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
02. 우리의 막내 작가, 그대는 우리들의 히어로였습니다
멀쩡히 대한민국 남성으로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스물둘 남정네들한테 호모 결혼이라니, 호모라니…
힘없는 막내작가는 학연의 앞에서 더욱 작아질 뿐이었다. 과연 얘기라도 꺼낼 수 있을지.
저 선량한 청년에게 뺨이라도 얻어맞는 건 아닌가 싶어 막내작가는 조금더 움츠러들었다.
"그, 학연씨. 그러니까요.. 이게 그냥 우결이 아니라, 그-"
"네, 뭔데요? 와- 제가 혹시 막 창사 45주년 스페셜 게스트, 뭐 그런 건가요? 신기하다!"
아뇨, 스페셜… 그래, 스페셜하긴 한데 그게 좀… 생각하시는 거랑은 다른 스페셜일 수가 있거든요…
막내 작가의 가뜩이나 애처롭게 움츠러든 어깨가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저 희망에 찬 눈동자를 보자니 도저히 그 예쁜 눈동자를 실망의 빛으로 물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도 죄책감이라는 게 있어요 피디님…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다가 학연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막내 작가는 막내라는 이유로 짊어지게 된 무겁다면 무거운 이 짐을 처절하게 원망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네, 스페셜하긴 해요, 스페셜한데 그게... "
"네, 네! 뭔데요?"
"…상대… 가 남…"
"뭐라구요? 못 들었어요. 조금만 크게-"
"결혼 상대분이 남자예요!!"
카페에 적막이 흘렀다. 방음처리가 잘 되어 있는 룸카페 형식의 공간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단번에 이제 막 정상에 오르려는 청춘 배우 차학연, 남자와 결혼을!? 따위의 찌라시 기삿거리가 나돌 것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막내 작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더이상 질질 끄는 것도 시간낭비겠다 싶어 그냥 빽 질렀는데, 남자예요!! 라고 소리지르는 그 순간 우리의 불쌍한 막내 작가는 무너져내렸다.
학연씨 내가 미안해요... 앞에 있는 따뜻한 꿀우유를 뒤집어쓸 각오까지 한 막내 작가는 곱게 꿇어앉은 무릎 위에 얹어진 자그만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쏟아지지 않는 꿀우유에 미간에 주름이 새겨지도록 눈을 꽉 감았던 막내 작가가 살며시 눈을 떴다.
학연은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다기보단… 굉장히…
"…학연씨?"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진짜 신기해요! 남자랑? 우와, 우와, 우와!!"
…기뻐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 상황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우리의 처량한 막내 작가는 지금 머릿속에서 계산 오류가 났다.
"상대는 누구예요? 상대는 상대는? 네? 상대는요?"
"아니, 학연씨, 그게, 저기요, 학연씨? 진정…"
어느 새 막내 작가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댄 학연이 막내 작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하니 부여잡고 자그만 막내 작가를 탈탈탈 흔들어댔다.
눈앞에는 눈코입 전부 훈훈한 마스크의 유명한 남정네가 자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다,
몸은 모터 달린 것마냥 흔들려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상대를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건만, 지금 우리의 막내 작가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상대가 누구예요? 누구냐니까요? 네? 작가님?"
"학연씨 그만… 저 토할… 것 같…"
"상대가 누-"
"택운씨요, …택운씨, 정택운씨! 이제 그…"
이제 그만 놔주세요, 라고 막내 작가가 흐려진 발음으로 말하기도 전에 학연이 어깨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어질어질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초점을 맞춘 막내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제가 아는 그 택운 씨 맞죠…?"
언제 자세를 바꿨는지 편안하게 앉아 있던 다리는 어느새 무슨 성배라도 받듯 다소곳한 꿇은 자세로 변해 있었고,
두 손은 축복을 받은 어린양마냥 가슴팍 앞에 꼭 쥐어져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연상시켰다.
뭐 이런 또라…
자그맣고 착한 막내 작가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비속어가 나올 만큼 솔직히 학연의 병신스러움은 룸카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 했다.
당황스러움에 빠져 어버버, 하고 있는 막내 작가에게 천천히 다가온 학연이 막내 작가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반짝거리는 눈망울에서 온 세상의 행복을 가진 것마냥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쁨이 흘러넘쳤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저기요… 학연… 씨…?"
"사.랑.해.요. 우.결… 우.윳.빛.깔. 우.결…"
그 충성 받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운데요…
막내 작가가 억지 웃음을 간신히 얼굴에 띄었다. 누가 봐도 지금 차학연은 막 하얀 병원을 탈출한 정신병자같았기 때문이다.
성격파탄자 멍멍이아기 이홍빈과, 정신병자 또라이 차학연이라니.
막내 작가는 <Real RedBin>과 함께 집에 가자마자 <BlackCha>를 탈퇴하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우리의 불쌍한 막내 작가, 그대는 우리들의 히어로였습니다… 수고했어요…☆
-
똑똑.
막내 작가는 노크를 했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닫혀 있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이밀자마자 울려퍼지는 쿵짝쿵짝 힙합소리와 눈앞에 펼쳐진…
마치 35년 동안 모태솔로로 살아온 남자의 자취방 같은 그런 광경에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저… 라비 씨?"
작업실을 가득 채운 쿵짝쿵짝 소리에 막내 작가의 자그만 보이스가 묻혀 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 막내 작가가 조심조심 뭔가 커다랗고 이상한 기계와 컴퓨터를 만지는 원식의 뒤로 다가가 등을 톡톡 쳤다.
"라비 씨 안녕하…"
"아이 씨발 누구야!"
우리의 막내 작가는 자신의 운명은 왜 이렇게 기구한가를 속으로 한탄하며 다짜고짜 안면에다 대고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라바 닮은 남자를 향해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구요 대체, 왜 내가 섭외하려는 새끼들은, 어? 정상적인 놈이 한 명도 없어…
"우… 우리 결혼했어요 제작진 입니…"
"아, 그래 거기였지… 씨발 하필 미팅날짜를 좆같이 잡아서…"
작업실로 들어가기 전 원식의 매니저로부터 들은 당부가 생각났다. 매니저님은 참… 순둥순둥하니 착하게 생기셨던데…
'어떻게 날짜를 맞추다 보니 타이틀곡 작업 기간이랑 겹쳤네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저희야 뭐…'
'그런데 저기… 원식이가 정말로 그런 애가 아닌데, 정말 평소에는 착하고 애가 유순하거든요 근데 곡 작업만 들어가면…'
'들어가면…?'
'좀… 애가 좀 난폭… 해져요. 게다가 지금 곡 작업이 원활하지가 않아서 더 그럴 텐데…'
'괜찮아요! 보통 프로듀서분들이나 가수분들 다 그러시니까 뭐,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걱정하는 매니저님을 향해 상큼하게 웃어보였던 일이 까마득히 먼 일처럼 느껴졌다.
아 매니저님… 당신의 충고를 들을 걸 그랬나봐요… 보통 난폭한 게 아니었네요…
우리의 막내 작가, 화이팅….
우리의 굳센 막내 작가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뺨을 저 커다란 손으로 후려갈길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원식의 앞에 꿋꿋하게 앉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작업이 끊긴 모양인지 원식의 미간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아 험상궂어…
원식은 열일곱 살, 갓 고등학생이 됐을 때부터 언더 쪽에서 활동을 시작한 프로듀서 겸 랩퍼였다.
재치있고 기발한 작사 작곡과 매니아층을 확보하기 좋은 목소리톤으로 언더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랩퍼였는데다가,
요즘 들어 언더힙합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예능에도 몇 번 출연하고 단독 콘서트도 성황리에 마치는 등 한창 뜨고 있는 그런 랩퍼이기도 했다.
데뷔 4년 차의 스물한 살 김원식은 유독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석으로 잘생긴 미남형은 아니지만 묘한 매력이 흐르는 페이스에, 예능에서 보여준 세 보이는 외모와는 상반된 순둥순둥하고 귀여운 성격,
여자들이 깜빡 죽는다는 중저음, 그리고 183의 탄탄한 신체조건에 쫙 뻗은 우월한 다리, 남친룩의 정석인 패션센스까지.
사실 거의 모든 남자연예인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막내 작가의 쿠크다스 멘탈은, 이미 우결 섭외를 시작하면서부터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너만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순둥이 라비까지 작업 중에는 개가 된다니…
그래, 그래도 작업 중만인게 어디야. 우리의 막내 작가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름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관해서 물어볼 게 있는…"
"아 씨발 그거 지금 물어야돼? 요? 나중에 하면 안돼? 나 지금 존나 중요한 부분 작업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예? 일분 일초가 급한 거 안 느껴져?"
"아뇨 저기 지금 결정해주셔야… 녹화가 당장 다음 주…"
"아 할게요, 한다고. 뭐든 알았으니까 좀 나가."
"에? 안 들어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아 알았다니까! 괜찮다구요! 우결이건 뭐건 지금 나 곡 작업해야 된다고!"
막내 작가가 원식의 작업실 문을 살짝 닫았다.
욕을 먹더라도 인간적으로 말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라비 씨, 내가 지금 겪을 거 안 겪을 거 다 겪어서 힘들었어요, 미안해요. 마지막 타자인 게 죄예요…
나는 잘못한 거 없어, 라비 씨가 괜찮다고 한 거야. 그래,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남자라고 했다가 안한다고 작업실 뒤집어 엎으면 어떡해.
우리의 막내 작가가 쉼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하긴 하지만 라비 씨… 미친놈 세 명을 상대할 기운이 나는 없어요… 너님 섭외 못 해가면 내가 피디님한테 욕먹어.
막내 작가의 자그만 손가락이 휴대폰 버튼을 꾹꾹 눌렀다.
"…네, 피디님, 네. 라비씨까지 전부 섭외 완료했습니다, 아뇨, 화 안 내시던데요. 상관없으시대요. 네. 네,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이 결혼, 심히… 걱정된다.
-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
우결 2편이에요! 너무 늦게 들고왔죠 죄송해요 찡찡ㅠㅠ 감기몸살이 갑자기 찾아와서ㅠㅠ
새 작품으로 찾아뵙게 되었는데요! 괜찮은가요? 레람쥐 님과 앞으로 요로쿵조로쿵 잘 굴려갈 빅스의 우리 결혼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