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03
이홍빈과는, 사실 어떻게 설명해야 이 관계를 제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이해하기 쉽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주워온 아이였다.
요즘 세상에 버려진 아이를 주워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말하자면 굉장히 빈번했다.
뒷세계다. 말 그대로 밝은 곳,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곳과는 정반대의 선상에 놓여진, '뒤'의 세계였다.
그 뒷세계에서 아버지는 상당히 이질적인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장기매매라거나 인육 따위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순수한 동정과 연민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온다는 것은 그 세계에서 분명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형제 하나 없는 외동인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홍빈에게 최선을 다했다. 아들로써 받아야 할 모든 대우를 충분히 갖춰 주셨고, 이홍빈을 아꼈다.
열한 살, 나이가 같았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집을 비우셨다. 당연히 서로 어울리게 되었다.
어렴풋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홍빈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낀 건.
'넌 콤플렉스 같은 거 있어?'
'콤플렉스?'
'응, 니 성격이나 외모 중에서 제일 맘에 안 드는 거.'
'없어.'
'없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 나이의 나는 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았던 키도, 까무잡잡한 피부도, 처진 눈도.
놀란 투로 되묻자, 자기 앞에 놓인 거울을 빤하니 바라보던 이홍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 없는 새카만 그 눈에 잠식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홍빈은 나에게 물어왔다.
'…나, 잘생기지 않았어?'
'어? 응… 잘생겼어.'
'나는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해. 왜, 그런 거 있잖아. 남들과는 다른. 솔직히 이 세계는 너무 지루하고 더러워. 그렇게 생각 안 해?'
'나는 잘 모르겠어….'
'너도 똑같아. …있지, 나 꿈이 있어.'
'꿈?'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거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세계. 내 주위의 모든 것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내 세계를 완성해줄 장식품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 내가 존재하는 거지. 황홀하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너무 아름다울 것 같은데.'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이홍빈의 '아름다움' 에 대한 거의 병적인 듯한 집착을.
자신이 그 아름다운 세계의 주축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군주가 되고 싶어하는, 일종의 나르시즘 비슷한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홍빈은 단순히 그것에 대한 집착만 가지고 있는 인간에 그치지 않았다.
이홍빈에게는 천재적인 두뇌와 해킹 능력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거울이 아니면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던 이홍빈은, 이내 십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뒷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해커가 되어 가고 있었다.
거대한 조직들에서부터 막 시작하려는 신생 조직까지, 이홍빈을 찾아와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거의 매일 건네곤 했고, 나는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돈과 권력에 대한 유혹에 끌리기 쉬운 아직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홍빈은 언제나 그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그에게는 돈과 권력이란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친구로써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홍빈이 해커로써 유명해지고 있었다면 당시의 나는 킬러로써 유명해지고 있었다. 암살이라기보다는 행동대장 쪽에 가까운.
하지만 '그 일' 이후, 나는 홀연히 이탈리아로 잠적했고 이홍빈 또한 굳이 나의 소식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몇 년이지, 그래, 칠 년 전이었던가. 그 일 이후로 처음 만나는 이홍빈은 조금 더 성숙해졌을 뿐 그대로였다.
그리고 앞으로 그와 접촉할 날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잡념을 그렇게 오래 해?"
"예? 아, 아닙니다."
"싱겁긴… 가자."
재환이 차 안에 앉아 양복 마이의 구김살을 몇 번 가볍게 털어내더니 말했다. 원식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를 타고 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 거리였다. 이십 분쯤 달리자 고급스러운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해 있는 것이 보였다.
창밖을 내다보던 재환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잘 사는가 보네, 이쪽은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 사는 데 아닌가? 깔끔하고 조용하고."
"돈이 많다기보다는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형성하는 버릇이 있다더군요."
"-그래?"
"예. …어디까지나 조사해본 바로는, 말입니다."
재환은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편이 원식도 편했다. 말이라도 잘못해 이홍빈과의 관계를 들키기보다는 아예 대화를 단절하는 게 나았다.
벨을 누르자 이홍빈이 문을 열었다. 제발, 아는척하지 않아야 할 텐데. 김원식의 머릿속이 긴장으로 새하얘졌다.
순간적으로, 홍빈과 원식의 눈이 마주쳤다. 홍빈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걸쳐지는 듯 하더니 이내 처음 보는 사람을 쳐다보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시죠?"
"미리 연락드리지 못한 것은 죄송합니다. 이분은…"
"알아요. V.Forte, 아닌가요? 실제로는 처음 뵙지만."
"…예, 그렇습니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데? 우리가 사람 하나는 잘 찾은 것 같네요. …홍빈 씨?"
"들어오시겠어요? 갑작스럽게 찾아오셔서 정리는 안 돼 있지만 밖에 서 계시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럼, 실례."
이 집에 발을 들였던 것은 불과 어제의 일이었다. 이홍빈의 집은 매일 들락거려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깔끔하지만, 어딘가 모를 피폐함이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냉방 같았다.
고급 가죽소파에 앉은 재환이 집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그도 원식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잠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홍빈이 쟁반에 냉수 세 컵을 받쳐 소파 앞의 자그만 테이블에 가져다놓았다.
그리고는 반대편에 앉았다. 익숙하게 다리를 꼬고는 그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은 홍빈이 말했다.
"자- 그럼, 용건을 말해주실까요."
"저희는…"
"내가 말하지. 혹시 Beautiful Killer, 라고 알아요?"
"…모를 리가 있겠어요."
"그럴 줄 알았어.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쪽에서 날 암살하겠다고 대놓고 경고를 받아서, 무서워서 조사 좀 부탁하러 왔어요."
"전혀 무서워하는 표정이 아니신데요?"
"어? 그래 보여요? 나 이거 지금 완전 겁에 질린 가련한 표정인데?"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개구지게 장난을 치는 재환을 보며 홍빈이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Beautiful Killer, 에 대해서는 저도 사실 알아낼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왜 그가 그렇게 유명한지 아시잖아요.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신비주의가 그렇게 심한지 원."
"많이 없다는 건 조금은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는군요."
"조금이라도 상관없어요. 정보가 필요한 거니까. 그에 관한 거라면 무엇이든 환영입니다."
"제가 무엇을 얻을 수 있죠? 이 정보를 건네주는 것에 대해?"
이재환이 순간 이홍빈의 얼굴을 바라보던 표정에서 웃음기를 걷었다. 이국적일 만큼 진한 이목구비 곳곳에 음영과 함께 냉기가 졌다.
이재환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
"오늘?"
택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연의 눈과 입은 동그랗게 벌어진 채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한참 동안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 택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학연이 되물었다. 왜?
"…가능하면 빨리 다녀오고 싶어서."
"그건 맞지만, 아무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학연은 꾹 집어삼켰다. 택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저렇게까지 원하는데, 도저히 가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학연은 택운을 보내기가 싫었다. 어떻게든 출발 시기를 늦추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는 하지만… 학연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지나갔다.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가볍게 한번 흔든 학연이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마음을 굳게 먹은 듯 단단한 눈빛이었다.
"그래, 그럼. 다치지 말고 돌아와."
"…예."
"출발 예정시각, 도착 예정시각."
"새벽 두 시, 네 시. …어쩌면 동이 튼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웬만하면 동이 트기 전에는 돌아와, …택운아."
택운의 뺨이 살짝 움찔거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함에 틀림없었으나, 택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택운은 언제나 그랬듯이 기척 없이 학연의 방에서 사라졌다.
학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길고 짙은 한숨이었다. 여전히 싫어하는구나, 이름 부르는 거. 학연은 생각했다.
정택운, 이름을 곱씹었다. 불러도 불러도 질리지 않았다.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날카롭고 서글픈 구석이 있었다. 이름 따라 간다더니, 학연이 슬핏 웃었다.
-
방으로 들어온 택운이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택운아. …택운아.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한 무언의 미안함으로 끝을 얼버무린 차학연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차학연의 목소리로 다시는 자신의 이름을 듣지 않겠다 결심한 것이 언제였던가. 막상 이름을 들으니 주체할 수 없이 복잡해져버리는 것을.
택운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머리를 벽에 기대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택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은 차학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조직의 운명을 결정할 임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만 했다.
서랍에서 자그만 권총을 꺼내었다. 기름칠이 반질반질 되어 있다. 총알을 확인했다. 가득 장전되어 있었다.
까만 양복 자켓 안주머니에 권총을 넣었다. 입고 있는 가죽바지의 허벅지 안쪽에 달린 밴드에 택운의 손가락 길이의 단도를 두 개 고정시켰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돌쇠입니다! 3편을 들고 찾아왔어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격려해주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 덕에 글 쓸 힘이 납니다 ^.^
독방에서 와주신 모든 분들, 암호닉 여루 님, 정모카 님, 쥐엔티 님, 카니발 님, 초롱초롱 님, 블루밍 님, 구름 님, 약장수오빠 님, 라빅스 님 전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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