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01
"어제 암살자가 침투했었다고 들었습니다, 보스."
"…아, 그래, 있었지."
"몸은 괜찮으십니까. 어느 조직이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재환이 웃었다. 김원식은 표정에 아무 변화도 주지 않은 채로 똑바로 재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르겠어?"
"…모르겠습니다."
"Black Rose."
원식이 움찔했다. 아무렇지 않게 두 단어를 내뱉으며 이재환은 김원식의 변화를 캐치해냈다. 어떤 조직이건 김원식은 쉽게 동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은 앙다물고 있었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 숨기고 싶은 무언가.
"말해."
"예?"
"묻고 싶은 거 있는 거 같은데, 말하라고."
"…혹시 암살자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보스."
"조무래기였어. 블랙 로즈엔 그런 인간들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흔적조차 숨기지를 못하더군."
"……."
"확실한 건 '그' 는 아니었어."
"그, 라면."
"'Beautiful Killer' ."
또다시 그 두 단어에 김원식은 반응했다. 처음 보는 김원식의 당황한 표정에 재환은 흥미를 느꼈다.
시선은 여전히 원식에게 고정한 채로,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선 재환은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환도 아쉬웠다. 한번쯤은 만나고 싶은 상대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킬러길래 뒷세계에서 그렇게까지 추앙을 받는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었는데."
재환이 중얼거렸다. 넌 알아? 하고 던지듯 물은 질문에 김원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저 Beautiful Killer라는 이름만 알 뿐입니다. 얼굴도, 목소리도, 실력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궁금하지 않아? 얼마나 대단하길래 소문이 그렇게 나냔 말이야. 이 세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니, 그게 말이 돼?"
"…곧 뵐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무슨 뜻이지?"
"분명히 BR에서는 보스의 실력을 시험해보려고 어제 그런 조무래기를 보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 보스의 실력을 알았으니…"
"다시 보낼 거라, 그 말이지."
원식이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겠지. 재환도 다시 Black Rose에서 암살자를 보낼 거라고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이제껏 자신의 실력을 전부 보여줄 수 있었던 상대는 이재환 평생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도 되지 않았다.
그런 이재환에게 뒷세계에서는 거의 신적으로 평가받는 'Beautiful Killer'는 한번쯤 꼭 겨뤄 보고 싶은 상대이기도 했다.
언제쯤 움직일까, 경계가 더 치밀해지기 전에 움직일 것이다. 기대감과 즐거움이 재환의 몸을 타고 기어올라왔다.
-
"언제 움직일 거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한 학연이 아침부터 시럽을 잔뜩 넣은 커피를 들이키며 물었다.
학연의 책상 반대편에는 택운을 위한 모카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택운은 마시지 않은 듯했다.
택운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학연은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음, 하고 운을 뗐다.
"늦게 움직여도 늦게 움직이는 대로 별로고, 빨리 움직여도 예상하고 있을 것 같아서…"
"가능한 한 빨리 가려고 생각중입니다."
"왜? 그쪽에서도 우리 움직임 예상하고 있을 텐데, 너 그러면 힘들 거야, 운아."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예상하고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그래, 니가 실패할 거라는 건 아닌데, …진짜 안 다칠 거지?"
택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린 학연이 그래, 그럼. 이라고 중얼거렸다.
택운이 짧게 목례를 하고는 학연의 방을 나갔다. 학연은 자신의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모카는 차갑게 식은 채 그대로 컵에 담겨 있었다.
-
"찾아줘."
"누구를?"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꽤나 깨끗했다. 평수는 크게 넓지 않았지만 가구가 별로 없는데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방은 실제보다 넓어 보였다.
거실 한구석에 자리잡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홍빈은 다짜고짜 찾아온 김원식을 올려다보았다.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내뱉고 있는 원식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쓰고 있던 뿔테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리며 잠깐 원식을 쳐다보던 홍빈은 고개를 화면으로 돌렸다.
"Beautiful Killer."
"또 그 소리야? 저번에 찾아줬었지 않나?"
"그게 몇 년 전인데. 칠 년 전이야."
"아… 그게 벌써 그만큼 됐어?"
홍빈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투로 형식만 갖춘 놀라움의 표시를 했다. 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
"원하는 대로."
"그렇게 간절해?"
이홍빈이 비싯 웃었다. 부러 원식을 약올리려 느릿느릿 대꾸하는 것을 알아챈 원식이 얼굴 가득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난할 기분 아니야. 빨리 찾아보기나 해. 화가 난 원식의 목소리에 홍빈이 으하하, 하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이번은 돈 안 받을게."
"뭐야, 우리가 언제부터 우정으로 연결된 사이였지? 저번에 찾아달랬을 땐 몇백 뜯어가더니."
"왜냐면 말해줄 정보가 없거든. 니가 칠 년 전에 찾아달라고 했을 때부터 나도 흥미가 생겨서 얼마 전까지 찾아봤는데,
내 정보력으로도 칠 년 전에 알아냈던 것까지가 한계더라. 이름 정택운, 스물여덟, 이탈리아에서 꽤 이름 있는 보컬리스트 겸 피아니스트였다는 거."
"……."
"본격적으로 킬러 일 시작하면서부터 아예 아무 정보도 뽑아낼 수가 없었어. 조직 측에서 철저하게 봉쇄한 모양이더라."
"혹시라도 알아낸 정보가 있으면 바로 연락해."
홍빈의 대답조차 듣지 않고 원식은 등을 돌렸다. 쾅 하고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동안 닫힌 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홍빈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서렸다. 예쁘장한 얼굴이었음에도 그 웃음에서 잔인함이 풍겼다.
"…원식아, 대한민국에서 이홍빈이 못 찾아낼 정보는 없어. 다만…"
이홍빈이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자 모니터 가득 택운의 사진이 들어찼다. 손을 뻗어 피아노를 치는 택운의 사진을 천천히 쓰다듬은 홍빈이 중얼거렸다.
"정택운은… 양보해줄 수가 없네, 이해해 줄 거지? 알잖아 너도, 나는 아름다워. 그리고 정택운도…
내 세계는 완벽하게 아름다워야 하고… 나는 내 세계를 완성해줄 마지막 악세사리로써 정택운이 꼭 필요해.
니 하찮은 순정파 사랑놀음에 넘겨줄 수가 없다는 거야.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유치하게 사랑놀이야, 김원식."
사진을 천천히 넘기던 홍빈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사라졌다.
"기다려, 정택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