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느리지만 계속 움직이는 중입니다.
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아침에 남준이가 세면대 앞에 서서 양치를 하고 있으면,
아직 무거운 눈을 부빈 윤기가 하얀 귀를 축 늘어뜨린 채로 그 옆에 섰으면 좋겠다.
나란히 선 채로 같은 거울을 바라보면서 양치를 끝내고,
윤기가 세수를 다 하고 고개를 올렸을 때 남준이가 면도크림을 바르고 있었으면.
코 아래로 하얀크림에 뒤덮힌 남준이를 본 윤기가 호기심에 남준이를 보면서 이게 뭐냐며 손 끝으로 크림을 톡, 건들였으면.
먹는 거 아니에요.
안 먹어. ... 진짜 아니야?
생크림 아니에요.
...
남준이의 말에 아쉬운 듯 손가락을 비벼 손 끝에 묻은 크림을 문지르는 윤기를 보며 남준이가 작게 웃었으면.
그리고 거울을 본 채로 면도기를 들어 고개를 살짝 든 뒤에
천천히 면도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기는 그걸 옆에서 빤히 바라봤으면.
살짝 올라간 턱,
그만큼 내려앉은 시선,
느긋한 손길.
면도 할 때는 원래 분위기라도 변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윤기가 면도를 한 부분이 거뭇하지 않고 깔끔한 것에 놀랐으면.
그리고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말로 남준이를 대뜸 당황시켰으면.
형은 털이 없어서 이거 할 필요 없어요.
나 털 많아.
아니, 토끼 모습일 때 말고요.
그래도 해볼래. 아, 네 턱 지금 하는 거 내가 도와줄게.
토끼야, 이거 칼이에요. 자칫하다가 다쳐요.
칼이야? 칼로 얼굴을 써는 거야? 회처럼?
...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남준이는 여전히 당황한 채로 제 머리를 긁적였으면.
그래도 나름 손재주는 자신보다 더 좋은 것 같은 윤기이고,
저렇게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데 거절하기 힘든 것도 있어서
결국 남준이의 손에서 윤기의 손으로 면도기가 옮겨갔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욕조 턱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고,
윤기가 그 앞에 서서 신중한 얼굴로 허리를 숙인 채 남준이의 설명을 들었으면.
할 수 있겠어요?
응. 아마도.
아마도...?
몰라. 걱정마. 칼로 조각내지는 않을게.
그렇게 욕실에 정적이 흘렀으면 좋겠다.
슥슥거리며 크림을 조금씩 칼로 밀어내는 아주 작은 소리만 울렸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가까워진 윤기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은 상태고,
윤기는 남준이의 볼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었으면.
의외로 능숙하지는 않아도 깔끔하게 면도를 해주는 윤기의 손길에 남준이가 내심 놀랐으면 좋겠다.
어느새 따라서 긴장하고 있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으면 좋겠다.
욕실 안은 그렇게 편한 침묵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면도가 거의 끝날 즈음에 윤기가 문득 제 볼을 간질이는 남준이의 숨결에 놀랐으면.
집중하느라 윤기의 고개가 내려가다가 어느새 둘의 얼굴 간격이 코 끝이 겨우 닿을 듯 말듯한 거리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으면.
윤기가 가만히 남준이의 얼굴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가까이에서 남준이의 얼굴을 이렇게 본 적이 있었나, 싶어서 빤히 바라봤으면 좋겠다.
만약 남준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손도 멈춘 채로 남준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의아했으면 좋겠다.
바로 코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하며,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숨소리,
어느새 뚝 멈춘 손.
어딘가 맺혀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으면 좋겠다.
눈을 깜박이던 윤기가 다른 손으로 남준이의 어깨에 손을 짚어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지탱할 때
남준이가 눈을 떴으면 좋겠다.
둘의 시선이 곧바로 가까이에서 마주했으면 좋겠다.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윤기가 놀라 뒤로 물러나면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으면.
아.
남준이의 어깨가 흠칫 떨렸으면.
남준이의 볼에 옅고 짧은 선이 생겼다가,
그 선을 따라 붉은 선이 맺혔다가,
느릿하게 남준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으면 좋겠다.
너, 피...
괜찮아요. 면도하다가 원래 좀 베이는거지.
어색할 뻔 했던 분위기가 그대로 당황한 윤기가 휴지를 한뭉텅이를 가져와 남준이의 볼에 문지르면서 깨졌으면.
남준이가 저보다 더 당황한 윤기의 얼굴을 보다가 웃으면서 괜찮다면서 휴지를 받아들었으면.
거울을 보면서 이리저리 고개를 틀어 면도 상태를 확인하고 이정도면 깔끔하게 잘 되었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다면서 윤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윤기가 웅얼웅얼, 얼핏 미안하다 말을 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연신 제 눈치를 보면서
욕실을 나와서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알바를 갈 준비를 할 때에도,
옆에서 안절부절하는 윤기를 알고 일부러 이리저리 더 걸음을 옮겨다녔으면.
그러다가 서랍장 한 켠에서 데일밴드를 꺼낼 때
윤기가 그 밴드를 뺏어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신 해주겠다면서 얼른 앉으라고 손짓을 했으면 좋겠다.
데일밴드를 붙이는 것도 어색해하느라, 밴드 2개가 서로 접혀 붙여진 채로 휴지통에 들어갔으면.
몇 번이고 남준이가 자신이 붙이겠다고 했지만 윤기가 고집을 부렸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다친 거니까, 내가 치료해줄게.
다시 집중했는지 입술까지 삐죽 내민 채로 미간을 찡그리는 얼굴에 남준이는 다시 웃으면서 가만히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집중 할 때는 이런 얼굴이구나. 아까도 이런 얼굴이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바라봤으면 좋겠다.
4개째의 데일밴드가 휴지통에 들어갈 즈음,
남준이의 출근시간이 다가왔으면.
결국 남준이의 볼에는 투명한 새살이 솔솔 난다는 연고만이 발라진 채로 치료는 끝났으면 좋겠다.
늦겠다면서 부랴부랴 신발을 신는 남준이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윤기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제 손가락을 꼼질꼼질,
손 끝을 꾹 그러쥐었다가
남준이를 불렀으면.
야.
...?
가방을 들어올리며 남준이가 현관문을 열다가 고개를 돌리면
윤기가 맨발로 한 걸음 다가와서는
남준이의 어깨를 잡고
상처가 나지 않은 볼 쪽에 입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간지럽게 스쳐간 감각에 남준이가 놀라서 윤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태연하게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냐고 윤기가 말했으면 좋겠다.
자신은 방금 무슨 오해를 할 뻔한건가 싶어 남준이가 역시 그런거였냐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내 괜찮다고 다시 한 마디를 하고 현관문을 닫은 채 걸음을 옮겼으면 좋겠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쓰라린 볼이 무색하게 그래도 뽀뽀를 받았으니까 됐다면서 기분 좋게 출근길에 나섰으면 좋겠다.
또 태형 씨가 가르쳐 준건가? 그렇다면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고 말 해야겠다.
혼자 그런 다짐도 했으면 좋겠다.
문이 닫힌 집에서 윤기는 현관에 서있다가
긴 한숨과 함께 그제야 쭈그려 앉아 제 머리를 헝클였으면 좋겠다.
멍청이.
고개를 숙인 윤기의 볼이 잔뜩
붉어져있었으면 좋겠다.
--
숨겨진 이야기 하나. 태형이는 윤기에게 다른 사람에게 사과할 때는 미안하다, 라고 말로 해야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숨겨진 이야기 둘. 즉, 뽀뽀에 사과의 의미가 있다고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 암호닉 |
현 / 2반 / 미름달 / 아몬드 / 린찡 / 날개 / 진달래 / 하앙 / 침침 / 파닭 / 설렘 / 나비 / 작가님사랑해요 / 수조 / 쌍디 / 크롱 / 오월 / 레티 / 루미 / 레연 / 꼬맹이 / 뀨를 / 밐 / 윤기야 / 모카 / 오리 / 0418 / 엉엉작가님사랑해요결혼해 / 준아 / #pillowtalk / 현! / 쌈닭 / 용의자 / 슙슙이 / 매듭달 / 헤븐 / 기쁨 / 밀 / 굥기 / 하앙쿼카 / 슙피디 / 상상 / 몽글이 / 요요 / 탄콩 / 바너바너 / 슈팅가드 / 초코에몽 / 홉요아 / 솜사탕 / 준이 / 주제 / 그린티 / 참참 / 각슈가 / 편지 / 찹쌀떡 / 감자 / 쩨 / 쿠쿠 / 구름 / 헐랭 / 쿠키주주97 / 짐짐 / 가가 / 뜌 / 토토네 당근가게 / 금붕어 / 맹공자 / 귤 / 모찌 / 연나 / 변호인 / 하늘 / 빠숑 / 다라다라달당 / 국윈 / 대형견 / 인천 / 딸기맛 / 프우푸우링 / 라즈베리 / 윤이나 / 아슈머겅 / 낮누몽몽 / 민트슈가 / 라떼 / 가슴이 간질 / 마트만듀 / 병든피클 / 밤 / 올림포스 / 노란윤기 / 쥬 / 초밥 / ♥남준이몰래 / 태태랑 나랑 / ♡피오나♡ / 스틴 / 희망찬란 / 어른공룡둘리 / 로슈 / 어른 / 주커 / 비숑 / ☆요다☆ / b612 / 이연 / 개미 / 흑백설탕 / 한소 / 너나들이 / 설탕모찌 / 부메랑 / 두부 / 비요뜨 / 우타 / 제어판 / 멍뭉이 / 연화 / 설탕맛 / 츄츄 / 포뇨 / 다이오드 / 니나노 / 슈가행성 / 소년 / 백 / ㄴㅎㅇㄱ융기 / 청연 / 슈가야금 / 로봇 / 구구 / 또르르 / 고딕 / 전정국. / 414 / 신셩 / ♥옥수수수염차♥ / 라일락 / 기나주 / 맥반석달걀닮았대요 / 사랑꾼 / 세계 / 클라리넷 / 사발면 / 수조 / 딸기빙수 / 비상 / 매혹 / 허니비sss / 호빈 / 0622 / 진진 / 굥기 / 찐슙홉몬침태꾹 / 윤기꺼야 / 고무고무열매 / 먹이주머니 / lucki1y / 플레어 / 슈비누나 / 삼월토끼 / 설탕과자 / 퀚 / 고요 / 감자도리 / 이구 / 유운기 / 다섯번째 계절 / 셜록 / 솨앙 /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 박짐뿡 / 마음 / 밤밤 / 쿠야쿠야 / 새우깡 / 620 / 릴리아 / 치명 Y / 호두 / 04랩슈 / 새벽하늘 / 제제감 / 아망 / 따슙이 / 뿌꾸 / 링링 / 버거킹 / 13월 / 배이 / 도키28 / 반짝손톱 / 코카콜라 / 꾸잉진 / 코넛 / 뚜루뚜뚜 / 진미진 / 우왕굿 / 돌돌 / 블루라임 / 솔선수범 / 석진센빠이♡ / 도식화 / 스카이 / 씨쏘 / 설렘사 / 이사 / 넌봄 / 딸기장미 / 이끼 / ★껌★ / 썸월 / 0622 / 봄바람 / 감자요정 / 낭자 / 52 / 지니 / 슈비두밥 / 사랑현 / 공중전화 / 시에 / 겨울의꽃 / 세븐판다 / 영감 / 나나뚜 / 똥맛카레 / 제리젤리 / 켓흐 / 아르망 / 미역 / 쀼쀼 / 민윤기 / 슈보 / 밤이죠아 / 만개 / 충전기 / 슈징슈징 / 빙그레 / 망개침 / 하나비 / 유지비 / 쿠잉 / 누누슈아 / 첸첸걸 / 쿨밤 / ♥자몽주스♥ / 이좋은걸왜안해 / 와다 / 달토끼 / 플라스틱 / 곰지 / 모닝빵 / 복분자 / 하늘토끼 / 빵빠레 / 망나니 / 바움쿠헨 / 페스츄리 / 1 / 에이블 / 츄파츕스 / 피자호빵 / 버블티 / 일게수니 / 랄랄 / 세상마상 / 망고 / 11시 58분 / 연두 / 777 / 태쮸 / 당근 / 사과폰 / 퐁당 / 굥기형 / 프레시 / 낮누 / 리리아 / 미키부인 / 베어베어 / 자몽소다 / 젤리말랑 / 노닝 / 아야어여 / 슈가 / 쿱쿱 / 슙뚜뚜루슙슙섀도 / 자몽 / 소리 / 감자감자의감자농심클레오파트라호잇 / 매직핸드 / 아담 / 소뿡 / 유리꽃 / 호루라기 / 1230 / 덜RUN / 꾸엉 / 모찌부 / 홈매트 / 707 / 돌이돌이돌이 / 버뚜 / 늉늉기 / 민꿉 / 준나 / 두둠칫 / 새벽 4시 / Ban / 챈 / 촤롸뢍 / 미학 / 광어회 / 몬무이 / 원늘보 / 앨리 / 미성년 / 마이홉 / 십칠원 / 비바 / 디기 / 홍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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