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 Want
Written by.흑지
*
가을바람이 너무도 시리다. 꼭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한 것 마냥, 날이 꽤 어둡고 쌀쌀했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언덕을 올라가는데, 걷는 다리에 감각이라곤 없다.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단숨에 올랐다. 숨이 차, 헉헉 거리는 데도 꼭 그게 남의 일 마냥 멀게 느껴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세훈은 얼굴에 닿는 바람이 유독 차다고 느꼈다. 내 엄마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 엄마. 생각만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친어머니를 떠올리며, 힘겹게 눈물을 닦아내고 영안실로 들어갔다. 흰 이불을 끝까지 덮은 시신을 애써 내려다보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엄마의 육신이 흩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만물의 시작이 흙에서부터 비롯되었듯, 다시 땅 밑으로 되돌아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당연한 거였다. 그 때가 언제인가를 모르는 것일 뿐이지.
“나, 왔어.”
꽤나 담담했던 목소리로 불렀지만, 백현 역시 물기어린 얼굴이었다. 소리죽여 울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누가 자신을 봤다는 생각에 세훈이, 몸을 뒤로 내뺐다. 도착했으면 도착했다고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세훈이 엄지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부끄럽게도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말았다. 그것도 친구도 아닌 변백현한테. 세훈은 민망함이 더 커서, 고개를 휙 돌렸다.
“…미안.”
“…그 발인은 삼일 뒤에 할 거야. 그 때까지만 이라도 도경수 데려올 수 있어?”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띄엄띄엄 말을 했다. 그래,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당일 날은 도경수에게 말할 자신이 없다. 친어머니의 죽음은 그런 거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고 나를 세상에서 지켜주던 보호막이 산산조각이 난 듯 깨어져, 세상에 있던 모든 고통과 힘듦이 온통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아서 울고 또 울어도 변함없는 상실감과 아픔은 말로 이룰 수 없는 거였다. 세훈은 그걸 겪었었기에. 더욱이 잘 알았다. 혼자 남겨질 경수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보았다. 아마 아버지도 안 계시니까. 몇 배로 더 힘들 거다.
그 정신적으로 아픈 경수가, 그 작고 약한 아이가.
“내가 잘 달래볼게.”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제 경수 혼자야. 보호자가 아예 없어.”
“…아, 정말? …어떡해.”
“모르고 있었구나. 너도 모를 정도로 숨기고 있었나보네.”
“도경수가 애가 좀 그래.”
자기 상처보다, 남이 자기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거에 더 아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아이. 다친 상처를 밖에 들어내기보다, 통풍도 안 되게 감싸고 숨겨, 더 곪게 만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죄이며, 자학하는 아이. 알고 있었지만, 그 걸 아는 척하면 자존심 상해할까 봐. 아파할까봐. 말하지 못했다. 변백현은 도경수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적정선을 넘기지 않았다. 그건 도경수에 대한 예의였고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으로써의 배려였다. 그래서 지금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백현은 자신 때문에 도경수가 이렇게 변한 게 아닐까 두려웠다. 상황이 어쨌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나만큼은 도경수를 알아줬어야 했는데. 힘든 걸 모두 털어버리고, 쉴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줬어야 했는데.
“세훈아, 경수 나한테 맡겨.”
“…무슨 수로. 너 아직 어려.”
“다 생각이 있어. 경수, 내가 데리고 다닐게.”
멀쩡히 학교도 졸업시킬게.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는 백현에 세훈이, 잠시 벙쪄있다가. 그래.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저번부터 세훈은 대강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세훈이 종인을 좋아하는 그 감정만큼, 어쩌면 그 감정보다 더 컸을 백현의 애정을. 도경수의 일이라면 지금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어도, 무작정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애였다. 세훈과 친하지 않아도 ‘도경수’ 세 글자에 이렇게나 크게 마음이 동요하는 걸보면. 변백현은 얼마나 오랫동안 도경수를 좋아했던 걸까? 얼마나 마음속에 품은 채로 살아왔던 걸까?
“…찬열이도 불러.”
“뭐?”
“찬열이도 경수 친구야.”
“그렇지만 걔 다리 양쪽 다 부셔져서….”
목발도 못 짚을 텐데…. 세훈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백현은 휠체어라도 태워서 데려와야지. 친구 어머님 장례식인데. 하고 제법 어른스러운 투로 말을 했다. 어느새 둘의 눈을 촉촉이 적셨던 눈물은 메말라있었다. 백현은 근데 왜 너만 왔어? 종인이는 하고 되물었다. 세훈은 작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몸이 무겁대. 잠 좀 재우고, 발인하고 장례식 시작하면 그 때 부르려고. 불덩이더라. 하고 둘러댔다. 백현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아, 아프구나.
“…아주머니 가족 분들한테도 연락드려야겠지.”
“…어.”
“ 친가 쪽과 외가 쪽 사이가 좋지 않았대.”
세훈이 백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경수를 구제해주면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거였다. 집안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뒤, 가족들과의 연을 끊고 지냈던 경수의 부모님은 여건 상, 도경수 하나만 낳아 행복하게 잘 살아오다가, 도경수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무렵에, 아버지가 이유모를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시게 되면서 집안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져 내렸다. 때마침 아버지가 보유한 주식마저도 하루 만에 대폭락하게 되면서 이것마저 팔지 않으면 그 회사가 부도가 나서, 조금 남은 돈마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경수는 더 잃기 전에 그 주식을 처분했고 덤덤하게 생활을 잘 이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재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도경수는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재혼하면서부터 이상한 새 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 도경수는 미쳐버렸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세훈은 도경수를 도와주기 전부터, 있는 집 자식들의 이야기는 죄다 알고 있었다. 그저 필터링해서 개개인의 잘 먹고 잘 사는 얘기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았을 뿐이지. 오세훈은 저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가엾게 여겼다.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안 계신 아이들의 뒷조사를 했다. 그 아이들 중에선, 충분히 유산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도경수처럼 오세훈의 도움 없이는 가난하게 살게 될, 원래의 부유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어머님일이니까. 오실거야. 형제분들도, 경수 외할머니도.”
“…그런 것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구나.”
“도와주려면 알았어야 했으니까.”
“…여태 네가 왜 도경수랑 같이 다니는지 이해 못했는데.”
너 경수 도와주고 있었구나…. 백현이 뒤늦게 깨달은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내가 도왔어야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내가 미안해. 혼자 아파했을 경수를 도와줬을 세훈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왜 모르고 있었을까. 오세훈은 보기보다 꽤 괜찮은 아이였다는 걸. 겉으로 보면 차갑고 무심하고. 있는 집 자식이라, 지 멋대로 살고. 껄렁껄렁 거리는 게 나쁜 애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오세훈이 도경수를 도와주고 있었다. 도경수를 좋아했던 변백현은 정작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 생각이 들어 더 미안해졌다.
몇 시간을 더 있다가, 날이 밝을 때쯤 되니, 세훈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집 무슨 동이야? 학교랑 가까워? 묻던 세훈이 기사아저씨가 왔다면서 제 차를 태워주고 먼저 백현을 내려주었다. 일단 학교부터 갔다 오자, 경수네 외가 쪽 가족 분들께는 내가 따로 연락드릴게. 그 때가 새벽 6시 경이었다. 백현은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자초지종 설명을 드렸고. 경수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계신 부모님에게 경수가 많이 힘들어 할 텐데, 자신이 장례식에서 같이 있어주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부모님은 경수와 요새는 소원해진 게 아니었냐고 되물었지만, 백현은 여전히 아주 친하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
세훈은 잠 든 종인을 흔들어 깨웠다. 여전히 누워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지 못하는 종인에게 교복을 가져다주고, 억지로 와이셔츠를 팔에 끼웠다. …으음. 잠에 취한 채 팔을 끼고 있는 종인에게 일어나, 잠팅아. 나는 한 숨도 못 잤어. 하고 세훈이 성을 내었다. 종인이 스스로 옷을 껴입다가 문득 물었다. 새벽에 잠깐 일어났는데. 네가 없더라. 너 어디 갔다 왔어? 그제야 종인이 묻는다. 아직도 잔뜩 졸린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였다.
“내가 없으면 먼저 전화라도 했어야하는 거 아니야? 섭섭하다.”
“…헐, 적반하장이네. 나 허리아파서 화장실도 겨우 갔다 왔는데.”
“그건 미안한 일인데, 어쩔 수 없었어.”
“뭐가 어쩔 수 없었어야, 매정하게 나 내버려두고 가버리기냐. 서운하게.”
“…경수네 어머님 돌아가셨어.”
김종인 네가 왜 울 거 같은 표정이냐? 되묻자, 종인이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우리 엄마, 아빠 산소 못간지도 꽤 됐는데…. 엄마 생각나서 그래. 종인이 손을 두 번 휘저었다. 보지 마. 달래주지 마. 그런 의미였다. 누군 엄마 있냐? 세훈이 화내듯 되물었다. 너 울지 마. 울어도 좋은데 내 앞에서 울지 마. 세훈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종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괜히 김종인이 저런 이유로 울면, 자신마저도 걷잡을 수 없이 땅 끝으로 추락할 거 같아서였다. 너 울면 더 슬프단 말이야. 울지 말라고! 세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학교가야지 종인아. 종인의 어깨를 잡고 뒤집어놨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다. …너 왜 이렇게 부었어? 방금 울어서 그렇다고 치기엔 눈이며 볼이며 팅팅 부어있었다.
“나쁜 꿈을 꿨어.”
“…뭐?”
“그래서 깨어났는데. 네가 없었어.”
“….”
“무서워서 울었어.”
세상에서 나 혼자 남겨진 거 같아서.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 이거였어. 이제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마저도 없으면 나 어떻게 살지? 종인이 세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철없게 굴어서. 너도 어머님 여의고 힘들게 사는 거 아는데. 나만 엄마 없는 척해서 미안해. 나는 그냥, …네가 내 옆에 없었던 그 꿈이 꼭 현실처럼 생생해서, 깨어나도 네가 없어서.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 내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게 넌데.
“…바보야, 내가 잠깐 없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냐.”
“그냥, 꿈이 생생해서.”
“꿈같은 거 믿지 마.”
늦겠다. 학교 가야지. 세훈이 종인의 양 손을 끌어 침대위에 앉혀놓았다. 일어나는 건 할 수 있지? 밥 먹자. 세훈이 종인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는데. 종인이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 정말 이러기야? 학교 늦는다니까.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세훈은 그렇게 말을 했다. 나, 부축해줘. 무슨 말을 하나했더니. 고작 하는 말이 그거다. 세훈이 웃었다. 뭐, 부축까지야. 허리 아픈 건 이해하겠는데. 그게 그렇게 아픈가? 세훈이 묻자, 종인이 아무 말 없이 세훈의 배를 팔꿈치로 쳤다.
“겪어보지 않고선 모르지.”
“…진짜 아픈가 보네.”
“그럼 내가 지금 엄살떨겠냐.”
세훈은 종인의 허리에 손을 감은 채로 부엌으로 갔다. 앉으세요. 무슨 집사라도 되는 것 마냥, 평상시엔 쓰지도 않던 냅킨까지 올려두고선 수저와 포크를 올려둔다. 웬 포크야. 젓가락 쓸 거야. 하고 얘기하는 종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세훈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너 스파게티 좋아해? 잘은 못하는데. 아줌마가 한 번 알려준 적 있어. 알리오올리오. 근데 맛은 장담 못해. 알려주고 나서 딱 두 번 만들어봐서. 세훈이, 냄비에 물과 소금을 적정량 넣고 스파게티 면을 넣은 뒤 삶았다. 냉장고에서 깐 마늘을 꺼내어, 칼로 저민 뒤, 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붓고 마늘을 볶았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종인을 떠올리며 페페론치노는 생략했다. 파슬리가루를 붓고 소금과 올리브유를 한 차례 뿌린 뒤에 익은 면과 볶아내었다. 생각보다 외양은 그럴 듯 했다. 파마산 치즈가루를 여러 차례 뿌린 뒤, 접시에 담아내어 종인에게 건냈다.
“…맛있다.”
“정말?”
“안 어울리게. 요리 잘하네.”
“운 빨이야.”
“그런 것 같기도….”
너 요리하는 거 이 집 살고 나서 처음 봐. 놀리듯이 종인이 말하자, 세훈이 종인의 머리에 주먹을 쾅 박았다. 이게, 서방님이 밥 차려줬으면 군말 없이 먹어야지. 종인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럴 바엔 내가 해먹고 말지. 종인이 중얼거리자, 세훈이 미소 짓는다. 그냥 먹어. 세훈이 요리한 파스타는 의외로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종인의 머릿속에 있는 스파게티는 토마토스파게티와, 까르보나라가 전부인데. 알리오 올리오. 이름도 특이한데, 맛도 신기했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면, 거하게 일 치루고 난 다음날에 이렇게 아침밥 차려주는 게 로망이었어.”
“…의외로 로맨티스트네.”
“근데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일찍 한 거지. 의문이다.”
“같은 집 사니까. 결혼한 거랑 쌤쌤. 그런 느낌 아닌가?”
“그런가?”
근데 로맨티스트치고는 나한테 하는 행동이 별로다. 종인이 툴툴거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오세훈이 그걸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다. 그 입술을 엄지와 검지사이에 끼워 잡은 뒤, 귀여워서 그런다. 귀여워서. 하면서,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뭐하는 거야! 먹고 있는데. 너 손에 다 묻어. 세훈이 제 손을 다시 제 입으로 가져다가 혀로 날름, 손을 핥았다.
묻어도 돼. 깨끗해. 말하는 세훈의 목소리에, 발끝이 저릿해진다.
“진짜 좋아하면 이러는 게 정상 아니야?”
“…그건 초딩들이나 그렇지.”
“그럼 난 초딩할래.”
서툴러도 좋아하는 감정 확실하게 보이는 초등학생. 나 그거 할게. 종인아, 너는 가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엽다. 분명 선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다가가기 어렵고 그냥 마냥, 어려운 애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가끔 표정 굳히면 원래 나이보다 열 살은 많아보이다가도, 입술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다거나, 앞머리 정리를 하며 슬쩍 위를 쳐다볼 때, 그 때 제 나이보다도 어려보이고 마냥 사랑스러운 거 있지? 근데 난 이거 다 너한테 말 못해. 부끄럽거든. 요새는 피지 않지만, 담배를 빼어 물거나,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워져 있을 때, 그 모습이 너무도 아찔하고 섹시해서, 담배를 빼앗은 채로 입을 맞추고 싶었던 적도 있어. 네 피부가 나보다 유독 까만 것도 나와는 달라 매혹적이었고. 근데 또 차차 말하지만 이걸 너한테 다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저, 열렬히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 그대로 나를 표현 할게. 종인아.
“밥 다 먹었어. 학교 가자.”
“응, 기사아저씨, 차에서 주무시고 계시니까. 깨워서 바로 가면 돼.”
“나 부축 안 해줄 거야?”
가방을 매고 나가려는데, 종인이 식탁에서 허리를 짚고 겨우 일어나, 세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다. 세훈이, 가방을 내려놓고, 종인의 앞에 등을 내어주었다. 업혀. …업힐 거까지야. 종인이 주저했지만. 세훈이 먼저 종인의 발목을 잡았다. 세훈이 종인을 업고, 종인의 방 앞에 놓여있던 가방과, 현관에 있던 제 가방을 손에 든 채로, 종인을 한 번 더 끌어올렸다. 그래봤자, 마당에서, 대문까지 얼마나 된다고. 종인이 중얼거렸지만. 세훈이 물었다. 오늘 하루 종일 업히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학교서도 업힐 거야?
세훈이 물었지만 종인은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게이라고 소문 낼 일 있나.”
“…난 상관없는데.”
“뭐? 왜 상관이 없어? 난 있는데.”
“그냥 지들끼리 떠들라고 해.”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세훈의 말에 종인이 웃는다. 하지만 종인도 안다. 세훈이 학교에서 절 업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는 거 정도는.
*
평소 때와 다를 바 없이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세훈은 종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마 세훈이 새벽에 경수의 외가 쪽에다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장례절차를 미성년자인 세훈이 밟을 수 없었던 노릇이었다. 내일 장례식 한데. 3일장. 오늘 화장할거래. 세훈이 종인에게 짧게 설명했다. 백현에게는 점심시간 때 따로 얘기를 해뒀다. 경수는 의외로 백현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상주가 있어야 해. …외가 쪽에서도 그걸 원해. 완전 남인 내가 대신 장례식장에 있어주는 게 탐탁지 않은 것 같았어. 백현은 굳게 다문 입술을 열어, 데리고 갈게. 내가 옆에 있어 줄 거야. 하고 대답했다. 세훈은 그런 백현을 제법 믿음직스럽게 바라봤다.
세훈이 병원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찬열의 병실이었다. 찬열이 세훈과 종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어정쩡하게 있던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세훈이 긴 말 하지 않고 경수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본론만 얘기했다. 찬열은 양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상태여서, 목발을 짚을 수 없다고 얘기했고, 세훈은 그러면 저거라도. 하면서 병실에 접혀져있던 간이 휠체어를 가리켰다. 찬열은 세훈과 종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올라탔다.
“…경수 어떡해? 어머님 그런 거 알아?”
“…모르는데, 백현이가 잘 말해서 데려올 거야.”
“도경수 어떡하지….”
찬열이 제 입술을 손으로 뜯으며, 표정을 굳혔다. 세훈이 말했다. 네가 걱정 안 해도. 경수 괜찮을 거야. 찬열아. 신경 쓰지 말고 네 몸이나 챙겨. 네 몸이 그런데. 누굴 걱정해. 경수는 잘 있어. 백현이가 데려올 거야. 세훈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숙였다. 제 표정을 숨기고 싶어서 자연스레 했던 행동이었다. 결국 도경수는 박찬열이 있던 없던 괜찮아 질 수 있다. 제가 그토록 바랐던 경수를 되돌리는 것도 처음 도경수의 마음을 가졌던 변백현이었다. 그 생각을 해, 꽤나 착잡해져있었다. 바퀴는 구른다. 찬열은 여전히 밑을 내려다보았다. 경수어머님의 죽음이 누구보다 가슴 아프지만, 또 더욱더 가슴 아픈 것은 그런 도경수를 감싸주고 안아줄 사람이 제가 아니라, 변백현이라는 거였다.
“아, 네가 세훈이니?”
“아, 네. 급하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됐다. 네가 이것저것 신경써줘서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
“이렇게 연락이 닿다니….”
그 분은, 경수어머님의 친언니셨다. 옆에는 늙은 노파한분이 계셨다. 꺼이꺼이 눈물을 삼켜내며, 세훈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수 도와주고 있었다며? 조카얼굴도 한 번 못보고. …정말 너한테도 경수한테도 특히 연실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세훈의 손을 잡고,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의 여성이 결국 눈물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놈의 집안반대가 뭐라고. 그걸 막고도 결혼한 연실이 탓은 전혀 아닌데, 어찌 이렇게 살았을꼬. 너무 가여워서. 혼자 남아있을 경수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얼마 안 있어서, 백현과 경수가 나타났다. 경수는 백현의 뒤에 있었다. 숨듯이,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도 겨우겨우 백현의 어깨를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백현은 경수의 떨리는 손을 힘주어 잡았다. 괜찮아. 다 왔어. 경수야. 저 분이 네 어머님 가족 분들이래. 너한테 아주 상냥하실 거야. 넌 착한 아이니까. 마법처럼 그 말을 되뇌며, 백현은 제 뒤에 있던 경수의 손을 끌어다가 앞으로 당겼다. 경수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짧은 지, 긴 지, 어느 쪽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경수 왔어요.”
아이고, 경수야. 끌어안는 외할머니와 손을 부여잡는 이모를 내려다보며, 경수가 이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내가, 네 어미의 엄마다. 내 외손주 얼굴을 와 이제 보노? 미안하다. 미안타. 아가야. 미안타. 혼자 얼마나 고생이 많았누. 외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모가 말을 했다. 내가 네 이모야. 경수야, 미안해. 보드라운 여자의 손등이 경수의 볼을 쓰다듬는다. 경수는 심호흡을 했다. 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백현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되뇌었던 말들을 생각하며 괜찮아. 아직. 나보다 더 슬플 수 있는 분들이야.
참자. 참자.
“우리는 우리대로 슬픈데, 경수는, 네 엄마가. 엄마가 돌아가셔서…”
어떡해, 경수야. 이모가 결국 아픈 상처를 들추어낸다. 경수는 이로 꽉 깨물었던 제 입술에 피가 나는 지도 몰랐다. 경수가 결국 소리를 지르려했다. 백현이 그걸 알고, 이모님에게서 경수를 떼어낸 뒤, 입을 막았다. 소리 지르지 마. 멀쩡한 척하자. 약속했잖아. 너 미친 걸 알면 저 분들이 널 싫어할 거야. 우리 경수 착하지? 가까이 붙어 귓속말을 하자, 경수가.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아야했다. 백현이 말했던 과거를 잊는 법이 현재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면. 그게 백현이 마법처럼 되뇌었던 주문이었다.
과거를 잊어야 행복해질 수 있어. 과거에 연연하면 아무것도 못해, 현재를 생각해. 나는 뭐라고 경수야? 나는 네 현재야. 나는 네가 행복해지길 원하는 현재야.
“사랑해.”
그 말에 마법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과거를 잊는다는 건 불가능했지만, 내게 변백현이 선물한 현재를 생각하며, 내 선물 자체인 변백현을 생각하며.
도경수는 제법 멀쩡한 체를 해댔다. 괜찮아요. 저는. 의젓한 척하며 외할머니와 이모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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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백도인데. 세종얘기에 힘쏟다가
백도얘기를 너무 못한 감이 있어서.. 담편에는 백도애기도 자세히 하구 갈게여.
이왕이면 백도 반 세종 반이었으면 좋겠다만.. 제가 조절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ㅠㅠ
빨리 끝내고 싶은데.. 대하서사시 장편이 될것만 같아.. 막막한 흑지입니다. 25편 안에는 끝내야되는데.
게다가.. 하루이틀이면 오더니.. 오늘 삼일째 아닌가? 흑지 초심 잃었네여..ㅉㅉ..ㅠ.
빨리 돈벌러가야하는데.. 네이처 응모할 돈도 없고. .합동콘서트 갈 돈도 없네요.. (에펙도 좋아하눈데..ㅠ)
알바하면 연재텀이 일주일은 안되겠지만.. 3일정도되려나..
암호닉 끌어올게여(암호닉은 15편까지만 받습니다.)
잉여님 리마님 72%님 호호님 퐁퐁님 텐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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