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너징이 한숨을 내쉬었어. 일이 이렇게나 빠르게 진행될 줄은 몰랐거든. 너징이 심란한 마음으로 슬쩍 던져본 말에 엄마는
요새 들어 어두웠던 얼굴을 활짝 펴며 그래, 우리 딸 생각 잘 했어. 하고 너징의 엉덩이를 토닥였어.
아, 진짜. 내가 애도 아니고…. 너징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 차마 인상을 찌푸리지는 못하고
살짝 미소를 내비쳤어.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지.
너징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었어. 그래, 말 그대로 받았'었'어. 언제까지나 과거형이지.
어릴 때는 뭣 모르고 나는 이 길로 쭉 갈 운명인가 보다, 하고 주구장창 노래만 불러왔는데 또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닌 거 있지.
열댓 번은 넘게 본 오디션은 한 번도 붙은 적이 없었고, 슬럼픈지 한계에 부딪힌 건지 더 이상 실력도 늘지 않아.
그래서 뒤늦게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엄마한테 슬쩍 뜻을 내 비쳤어.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 너징이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어. 평소에 연습이다, 뭐다 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없기도 없었고 연습에 지쳐 수업을 들을 엄두도 못 냈던
너징이라 그랬지 성적은 중간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어. 그런 너징의 성적을 신기해하는 건 너징 친구들의 몫이었고.
그렇게 월요일 아침, 너징이 주말 동안 푹 쉬어 가뿐한 몸을 일으켜 교복을 챙겨 입고 가만히 생각에 빠졌어.
앞으로는 꾸미는것도 포기하고 공부만 해야할텐데, 이제 아침마다 꾸미고 가는 건 무리겠지?
그래, 이왕 하는거. 공부를 하려면 투명렌즈도 빼고, 아침마다 하던 고데기도 포기하고, 내 피부랑 다름없는 (베이스겸용)썬크림도 포기하고!
티, 틴트는 포기 못하는데…. 그래, 우리에겐 립밤이 있잖아! 너징은 고개를 끄덕였어.
너징은 길게 내려오는 머리를 가볍게 묶어 올리고 집에서만 간간히 쓰던 안경을 썼어. 얼굴엔 간단히 수분크림만 바르고, 립밤! 립밤 챙기고.
이제 아침마다 바쁠일 없겠네. 너징이 거울을 한번 바라보고 방을 나서, 간단히 아침이 차려진 주방으로 향해.
식탁에는 엄마와 너징이 마주 앉았어. 너징이 하품을 한번 하고 물컵을 드는데, 꽤나 기분이 좋은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
오늘 끝나고, 과외 선생님 오실거야.
버, 벌써? 너징이 순간적으로 당황해 입에 물고 있던 물을 꿀꺽, 삼켰어. 그와 동시에 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갔는지 켁, 켁 하는 기침이 나왔어.
너징이 기침을 하던, 말던 엄마는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이었어. 네가 공부한다는데, 엄마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니?
아니이, 엄마…. 이러실 필요 없는데. 너징이 작게 한숨쉬고 고개를 숙였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너징은 학교에서도 생각이 많았어. 하루 종일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함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지.
그런 너징을 보며 친구들은 슬슬 눈치를 살폈고. 평소엔 헤실헤실 잘만 웃고 다니던 너징이 잔뜩 풀이 죽어있으니 그럴 만도 했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꽤나 빨리 지나갔어. 너징이 절대 오지 않길 바랬던 시간이라 그런지,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면 눈 깜빡할 새에 내일이 오고.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하면 내일을 기다리는 1분이 1시간 같고 10분이 하루 같은 거.
너징은 전자에 가까웠어. 내일이 아닌 종례시간이었지만 말이야. 제발, 종례시간이 안 왔으면 좋겠다.
제발, 과외 시간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런 너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는 빨리 지나갔고, 종례시간은 눈 깜빡할 새에 다가왔어.
오늘따라 종례는 뭐 이리 간단한지, 곧 기말고사니까 공부 열심히들 해라! 하는 담임선생님의 말과 함께 종례가 끝났어.
너징은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어. 싫은 건 아닌데, 내가 한다고 했던 과왼데, 그냥.
진짜 과외 시작하게 되면 이제 노래랑은 아예 안녕이잖아. 너징이 몇 년을 매달렸던 건데…. 괜한 허탈감도 밀려오고.
집과 학교가 20분 정도 거리로 멀지 않았기 때문에 너징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어.
그러다 편의점에 들려 기분 전환도 할 겸 막대사탕 두어 개를 집어들어 계산하고는 하나를 까 입에 물었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단 게 최고지. 그래, 그렇지. 그런데… 왜 나는 계속 기분이, 안 좋을까.
썩 나쁜 기분도 아닌데, 썩 좋은 기분도 아니었어. 무기력하기도 했고, 지금 한다고 공부가 될까 싶기도 하고. 너징은 괜히 생각이 많아져.
공부를 한다고 해도, 나 무슨 과로 가지. …하아. 너징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현관의 번호키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섰어.
과외 선생님 오신다고 엄마가 집을 청소해놨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집안이 말끔해. 미끄러지겠네, 아주.
너징이 익숙하게 아무도 없는 집안을 휘젓고 다녀. 엄마가 청소해 놓은 너징의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에 들어가 무의식적으로 냉장고도 한번 열어보고.
할 일 없이 시계만 쳐다봤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가. 한참을 너징이 밍기적댔을까. 딩동, 하는 맑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과외 선생님이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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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었어. 그래, 말 그대로 받았'었'어. 언제까지나 과거형이지.
내가 원래 내 얘기를 중간중간 섞어서 쓰는데, 이게 진짜 내 얘기라서 쓰면서도 씁쓸했네요.
난 중학교 들어서자마자 노래를 시작해서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는거지. 하는 마음에 노래도 접고
공부를 시작해도, 마음이 불편한건 여전해요. 그냥, 좀 찝찝해.
주변에 잘되는 친구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열등감이 생기기도 하고.
요즘 마포대교 물 따숩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