안 하는게 나아.
게다가 반인반수와 사람이잖아.
깊은 감정을 가져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을거야.
응.
그럴거야.
마른 세수를 하면서 겨우 느지막지한 시간에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며칠이나 더 태형이는 교묘하게 정국이를 피해다녔으면.
결국 정국이도 화난 얼굴로 태형이의 집 현관문을 발로 차면서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하라는 말과 함께 거칠게 현관문이 닫힌 후,
어떠한 연락도 태형이에게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둘의 연락이
뚝
끊겼으면.
태형이는 매일 아침 이제 원래 일어나던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게 된 것,
이제 눈치를 보면서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 등등에 모두 안도했으면.
그 안도를 모두 덮을만큼의 허무함에 내리눌러졌으면.
먼저 연락을 그만두라고 한 것도 자신이면서 정작 자신이 원한 대로의 상황이 되었음에도 도리어 더 마음이 무거워졌으면.
주말 밤, 아무도 만나지 않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태형이가 몸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뒤늦게 찾아온 차가운 꽃샘추위에 두터운 외투를 하나 걸치고 집을 나갔으면.
편의점에 들러 한참을 정국이가 자주 사오라고 했던 빵을 내려보다가 비척비척 다른 것들을 사 돌아갔으면.
놀이터 옆을 지날 즈음 두터운 외투를 여미면서 태형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으면 좋겠다.
바스락거리는 봉지를 쥔 채로 가로등이 비추는 싸늘한 놀이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으면.
그러다가
금방 손목이 잡혀 그 걸음을 멈추었으면.
잡았다.
손목을 잡은 손길보다 귓가에 들린 목소리에 더 놀라 태형이는 몸을 돌려 저를 잡은 상대가
정국이인 것을 바라봤으면.
드디어, 잡았다.
정국이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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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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