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가 슥슥 밀려 제 몸의 일부를 떼어냈다. 밀려오는 힘의 방향대로 휘적휘적 딸려오는 지우개 가루를 툭툭 털어냈다. 단단히 덩어리를 형성한 것은 제 형태 그대로, 그렇지 않은 것은 다시 부스러기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따분하다. 칠판 앞에 선 교사는 뿌리없는 말들만을 나열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한 무리가 그를 신의 계시라도 되듯 열심히 받아적는다. 우리는 우스겟소리로 그들을 성적의 노예라 부른다. 그래, 저렇게 이상향없이 목 매달고 있는 꼴이 딱 그 모습이다. 교실 한 편에서는 교사의 말은 뒤로 한 채 저 할일을 하느라 바쁘다. 못다한 잠을 이루는 이, 다른 과목의 공부를 하는 이, 손가락을 바삐 놀리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이. 아니면 저처럼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는 이.
"87년 이후 8년이 넘는 세월동안 과도기를 거쳐..."
이미 지나온 나날들이 무어든, 빠르게 흘러가는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들이 역사는 강자들의 기록이라 말하면서, 강자들의 논리만 가르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될 대로 되라지.
떨어진 지우개 가루들을 운동화로 슥슥 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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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