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리얼 로맨스
Written by.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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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이유가 다 뭐라고. 나는 변백현이랑 싸운 뒤, 처음으로 쌩을 까고 마이웨이를 걸었다. 나는 좀 그 당시 멍청하고 귀가 얇았다. 변백현과 내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도 결국 오세훈의 계략이었다. 오세훈은 매일 나와 놀아주는 척 하면서 나를 흔동시켰던 거였다. 오세훈은 교내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아주는 노는 아이였다. 지나치게 흰 피부에 갈색머리. 착한 순둥이 미소를 지으며 날 갖고 놀았을 오세훈을 생각하니 지금도 열불이 터진다. 나는 오세훈과도 심하게 다퉜다. 그것은 비단 변백현과 내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가지고 놀았던 것까지 포함해서. 나는 오세훈을 때렸고 나도 똑같이 한 대 맞고. 오세훈 친구들한테 제지당했다. 그리고 오세훈은 나를 비꼬듯 말했다. 변백현이 없으니까. 너 아무것도 아니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누구 탓을 해. 네 탓이지."
그래, 그 땐 아니라고 바락바락 소리까지 질렀지만, 이제는 안다. 변백현을, 가장 친했던 친구를 의심했던 내가 문제였다. 만약 변백현이 진짜 게이라도, 나는 변백현을 이해해주어야 했다. 왜냐면 걔는 내가 더한 것을 해도 모두 이해해줬을 사려 깊은 아이였으니까. 나는 변백현과 싸운 뒤, 다시 찌질한 아이로 돌아갔다. 노는 아이들은 당연히 오세훈 편이였으니까. 내게 딱히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급기야, 우리 반애들도 아닌 선도부 애들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변백현하고 친할 때에 사교성이 좋아져, 옆 반애들과 관계가 원만한 편이었다. 변백현은 내가 없어도 반 아이들과 잘 지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날 귀찮게 따라다니던 김종대하고도 사이좋게 지냈다. 분명 나한테는 김종대 별로라 해놓고…. 너무 서글펐다. 한창 교내에서는 칼빵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오세훈은 제 팔뚝에 여자친구 이름을 그었다. 핏기가 붉게 올라왔다. 징그럽다. 정말.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 짓을 따라하고 있었다. 커터 칼을 쥔 손이 강단 있게 손목을 그어냈다. 핏줄까지 끊을 용기가 없었던 나는 얇은 줄을 몇 번이고 더 그었다. 나는 그 정도로 정신상태가 매우 약한 아이였다. 중학교 2학년, 요즘 하는 말로 중2병, 그런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따가워하면서도 상처위에 상처를 덧대어 긁었다. 빼곡하게 2cm가량의 직사각형 생채기가 생겼다.
"경수야, 너 왜이래. …정말."
김준면이 날 끌어안았다. 앞서 설명한 적은 없었지만 김준면은 우리 반 반장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진짜 눈웃음이나, 평상시에 가지고 있는 인상자체가 너무 좋고 훈훈한 외모를 가져,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아이였다. 그런 준면이 날 끌어안고 우는 날 다독였다. 나, 어떡하지. …백현이랑 쌩까니까.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야. 나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너무 버거워. 그냥 죽어버릴까? 김준면은 내 눈물을 제 엄지손으로 닦아주었다. 얼굴을 붙든 손이 너무도 다정해서 한 번 더 울컥할 뻔했다.
"이 얼굴에 죽는 게 아깝지도 않아?"
"…."
"친구랑 다툴 수도 있고 또 다시 화해할 수도 있는 거야."
그니까, 잠시 힘들어도 참아 봐. 변백현도 너랑 많이 친했으니까. 네가 힘들어하는 것만큼 분명 백현이도 힘들어하고 있을 거야. 나는 준면이의 말을 되새겼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2학년 때의 나 도경수는 굉장히 유약한 아이었다. 잔바람에도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댔고.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부렸다. 161/41, 깡마른 체구, 여자애들만큼이나 작은 키로 나는 반 아이들에게 중학교 2학년이 아닌, 초등학생. 완전 애였다. 반에는 내 엄마로 불리는 애도 있었다. 변백현이 지어줬다. 도경수 엄마라고. 내가 뭘 잘못하면 그러지 말라고 했지? 하면서 정말 엄마처럼 잔소리하고 무섭게 내 눈을 내려다보던 아이, 그 아이의 키는 제법 나와 차이가 나서 내가 올려다보면, 엄마라는 아이는 내 어깨를 붙들고 말했다. 애처럼 굴지 마. 아직 애긴 한데. 넌 또래들보다. 너무 애야.
사건은 한차례 더 터졌다. 오세훈과의 2차전이자, 마지막 결투였다. 나는 오세훈에게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다 상해서, 나쁜 마음을 품었다. 절대 오세훈 자체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없다. 나한테 배로 돌아오니까. 나는 결국 체육시간, 교실이 비워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가장 늦게 나갔다. 오세훈의 전자기기를 두 동강 낸 뒤였다. 손에 가득 힘을 주어 분리시키니 정확히 두 동강이 났다. 그 때 얼마나 웃음이 났는지 모른다. 근데, 체육시간에 너무 늦게 나가면 티 나니까. 부수자마자,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다행이도 아직 선생님이 오지 않았을 때었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오세훈이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제 책상위에 올려져있던 부숴진 전자기기를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오세훈의 눈물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였다. 희열을 느끼기에도 잠시 오세훈이 내게 가장 먼저 그 잔해들을 손에 쥔 채로 다가왔다. 네가 그랬지? 너 밖에 그럴 사람 없어. 아 체육시간 전에 누가 교실에서 가장 뒤에 나갔어? 어? 열쇠 누구 줬어? 주번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주번인 친구가 당연하게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도경수가 뒤에 나온다고 받아갔어. 하고 말했다. 이제 의심은 나에게로 완전히 굳혀졌다.
"아니야, 너랑 싸웠다고. 그렇게 사람 막 의심해도 돼?"
"너밖에 그럴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지."
"네가 날 너무 싫어해서 몰아붙이는 건 아니고?"
"끝까지 발뺌하겠다. 이거지? 나 이거가지고 교무실 좀 갔다 올게."
결국 사건은 커졌고 범인은 나로 종료되었다. 변백현과 김종대가 나와 친했던 애들로 증인으로 갔고, 나는 벌벌 떨면서 한 층 위 5층 옥상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먼지가 쌓여, 교복바지가 다 더러워졌지만 그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데, 4층 교무실 소리가, 너무도 잘들린다. 은색의 무언가에 스펀지가 둘러싸여있고, 아마도 난로위에 달려있는 그런 걸 옥상 옆 벽 위로 뚫어놓았나 보다. 변백현과 김종대의 목소리가 너무도 잘 들렸다. 경수가 그런 거 확실해요. 경수가 세훈이에 대한 분노가 컸고 또, 세훈이한테 복수한다고 했었어요. 김종대가 먼저 입을 놀렸고. 변백현이 묵묵하게 경수 자체는 나쁜 애가 아닌데, 몇 차례 다툼이 있어서 홧김에 그런 거 같아요. 경수 나쁜 애 아니니까. 너무 화내지 마시고 잘 타일러 주세요. 걔가 마음이 여려서…. 나는 거기까지 듣고 계단을 달려 내려와 교실로 들어갔다. 멀쩡한 척 할 거다. 안 들은 척. 또 김준면이 달려와, 엎드려 있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번 일이 너 잘못이어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한 번 쯤 할 수 있어. 괜찮아. 경수야. 나는 어째, 매번 김준면 앞에서면 더 애가 되는 것 같았다. 달래주니까 더 눈물이 났다.
"상담 끝났대. 도경수 위로 올라가."
변백현이 돌아왔고 변백현은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앞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아이에게 그 말을 부탁했나보다. 변백현이 멍하니 날 쳐다봤다. 나는 억지로 내려간 입 꼬리를 올리며 멀쩡한 척을 해댔다. 내 얼굴이 얼마나 엉망이 된지도 모른 채로.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의 협박 같은 말에 나는 결국 또 한 차례 눈물을 터트려내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합의는 부모님끼리 알아서 하도록 해. 너랑 오세훈 같은 아파트 산다며? 가까운 데 사니까. 만나기도 쉽겠네. 그렇게 가시방석 같던 상담이 끝났고 나는 오세훈과 결국 그 날 합의를 봤다. 오세훈네 엄마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애 물건을 이렇게 반 토막 내놓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대체 뭘로 부쉈대? 얘, 너 뭐로 부쉈니? 따지듯 묻는 오세훈의 어머님께 손으로요. 하니까 어이없다는 듯 허- 혀를 찼다. 어떻게 이걸 손으로 부쉈니. 손으로 보여줘 봐. 아줌마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부서진 걸 손에 들고 힘을 주어 부수는 동작을 하자, 작은 애가 힘도 좋네. 하며 다시 대화상대를 바꿔 엄마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 있었다. 분명 화면과, 자판이 분리되어 수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집에선 새 걸 물어내라며 똑같은 걸로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마지못해 그걸 사줬고. 나는 집안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됐다.
사건이 모두 종결되고 합의가 끝난 후, 다시 변백현이 내게 왔다. 2주, 3주 꽤나 오래 인사도 안하고 지낸 탓에 어색함이 눈에 보였지만, 변백현은 다시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아이란 걸, 너무 잘 알았던 탓이다. 백현아, 미안해. 그렇게 제일 먼저 말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바보 같게도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변백현이 다시 왔다고 기분이 좋아, 변백현의 말에 대답을 하고 시시덕거리기에 바빴다. 다시 우리는 예전처럼 돌아갔다. 통금시간이 생겨, 백현이와 오래도록 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8시 안에만 집에 들어가면 되니까 괜찮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시련은 찾아왔다. 재회한지 얼마 안 되어, 거의 한달 뒤? 두 달 뒤에 우리 집이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말, 12월에 다른 동네로 전학을 갔다. 변백현이 내가 간다고 하니까. 울먹울먹한다. 난 변백현이 우는 걸 여태 본 적이 없다. 백현이는 잘 가, 자주 놀러 올 거지? 하면서 나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
"당연하지. 자주 올게. 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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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사를 간 건, 결코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재개발구역, 그 부동산 돈벌이. 그런 이유로 이사를 간 거였다. 재개발 구역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집값이 올랐는데. 우리 부모님이 좀 똑똑해서 여기 재개발 백퍼 안된다고 확신을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하철역으로 두세 정거장이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변백현을 만나러갔다.
푸른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분홍색 후드티를 입고 있던 변백현이, 대뜸 옷 바꿔 입자고 제 집으로 날 끌었다. 나는 변백현 옷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그래. 하고 대답했고 우리는 삼일동안 서로 옷을 빌려주기로 했다. 누구한테 옷을 빌려준 것도, 빌린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너 분홍색 잘 받는다. 칭찬해주는 백현에게 너도 파란색 잘 어울려. 하고 응수해주었다. 변백현을 그 후로도 좀 자주 만나러갔다. 내가 전학을 12월에 가서 금방 겨울방학이 왔기 때문이다. 내 생일은 1월 12일, 변백현도 빠른 생일이었다. 2월 28일. 그럼에도 변백현은 자꾸만 엉아라고 불러라. 하면서 형 행세를 하려들었다.
"매일 네가 우리 동네 와서 노는 건 좋은데. 매일 너만 오니까 미안하다. 오는 데 한 시간 걸린다며."
"왜, 네가 오려고?"
"어떻게 가?"
"너 집 아파트입구에서 나오자마자, 길 건너지 말고 80번 타."
"어디서 내려?"
"부천 남부 역에서 내려. 집이랑 가까워."
변백현은 부수적인 질문을 많이도 했다. 내려서 전화해. 거기 복잡해. 했음에도 변백현은 불안해했다. 하긴 인천토박이인 주제에 부평에 가면 매일 길을 헤매는 변백현은 확실히 결단력 있는 길치였다. 나는 변백현이랑 끝과 끝, 몇 바퀴를 돌아서 어디가면 뭐가 있는지 아는데, 변백현은 몰라서 옷을 사러갈 때도 항상 내 팔에 팔짱을 끼운 채로, 알려줘. 여기 옷 만원이면 후드사고 니트 이만 원이면 사는데 어디야? 하면서 날 지도로 이용했다. 변백현이 우리 집 올 때 전화기를 놓지 않으면 안 됐다. 어찌나 불안해하며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는지, 변백현의 단점을 딱 하나 꼽자면 이거였다. 솔직히 중2땐 편식도 심했는데. 그건 다 나랑 만나면서 고쳐졌다.
'헐, 그게 뭐야. 윽 토나와.'
'너 치즈 안 좋아해?'
'치즈는 좋아해도. 어떻게 라면에 치즈를 넣을 수 있어? 그걸 왜 음식점에서 팔아?'
'너 치즈라면 한 번 먹어보면 그런 말 안 나온다.'
변백현은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제 멋대로 추리하여, 맛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먹지 않았다. 백현이 젓가락으로 진짜, 라면 한 줄인가, 두 줄을 집어서 숟가락위에 올려놓고 후루룩거리며 먹었다. 분명 입에 넣을 땐 표정이 구렸는데. 먹으니까. 입을 쩝쩝거리면서 잔향을 느끼더니, 오오! 괜찮네? 하더니 국물도 한 스푼 떠먹었다. 변백현 나 때문에 치즈라면을 처음 접했다. 그 뒤로는 제가 스스로 시켜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변백현이 나 때문에 섭렵한 음식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헐, 이게 뭐야.'
때는 바야흐로 우리가 처음 베스킨라빈스를 갔을 때였다. 파인트를 시켰는데 우리는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펐다. 나는 그린티, 변백현은 민트초코칩과 레인보우 샤베트. 왜 나는 한 개만 골랐냐고? 그야, 변백현이 사준 거였으니까. 나는 그 때 민트를 처음 접했고 변백현도 내가 고른 그린 티가 무슨 맛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했다. 이거 설마 녹차는 아니지? 윽, 슈렉색이다. 완전 맛 없어 보여. 변백현 특유의 찡그린 표정으로 편식을 해댔다.
"먹어 봐라. 또 맛있다고 빠지지나 말고."
"…얽, …어? 괜찮은데?"
변백현은 편식이 있는 거치고, 내가 맛있다고 먹어보라는 말에 곧잘 받아먹었다. 매번 표정을 찡그리면서 먹긴 했지만, 금세 오! 입술을 동글게 모은 표정으로 괜찮다는 말을 해댔다. 나는 민트를 처음 접해서. 변백현이랑 있을 땐, 아무거나 잘 먹는 편식 없는 어른 입맛이었는데. 민트 초코칩을 한입물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헐. 치약 맛이야! 이게 뭐야. 너 이거 좋아해? 알고 보니 변백현은 심각한 민트 덕후였다. 이건 좀 더 뒤에 나오겠지만. 처음 내가 민트를 접하고 놀란 거와는 별게로 나도 변백현처럼, 변백현이 좋아하던 경계심 들던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랑 변백현은 만날수록 점점 입맛도 취향도 비슷해졌다. 그래도 아직 변백현은 아메리카노는 못 먹을 거다. 나는 단 걸 지독히도 싫어했다. 20살이 넘어서야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하게 됐으니 말이다.
우리는 다음에 만나서 그 아이스크림 점에 갔을 때도 서로 취향 올곧게 민트 초코 칩과 그린티를 골랐다. 변백현은 그린티를 좋아하게 되었고 나는 민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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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변백현을 만났다. 지역이 다르고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건 아무문제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참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비록 야자도 하고 서로 바쁘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생기고 하면서부터 우리가 만나는 빈도수는 줄어들 엇지만 변백현은 자주자주 전화를 했다. 우리는 한 번 통화하면 끊을 줄을 몰랐다. 할 말도 없으면서 …어,어. 어 소리만 몇 번을 더하면서 결국 할 말을 만들어 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변백현에게 기억 나는 거 두 개, 변백현에게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거, 그리고 변백현이 실용음악학원에 들어가서 노래를 배운다는 거, 변백현이 기타를 능숙하게 치며 목을 가다듬고 불러주었던 팝송, 피아노학원이라더니, 언제 그렇게 단기간에 피아노를 배웠는지. 나보고 피아노 잘 친다고 할 땐 언제고, 변백현이 훨씬 잘 쳤다. 반년만에 체르니 30을 찍은 거다. 변백현이.
"넌 여자 친구 언제 생기냐?"
"어? 내가 말 안했어? 나 지금 사귀는 애 있어."
"헐, 진짜? 누구? 예뻐?"
"말해도 모르면서. 엄마 친구 딸."
"헐, 엄마가 소개시켜준 거?"
"그냥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고백해서 받아줬어."
변백현 이제 모쏠 아니네. 근데 뭔가 씁쓸했다. 솔직히 변백현은 계속 솔로일 줄 알았는데. 배신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변백현보다 심한 건 나였다. 난 중학생 때부터 20살이 될 때까지 연애 횟수가 열 번이 넘는다. 열 번이 넘은 뒤로 세지도 않았다. 물론 다 단기간 연애였다. 도경수 귀엽다고 줄 슨 여자들 때문에 중학생 때 제법 인기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옆 학교에 소문이 나서 난리였다. 변백현은 남중에 남고까지. 완전 막혀 살았지만. 음, 근데 다행인 건 변백현은 그 때, 한 번, 두 번? 이후로 쭉 솔로다. 정확하게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쭉 솔로라는 거다. 나는 스물한 살의 겨울에 마지막연애를 했다. 그리고 변백현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세 달 전이다. 아, 안 본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왠지 너한테 여자 친구라니, 좀 억울하다."
"넌 인기 많잖아. 도경수."
"아니, 그게 아니라. 이상해서."
"연애 처음 한다고 무시 하냐?"
미간을 좁히며 백현이가 실실 쪼갰다. 하긴 변백현이 연애하고 있을 때, 나는 솔로였으니까. 그래도 변백현은 제법 갔던 거 같다. 백일 넘었으면 제법 간 거지 뭐. 사실 내 연애 징크스는 50일이다. 50일이 되기 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꽤 된다. 도경수는 연애횟수가 많은 것 치고 연애를 못했다. 그래서 변백현이 그럴 거면 여친 왜 사귀냐고 물었던 거구나. 새삼 생각해보니, 그렇다. 난 겉모습만 반반했지 결코, 젠틀한 남자가 아니었고. 누군가 날 많이 좋아하면 쉽게 질려했다. 고백하면 살짝만 필터링해서 다 받아주는 식이었고.
"도경수, 가만 보면 진짜 감정 없이 연애하는 거 같아.
"감정 없는 연애가 어디 있냐?"
"중학교 3학년 때, 그 여자애, 좋아서 사귄 거 아니라며."
"그건 전학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친구 만들어보려고"
으이구, 그게 이유냐, 변백현이 내 팔뚝을 때렸다. 난 연애를 내가 원해서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고3때 한 첫 키스가, 처음 사귄 연하 여자애였을까?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스킨십의욕도 없었다. 성적욕구는 집에서 풀어도 충분했다. 야동하나면 풀 수 있으니까. 나는 고1때를 기점으로 변백현을 일 년에 한 번 꼴로 만났다. 고2때, 고3때, 대학생 때. 솔직히 중3때 매일같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백현이와 만났던 모든 일들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다. 그냥 부분, 부분 중요했고 재밌었던 일들이 떠오를 뿐이지. 그게 이 글의 한계점인 거 같다. 전지적 도경수 시점에, 도경수의 옛 기억에만 의존해서 쓰는 글이니까.
"너, 노래 많이 늘었더라. 전화로 듣다가 깜짝 놀랐어."
"아, 진짜? "
"응."
"오랜만에 네 노래도 듣고 싶다. 노래방 갈래?"
"응."
나는 변백현 보다, 일 년 더 늦게 실용음악학원 다녔다. 그전엔 쿠세도 있고 별로였는데. 변백현은 내 노래를 참 좋아했다.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했다. 꽤나 그 떄 내 목소리는 부드러웠던 것 같다. 또 그런 알앤비 종류만 불렀던 거 같고. 변백현은 락발라드를 좋아했다. 락발라드 노래를 부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밴드음악을 했다. 아, 고등학교 올라가서 밴드 부 보컬이 됐다고 했지? 나만큼이나 쿠세가 있었던 변백현의 노래엔 배운 자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깔끔한 음색, 매력있는 변백현의 허스키한 음색이 잡소리를 없애고 더 또렷해졌다. 고음을 울리는데. 속에 있던 무언가가 펑 터지는 느낌이다. 변백현은 꽤 많이 늘었다. 같이 노래방에 온 게 부끄러워 질 정도로.
"나, 아직 학원 다닌 지 삼 개월밖에 안 돼서 노래 잘 못해."
"너 원래, 잘 부르잖아."
"…헛소리야."
나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무난하게 응급실을 불렀다. 그 후에 내가 예약한 노래는 모두 슬픈 발라드였다. 난 지나치게 슬픈 감성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부정적인 아이로 청소년기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변백현은 자신감에 차고 신나는 노래를 선호했다.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를 비롯해서 힙합까지, 안녕하세요! 저희는 배치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변백현은 끼가 넘치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내게 훅을 요구 하면 나는 그 부분의 가사를 재빨리 읊어주었다. 변백현은 확실히 인재였다.
"백현아, 너는 가수할거지?"
"그럼, 중학교 때 한 약속 잊었어? 우리 같이 데뷔하기로 했잖아."
하지만 그 현실성 없는 생각들은 성인이 되어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두 세 차례 회사를 나가고 옮기다가 제 풀에 지쳐서 노래를 직업삼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고, 변백현은 아예 J사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듯했다. Y사는 스타일이 안 맞는다고 했고. 변백현은 J사를 삼차에서 떨어진 뒤, 그 뒤로 아예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과의 마찰과, 스스로의 자괴감으로 꿈을 포기하고 새 길을 찾았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아직도 변백현은 꿈을 잃지 않았다. 언더에서 활동도 하고 꽤나 열심히 했다. 대학도 실용음악과로 잘 갔다. 나는 그와는 상관없는 과를 선택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미디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칠십, 팔십 들어가며 비싼 음악학원비를 내던 변백현을 생각하면 난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변백현이 나를 대신 해서 계속 음악을 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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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과 나는 중2때 잠시 담배에 손을 댄 적이 있다. 한 달에 두 개비 일정도로 적게 폈다. 다 남의 것 하나 빼어다 피는 거였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우리는 서로 만났다. 공교롭게도 담배종류가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담배종류를 바꿨는데 그것도 같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달라졌는데. 그 뒤로 우리는 매일 같은 종류의 담배를 폈다. 가끔 비슷한 다른 것을 피긴 했지만 그것도 다 맨솔이니까. 변백현은 습관적인 흡연자였고, 나는 습관적이긴 했지만.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자제했다. 한 달 끊고 한 갑피고, 두 달 끊고 두 갑 피고, 거의 이런 패턴이었다. 변백현은 가끔 지나치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우리가 만나온 시간이 아무리 길다지만, 변백현과 나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변백현은 단 걸 좋아해서 조금 통통했다면, 난 단 걸 극도로 싫어했고 잘 먹어도 비쩍 말랐었다. 그래서 변백현이 제발 살 좀 찌라고 라면을 세 개 끓여서 두 개 분량을 다 나 준적도 있었다.
"헐, 너도 바뀌었네?"
말보로 레드에서, 맨솔로, 맨솔에서 블랙맨솔로, 아이스블라스트가 새로 나오면서 아블로. 우리는 만날 때마다, 자연스레 식후 땡을 함께했다. 레드에서 맨솔로 바뀐 건 순전히 변백현이 민트를 좋아하기 때문일 테고, 맨솔 뒤로 바꾼 담배들은 모두 맨솔의 후속 작이었다. 변백현은 항상 라이터를 못 켜는 나를 보고 라이터기름이 아깝다며 실실 쪼개며 잇새로 담배를 물고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아, 맞다. 맨솔이 목에 안 좋대."
"목에 안 좋으면 뭐하냐. 이미 흡연자인데."
"난 끊을 생각으로 말 한 건데."
"알겠어. 너는 끊어라. 엉아는 계속 피련다."
"…같이 좀 끊어주면 안 되냐."
변백현이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이미 끝난 변백현의 변성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됐다. 스무 살의 변백현과 스물 한 살의 변백현과 스물 두 살의 변백현의 목소리는 많이 달랐다. 전화를 받으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번호는 백현이가 맞는데.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는 모르겠는데. 변백현은 항상 모든 전화를 목소리를 더 깔고 받았다. 예전엔 좀 촐랑거리는 톤이었는데. 제법 남자다운 티를 냈다. 근데 변백현 목소리가 변한 건 다 담배 때문이다. 난 성인이 되어서 카페에서 변백현과 말하다가, 변백현의 목소리에 대한 언급을 했다.
"나는 펴도 목소리 안 변하잖아. 넌 왜 이렇게 변했어?"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나보지."
"그 전에 네 목소리 참 좋았는데. 물론 지금도 카랑카랑하니 허스키해서 매력 있는데…."
"아, 그렇게 많이 바뀌었어?"
"응."
"난 잘 몰랐네."
어깨를 으쓱하는 백현이,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다. 오랜만이네. 그래. 사실 성인이 되어서 변백현을 만나면 뭐든 다 오랜만이 되었다. 그만큼 변백현도 나도 바쁘니까. 아까 카페에서 변백현이 돈을 모두 냈기 때문에, 노래방 비는 내가 내었다. 변백현이 자기가 낸다고 하는 걸 막았다. 내가 여자냐? 왜 자꾸 너 돈 써. 저번부터 변백현은 자꾸 내가 낼게.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런 말 하면 멋있는 줄 아는데. 고맙긴 한데. 정말 돈을 내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친구끼린데 당연히 더치해야지.
"2번방."
"어."
우리는 노래방에서 또 한참을 노래했다. 변백현, 이 무서운 애는 볼 때마다 노래실력이 일취월장한다. 변백현도 항상 나에게 저번보다 낫다고 지금이 짱이야 라고 했지만. 매번 지금이 짱이라는 그 말은 왠지 신빙성이 없었다. 변백현은 허스키해진 음색으로도 꽤나 높은 고음을 찔러 내리며 음을 이었다. 그리고 변백현은 어떤 노래를 예약하더니, 전엔 한 마디도 않다가 무슨 말을 내뱉었다.
"아, 혹시 오해할까 봐. 그러는데. 이 노래 너랑 있어서 부르는 거 아니야. 평상시에도 부르던 곡이야."
달달한 고백 노래였다. 노래반주가 나올 때 백현이 대뜸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백현이가 노래를 부를 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생각해보며 들은 적 이 없었다.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귓가로 박히는 가사들이 간지럽게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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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반친구들 캐릭터가 꽤나, 엑소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네요.. 오세훈 하얗고 깡마른 거 하며, 김준면 훈훈하게 생기고 인자한 미소하며...
백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캐릭터가 딱 백도임 ㅠㅠ 딱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키가 반대.. 키가 중학교 때 똑같았는데.. 왜 지금은 제가 더 큰거죠?..
백현이 역할 친구가 길치인것도 사교성좋은것도.. 모든 게 다 발리네요... 도경수캐릭터는 좀 현실감없이, 팬픽속 도경수같은데.. 그게 실화라니.. 뭐...ㅋ
아무도 작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거 픽션아니라.. 제 실화를 소재로 팬픽으로 각색한거에요..ㅜㅜ
솔직히 이거 쓰면서도 변백현이라는 캐릭터로 탈바꿈한 제 친구가.. 이 글을 읽으면 딱 저라고 알아볼까바... 겁나요.. 헝헝..
물론 다행이도. 친구가 아이돌에 관심을 끊으면서 팬픽도 접어서 휴..;
이 글은 인티랑 홈에서만 보았으면 좋겠어요.. 뭐 잘 쓰지도 못해서 긁어가지도 않을 것 같지만..^^;
제가 쓴 글중에 청리로는 유일하게.. 마우스키보드 차단, 퍼가기 금지입니다..ㅠㅠ..
아마 C편부터는 허구성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성이 더 좋기때문에.. ^-^..(그래도 백현이랑 경수 이어줘야죠..!!)
한 D편 E편에서 완결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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