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19
W. 여우
결국 밤이 찾아오고야 말앗다. 동우는 일찍이 성종의 가게에 들러 한 잔 들이키고 있었다. 달큰한 향이 나고 있었다. 동우는 살짝 취기가 돌았지만, 이내 가라앉는 느낌에 알싸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졸졸- 흐르는 칵테일이 왠지 호원이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동우에게 온 것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냅다 안주를 던진 성종이었다. 남의 가게에 와서 돈도 안 내고 먹느냐는 둥,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둥-. 성종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계속 트집을 잡고 있었다. 동우는 들이키던 칵테일 잔을 내려놓고 빽- 소리질렀다. 조그만 게 어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성종이 아니었다. 성종은 키를 운운하며 작은 게 누구냐는 듯 중얼거렸다. 동우는 뜨끔 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성종은 이에 지칠세라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더니, 많이 먹지나 말라며 휙- 자리를 떠버렸다. 동우는 멀어져가는 성종의 뒤통수에 엿을 날려주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성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우는 여기라며 크게 소리쳤지만, 성규는 성종과 다정히 얘기를 나누다가 자리에 앉았다.
"내가 먼저 인사했는데, 왜 이성종이랑 먼저 얘기해!"
"가까운 데 있었잖아. 성종씨가 사장이야?"
"어, 몰라-. 아, 근데 너 회식이라며 좀 일찍 왔다?"
"다른 새끼들이 시간 개념이 없는 거겠지. 딱 11시 30분이거든? 회식이긴 했는데, 대충 여자친구가 애 가졌다고 빨리 가봐야한다고 하니까 보내주던데."
"……성규야, 너 진짜 똑똑하다."
동우의 칭찬에 성규의 표정이 떡- 굳어버렸다. 뭐지, 이 바보같은 건……. 오히려 속아 넘어가 준 팀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역시 장동우는 장동우였다. 성규는 깊게 한 숨을 쉬고는 동우의 머리칼을 흩뜨려주었다. 성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안주를 집어먹었다. 호원학생은? 성규의 질문에 동우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성규는 의외의 면에 놀라는 척, 즐거운 척하며 깔깔 웃어주었다. 그 순간, 출입구쪽에서 다시 누군가 걸어왔다. 잔뜩 볼이 부풀려진 성열이었다. 성규는 잠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때 한 바탕 한 모양이었다. 성열은 잔뜩 뚱한채로 틱틱대며 자리에 앉았다. 명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막상 앉을 때는 성열의 옆자리에 앉았다. 원탁 테이블에 남은 자리가 이제 두자리 뿐이었다. 명수는 오자마자 벌컥벌컥 칵테일을 들이켰다. 성종은 날아가는 술값들이 눈에 보이는 건지, 쟁반을 들고와 명수의 머리를 내리쳤다.
"작작 좀 마셔-. 형이 무슨 이성열이야? 사리구분 못하고 술부터 냅다 들이마시게? 오늘 장사 다 망했네."
명수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기분에 얻어맞은 머리가 딩했는지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가게 여기저기에서 오는 시선으로 인해 표정을 풀어버렸다. 그 사이 우현이 헐레벌떡 도착했다. 다 삐뚤어진 넥타이를 하고서 땀을 닦는 모습이 섹시했다. 성규는 그런 우현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우현은 그런 성규를 아는지 모르는 지 슬쩍 성규의 옆자리에 앉았다. 성규는 살짝 눈치를 보다가 성열의 쪽으로 끽끽- 의자를 끌었다. 물론 우현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살이 붙어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성규는 살짝 곁눈질로 이리 힐끗, 저리 힐끗 우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동우에게 전해들은 지난 밤, 몇 번이나 다시 집으로 갈 껄……, 하고 후회하다가 잠들었는데. 우현은 그 하루새에 어느새 다시 무럭무럭 살이 찐 것 같았다. 에이, 망할 놈……. 성규는 괜히 북받치는 설움에 맥주를 가져다달라고 소리쳤다. 성종은 넉살좋은 웃음으로 성규에게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가만히 움츠려있던 명수가 괜히 짜증을 부렸다. 아, 왜 나한테만 성질이야, 성질이-. 성종은 다시 한 번 쟁반을 가져와야겠냐며 윽박질렀다. 이에 명수가 끄응 거리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몸을 기댔다. 명수와 성종이 다투던지 말던지, 성규는 성종이 가져다 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 너도 회식있다더니 12시 전에는 왔네? 어떻게 왔어?"
"김명수랑 이성열 싸인이랑 사진."
우현의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성열도 고개를 끄덕이다 뭐- 하고 소리질렀다. 명수는 그런 성열을 쳐다보며 에휴- 하고 한숨을 쉬다가, 같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우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10장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명수와 성열은 꽁기꽁기하게 서로의 눈치만 보다가 힐끗힐끗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현은 명수와 성열을 쳐다보다 이내 동우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어, 호원씨는 아직 안 오셨나봐? 우현의 질문에 동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어- 금방 올꺼야.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아- 하는 탄성고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문이 열리더니, 깔끔한 수트를 챙겨 입은 호원이 들어왔다. 양반은 못 되는 애인인가보네-. 성규의 말에 다들 쿡쿡대었다. 하지만 동우는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이유로 하자면 살짝 손을 들어 자리를 알려주려다, 풋풋한 대학생인줄로만 알았던 호원의 남자다움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장동우 애인- 이호원이라고 합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 동우가 좀 시끄럽죠? 아우, 이런애랑 만나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엄마의 다독거림같은 성열의 말에 모두들 박장대소 해버렸다. 호원은 아이같은 면이 너무 예쁘다며 동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동우의 친구들은 은근한 남자들의 심리가 발동했는지, 저 어린아이같은 게 무엇이 귀엽냐며 호원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짖궃은 질문도 마지않았다. 동우는 아이들의 질문에 얼굴이 빨개지는가 싶더니, 터지기 직전까지 달아올라버렸다. 하지만 호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실실대며 친절하고 재미있게 답해주었다. 그러다, 가끔 동우를 바라보며 달콤한 눈빛을 보내왔다. 어우……, 녹겠다 녹겠어-, 아주 예뻐죽네, 죽어-. 아이들은 호원의 눈빛에 손사래치며 둘 사이를 놀려대었다. 호원은 친구들의 놀림에도 아랑곳없이 동우의 달아오른 볼을 부여잡고 자상하게 쳐다보는가 하면, 술을 많이 마실때에는 조금씩 저지할 줄 아는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 때마다 아이들이 '우워-'하는 동물적인 소리를 내댔지만.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하려는 듯, 줄줄이 둘러앉은 세 커플이 깔끔하게 맥주나 한 잔씩 나누자며 술을 조금 시키고는 이야기를 꽃피웠다.
"어우, 이번 드라마 정말 잘봤어요!"
"고마워요, 호원학생."
"아, 김성규 작가님 맞으시죠! 제가 지난번에 내신 소설 잘 읽었어요!"
"어, 정말요? 감사해요!"
호원은 명수와 성열을 보며 다소 놀란 듯 심호흡하기도 했고, 성규가 집필한 소설을 읽어보았다며 소스라치듯 놀라기도 했다. 게다가 우현의 회사와 직책을 알고 난 뒤에는 눈까지 크게 키웠다. 아무래도 동우의 직업만큼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동우는 그런 호원의 리액션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호원은 간간히 동우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만족했다. 사실, 호원은 집에서 연습아닌 연습을 하고 온 터였다. 명수와 성열의 데뷔작은 물론, 이번 연기대상에서 타간 상들까지. 그리고 성규의 책도 어느새 구입해 미리 읽어보았었다. 동우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책상 위에 올려놓아져 있던 사진으로 다 확인가능한 인물들이었다. 그렇다고 우현까지는 다 알아내지 못했지만. 술은 어느새 살짝- 취기를 얹을 만큼 가져왔다. 물론, 명수와 우현, 호원은 다들 한 잔씩만 한 만큼 멀쩡했다. 차를 몰아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우는 벌써 새벽 1시가 다 넘어간다며, 하나 둘 해를 보러 떠나자고 이야기했다. 여섯명은 각자의 휴대폰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동우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우리 호원학생이랑 탈게요- 쪽."
"……나는 우리 명수랑 갈꺼야-. 흐끅……. 나 술 취했어, 그러니까 우리 명수가 태워다……주겠지……, 그치, 명수야? 아후……. 야, 가서 얘기하자, 나 허리아퍼- 아까…… 김명수가 내 허리를 그냥 아주……."
"이성열이 좀 많이 취했다. 각자 네비게이션에 목적지 찍고, 가자."
명수는 당황스럽다는 듯, 성열의 입을 막더니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등에 업어내었다. 동우는 속초해수욕장이야, 속초해수욕장-!. 이라고 몇 번씩이나 외쳐대다가 결국 호원의 품에 안겨 넘어가버렸다. 호원은 아우디 운전이 떨린다며 먼저 출발하겠다고 떠나버렸다. 결국, 텅 빈 주차장에 남은 건 우현과 성규 뿐이었다. 우현이 괜히 큼큼대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 순간, 성규가 우현의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왔다. 뭐해, 나 안태우게? 성규의 갑작스런 질문에 우현이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성규는 탁탁- 차로 걸어가는가 싶더니, 생긋 웃으며 차문을 열었다. 성규는 자연스레 조수석으로 들어가 안전벨트를 했다. 우현은 그런 성규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지만, 혹시 또 웃으면 비웃는다, 어쩐다 할 성규의 모습에 쓰윽- 웃음을 멈추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올라타, 성규를 확인하니 성규는 슬슬 졸린 듯 눈을 부비었다. 우현은 다시 헛기침을 하며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성규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꼭 자신을 봐달라는 듯.
"……뭐 묻었어?"
"아니."
성규는 딱딱한 음성으로 고개를 젓더니 살짝 손을 내밀었다. 우현이 놀란 마음에 움찔하니 성규가 살짝 고개를 틀다가 다시 뻗던 손을 뻗었다. 우현은 화들짝 놀라 가만히 앉아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차 안을 둥둥 울렸다. 그 순간, 성규의 손이 우현에게 닿는가 싶더니, 넥타이에서 멈추었다. 피곤하잖아……, 이거 풀고해-. 성규는 자연스럽게 우현의 넥타이를 풀어 예쁘게 접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러더니, 금새 졸리다며 창가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우현은 저렇게 졸린 와중에서도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준 성규를 생각하니 약간 기특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간 저 잠만보……. 우현은 시동을 걸어, 히터를 틀고 좌석에 불을 켜주었다. 조금 있으면 엉덩이가 뜨겁다고 징징 댈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우현은 자연스럽게 성규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네비게이션에 최종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차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속초해수욕장. 경로는 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시간은 3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요금은 …….]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에요. 제가 오늘 많이 늦었습니다.
방송부 축제 영상 음원 녹음 때문에 잠시 기기를 만져야 해서, 집에 못 오공 ㅠㅠ
엉엉, 바로 독서실 갔다가 오늘은 조금 일찍 귀가했어요!
원래 12시 넘어야 집에 오는데, 12시 넘으면 하루 건너 연재인 거잖아요 ㅠㅠ
그대들이 싫어할 까바 안되뮤니다. 나는 사랑을 원하뮤니다.
잉잉, 아잌, 수업중간중간 확인하는 쪽지의 개수는 저를 행복하게 만드니까염
헤헤헿, 제가 답글 일일이 못달아드리지만, 저는 그대들을 사랑해요.
하하하- 이제 김여다가 한 편 남았네요..ㅠㅠ 엉엉, 슬픕니다.
이제 쓰러가야하는뎁, 잌잌- 미치겠어요! 그대들이 나 떠나는 거 잡아줫으면 좋겟답..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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