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리인 - 연인이여
평행선 (Paraller lines)
"운동 갔다왔어?"
"그냥 조깅"
"씻고 나와서 밥 먹어"
거실 통유리창으로 따뜻하게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걸 보고 성용이 얼굴 한번 보고 예쁘게 아침이 차려진 식탁을 한번 보고..
왠진 간질간질하는 기분에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와 사귈 때도 느껴본적 없는 간질거리는 느낌. 이건 설레임도 아니고, 긴장도 아닌데.. 이게 뭐지.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신혼부부 같다, 그치?'
그 날 아침, 성용이는 아침을 먹으며 이런 소리를 해서 내게 등짝을 한 대 맞은 후 훈련장에 갔다.
아마 내가 느낀 그 간질거리는 감정이 그런 감정 같아서, 들킨것 같아 부끄러웠던것 같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훈련이 끝나고 데이트를 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텅 빈 그라운드에 앉아 놀기도 하고. 그리고 오늘은 성용이가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가버렸다.
요즘 자꾸만 느껴지는 나에 대한 성용이의 다른 마음. 아닐거야 아닐거야 하고 내게 최면을 걸어봐도 성용이은 맞다고 맞다고 자꾸만 눈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아마 영화관에서 성용이의 눈이 내게 하려던 말이 이거였나 싶다. 어느 순간 부터 성용이의 마음을 자꾸만 부정하게 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선수들이 가버린 휑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앉아 멍하니 있었다. 노을도 지고, 살랑거리는 바람도 불고.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떴다 해봤다.
그가 여자친구가 있다는걸 알게된 다음 날 부터 난 편히 그를 볼 수 없게됐다. 원래도 편히 볼 수 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지나가던 복도에서 그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면, 알 수 없는 상태메세지를 카톡에 띄워두면 여자친구 때문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성용이 몰래 혼자 울기도 여러 날. 느릿하게 감은 눈을 다시 느릿하게 떠보면 그라운드 저 건너편에 갑자기 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도.
아.. 여자친구구나. 빨리 내가 비켜줘야하는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도저히 다리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눈동자는 자꾸만 그를 따라다닌다.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넘겨주는 모습, 손을 잡는 모습,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 발 맞추어 걷는 모습. 내 눈에 다 보인다, 다.
눈을 감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데 자리를 뜰 수도 없다. 한참을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을 봤다.
고개를 떨구고 땅을 바라봐도 흐리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봐도 흐리고 그렇게나 내가 사랑하는 그를 바라봐도 흐리다.
자꾸만 진동이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 없는 내게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누구긴 누구겠어 기성용이지.
[여보세요? OO아?]
"성용아....."
[들려? 전화기가 이상..]
"나 못 잊겠어. 나 못 잊어 성용아"
[OOO. 왜 그래..]
"나 못 잊어... 나 어떡하지 성용아..?"
[지금 갈게. 훈련장이지?]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 전화를 뚝 끊어버린 성용이. 두 사람이 아주 느릿하게 그라운드를 돌고 돌아 그가 날 발견할 때 까지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건지 그에게 자꾸만 뭐라고 말을 걸었다.
"하아.. 하아.. OOO"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내 이름이 불려지면 고개를 뒤로 젖혀 뒤에 있는 성용이를 올려다 본다. 그 새를 못 참고 또 흘러나오는 눈물.
그가.. 그가 다 보고 있겠지? 내가 우는것도, 성용이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뛰어온것도. 아냐 그러면 뭐해 그는 이미 결혼할 여자가 있는걸.
성용이는 내 머리통을 정면으로 두고는 내 옆에 앉아 절 바라보게 한다. 몇 초 동안 아무 말 없이 내 눈만 바라본다.
"이거 놔"
내 볼을 양 두손으로 잡고 놔주지 않는 성용이의 팔을 떼내면 성용이는 다시 내 두 볼을 잡아온다. 그리고 예고없이 들어닥치는 성용이의 입술.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입술을 떼내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옭아매는 성용이. 어둥바둥 발버둥을 쳐봤자 안된다는걸 알고 가만히 있으면 입술이 떼어진다.
빰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올리면 내 손을 단단히 잡는 성용이. 왜? 왜 그렇게 화난 눈을 하고서 날 바라보는거야? 왜.. 혹시 내가 모르는 니 마음이 있니?
"잊어. 무조건 잊어. 결혼할 사람이야. 잊으라고! 왜? 왜 난 안돼? 내가 지금까지 계속 눈치줬잖아. 나 좀 봐달라고"
어느새 성용이와 내 앞까지 온 그. 그의 여자친구도 우릴 봤는지 쉽사리 우리를 지나치지 못하고 서 있다.
"늬들 싸우나"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은채 말하는 그를 보고는 성용이의 팔을 뿌리치고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 그 자리를 떴다. 또각또각하고 나는 구두소리가 듣기 싫었다.
빠르게 걷는다고 걷는건데 성용이는 성큼성큼 뒤에서 조금의 간격을 유지한채 걸어오는것 같았다. 개의치 않고 걸었다.
요즘 성용이가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바람에 차를 몰고 올 필요가 없어져 주차장에 내 차는 없었다. 그래 뭐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주차장을 지나치려는데 성용이가 내 손을 잡고는 주차장으로 질질 끌고 간다.
"이거 놔!"
"............"
조수석에 날 태우고 운전석에 탄 성용이는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그와 그 여자를 보더니 이내 거칠게 엑셀을 밟아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그만 잊어. 형은 너 안좋아해. 다른 여자 보면서 웃고, 다른 여자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다른 여자 사랑.."
"알아.. 알아 성용아. 아는데 안 잊혀져. 너한테 이러는것도 미안하고 오빠한테도 미안한데 그게 안돼"
또 또 아이 처럼, 바보 처럼 성용이 앞에서 펑펑 운다. 이럴 수록 성용이 마음에 모진 짓하는거인줄 알면서도 난 이기적이게도 성용이 앞에서 운다. 그것도 서럽게.
마음 여린 성용이는 또 우는 내 모습에 갓 길에 차를 세우고 휴지로 눈물을 닦아준다. 그 모습에 더 눈물이 난다.
"이제 나 좀 봐줘"
그 한마디에 끅끅 대기만 하던 울음이 터져 성용이에게 안겨 펑펑 울고 말았다. 지금 나 보다 힘들 사람은 성용인데 성용이 가슴팍이 다 젖도록 울었다.
"성용아.."
말 없이 날 내려다 보는 성용이. 그 눈빛이 너무 다정해서, 날 너무 좋아하는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는 너에게 마음 못 줘..
"그렇다고 너 이용해서 그 사람 잊은 생각 없어"
"이용해. 내가 잘해줄게. 형 생각 안나게 내가 잘해줄게. 나 이용해서 형 잊어"
"기성용"
"응"
"............."
이렇게 순순히 대답을 해버리면 난 할 말이 없다. 그에게도, 성용이에게도 난 죄인이니까.
"나 믿고 따라올 수 있지?"
난 이기적이게도 그 날 아침 그 간질거리는 느낌 때문에 성용이 마저 놓지를 못한다. 아니, 어쩌면 난 조금씩 그 느낌에 익숙해지고 있는걸지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여기저기 얼룩진 눈물을 닦아주곤 안전밸트를 고쳐매준다. 내 입술에 짧은 키스를 하는것도 잊지 않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 옆으로 넘긴 앞머리를 매만지며 싱긋 웃는 성용이. 이 쯤 되면 난 이미 성용이의 포로다.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는 포로.
여주인공 마음이 거참 알쏭달쏭한게 독자여러분 마음을 애태우네요..;;
내일 6편으로 다시 올게요~ 그럼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 남은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아! 이벤트는 이 망상 끝나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Thanks to.
기성용하투뿅님
깡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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