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06
"너도 알잖아, 나 미친놈인 거. 미쳤어, 나. 말 그대로 killer, 위험하지.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워.
Beautiful Killer, 위험한 아름다움에 미쳤어. 돌아가는 길은 없어…, 내 말… 이해가 돼?"
대답을 바란 의문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환이 천천히 원식을 올려다보았다.
맑고도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 한 새카만 눈동자에 원식은 척추를 타고 냉기가 찌르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김원식은 두려워졌다. 이재환 또한 정택운에게 반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재환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원식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했다.
이재환은 안 된다. 이재환만은.
원식은 재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이재환은 한 마디로 그냥 미친놈이었다. 잘생긴 이목구비와 귀여운 웃음 뒤에 감춰진 속내는 때론 원식마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도 음침했다.
또 하나 김원식이 두려워진 이유는, 이재환이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목적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재환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었다. 부러뜨리고 꺾어서라도 손에 움켜쥐고 가두었다.
그 부러뜨리고 꺾어서라도, 의 대상이 혹여 정택운이 되는 날이라도 오면. 원식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랑에라도 빠지셨다는 말씀이십니까."
"흠… 사랑에 빠지다, 라."
재환이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빛났다.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는 듯하던 재환이 이내 원식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랑은 아니야."
"그럼?"
"나도 모르겠어. 그냥 갖고 싶어."
"……."
"말했잖아 내가, 나 미쳤다고."
"그러셨습니까."
"언제는 몰랐어?"
원식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푸하하, 작게 웃은 재환이 손을 비볐다.
"그럼 나가봐."
짧게 목례를 하고는 재환의 침실 문을 닫은 원식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환의 방이었다.
서재로 만든 방이었지만 그곳을 유달리 좋아한 재환 때문에 서재 겸 방으로 쓰이고 있었다. 늘 앉아 있던 의자에 사람이 없으니 어딘가 허전했다.
재환이 정택운을 손에 넣기 전에 먼저 찾아야 했다.
재환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원식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의 손에 택운이 쥐어지게 된다면 택운에게 처할 상황 또한, 원식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끝없이 망가질 것이다. 마치 날개를 잡힌 새처럼. 도망가려고 날개를 파닥거릴수록 그 날개는 더욱더 처참하게 부러질 것이다.
원식의 머릿속에 택운이 떠올랐다. 가느다란 속눈썹을 내리깔고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정택운이.
건반 위를 춤추듯 옮겨다니던 섬세하게 뻗은 하얀 손가락이, 그 목소리가.
내가 보호해야 한다. 이재환의 손아귀에서 내가, 정택운을 보호해야 한다…
그저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음을 바랬던 것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힘들 줄은…
Black Rose에 정택운이 계속 머무른다면 이재환은 언젠가는 정택운을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BR에서 정택운을 빼내와야 했다. 어떻게든.
이홍빈이 필요했다.
-
홍빈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어제의 일이 눈앞에서 아른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잘생긴 얼굴에는 초췌한 기운이 가득했다.
다짜고짜 찾아온 건 김원식과 이재환이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옆에 있는 사람이 이재환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한 순간의 호기심으로 그를 집에 들였던 것이 후회돼 죽을 것 같았다.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는 느꼈다. 하지만… 홍빈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무엇을 얻을 수 있죠? 이 정보를 건네주는 것에 대해?'
순간 재환의 입꼬리가 올라갔었다. 아주, 천천히. 그때 직감했어야만 했다.
'임서연이라고 알아?'
'……방금 누구라고,'
재환은 대답하지 않았었다. 그저 이홍빈을 관찰하듯 빤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오래 전에 잊었어야 할 이름이었지만 지금까지 결코 잊고 있지 않았던, 잊을 수 없었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홍빈은 이재환에게 A4용지 한 장을 건넸다. 몇 줄로 짤막하게 무어라 적혀 있는 종이였다.
물론 이홍빈은 프로였다.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김원식에게 알려주었던 정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상대가 이재환이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타격이 컸다.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렸다. 기억에 잠겨 있던 홍빈이 깜짝 놀라 몸을 흠칫했다. 곧이어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한 홍빈이 핸드폰을 귀에다 갖다댔다.
"무슨 일이지? 이른 시각인데."
"급보입니다. 오늘 새벽에 조직에 누가 침투했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사상자는 아무도 없으나 이재환은 오른쪽 허벅지에 중상을 입은 듯 합니다."
"암살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조직원 대부분이 Beautiful Killer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전화가 끊어졌다.
일전에 V.Forte에 몰래 잠입시켜두었던 연락망이었다.
홍빈이 멍하니 끊어진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정택운이다. 정택운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연락망에 의하면 사상자는 없다. 이재환은 그저 상처에서 끝났을 뿐이다. 그 말은, Beautiful Killer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재환이 정택운을 보았다는 것과도 같았다.
홍빈의 머릿속에서 어지러운 파도가 일었다. 홍빈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꾹 짚었다. 차가운 손가락에 열이 오른 머리가 식는 것 같았다.
정택운은 아름다웠다. 그의 별칭이 붙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는 아름답다…
성별에 상관없이, 그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예쁘다, 정도의 의미 이상이었다. 백이면 백, 의도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은 신경을 지배했다.
이재환이라고 다를 리 없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족을 보면 촉이 온다. 이홍빈은 이재환을 마주한 첫날 생각했다. 동족이다.
이재환은 정택운을 찾으려 들 것이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가지려 들 것이다.
지배하려 들 것이고, 복종시키려 들 것이다.
이홍빈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정택운만은 안 돼."
아름다운 것을 빼앗길 수 없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홍빈의 갈망은 지독했다.
이재환이 정택운에게 손을 뻗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다.
빠른 건 자신있었다. 사람 관계보다 빠르고, 더 촘촘하며, 더 미세한. 거미줄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포획망에 있어서는 이홍빈이 이재환보다 자신있었다.
초인종 소리였다.
-
"어제 정택운 왔었다며."
"…역시 빠르네."
홍빈이 작게 웃었다. 나야 늘 그렇지, 그래서 찾아온 거잖아 너.
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종 소리의 주범 역시 김원식이었다. 무슨 일로 자기를 찾아왔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홍빈이 어제처럼 냉수를 꺼내왔다.
냉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라하는 원식을 바라보던 홍빈이 선수를 쳤다.
"너네 그 잘난 보스님은 많이 다쳤어?"
"아, 큰 부상은 아니야. 하지만 고통은 상당할 걸."
"……빨리 본론 얘기해. 시간 끌지 말고."
원식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체 진중하고 묵묵한 성격이라 조직 기밀을 발설하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홍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를 배려해주고픈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재촉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원식이 입을 열었다.
"…보스가 정택운한테 미쳤어."
"예상했던 대로야. 그래서?"
"찾아낼 거야."
"그렇겠지. 그대로 놔둔다면."
"정택운이 어떻게 될지 알아?"
"대충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길에 원식이 주춤했다.
잘 보이지 않는 오랜만의 어쩔 줄 몰라하는 원식의 모습에 이홍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말해줘야겠어? 처음 짝사랑해보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원…"
"…?"
"너 사실 정택운 좋아하잖아, 아니 존나 사랑하잖아. 아니야?"
"너 미… 미쳤어? 아니야, 무슨…"
"변명하지마. 나한테까지 숨길 작정이었나 본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야지."
홍빈의 얼굴에 새초롬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유로운 그 웃음에 비해 원식의 얼굴은 처참했다.
홍빈이 속으로 읊조렸다. 순진하구나, 김원식. 아직도.
"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
"……"
"이유가 뭐가 됐든, 이재환이 정택운을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 한다는 건 나도 찬성."
"…니가? 너는 갑자기 왜?"
"Beautiful Killer… 가 나보다 남의 손에 먼저 정체가 밝혀지는 게 싫기도 하고,"
"……"
"이재환이 맘에 안 들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원식에게 홍빈이 손을 내밀었다.
뭐해, 안 잡아? 동맹의 악수야. 재촉하는 홍빈 때문에 얼결에 손을 내민 원식이 홍빈의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다.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
6편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이번 편에는 거의 홍빈이 원식이 위주죠? 저번 화에 많이 안 나와서 이번 편에 비중을 늘려줬습니당 :)
지난 편에는 자그만 이벤트가 있었죠? 숨어있는 노래 가사를 찾아라!
총 두 곡의 노래가 숨겨져 있었는데요, 저주인형과 Beautiful Killer였습니다^_^
먼저, 저주인형 가사는 '가질 수 없다면 그냥 널 위해 살겠어 얼마든지 너라면 다칠 준비가 돼 있어' 였습니다!
Beautiful Killer는 'Beautiful Killer 위험한 아름다움에 미쳤어 돌아가는 길은 없어' 와 '내 말 이해가 돼?' 두 가지였는데요!
첫 번째 파트는 다들 맞춰주셨는데 내 말 이해가 돼? 부분은 아무래도 라비가 속삭이듯 말하는 거라 그런지 한 분밖에 찾은 분이 안 계시더라구요ㅠㅠ
두 곡을 다 맞춰주셔야 정답 인정이 됩니다!
맨 처음으로 정답을 맞춰주신 레오정수리 님! 축하드려요 와(박수) 별다른 상품은 없지만.. 제 사랑을 받으세요.. 헉 안 받으시면 안돼요ㅠㅠ
그 밖에도 가사를 찾아 주신 모든 독자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
항상 제 소설을 읽어 주시고 댓글로 격려해주시는 분들께 참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독방에서 와주신 모든 분들, 암호닉 쥐엔티 님, 레오정수리 님, 초롱초롱 님, 블루밍 님, 뎨니스 님, 카니발 님, 정모카 님 모두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