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16
W.여우
우현은 눈을 뜨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침은 고사하고 머리나 제대로 말릴 수 있으려나 탄식이 흘러나왔다. 늦어도 7시 30분에는 출발해야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시간은 7시 29분이었다. 우현은 급하게 머리를 감고 수트를 꺼내입었다. 오늘따라 단추는 왜 이렇게 끼워지지 않는 건지, 짜증이 났다. 아마 성규였다면 일찍이 일어나 아침밥상을 차려놓고 자신을 깨워주었겠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우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급하게 넥타이를 매는데도, 자꾸만 길이가 조정되지 않았다. 어깨를 탁탁- 털어주며 넥타이를 매주던 성규가 그리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성규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흘러가지를 않았다. 자꾸만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현은 급하게 집안 곳곳 켜진 불이 없는 지 확인하고는 차키를 챙겼다. 엘리베이터에 타니 그새 거울에 비친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었다. 아무도 고쳐주지 않을 넥타이는 외로이 우현의 목에 걸려있었다. 우현은 넥타이를 살짝 움직이며 바로 잡았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해서도 우현은 서러웠다. 차 안 가득 채우는 고독한 공기가 우현을 짓눌렀다. 15년의 공백은 하루아침에 그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렸다.
"남우현……, 너 대체 뭘 잘못 한거야."
우현인 핸들에 몸을 뉘였다가 시각을 확인했다. 벌써 7시 57분이었다. 자칫하면 교통체증에 발이 묶일 터였다. 우현은 급하게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미 도로는 포화상태였고, 시작부터 인상이 써지는 하루였다. 우현은 멍한 시선으로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종알종알 입술을 다물지 않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성규의 모습이 보였다. 이젠 환영까지 보이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색에 잠겨들어갔다. 자신이 뺨을 맞은 그 날 이후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짜고짜 아무 이유없이 뺨을 맞았고, 화가 났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너무 억울해서 성규를 붙잡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래서 그랬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큰 화를 불러일으킬 줄도 몰랐다. 회식 날, 아프다며 낑낑대던 여사원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바람에 더 늦었던 것. 그것이 전부였다. 아, 하나 더 잘못이 있다면……, 아주 살짝의 권태기가 찾아왔었다는 것. 우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이상 성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항상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 * * * *
"다들, 점심 먹으러 갈까요?"
우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일에 치이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흐른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일할 때 만큼은 성규를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우현은 혼자서 그렇게 큭큭 대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미 사무실은 쌩하니- 비어있었다. 뭐야……, 다들 나 버리고 갔네. 우현이 오늘 점심은 굶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겉옷을 챙겨 일어나니, 그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여자는 익숙한 눈초리로 우현을 훑어보았다.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다. 우현은 괜히 인상을 찌푸려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또각또각- 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여자도 따라왔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위해 버튼을 누르자, 우현의 옆에 여자가 바로섰다. 홀로 팔짱을 끼고서 우현을 쳐다보는 눈빛이 마치 동정하는 것 같았다. 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어쩌라고……. 여자는 우현의 말에 허- 하고 비웃더니 세게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제 보니, 지난 날 우현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던 여자였다.
"아, 김비서!"
"지랄, 김비서같은 소리하시네. 꼴 좋으시네?"
"아, 누나-. 하지 마."
"누나라고 하는 거 보니까 제정신은 맞네. 아저씨도 너 성규씨랑 헤어진 거 아시냐."
"……몰라."
"……등신, 등신……. 내가 자만하지 말랬지."
한 번 더 익숙한 퍽소리가 났다. 우현은 맞은 뒤통수가 아픈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각이는 힐을 끌고 엘리베이터안에 들어갔다. 안 탈꺼야? 여자의 질문에 질질 끌려타다시피 발을 옮겼다. 우현은 여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한 대 더 맞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여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똑똑- 손톱을 깨물었다. 우현은 그런 여자를 바라보다가 쓱- 여자의 옆에 섰다. 여자는 다가오는 우현이 거슬린다는 듯 발을 톡톡 쳤다. 꺼져-. 우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여자에게 말을 건네려는 듯 우물쭈물거렸다.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우현을 노려보다가 다시 코웃음을 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여자의 질문에 쭈뼛거리던 우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돌솥밥 먹기 싫어."
우현의 어리광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이 서른 둘 먹고 지금 편식하냐? 여자의 핀잔에도 우현은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여 다시 넥타이를 고쳐매었다. 여자는 한참을 말이 없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현은 조용히, 들리지 않을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속으로 삼켜버렸다. 돌솥밥에는 콩이 있잖아……, 김성규는 콩을 싫어하거든. 콩을 먹다보면 성규가 생각날지도 모르니까. 점심을 먹다가 아이처럼 울어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차라리 밥상머리에서 우는 서른 둘보다는, 편식하는 서른 둘이 낫다고 생각했다. 우현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거울을 한 번 쳐다보았다. 웃어야, 예쁘다던 성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다시 표정을 굳혀버렸다.
* * * * *
성규는 기분이 좋았다.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상큼함이었기에,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설특집 개편프로그램은 오늘 확실히 결재를 맡아내었다. 퇴근길마저 달콤했다. 횡단보도를 건널때면 성규가 온 시각에 맞추어 초록불이 켜졌고, 버스는 때맞추어 성규를 데리러 와주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동우와 맥주라도 한 잔 하며 축배를 들고 싶었다. 성규의 머릿속에서 우현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어린아이같던 그를 책임지고, 참고, 무엇보다도 매달리기 급급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바보같았다. 우현은 편안하다못해 잠들어버릴 것만 같은 나른한 일상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던 것 모두 헤어질까봐 걱정하는 그 불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규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이제완벽한 끝이었다. 성규는 딸랑- 거리는 편의점 문을 열고,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평소 맥주를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잘 섞어 마시고 싶었다. 부드러운 날들의 연속인만큼, 부드러운 목넘김이 그리웠기에. 성규는 소주 2병과 맥주 페트병을 골라내었다.
"여기 잔돈이요."
"네-, 감사해요."
성규는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룰루랄라 스텝까지 밟아가며 걸어갔다. 스텝은 물흐르듯 가벼웠다. 성규는 자연스레 나오는 콧노래에 어깨까지 털다가 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추어버렸다. 이게 누구야……?. 성규는 동우의 건물 입구에 주저앉아 있는 우현을 발견하고 말았다. 날이 추운데 안에도 들어가 있지 않고 뭐하는 건지, 궁금했다. 성규는 천천히 우현에게로 다가갔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훌쩍대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현이었다. 성규는 괜히 자기가 울 것만 같은 기분에 우현의 등을 콕콕- 찔렀다. 이미 우현은 한 잔 걸친 듯 빨간 얼굴을 하고서 헤롱대고 있었다. 성규는 우현을 일으켜 바로세웠다. 흐느적거리는 몸짓이 제 몸도 못 가눌 것 같았지만, 성규의 손길 한번에 정신이 든 것인지 바로 서,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우현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따라오라며 먼저 앞장섰다.
* * * * *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동우는 아직도 호원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성규는 냉장고를 열어 술을 넣고는 탁- 소리나게 닫아버렸다. 바른자세로 쇼파에 앉아있는 우현의 자세가 우스웠다. 성규는 우현의 옆에 앉아 볼을 매만져주었다. 차갑고 시리게 얼어있었다. 술을 먹어서 빨간 게 아니라, 추워서 빨간 거였네……. 성규는 익숙하다는 듯 우현을 볼을 토닥토닥 만져주다 머리를 부스스하게 흔들었다. 우현은 멍하니 앉아서 성규의 손길을 느꼈다. 잃고 싶지 않은 손자락이었다. 자꾸만 좋아서- 너무 좋아서 기대고 싶은 촉감이었다. 우현은 살짝 눈을 감았다. 이게 꿈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아침이면 자신을 깨우던 성규를 품에 안고, 성규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성규의 손길이 닿아있는 넥타이를 매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와서 성규에게 사과할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우현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성규는 우현의 볼이 다 녹았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걷어내었다.
"동우 보러 왔어? 동우 지금 호원학생 만나고 있을텐데……. 곧 올꺼야, 잠시만 기다……."
"……너 보고 싶어서 왔어."
"……어?, 뭐라고 우현아?"
"김성규, 너 보고 싶어서 왔다고……."
우현이 이내 울먹이는 음성으로 변해버렸다. 성규는 그런 우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현을 품에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거리는 손길이 보드라웠다. 예전부터 그랬다. 김성규 손만큼 예쁜 손은 없을거라고. 우현에게 있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정말……, 정말 예쁜 손이었다. 우현을 잘 재워주던 손.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편안했다. 우현은 꼭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사랑할 수 있는데, 아직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우현은 성규의 품속으로 더 깊이 깊이 파고들려고 애썼다. 하지만 성규는 크게 저지했고, 이내 토닥이던 손길을 멈추어 우현을 떼어냈다. 우현은 울 것같은 눈빛으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이전 같았다면 벌써 무너지고도 남았을 성규였지만, 성규는 안타까운 눈빛만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너를 어떻게 할까……. 성규의 눈에서 느껴지는 내용들이었다. 우현을 어떻게 해야만 할지, 고민하는 것들이 새록새록 눈으로 적혀나왔다. 하지만, 성규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우현도 따라 고개를 숙여버렸다. 우현은 세게 성규를 끌어안았다.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김성규, 나보고 어떡하라고……."
"……우현아."
"나 너 없이 하루도 못 살겠어. 숨이 안 쉬어져. 자꾸만 가슴 언저리에 돌덩이가 올라앉아있는 것 같아. 너가 다른 남자랑 얘기하는 상상만 해도 심장이 천천히 굳는 것 같아서 무서워, 성규야……, 성규야 가지마. 응?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아직도…… 나는 걸 어떡해."
"……응? 뭐라고, 성규야? 내가…… 내가 잘못……."
"돌아와달라고 말하는 네 숨결에서도 집안을 맴돌던 향수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내가 돌아가 우현아……. 나는 못 돌아가……. 나가줘……."
우현이 성규를 안고 있던 팔을 스르르 놓아버렸다. 무엇때문이었는지 대충 감이 왔다. 성규는 지금 자신이 바람을 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하……, 우현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다. 우현은 흐느끼는 성규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달라는 성규의 음성이 나즈막히 우현을 울렸다. 반복해서 들리는 목소리가 환청같이 들렸다. 지금 흐느끼는 음성과 겹쳐졌다. 우현은 천천히 발을 떼어 동우의 집을 나와버렸다. 김비서와 야근할 일이 잦아지면서 옮겨붙은 향수내음이었을 것이다……. 아마 김성규는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동우의 건물 밖까지 우현은 아무 표정없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시린 공기가 우현의 콧대를 울렸을 때, 그제서야 우현은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바보같은 김성규가 미웠다. 차라리 자신에게 말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봇물터지듯 눈물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김성규가 미워서도,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속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믿음 하나 조차도 선물해주지 못한 자신에게 너무 속상해서.
"……아씨, 방금 봤는데도……, 또 보고 싶어……."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하하
저 오늘 디게 일찍 왔죠? 저 지금 17화 쓰고 있어요!
무슨 말일까요? 아마 잘하면 17화가 오늘 나올지로 모르는..
음 원래 오늘 3편올리고.ㅎㅎㅎ.. 월요일에 한 편 올리고 ..하려고 햇어요.
사실 김여다는 잘 쓴 글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텍파도 안할라 햇는뎁
ㅎㅎㅎㅎㅎㅎㅎㅎㅎ으잉 모르겟네요.
엉엉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4 네염..ㅠㅠ
엉엉 그대들 17화빨리 써올게요. 아 브금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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