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02
"한번만, 안되겠습니까."
"너 진짜 한 대 맞을래? 어? 5번척추 6번척추랑 위치 바꿔줄까?"
"아, 보스."
"이게,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어린 게 벼슬이야? 벼슬? 잘한다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너 기어오른다? 내가 묻지 말랬지? 어?"
한상혁은 가끔씩 너무나도 귀찮았다.
스물셋의 최연소 BR 조직원이었음에도 웬만하게 잔뼈가 굵다 하는 조직원들보다도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한상혁은, 그야말로 조직의 엘리트였다.
185의 훤칠한 키에, 그의 승모근과 대퇴근은 전문 트레이너들도 갈채를 보낼 정도였고 지방이 거의 남지 않은 몸은 큰 키와 넓은 어깨에 비해 굉장히 날쌨다.
게다가 눈치조차 빠른데다 어리기까지 하니, 그의 승승장구는 모두가 질투할 수 없을 만큼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학연이 상혁을 가까이 두고 신뢰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 또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다 보니 한상혁은 어리다는 것을 방패삼아 대답하기 곤란한 것조차 꼬치꼬치 캐물어 오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근 몇 주일째 같은 질문으로 차학연을 곤란하게 해 오고 있었다.
조직원 아무도 차학연에게 감히 묻지 않았던 'Beautiful Killer' 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처음엔 보스, 저희 조직에 Beautiful Killer… 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입니까? 로 시작되었다.
그 후로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조직 내에서 생활합니까? 집이 따로 있습니까? , 등으로 점점 번져가더니 마침내는.
그 Beautiful Killer,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차학연도 옆에서 들려오는 쨍알거림에 실수로 한번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고, 그 후부터 한상혁은 끈질기게 그것만을 물어오고 있다.
"저 정말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으면 아름다운 킬러라는 별명이 붙는 거냐구요."
"단순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거냐?"
"네. 그리고…"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사람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던데, 그 소문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정말로 숨이 멎을 만큼…,"
"그만."
상혁이 일순간 말을 멈추었다. 눈 앞의 차학연은 자신이 늘 봐오던 잘 웃고 해사한 보스가 아니었다.
웃기만 하던 사람이 표정을 굳히면 이렇게까지 싸늘할 수 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차학연에게서 제대로 된 보스의 면모를 본 것 같았다.
화를 참는 듯 꽉 다문 입꼬리는 끝이 살짝 처져 있었는데, 치켜올라간 눈매와 선명하게 대조되어 더 짙은 냉기를 풍겼다.
"한상혁."
"…예."
"니가 궁금해할 사람이 아니야."
"……."
"정확히 말하자면, 니가 '감히 궁금해해도 될'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런 가십거리같은 소문에 연루될 만한 사람 또한, 더더욱 아니지."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나가 봐. 한 번만 더 내 귀에 그런 바깥소문이나 니 쨍알거림이 들리면 그땐 조직이고 뭐고 없어."
"예, 보스."
학연의 원목 방문을 조용히 닫은 상혁이 문에 등을 기대고 복도에 우두커니 멈춰섰다.
새카만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건물 바닥에는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새빨간 카펫이 길게 복도 끝부터 끝까지 층마다 깔려 있었다.
카펫과 선명히 대조되는 대리석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혁의 얼굴에 장난끼 가득한 웃음이 어렸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차학연이 무서웠다. 처음으로 차학연이 화를 냈고, 처음으로 차학연이 보스다운 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차학연의 처음, 은 한상혁에게 남아 있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도대체 그 Beautiful Killer가 누구길래 저렇게도 꽁꽁 싸매고 도는지, 궁금해 죽을 것 같았다.
사실 많고 많은 조직 중 BR에 들어오기로 결심한 것도 그 소문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킬러, 그 단어에서 풍겨나오는 묘한 모순이 한상혁의 구미를 당겼다.
킬러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람이다. 살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피가 튀기고 숨이 끊기는 끔찍하고도 잔인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킬러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을 찌른 잔혹한 무기의 끝에는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게다가 유일하게 그 킬러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 그를 세상에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거…"
한상혁이 중얼거렸다.
"재밌을 것 같은데."
-
원식이 VF의 건물에 발을 들여놓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호원이 즐비한 것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에 원식이 안심하려던 찰나,
"어디 다녀와-?"
"…아 보스,"
재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원식을 바라보았다. 재환의 자랑인 해사한 함박웃음. 저걸로 홀린 사람이 몇인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지만, 언제나 이재환의 웃음 뒤엔 소름끼치는 냉기가 저며 있다는 것을 김원식은 조직에 들어온 그날부터 뼈저리게 느껴 왔다.
그리고 그의 웃음은, 긍정적인 신호일 때가 거의 없었다.
이홍빈과 접촉했다는 것은, 더군다나 아는 사이라는 것은 들키면 좋을 것이 없었다. 원식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잠깐 목례를 했다.
"잠깐 바깥에 다녀왔습니다."
"이유는 안 물어볼래, 설마 나 모르게 나쁜 짓이야 했겠어? 그지?"
"…예, 보스."
"그런데, 나 좀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Beautiful Killer'."
"보스가 그런 것에 걱정하실 필요는…"
"아니. 걱정돼."
김원식이 고개를 들어 이재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웃음기는 사라져 있었다.
잘 자리잡힌 진한 이목구비는 선이 짙어 웃음기가 돌면 꽤나 자상한 이미지였음에도 웃음기만 사라지면 무섭게 섬뜩했다.
지금 재환의 목소리는, 재환의 표정은 전혀 걱정하는 투가 아니었다.
몇 년을 함께 뛰고 생활한 그이지만, 김원식은 이재환을 당최 종잡을 수가 없는 인간이라고 아직도 생각했다. 속내를 알 수 없어 더 무서웠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얼굴도, 실력도 모르는 유명한 킬러가 죽이러 찾아오는데, 걱정 안 될 리가 있겠어?"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저쪽 정보를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씀은…"
"이홍빈이라고 알아?"
김원식이 멈칫했다. 지금 이재환의 의도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아채고선 한번 놀려보려고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정보가 필요한 것인지.
재환이 다시 웃었다. 크게 웃었다기보다는 입가에 슬쩍 걸친 가벼운 미소였다.
"아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네."
"…예."
"근데 이홍빈, 웬만해서는 잘 안 움직여준다던데. 어떻게 구슬려야 하나."
"아니요, 협조해줄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Beautiful Killer'에 관한 것이라면 그도 혈안이 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쪽과 정보를 공유하자고 제안하면 승낙해줄지도 모릅니다."
원식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거짓말을 못 하는 그였지만, 완전히 거짓말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말을 끝맺었다.
흠. 재환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그러면 움직여볼 가치는 있겠네, 하고 말했다.
재환이 몸을 돌려 자신의 방이 있는 3층을 향해 계단에 발을 뻗었다. 원식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 재환이 아, 하며 말문을 텄다.
"김원식,"
"예?"
"이홍빈에 대해 조사하도록. 섣불리 다가갈 수는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수고해, 그럼."
이재환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김원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수고라."
수고라고 하기도 우스웠다.
이홍빈에 대해서는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니.
-
"제발 조심해, 몇 번을 말해."
"조직 바깥에서는 눈에 띌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말했어."
"…내가 미안해, 전부."
"꺼져. 니 낯짝만 보면 역겨워. 토할 것 같으니까 눈에 띄지 마."
"정말… "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 지 모를 정도로 병신새끼 아니야."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 2편을 들고 찾아왔어요!ㅎㅎ
제가 오늘 너무 감동해서ㅠㅠ 00편과 01편이 모두 초록글에 게시되었더라구요? 몰랐는데ㅠㅠ 어떤 분이 제보해주셔서 보고 감격했습니다..
00편은 이틀이 지나서 내려왔구 01편이 떡하니ㅠㅠ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 더 열심히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독방에서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 암호닉 레오정수리 님, 블루밍 님, 초롱초롱 님, 달 님, 구름 님까지 전부 사랑해요♡
+)아이구 그러고보니 떡하니 택총인 글인데 이번 편에는 태긔가 한번도 안 나왔네요.. 미안해 택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