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07
문을 두드렸다.
원목 재질의 커다란 문에 주먹이 부딪혀 소리가 천장 복도를 타고 울렸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몇 번이나 두드렸음에도 대답하지 않는 택운에 학연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셔츠만을 입은 채 이불을 칭칭 감고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택운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학연이 문을 닫자, 택운의 시선이 느릿하게 그 쪽으로 옮겨갔다.
"…왜 있으면서 문 안 열어."
"……."
택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학연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거둔 택운이 다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천천히 택운 쪽으로 걸어온 학연이 택운이 누워 있는 침대의 머리맡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피곤한 듯 걸터앉았다.
아무 말 않고 그저 택운을 바라보던 학연이 손을 천천히 뻗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택운의 왼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그 따뜻한 손을 택운은 매섭게 쳐냈다. 허공을 향했던 시선에 날카로움이 섞였다.
무안할 만도 한 일방적인 거부와 무시에 학연은 익숙한 듯 다시 손을 뻗어 그 왼손을 꽉 잡았다.
쳐내 봐야 소용없다는 걸 느낀 그 왼손은, 잔뜩 불만의 빛을 띄면서도 저항하지는 않았다.
왼손을 더 단단히 잡은 채, 학연이 느리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숨을 뱉었다.
"택운아."
"손 놔."
"정택운."
여태껏 허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택운의 고개가 사납게 돌아갔다.
앙칼지게 올라간 눈꼬리 끝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고, 울음을 참는 듯 앞니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학연이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당분간은 일 쉬도록 하자."
택운의 눈이 희미하게 커졌다. 정택운이 자기가 하는 일에 집착이 강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학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무 위험해. 이대로는. …불편하겠지만 당분간은 여기에만 있어야 될 것 같다."
"싫어."
"내 말 들어. 내가 너 다칠까봐 걱정돼서…"
"위하는 척 하지 마!"
이번에는 학연의 차례였다. 택운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학연이 택운을 잡은 손에서 놀라움에 힘이 살짝 빠졌다.
그 틈을 타 잡힌 손을 홱 뿌리친 택운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발개진 눈가가 젖어 오고 있었다.
차학연도, 정택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는 시선에는 지독한 냉기와 뜨거운 열기가 공존한다.
이내 택운이 울음기 서린, 그리고 증오가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내가 정말로 걱정됐었다면 진작에…"
"…택운아 난-"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어, 씨발."
"……."
"…진작에 말렸어야지.'
택운이 무언가 억누르려는 듯 울음기로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집어삼켰다.
울지 않으려 바들바들 힘을 주어 떨리고 있는 처연한 눈매가, 섹시하다고. 그 순간조차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을 혐오스러워하며 학연이 눈을 감았다.
택운은 더이상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독기 어린 시선을 차마 받아칠 수 없었던 학연이 몸을 돌렸다.
"…일은 쉬는 걸로 알고 있을게."
문이 닫기며 학연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문이 닫히는 그 순간 택운은 무너졌다.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물은 어느 새 얼굴을 뒤덮었다.
넓은 어깨에 걸쳐진 셔츠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구김살이 졌다.
든든해 보이던 어깨가 그렇게까지 처연해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택운의 옷장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한상혁이었다.
-
"…괜히 놀러왔다가 이상한 걸 들어버렸네요. 그죠?"
상혁이 자신의 앞에서 가련하게 떨고 있는 택운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지금 한상혁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울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던데다, 더군다나 눈 앞의 그는 그가 오매불망 꿈꿔오던 이상형이었다.
달래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달래 줘야 할지를 상혁은 몰랐다.
택운의 침대에 상혁은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긴 팔을 뻗어 택운을 품에 안았다.
따뜻한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생경한 감촉이었다. 상혁이 택운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심장이 맞닿을 듯, 숨이 섞일 듯 가까웠다.
택운이 얼굴을 기댄 오른쪽 어깨가 젖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말도 섞어 주지 않던 사람이 얌전하게 품 속에서 비맞은 고양이마냥 울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혁의 머릿속이 묘한 지배욕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맘 놓고 울어도 돼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 입 무거워."
"…으흑, 끅… 흑, 윽, 으윽…"
억지로 삼켜내는 듯 자그맣던 울음소리가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상혁의 귓가를 울렸다.
커다란 손으로 등을 토닥거렸다.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넓은 등이, 오늘따라 한없이 약했다.
-
"없다고?"
"예, 어디 가셨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셔서…"
"그래, 오면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전해줘."
"예!"
또 없었다. 김원식이. 또.
재환이 습관처럼 입술을 핥았다. 자꾸 건조해지는 입술 탓에 원식이 몇 번을 말렸지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다.
어디로 간 걸까. 요즘 들어 원식의 모습이 자꾸만 보이지 않았다.
충성스러울 땐 곁에 두기 참 좋은 부하임에 틀림없었지만, 마음을 바꿔먹는다면…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
재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방황하던 김원식을 잡아 억지로 일으킨 것은 그였다. 자칫 사라질 뻔 했던 천재적인 재능을 발굴한 것은 그였단 말이다.
기껏 키워놨더니 주인을 몰라보고 잇자국을 남기려 하는 김원식이, 이재환은 괘씸했다.
"돌아오면 진지하게 우리 원식이랑 대화나 나눠 볼까나, 오랜만에."
방으로 들어온 재환이 욱신거리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감겨진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피가 배어나와 까슬한 감촉이 마냥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정택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의자에 앉아 올려다본 창틀은 이틀 전의 그 자그만 난동을 머릿 속에 계속 상기시켰다.
달빛을 받아 빛나던 피부가, 살랑거리던 머릿결이, 그 치명적인 피사체가.
갖고 싶었다. 미친 듯이 갖고 싶었다.
이재환이 처음으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갖고 싶다.
BR에 직접 맞부딪힌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재환이 막가파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다.
며칠간은 몸을 숨기고 활동을 자제할 테니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사실 무리였다.
재환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역시, 아직은 이용가치가 있네."
재환이 낮게 웃었다. 아직은 내 손아귀에 있는 호랑이 새끼였다. 그리고 더군다나 아직 새끼에 불과했다.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하고, 짓밟을 수 있을 만큼 짓밟아 주는 것이 이재환이 김원식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였으며, 이재환 식의 보상이었다.
-
"BR에 잠입하는 수밖에 없어."
"…BR에?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건가?"
"다른 방법 있어? 있으면 말해봐."
"……."
"분명히 얼마 동안은 활동을 자제할 거야, 조직에서도 꽁꽁 감싸맬 테고.
그러니까 밖에서 정택운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고, 다시 활동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원식이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원식은 사실 조금, 겁이 났다.
"게다가 네 잘난 보스님이 우리가 이렇게 뒤에서 작당하는 걸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 바보같은 짓이고."
아, 원식의 몸이 움찔했다. 재환에게 말하지 않고 조직을 너무 오래 비워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식이 다급하게 앉아 있던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벗어 두었던 자켓을 다시 걸치는 원식을 올려다보며 홍빈이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무서운가 봐."
"너도 알잖아."
"뭐… 그래, 이해해. 어서 가봐 그럼."
"언제 다시 연락할까."
"그건 내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알았어. 간다."
원식이 황급히 제 집을 벗어났다. 현관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홍빈이 바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더니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번호 열한 자리를 누른 홍빈이 휴대폰을 귓가에 갖다대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나 좀 보죠."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7편을 들고 찾아왔어요ㅠㅠ
일단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해 드리고 싶습니다ㅠㅠㅠ 진짜 진짜 죄송합니다ㅠㅠ(꾸벅)
사실 슬럼프가 찾아왔었어요, 글도 대체적으로 잘 안 써지고 뷰티풀 킬러도 손에 잡히질 않더라구요..
글 쓰는 입장에서 변명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찾아왔으니 너무 화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
그리고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분이 계세요. 이 자리를 빌어서!
저와 같이 글잡담에서 글을 연재하고 계시는 소리꾼 님!
사실 아예 글을 놓아 버릴 뻔한 저를 다시 글 쓰게 만들어 주신 분이라ㅠㅠ
정말 힘이 많이 됐고, 많이 기뻤습니다. 소리꾼 님의 댓글을 보고 다시 쭉 제 글에 달린 독자분들의 댓글을 다 읽었는데 왈칵 눈물이 날 뻔 했어요.
모든 독자분들, 전부 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역시 제가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은 독자분들의 사랑인 것 같아요.
비록 늦게 돌아온 저지만 예쁘게 봐주실 거죠? ㅠㅠ
2013년 마지막 남은 하루인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제 소설을 읽는 분들 가운데 저처럼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시다면 언제나 응원한다고, 화이팅이라고 전해 드리고 싶어요.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정말로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